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 늑대소년
05
w. 마카
"뭐해, 엄마?"
이른 오전부터 마당에서 의자까지 옮겨가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엄마의 모습에 경수는 나른하게 앉아있던 쇼파에서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경수가 바깥으로 나가자 거실 바닥에 앉아있던 소년 역시 경수를 따라 나왔다.
"아, 머리 잘라주려고."
"나?"
"아니, 저 아이. 머리 덮수룩한 게 보기도 좋지 않고, 그렇다고 머리자르러 시내까지 나가기는 좀 그렇고 해서. 얘 이리좀 와서 앉아봐."
경수가 자신의 뒤에 서있는 소년을 돌아보았다. 눈을 거의 가리는 덮수룩한 머리가 답답해보이기는 했다. 엄마의 부름에도 가만히 서 있기만 한 소년에 경수가 소년의 등 뒤로 걸어가 어깨를 밀어 의자까지 데려갔다. 얼떨결에 의자 위에 앉은 소년이 의아한 눈으로 경수를 올려다보았다. '머리 자르는 거야.' 경수가 자신의 앞 머리에 대고 손으로 가위질 하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곧 하얀천을 가져온 경수의 엄마가 소년의 목 주위로 하얀천을 둘러 묶었다. 소년의 뒷머리로 가위를 가져가자 싹둑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잘렸다. 그에 화들짝 놀란 소년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괜찮아."
경수가 그런 소년의 어깨위로 손을 올려 다시 의자에 앉혔다. 조금 경계심이 담긴 눈에 경수는 소년의 머리 위를 쓰다듬어 주었다.
"너 다치게 하는 거 아니니까 걱정 안해도 돼."
곧 다시 소년의 눈이 잔잔해졌다. 그에 짧게 웃은 경수는 의자와 떨어진 곳에 있는 벤치로 가 앉았다. 탁자 위로 팔로 턱을 괸 경수는 이젠 얌전히 머리 손질을 받는 소년을 지켜 보았다. 규칙적인 가위질 소리에 귓가가 간지러웠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오전 햇살에 나른해지자 조금씩 눈이 감겼다. 곧 소년의 모습이 눈 앞에서 흐릿해지고 경수는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경수야. 일어나봐 경수야."
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깬 경수가 나른한 눈으로 엄마를 올려다 보았다.
"머리 다 잘랐어. 봐봐."
느리게 눈을 깜빡이던 경수는 곧 엄마의 조금 뒤에 서 있는 소년을 발견하였다. 흐릿했던 초점이 뚜렷해지자 소년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머리 자르니까 인물이 훨씬 사네. 그렇지?"
이제는 눈이 다 드러나는 깔끔해진 머리를 한 소년이 경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부터 잘생긴 인물이라 생각하긴 했었지만 두꺼운 속쌍커풀이 진 눈이 드러나자 더욱 잘생겨진 소년의 모습이 햇살에 비쳐 눈부셔 보였다. 경수는 조금 놀란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자신도 눈을 가리던 머리카락이 짧아지자 어색한 지 조금은 쑥스러워 보이기도 하는 모습에 결국 씨익 웃어버리고 말았다.
'잘생겼네.' 나지막하게 내뱉은 한마디였다.
톡톡. 두꺼운 외투 차림으로 거실로 내려온 경수는 거실 탁자 앞 바닥 위에 앉아 있는 소년에게로 다가가 탁자 위를 톡톡 쳤다. 그러자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소년이 고개를 들어, 몽롱한 눈으로 경수를 올려다 보았다. 말없이 손가락으로 현관 쪽을 가르킨 경수가 먼저 발걸음을 떼자 그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소년도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경수의 뒤를 따랐다. 뒤에서 자신을 쫓아오는 소년의 기척을 느낀 경수의 한 쪽 입꼬리가 슬긋 올라갔다.
이사 오고나서 마당 이외에는 바깥으로 나가본 적이 없어 답답함을 느낀 경수는 처음으로 집 밖을 나서기로 했다. 이렇게 외출을 하는 것도 참 오랜만의 일이었다. 여기에 어떤 곳이 있고, 저기에는 어떤 곳이 있고. 아무 것도 몰랐지만 그저 잠시라도 바깥 바람을 쐬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서울에서는 이상하게도, 아니 어찌보면 당연하게도 외출 하는 것을 꺼려했었다. 그저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거나, 책상 의자 앞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그에 비하면 정말로 오랜만에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은 경수 자신도 의아한 일이었다. 경수는 그저 그것이 답답한 도시와는 다르게, 여유로워진 환경에 그리 된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어느 한 구석에서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었지만 굳이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에서였다.
"나도 사실 여기 잘 몰라."
소년 보다 몇걸음 더 앞장 서서 걷다 문득 내뱉은 말이었다. 그래도 소년은 말 없이 경수의 뒤를 쫓아왔다.
"그래도 가다보면 어디 뭐라도 나오겠지."
소년에게 하는 말인지, 경수 자신에게 하는 혼잣말인지, 둘 중 무엇이라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전자이건 후자이건 소년은 경수의 말을 못 알아 들을터였지만 경수는 그것을 그리 신경쓰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수의 발걸음이 자갈이 쌓인 시냇가 앞에서 멈췄다.
"이리 와."
먼저 시냇가 아래로 내려간 경수가 소년에게 손짓했다. 시냇물 앞, 자갈 위에 자리하고 앉은 경수에게로 곧 소년이 다가왔다. 그런 소년을 올려다보던 경수가 소년의 손목을 끌어내려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좋다."
느릿하게 흘러가는 시냇물을 바라보던 경수는 자신도 모르게 되뇌었다. 뺨에 닿는 차가운 겨울 공기도, 조금씩 불어오는 바람도, 고요 속에서 들리는 시냇물 소리도 좋았다. 소년의 시선은 그런 경수의 옆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소년에게로 고개를 돌린 경수도 말 없이 소년의 눈을 마주했다. 아무 의미도 섞이지 않은 시선이었다. 그래도 왠지 모르게 경수는 소년의 그런 눈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문득, 경수는 한 번도 소년을 이름으로 불러본 적이 없단 사실을 깨달았다.
"넌."
"..."
"넌, 이름이 뭐야."
굳게 닫힌 입술은 좀처럼 떼지지 않았다.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 그렇다고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아이. 이 아이에게도 이름이란 게 있을까.
"내 이름은."
"..."
"내 이름은 도경수, 도경수야."
그렇다고 소년에게 제 이름을 알려준 적 역시 한 번도 없었다. 경수는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자신의 이름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소년의 시선이 경수의 입술 위로 머물렀다.
"넌... 이름이 없어?"
이름이 없을 리가 없을테지만. 만약, 아주 만약 그렇다면.
"내가 이름... 지어줄까?"
소년에게 자신이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자신이 지은 이름으로 불리는 소년의 모습을 상상하던 경수는 미소를 지었다.
"종인."
"..."
"김종인."
무슨 이름이 소년에게 어울릴까. 잠시 고민하던 경수의 입에서 나온 이름이었다. 입 안에서 울리는 소년의 이름이, '김종인' 이란 이름이 소년에게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게 네 이름이야."
여전히 아무 말 없이 깊은 눈은 잔잔하게 경수의 입술 위를 맴돌았다.
그 날 저녁, 어김없이 자신의 뒤를 쫓아 또 방 앞까지 따라온 소년에 소년을 방에 데려다 주려던 경수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그대로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늘만."
"..."
"오늘만 들어오게 해주는 거야."
방문을 연 채로 경수는 소년에게 짧게 턱짓을 했다. 그리고는 거듭 '오늘만.' 이라며 강조했다. 누군가를 자신의 방에 들이는 것을 꺼리는 경수였지만 오늘만큼은 소년에게 허락해주었다. 왠지 소년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자신을 조금 내어주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스탠드 불빛만 켜진 방안은 창 밖의 달빛까지 들어와 꽤나 은은했다. 잠시 자리에 서 경수의 방안을 둘러보던 소년이 창문 밖으로 시선이 멈추고, 창가로 다가갔다. 그 모습을 조금은 호기심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던 경수가 곧 소년의 옆으로 다가가 섰다.
"뭐 봐?"
무엇에라도 홀린 듯 창 밖을 바라보는 소년의 시선을 따라간 경수는 이내 짧게 탄식했다. 보름달. 보름달이었다. 보름달을 곧 눈에 갖다 박을 것처럼 바라보는 모습에 창문을 열어주자, 차가운 저녁 바람과 함께 더욱 선명해진 보름달이 눈 안에 들어왔다.
"...예쁘다."
창가에 턱을 괴고서 소년과 같이 달을 바라보던 경수는 새삼 이렇게 달이 선명하게 빛났었나 싶었다. 사실 이렇게 달을 주의 깊게 바라본 것이 처음이기도 했지만 서도, 왠지 오늘따라 유난히도 밝게 빛나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달 좋아해?"
여전히 대답이 없었지만 경수는 처음으로 소년이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었단 사실이 조금 낯설기도, 설레기도 하였다. 보름달에서 소년의 옆얼굴로 고개를 돌린 경수는 이제는 달이 아닌, 달을 보는 소년의 모습을 눈 안에 담았다.
'어라.' 가만히 눈을 깜빡이던 경수는 무언가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상했다. 무언가가 조금씩 조금씩 경수의 마음 속을 간지럽혀 왔다. 이미 오래전부터 조금씩 열린 그것이, 점점 더 커져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설레었다.
경수는 설레었다. 달 때문일거야. 오늘 본 달이 너무 예뻐서 그런걸거야. 애써 그렇게 치부해버렸지만, 그러나 그것이 진심을 감추기 위한 거짓말 이었음을, 이미 경수는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독자여러분 마카입니다. 이번엔 결국 일주일을 넘기고 말았네요... 연말이라 행사가 많다보니 바쁘네요ㅠㅠㅠ 사실은 어제 올렸어야 하는데 차마 글은 다쓰고 올릴시간이 없어서 올리질 못하고 월요일날 올리게 되었네요ㅠㅠ 연재텀 길다고 욕하지 말아주세여... 연초에는 일주일에 두편씩..올리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_ㅜ 빨리 제가 원하는 결말을 쓰고 싶어요ㅠㅠ 그리고 외전도....ㅠㅠㅠㅠㅠ 외전은 아마 암호닉 신청해주신 분들에게만 보여드릴 것 같아요. 암호닉 걸어주신 독자여러분들 감사합니다^*^ 매번 텍스트를 다시 읽어보곤 하는데, 정말 수정할 부분이 많은 것 같네요... 암담합니다.^_ㅜ 암호닉 됴르륵, 똥주, 두비랍, 왕관, 동해, 고등어, 전주 비빔밥, 도도하디오, 향수, 김미자, 알찬열매, 사물카드, 얌냠냠, 흰자부자, 민트초코, 맥쥬, 끼용, 경수네, 띵뚱,김 어휴, 뭉티슈, 우왕, 경뜌, 꽁꽁, 르에떼, 오리, 소그미 여러분 모두 사랑해요 :) (혹시 빠진 암호닉이나 틀리게 썼다! 하면 바로 댓글로 알려주세여...^_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