Prologue
Click |
오늘은 좀 늦게 눈이 떠졌다. 아홉시……. 그럼에도 자꾸만 눈이 감기기에, 찬물로 세수를 하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 후 책상 앞에 앉아 펜을 잡았다. 찬물 세수의 냉기가 아직 다 가시지 않은 얼굴에 찬 공기가 닿아 얼어붙을 것처럼 시려웠다.
감기걸리면 큰일인데 조심하고 계세요?
그리고, 보고싶어요…….
관두고 편지지 모서리를 맞추어 반듯하게 접었다.
편지지와 같이 새하얀 봉투를 꺼내어 반듯하게 접힌 편지를 구겨지지 않게 조심조심 넣어서 편지 봉투 입구가 삐뚤어지지 않게 잘 접고, 연필꽂이에 꽂혀있던 딱풀이 지저분하게 묻지 않도록 잘 바르고 벌어지지 않게 꼭 눌러주었다.
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관문을 열어보니 늦잠을 잔 탓에 원래대로라면 현관문에서 받았을 도시락이 문 옆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다이어트? 애기야, 애기는 지금이 딱 좋아. 정 다이어트할 거면 아저씨랑 운동다니자. 이런거만 먹으면 몸 상해요.」
작년 여름쯤으로 기억한다. 같이 바다 여행을 가기로 약속하고, 아무래도 살을 좀 빼야할 것 같아 아침, 저녁을 고구마로 떼우던 시기에 아저씨가 내게 한 말이었다. 걱정해주는 말이 듣기 좋아 일부러 쫄쫄 굶기도 하고, 아저씨 앞에서는 아무것도 입에 안 대기도 했었다. 결국 참다참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아저씨가 우리 동네 휘트니트 센터의 커플 이용권을 끊어와서 그렇게 굶지 말고 운동을 하자고 윽박지르는 걸로 끝나긴 했지만.
아저씨는 많이 바빴으니까. 항상, 늘.
밥해먹기가 귀찮아 이쪽으로 이사오며 이용하기 시작한 도시락 서비스는 꽤 편리했다. 아침, 저녁 뿐이지만 점심이야 거의 안 먹는 편이니까. 오늘의 도시락 메뉴는 두부조림, 배추김치,ㅈ 시금치무침, 비엔나 소세지, 잡곡밥. 그리고 유리병에 담긴 오렌지 쥬스……. 오렌지 쥬스. 오렌지, 쥬스.
「학생이에요? 아르바이트? 아아ㅡ 아, 아저씨 이상한 사람은 아니에요. 매번 보는데 요즘 학생답지 않게 참 차분하고 일도 열심히 하길래. 아무튼, 수고하고. 힘내요.」
아빠가 쪽지 한장도 없이, 애인이라는 여자와 도망쳤을 때 나는 열여덟이었다. 학기 노트조차 살 돈이 없어 할머니가 폐지 수집을 하러 다니셨지만 지병이었던 고혈압이 아빠의 도망 사건 이후로 심해지는 바람에 일을 하다 쓰러지셔서 더이상은 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자퇴했다.
회사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거리의 한구석, 식당가의 설렁탕집.
하나같이 똑같은 양복차림 아저씨들 뿐이었다. 아저씨도, 처음에는 그 중 하나인 양복차림 아저씨일 뿐이었다ㅡ
일한지 두달 정도 되었던 그해 봄날, 내 인생 유일하게 따듯한 추억이 시작되었다.
저녁 시간이 끝나고 식당내에 손님이 몇 남지 않았을 때였다. TV를 보며 느릿느릿 어질러진 손님상을 치우던 내게 다가와 아저씨가 그리 말했다. 그리고 내 손을 잡아당겨, 오렌지 쥬스를 쥐어주었다.
겨울날 이후 아직까지 녹지 못하고 있는 내 가슴 안을 녹이기 시작한 불씨였다.
「언제 퇴근해요? 데려다줄게.」
다 먹은 도시락을 뚜껑 덮어 현관문 앞에 놓아두고, 들어오면서 책장에서 아무거나 빼들어 침대에 걸터앉았다. 문득 쳐다본 시계는 막 열시를 넘기고 있었다.
그때도 이런 모양이었다.
아침엔 할머니 식사를 챙기느라 새벽같이 일어났고 저녁엔 할머니가 마저 못한 부업을 돕느라 일찍 잘 수 없었다.
그럼에도 쉬이 지치지 않았던 건, 가슴 안을 녹이기 시작한 불씨가 얼음을 모두 녹이고 젖은 자리를 따뜻하게 말렸기 때문이었다.
애정이든 무엇이든 정이 그리웠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그것은 난로가에 놓아둔 옷가지와 같았다.
그날은 얼마나 성질이 나던지, 점심부터 짜증나는 일 투성이었다. 백발 성성한 할아버지가 이리 앉아 술 좀 따라보라지를 않나, 배달 아저씨는 스치는 척, 모르는 척 자꾸 이곳저곳 더듬질 않나. 한번만 더 이런 일이 생기면 다 엎고 나가버릴 거라고 마음속으로 꾹꾹 눌러담았다.
계산대에 서서, 아저씨가 내민 카드를 건네받다 손가락이 스쳐 두근거려하고 있을 때 아저씨가 말했다.
그때, 막 바짝 마르고 따뜻해졌던 그때, 불씨는 불을 지폈다.
그리고 그것은 순식간이었다. 불은 잔 잔 하 게 타올랐다.
출근해서 퇴근까지 거기서 거기인 아저씨들 틈에서 아저씨를 찾는게 버릇이 되었고, 아저씨도 눈이 마주칠 때면 씩 웃어주었다.
스물여덟, 열살 차이. 나 와는 다르게 대학도 나오고 번듯한 직장도 있던 사람. 깔끔한 양복 차림으로 마주할 때면 후줄근한 내 옷차림을 창피해지게 만들던 사람.
한달에 두번인 쉬는 날만 바라고 살던 나를 출근을 즐겁게 만들어준 사람. 가끔 마지막 손님으로 남아있다 오렌지 쥬스를 건네주고 가던 사람. 상 치우기 힘들까봐 꼭 빈 반찬 접시를 포개어 놓던 사람. . . . . . 그런 것들이 땔감이 되어 날이 갈수록 불은 커지고 커지고 커졌다. 가끔 이 불이 너무 커지면 마음 안의 나머지 것들이 모조리 타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모순인 것은 이걸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가게 앞 골목길에 서있던 아저씨ㅡ 나로부터가 아닌 아저씨에게서 나온 말ㅡ
「전부터……. 좋아했어요.」
벌건 얼굴로, 꼬인 혀로 그리 말했다. 술의 힘을 빌린 건지 술김인지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좋았다. 이건 정말, 땔감 정도가 아닌 기름을 들이붓는 격이었다.
잔잔히 타던 불은 기름을 머금고 더크게 타올랐다. 크게, 크게.
그것은 정말 순식간이었다.
정신없이 예전 생각에 잠겨있다, 한참 후에야 아까 빼온 것이 사진 앨범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주 천천히. 추억을 곱씹으며 한장 한장 추억하기 시작했다. 아저씨와의, 생애 다신 없을 추억을. |
첫연재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엄한 내용 들고 왔네요
아직 단편이될지 장편이될지조차 안정했어요 ㅠㅠ 이렇게 대책없이 스타트하는거 처음이네요
뭐.. 어떻게든 되겠죠
?퓨ㅠㅠㅠㅠ 잘부탁드려요
암호닉!
보갱이여친루팡님, 기식빵님 아저씨님 똥코렛님 반갑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