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실 문을 다시 열고 고개를 빼꼼 내놓아 사장실 안을 두리번 거리며 심호흡을 크게 한번 내쉬고 들어갈려던 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병신, 이라는 욕이 들리더니 내 머리를 손바닥으로 툭, 하고 쳤다. 남우현? 그렇다 남우현이다. 우현이 사장실 문을 벌컥 열어 쇼파에 거만하게 앉았다. 성규가 벙찐상태로 우현을 쳐다보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맞은편 쇼파에 살짝 앉았다. 앉아서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 거리고 있는데 우현의 시선이 느껴졌다.
" 개새끼. "
성규는 우현을 한심하게 쳐다봤다. 입만 열면 욕만 내뱉는 우현이 어이가 없었다. 저런 나쁜 입으로 대중들에게 무슨 노래를 들려주겠다는 건지. 더 비호감이었다. 성규는 가볍게 우현의 욕을 무시하고 흘러내려간 양말을 다시 신었다. 양말을 완전히 신고 슬리퍼 위로 올려놓자 사장실 문이 다시 열리고 사장이 들어왔다. 또박또박 사장의 독특한 구두소리에 성규는 얼굴을 찌푸리고 일어나 꾸벅, 인사했다.
" 앉아도 돼. "
성규가 다시 의자에 앉고 호원 역시 의자에 앉았다. 호원이 손수건으로 자신의 손을 닦고 뻐근했던지 목을 한 바퀴 돌렸다.
" 김성규 내가 너한테 제안을 하나 해보려고. "
" ..네? "
" 남우현 대신 노래 좀 해봐. "
우현은 꽤나 자존심이 상한 표정으로 앞에 있던 종이컵을 구겨 던졌다. 호원이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우현의 뒷통수를 한 대 치고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 무대에는 남우현이 올라갈거야. "
" ...... "
" 넌 녹음만 대신하고 무대 밖에서 노래만 하면 돼. "
" 언제, 까지요? "
남우현 목 돌아오면 완전히 끝나는거야. 넌 바로 연습생 되는거고. 호원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성규는 동우의 일에 대한 것을 그냥 넘어가는 호원이 탐탁치 않았지만 연습생의 길을 그대로 포기해 버릴 수는 없었고 우현의 목이 돌아오는 데에는 한달도 걸리지 않을 것이라 알고 있었지에 흔쾌히 제안을 받아드렸다.
*
녹음실에 도착한 성규는 녹음실 부스 안으로 들어가고 우현은 유리 창 밖에서 그런 성규를 바라봤다. 저런 아마추어 따위한테 자신의 노래를 뺏겼다고 생각이 들어 짜증밖에 더 나질 않았다. 검정색 잉크로 프린트 된 노래 가사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 휴지통 안에 쑤셔 넣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우현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가이드 녹음을 몇번 들어본 성규가 눈을 감고 노래에 집중했다. 음표가 머릿속에 어느정도 대충 정리가 되었는지 우현이 쓰레기통에 버린 조각난 가사들을 다시 집어 천천히 하나 둘 맞추었다. 이 노래는 감정이 없어.
다시 녹음실 부스 안으로 들어가 손으로 오케이 표시를 하자 반주가 흘러나왔다. 강한 비트에 의미 없는 가사. 성규는 가사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가이드 녹음을 떠올리며 노래에 집중했다. 작사가가 성규의 노래를 들으며 작곡가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성규는 지금 원곡 노래의 가사를 완전히 바꾸어 부르고 있었다. 반주를 꺼버린 작곡가가 성규에게 물었다. 이 노래 가사 니가 만든거야? 성규는 고개를 저었다. 가이드 녹음 그대로에요.
다시 반주를 켜자 성규는 목을 대충 풀고는 노래 했다. 성규가 하는 노래는 일반적인 노래와는 달랐다. 똑같이 감정을 빼고 불러도 다른건 다른 것이었다.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던 우현도, 관심없이 볼펜뚜껑을 깨물던 작사가도 그리고 프로듀서들도 모두 성규의 노래에 넋을 놓고 들을 뿐 누가 먼저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긴 녹음시간이 끝나고 성규가 꾸벅 인사를 한 후 녹음실에서 나왔다. 무표정한 얼굴로 녹음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매니저가 급하게 성규의 팔목을 잡았다. 성규가 자신의 팔목을 바라보다 한숨을 쉬고 고개를 들어 매니저를 쳐다봤다.
" 성규야 "
" 또, 뭐요.. "
" 너 우현이랑, "
숙소 같이 살아야 돼. 우현이 목 돌아오기 전까진 둘이 한 팀이야. 성규는 매니저의 말에 머리가 터져버리는 줄 알았다. 가뜩이나 욕 듣는 것도 역겨워 죽겠는데 같이살면 얼마나 골치가 아플지 안봐도 비디오. 우현이 벤에서 기다려. 마지막 매니저의 한마디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차로 향하는 발걸음 치곤 꽤 무거웠다. 이 난관만 잘 거치면 연습생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차 문을 열자 문이 닫혀있었다. 차 키를 안받아 왔구나. 차갑게 얼어버린 두 손을 비비고 순 위로 입김을 불며 기다렸다. 5분 정도가 지나자 발걸음 소리와 함께 매니저와 우현의 얼굴이 보였다. 매니저가 미안하다며 차 문을 열어주고 우현이 그 안으로 올라탔다. 성규가 따라 올라타자 우현이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성규를 노려봤다. 계속되는 우현의 시선에 성규는 어이가 없었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우현이 성규를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지가 노래를 못하는걸 어쩌라고.
" 그만 좀 보지? "
" 신경 끄시지? "
매니저 형이 보다못해 라임맞추냐, 이새끼들아!! 라고 소리치자 둘 다 입을 그대로 다물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의 긴긴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우현의 집에 도착했다. 우현이 가방을 가지고 차에서 내리자 성규도 따라 내렸다. 매니저의 차가 쌩,하고 우현의 집에서 점점 멀어져갔고 성규는 차를 멍하니 그대 바라만 보았다.
" 멍 좀 그만 때리고 따라 오기나 해, 시발년아. "
성규는 자신의 귓구멍을 틀어 막던가 우현의 입을 찢어버리던가 둘 중에 하나라도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시발년아만 뺀다면 정말 멋있는 말이 었을 수도 있는데 왜 항상 자기가 자기 이미지를 깎아 내리는지.. 성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성규가 천천히 우현을 따라갔다. 우현이 비밀번호를 따면서 0428이라고 무심하게 툭, 내뱉자 성규는 무슨 뜻이냐는 듯 쳐다 봤다.
" 비밀번호 미쳔년아. "
성규가 그제서야 이해된 듯한 표정을 짓자 우현이 혀를 쯧쯧 차더니 집으로 들어갔다. 성규가 급하게 우현의 집 안으로 들어가자 마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온갖 사치품으로 둘러쌓일줄만 알았던 우현의 집은 꽤나 심플했다. 성규가 의외라는 표정을 짓자 우현이 픽하고는 웃고 성규의 뒷목을 잡아챘다.
" 왜 생각보다 깔끔하냐? "
" 뭐야. "
" 뭘 것 같은데? "
" ...이거 놓고 얘기해. "
어이, 김성규. 넌 내 그림자 인형일 뿐이야. 우현이 낮게 읊조리자 성규가 우현의 손을 툭 쳐냈다. 우현이 성규의 머리채를 잡고 바닥에 쓰러트렸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자신의 모습에 성규는 머리끝까지 수치스러움이 올라왔다. 가뜩이나 무대에도 못서고 무대 밖에서 노래를 해야한다는 것에 짜증이 나있었는데 그 장본인 우현까지 이러니 미칠 지경이었다. 성규가 입술을 꽉 깨물고 우현을 노려보자 우현이 성규의 무릎을 발로 툭툭 차며 얘기했다.
" 이 정도는 예상한 것 아니었냐? "
" ...뭐? "
" 내 노래도 뺏어놓고 여기서 살기까지 한다는건 "
" ...... "
" 이정도 수치스러움은 감당하겠습니다. 라는 뜻인줄 알았는데, 아닌가? "
우현이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성규에게 말했다. 밥이나 차려놔. 그 말을 들은 성규가 연습생이라는 목표만을 생각하며 분을 삯혔다. 외투를 벗고 주방으로 들어가 자연스레 라면을 집었다. 집에서 해본 음식이라곤 라면과 계란후라이가 전부였던 성규였기 떄문에 자연스레 라면을 끓였다. 보글보글 라면이 다 끓고 나서야 냄새를 맡고 우현이 슬금슬금 부엌으로 걸어나왔다.
메뉴를 확인한 우현은 화가났다. 가뜩이나 목이 아파서 노래도 못하고 있는 사람한테 라면이나 끓여주는 성규의 심리상태가 궁금해졌다. 자신을 약올리려 금기식품인 라면을 일부러 끓인 것인지 아니면 진짜 순수한 마음에서 라면을 끓인건지. 성규가 왜 안먹냐며 투정아닌 투정을 부리자 우현이 성규의 손목을 끌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 이거 놔! 놓으라고! "
성규가 손을 뿌리치려 해도 우현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우현은 성규를 자신의 침대 위로 내동댕이 친 후 성규의 위에 올라탔다. 하지말라고 발악하는 성규의 짹짹대는 목소리가 짜증났다. 우현이 우악스럽게 성규의 목덜미를 스윽 훑자 성규의 입에서는 노래할 때 보다도 훨씬 더 얇디 얇은 소리가 나왔다. 성규의 반응이 꽤나 재밌다고 생각이 들어 입고있던 후드티를 말아올렸다. 후드티를 말아올리자 성규의 뽀얀 속살이 훤히 드러났다.
" 너 내밑에서 우는 것좀 보자. "
" ..흐읏, 하지 마.. "
" 내 밑에서 앙앙대면 어떨지 내가 존나 궁금해서 말이야. "
우현이 성규의 유두를 지분대자 흥분 상태는 최고조였다. 성규가 소리를 치든 자신을 때리든 우현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고, 이미 온갖 신음소리와 살과 살이 맞닿는 마찰음에 묻혀 우현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우현이 성규의 허리를 쓸어 올리다 내리다를 반복하면서 성규의 애를 점점 태우기 시작했다. 성규가 하지마아, 라고 말꼬리를 흐리자 우현이 성규의 그것을 잡으며 속삭였다.
" 진짜 하지말까? "
성규가 괴롭다는 듯 하다 이내 적응이 되었는지 점점 매달리기 시작했다. 우현은 애초에 성규의 후장을 먹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미친듯이 애만 태우다 방으로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그래야 김성규가 더욱 더 울 것이고, 더 괴로울 거니깐.
" ㅎ,하지마..흐읏. "
싫어. 단호한 우현의 목소리에 성규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빨리 이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가길 기도할뿐 아무 얘기도 꺼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