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 늑대소년
02
w. 마카
"어쩌다 창고에 갇혀 있었다니."
빈 방에 눕혀진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을 보며 경수의 엄마는 혀를 끌끌찼다. 창고 안에 갇혀있던 그것은 밝은 곳에서 보니 덮수룩한 머리에 가려 얼굴이 잘 드러나진 않았지만 아직은 앳된 소년의 모습이었다. 방 문턱에 기대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경수는 아직도 가시지 않은 여운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이 추운 날에 옷도 이렇게 얇게 입고 있고. 이 동네 애인가.."
어떻게해서 창고 안에 갇히게 된건지, 얼마나 갇혀있던 것인지 알 순 없었지만 꽤나 덮수룩하게 자란 머리와 무척이나 꾀죄죄한 얼굴에 대충이나마 소년이 겪었을 상황을 나름대로 짐작할 수 있었다.
"경수야, 어디 다쳤어?"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이 서있던 경수에게 다가온 경수의 엄마가 경수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물어오는 목소리에, 그제서야 경수는 자신의 몸을 돌아보았다.
"...아."
넘어지면서 바닥을 짚었던 양 손바닥에서 생채기가 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상처를 보고 나서야 따끔 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다행히 두꺼운 외투덕에 뒤로 넘어졌던 팔과 등판이 조금 아릴 뿐 상처는 나지 않았듯 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발뒤꿈치는 꽤 심하게 깨졌는지 그 위 양말이 온통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피 나는 것 좀 봐! 아프지도 않아?"
"..아니."
"기다려봐. 엄마가 김씨 아저씨한테 구급상자 받아올게."
경수의 상처를 본 경수의 엄마가 소년을 방 안에 데려다주고 나간 별장지기 아저씨에게 구급상자를 받으러 나가고 자리에 서 경수는 피가 나는 손바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분명 아까는 아픈 것도 몰랐는데. 꽤 심하게 난 상처도 못 느꼈을 정도로 놀랐나 싶어 경수는 기분이 얼떨떨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시 소년에게로 시선을 돌린 경수는 왠지 모르게 이는 호기심에 소년에게로 한발짝 다가가 보았다. 아. 겨우 한발짝 움직였을 뿐인데 까진 뒷꿈치가 쓰라려왔다. 더이상 소년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자리에 서 경수는 물끄러미 잠이 든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다시금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던 위협적인 눈빛이 떠올랐다. 그것은 살기 위한 소년의 마지막 저항이었을까. 다시 생각해보니 그 정체모를 소리도 어떻게든 그곳을 빠져나가려 했던,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했던 소년의 의지였을 것이다. 그 큰 소리가 다시 귓가에서 쾅쾅 울리는 것만 같았다. 경수는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소년의 얼굴을 향했던 시선을 거둬버린 경수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걸어갔다. 까진 발뒤꿈치가 무척이나 쓰라렸지만 발걸음을 멈추진 않았다. 꽤나 거세게 문을 닫곤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기분이, 기분이 이상했다. 이상하게 자꾸만 화가 났다. 왜. 자신도 모르게 던진 물음에, 경수는 그것이 곧 소년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너무나도 쉽게 떠오른 대답에 경수는 더욱 화가 났다. 그래봤자 누군가에게 버려진 아이인데, 행색도 변변찮은 불쌍한 꼴을 한 아이인데. 그러나 그것 역시 너무나 간단한 문제였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나약하고 무기력한 자신과, 어떻게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죽을 힘을 다했던 소년. 너무나 분명했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나약한 제 자신에게도 화가 났고, 이런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소년에게도 화가 났다. 더욱 세게 깨문 입술이 터져 피가 새어나왔다.
"경수야."
차마 터진 입술위 피를 닦을 생각도 못하고 있을 때, 때마침 방문이 열리며 경수의 엄마가 한 손에 구급상자를 들고 침대께에 앉아있는 경수에게로 다가왔다. 피가 맺힌 경수의 입술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경수의 엄마는 작게 한숨을 쉬곤 침대 아래 바닥에 앉아 경수의 발을 들어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발꿈치께의 양말이 마치 처음부터 그 색이었던 것 처럼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경수의 양말을 벗겨낸 경수의 엄마가 솜으로 그 위를 소독했다. 따갑다.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기만 하던 경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왜그렇게 미련스럽니."
"..."
"조금 어리광 부려도 괜찮아."
경수의 엄마의 한숨섞인 말에도 경수는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그저 어느샌가 차갑게 가라앉은 눈길로 상처위로 덧발라지는 연고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경수는 문득 생각했다. 어리광이라. 엄마와 떨어져 살게된 이후로 그런 것을 피워본 적이 있었던가. 아주 오래전 이야기라 그전에는 자신이 어리광 피우기 좋아했던 아이인지 조차도 기억이 희미했다.
"피곤하지."
"응."
"많이 놀랐니?"
"...아니."
"그럼 다행이고. 이제 자. 내일 아침에 상처난데 아프면 엄마한테 말하고 알았지?"
응. 작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 경수는 발끝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내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그제서야 고개를 든 경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선 경수는 창문을 열고 차가운 밤공기를 맞았다. 밖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단 듯 평온하기만 했다. 찌르르 우는 풀벌레 소리도, 바람에 부대끼는 나뭇잎 소리도 모두 그대로였다. 방금 전 일이 꼭 거짓말 같이만 느껴졌다. 하늘에 잔뜩한 별들이 곧 우수수 떨어져 내릴 것 같았다. 그것을 보며 경수는 어쩌면 자신이 꿈을 꾼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요란한 밤이 지나고, 잠을 설치다 늦은 새벽에 잠이 든 경수는 느즈막한 오전이 될 때까지도 침대에 누워 눈을 뜨지 못했다. 그러다 경수는 무언가 자신의 옆에 다가와 서성거리는 기척에 눈을 떴다.
"..."
환한 햇살에 눈이 부셔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손을 들어 눈가를 비비자 살짝 또렷해진 시야로 무언가가 보였다. 경수는 몇번 느리게 눈을 꿈뻑거리다 곧 시야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야!"
어젯밤 뜻하지 않게 자신이 구해줬던 소년이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경수가 눈을 돌려 활짝 열려있는 방문을 바라보았다. 자는 새에 몰래 들어온건가 싶어 다시 소년을 바라보자, 소년은 얽힌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쳐왔다. 민망해서 먼저 고개를 돌릴만 하건만 소년은 날카로운 눈으로 경수의 시선을 옭아매었다. 경수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어째선지 바닥에 앉아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수는 제압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소년이 경수 쪽으로 슬금슬금 기는 자세로 다가왔다. 어느새 침대까지 올라온 소년에 경수는 침대 헤드까지 슬금슬금 도망갔다. 그와중에도 소년은 절대 경계심 가득한 눈을 경수에게서 떼지 않았다.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어진 경수에게로 소년이 경수의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으르릉. 목을 긁는 소년의 목소리에 경수는 더욱 경직된 얼굴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덮수룩한 머리, 날카로운 눈빛, 살짝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 거리는 목소리. 그 모습이 어딘가 낯익게 다가왔다.
아, 그래.
"..으,"
늑대, 꼭 늑대 같았다.
"으아아아아악!!!!!!!!!!!!!!!!!!!!!!!!!!"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경수는 멍했던 정신이 확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제서야 상황 파악이 된 경수가 소리를 질렀다. 갑작스런 경수의 비명에 소년이 눈을 찌푸리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자신의 옆에 있던 베개를 집어 든 경수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베개로 소년을 내리쳤다.
"저리 꺼져!!!!!!!!!!!!!!!!"
난데없는 베개 세례에 소년이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베개를 붙잡았다. 그러자 더욱 거세게 몸부림을 치는 경수에 소년이 경수의 팔목을 거칠게 붙잡아 눕히곤 그 위로 올라탔다. 그러니 또다시 어젯밤 창고 앞에서 자신을 덮쳐오던 소년의 모습이 떠올랐다. 화가 난 건지 소년이 경수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잔뜩 이를 세워 으르릉거렸다. 더욱 당황한 경수가 벗어나려 몸부림 쳤지만 그럴수록 경수의 팔목을 붙잡은 손의 힘만 거세져 왔다.
"이거 놔!!!"
"경수야?!"
그때 2층에서 나는 경수의 비명소리에 달려온 경수의 엄마가 방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순간 몸싸움을 멈춘 경수와 소년 둘 다 경수의 엄마를 돌아보았다.
"...얘 뭐야."
경수는 거의 경악에 찬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식탁 위 음식들을 접시까지 모두 다 빨아들일 기세로 먹는 소년의 모습에 놀란 경수는 순간 들었던 젓가락마저 바닥에 떨어뜨렸다.
무슨 짐승도 아니고. 심지어 소년은 젓가락 숟가락의 존재조차 모르는 듯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고 있었다. 몇날 며칠을 굶었는지는 몰라도 정말 저렇게 뵈는게 없나 싶을 정도였다. 오랜만에 식탁 앞에 앉은 경수는 아무래도 없던 식욕이 더욱 뚝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아침부터 방에 들어와 자신과 몸싸움을 벌인 소년은, 경수의 엄마가 방에 들어오자 그제서야 경수의 손목을 잡았던 손에 힘을 풀었다. 아린 손목 위를 매만지며 자리에서 일어난 경수가 이 상황이 무척이나 당황스럽다는 듯 엄마를 바라보자, 마찬가지로 경수만큼이나 당황한 경수의 엄마 역시 당황스런 표정으로 경수와 소년을 번갈아 보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난 큰 일이라도 난 줄 알고 정말...' 그리곤 일단 내려와 식탁을 차려놨으니 아침부터 해결하자며 소년을 이끌고 방을 나갔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경수 역시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체 얼마나 오래 굶었길래... 얘, 더 줄까?"
그리고 벌어진 상황이 바로 이 상황이었다. 얼마가지 않아 싹 비워진 접시들에 경수의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냉장고로 향했다. 여전히 경악한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다, 소년의 주변으로 지저분하게 떨어져 있는 음식들을 본 경수는 더 이상 못참겠다는 듯 고개를 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자신을 올려다보는 소년의 시선에 경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경수야, 밥 안 먹어?"
"입맛 떨어져서 못 먹겠어."
더는 얼굴도 보기 싫다는 듯 곧 소년에게서 시선을 거두어버린 경수는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그러다 잠시 멈춰 서 손을 들어 어제의 일로 인해 손바닥에 더덕더덕 붙인 반창고를 내려다보던 경수는 그 아래로 아직도 붉게 올라와 있는 손목 위 손자욱을 보았다. 짜증나. 작게 읊조린 경수는 이내 꾹 손을 말아 쥐고는 다시 계단을 올랐다.
안녕하세요! 마카입니다! 2주만에 2편으로 찾아뵙네요ㅜㅜ 늦은 연재에 다들 답답해 하고 계시겠지만.. 사실 그동안 스토리 라인을 짜놓느라 머리 좀 굴렸습니다.. 이제부터는 일주일 간격으로 올리도록 할게요!ㅠㅠ 전 그렇게 반응이 좋을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제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분들이 늑대소년을 봐주셔서 정말 놀랐습니다ㅜㅜㅜㅜㅜㅜ 감동의 물결..ㅜㅜ 사실 그렇게 문체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부끄러운 솜씨라 다른 작가님들 팬픽 보면서 어디에라도 숨고 싶어지는 기분이 자꾸 들더라구요.. 그런데도 다들 그렇게 좋아해주실줄은 정말 예상도 못했습니다. 암호닉도 처음 받아봐서 정말 기분이 얼떨떨 하네요ㅠㅠㅠㅠ 암호닉 됴르륵, 똥주, 두비랍, 왕관, 동해, 고등어, 전주 비빔밥, 도도하디오 님!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 혹시 빠진분들이나 암호닉 트,틀리게 썼다면 댓글주세엽... 제 글을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감사드리지만, 이렇게 과분한 사랑주셔서 너무나 감사해요ㅜ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