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으, 추워. 추워.”
“아. 떨어져, 좀.”
“에라이,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
얼씨구? 지도 추우면서 아닌 척 하기는. 귀찮은 표정을 역력히 드러낸 기범이에게 한번 씨익 웃어주고는 팔짱 낀 팔에 더욱 힘을 줬다. 친구 좋다는게 이런 거 아니냐, 엉? 실실 쪼개며 팔에 얼굴을 부비자 녀석은 아주 죽을 것 같이 경기를 일으킨다. 어쭈구리. 이런다고 김종현이 쉽게 떨어질 것 같으냐? 아예 눈까지 감고 부비적거리자 처음엔 소리까지 박박 지르던 녀석이 갑자기 잠잠해졌다. 뭔가 분위기가 요상하다 싶어서 눈을 딱 떴는데. 떴는..데.
“….”
“…….”
분명히 방금 전까지는 신입생 아무도 안 왔는데 언제 이렇게 많이 모였다냐….
로맨틱캠퍼스
Romantic Campus
민호X종현
“야. 근데 오티를 꼭 춘천까지 가야 돼?”
“예비역 회장님께서 춘천이 아니면 안 되신단다. 엠티든 오티든 무조건 춘천이래.”
존나 올드해.
중얼거리는 기범에게 대충 고개만 주억거려주고 등받이에 무게를 실었다. 예비역 회장님한테 존나 올드하다고 할 수 있는 건 너 하나 뿐일거야, 김기범. 창 밖으론 수많은 건물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가고 있고, 기차 안은 시끌시끌했다. 아마 이제 막 친해진 13학번들이 좋다고 수다떠는 소리겠거니, 하니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일년 전 나도 이랬었는데. 당시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김기범이었는데, 타자마자 완전 화난 표정으로 아무 말이 없어서 나까지 덩달에 침묵 수언을 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 표정이 평상시 표정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
슬쩍 건너편 좌석을 보니 그때의 나와 같은 아이가 쩔쩔 매고 있는게 보였다. 왠지 모를 동질감에 코끝이 찌잉한 것이…대체 어떤 노무 시키야! 하고 그 옆좌석을 보니. 헉. 회색 목도리다.
오늘도 역시 그 날과 같은 회색 목도리를 두른 신입생이 혼자 무슨 영화 찍는지, 창 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입술은 꾸욱 닫힌 채 열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다 같이 처음 친해지는 자린데 저따구로 나오면 반칙이지! 무의식적으로 1년 전이 떠올라 혀를 쯔쯔, 찼다. 괜시리 그 잘생긴(인정하긴 싫지만..) 얼굴을 노려보고 있는데 뭔가 따끔한 시선을 느꼈는지 그 신입생의 얼굴이 천천히 내 쪽을 향한다. 니가 그렇게 날 뚫어져라 보면 내가 쫄 것 같지? 어?
응.. 사실이야.
결국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황급히 고개를 돌린 나는, 괜시리 곤히 자고있는 기범이의 애꿎은 허벅지를 퍽퍽 내리쳤더랬다.
* * * * *
“자자. 신입생들은 순서대로 일어서서 자기소개 하고 다시 앉아요.”
함께 OT를 온 모든 사람들이 몇 덩이로 나뉘어 커다랗게 원을 그리고 앉았다. 내 왼쪽에는 늘 그랬던 것 처럼 기범이가 있고, 오른쪽에는 수정이가 있었다. 여기서 잠깐 설명을 하자면… 수정이는 기범이 못지않게 엄청난 포스를 자랑하는 2학년 여자 과대로, 주특기로는 아무 말 없이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기…정도가 있다. 덕분에 양 사이드로 숨이 턱턱 막히고 있는데 설상가상 건너편에는 회색목도리가 떠억 하니 앉아있다. 물론 지금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앉아있기는 하는데 얼굴은 여전히 뚜웅했다. 신입생들은 선배들한테 좀 잘 보이려고 내숭이라도 실실 웃고 있는게 정상인데, 쟤는 대체…. 나도 모르게 회색 목도리를 쳐다보고 있는데, 어느 덧 그의 자기소개 차례가 다가왔다. 다른 신입생들과 다르게 별 뜸들이기 없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선다. 덕분에 내 목이 위로 확! 꺾였다. 키 조, 졸라 크네 진짜..
“13학번 최민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가벼운 목례 후 자리에 앉는데, 신입생이고 2학년이고 아주 꺅꺅 거리고 난리가 났다. 이름이 최민호였구나. 음.. 그래. 음. (이름까지 좀 잘 생겼다)
민호구나. 그래, 최민호였구나. 멍하니 이름을 곱씹고 있는데 자리에 앉은 회색목도..아니, 민호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으, 응?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나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시선을 마주하는데, 절대 먼저 눈을 피하는 법이 없다. 뭐..요? 참다 못해 입 모양으로 중얼이는데도 대답 대신 그 눈빛만이 빤하게 날 향해있다. 결국 먼저 고개를 돌리는 것은 이번에도 나였다.
수정이, 기범이로도 모자라서 눈빛으로 수갑 채우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 또 있을 줄이야..
* * * * *
“아. 아아. 더 마신다니까안!”
“괜히 선배 얼굴에 먹칠 하지 말고 주무시라고. 어? 김종현. 정신차리고 이불 펴고 누워.”
“니가 조옴 펴주구…”
쾅.
여기저기서 권하는 술잔을 차마 거절할 수 없어서 넙죽넙죽 다 받아먹었더니 벌써 정신이 헤롱헤롱하고 혀가 꼬이는게 내가 봐도 내 상태가 좀 심각했다. 김기범은 무슨 짐짝 내다 버리듯이 날 질질 끌고 시체방에 던져놓고 휭 하니 사라져버렸다. 역시 김기범 매너는 똥이다, 똥. 바닥에 엎어진 몸을 어떻게든 일으켜보려고 하는데 자꾸 팔에 힘이 풀려서 엎어지고 만다. 쿵 쿵 거리는 소리가 제법 크게 방 안을 울렸다. 아으, 아퍼.. 낑낑대며 이불 쌓아둔 곳으로 기어가다가 그냥 귀찮기도 하고 짜증나서 그 자리에 대자로 엎어져버렸다. 아. 몰라. 걍 잘래. 컴컴한 방 안에서 잠도 솔솔 오겠다, 거의 잠에 들어갈 때 쯔음에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럼 그렇지, 김기범 요 자식이 정은 없어 보여도 날 이렇게 내팽겨칠 애는 아니지. 아암.
“기버미 와써어? 기버미, 기범….”
점점 가까워지는 기척에 있는 힘을 다 해 몸을 일으켜 기범이를 꽈악 껴안았다. 오디가, 오디. 나랑 같이 자자구우. 기범이의 목을 끌어안긴 했는데 자꾸 다리에 힘이 빠져서, 결국 기범이도 나도 땅으로 엎어졌다. 나는 기범이 위로 떨어져서 괜찮은데 기범이 한테는 아 하는 신음이 들려온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팔 좀 풀어요.”
“야.. 무습게 왜 갑자기 존대를 하구 그르냐? 같이 자자. 웅? 기보마.”
딸꾹질 섞인 목소리에 기범이가 한숨을 폭 내쉰다. 그니까 애초에 왜 나만 시체방에 떨구고 자기 혼자만 놀려고 하느냐구. 이거 내가 벌 주는 거야.
내 팔을 풀어내려는 기범이의 손을 쳐내고는 더 힘주어 끌어안고 징징 거리니 기범이도 이제 포기한건지 뭔지 움직임이 없다. 그래, 우리 이제 자자. 자자……
* * * * *
“으으…머리 아퍼….”
깨질 것 같이 지끈거리는 머리 덕분에 잔뜩 인상이 쓰여졌다. 주변이 조용한 걸 보니 다들 술먹다가 뻗은 데드타임 (새벽 6:30~아침 7:00)인가보다. 바로 앞에서 새근새근 잠든 숨소리가 들리는게, 아마도 기범이는 그냥 나랑 잤나보다 싶다. 왠지 모를 복수감에 기분이 좋아졌다. 살짝 몸을 뒤척이자 볼에 이불이 스친다. 언제 또 이불은 덮었대? 의아한 마음에 눈을 떠 기범이를 보……는…데?
“헉!”
가볍게 내리감긴 눈커풀과 속눈썹, 규칙적으로 뱉어지는 숨소리..의 주인공이 기범이가 아니다?! 확인과 동시에 돌마냥 딱딱하게 굳어져있는데 설상가상 곱게 감겨있던 눈마저 천천히 떠진다. 안 돼, 안 돼! 뜨지마! 뜨지 말라고!
심장은 쿵쿵 뛰고 사고회로는 이리저리 엉키고, 등에서 식은땀마저 날 것 같은 기분에 나는 껴안고 있던 손을 풀어 그 눈커풀 위를 덮었다. 깜빡이는 속눈썹이 내 손바닥을 간지럽힌다.
이, 이걸 어쩌지……?
안녕 여러분 :-)
오랜만에 돌아왔는데도 반겨줘서 너무 기분 좋았어요 *-_-*
내일은 대선일인 거 다 아시죠? 투표권 있으신 분들은 꼭 투표하고 오세요 숙제야 숙제
CC는 걍 유치하게 갈려고 맘 먹었습니다.. 유치한게 재밌는거야..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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