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뒷골목에는 세 명의 개들이 산다. 야생에서 자라 무서운 줄 모르고 먹이 또한 닥치는 대로 잡아먹으며 연명하는 들개, 철저하게 훈련되어 단 하나의 먹이만을 좇는 사냥개, 말 그대로 미쳐버려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미친개. 그들이 범죄라는 하나의 큰 경기장 안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협동과 배신을 일삼으며 서로를 물어뜯은 지 어언 40년, 아무리 미쳤다 한들 이를 악물고 덤비는 들개와 사냥개를 당해낼 수 없었던 미친개들은 새로운 방법을 도모했다.
"김여주."
"....."
"들개 오른팔의 요거야, 요거."
온통 검고 빨간 것들로만 이루어진 살육의 공간. 민현이 새끼손가락을 들어올리며 저급하게 웃어보였다. 급조한 억지웃음이 어색하게 울리는 공간에서 진영만이 무표정이었다. 그의 시선은 줄곧 민현의 책상 위에 놓인 여자의 증명사진에 고정되어 있었다. 민현은 뻣뻣한 진영의 태도에도 굴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알아서 잘 꼬셔."
"예."
"꼬신 다음에는 뺄 거 빼내고 죽이는 거지, 그 새끼부터 작살내고 단물 다 빠진 년은 마지막으로 쓱."
"알겠습니다."
"얼굴 믿고 깝치다가 뒈지지 말고, 새꺄."
"......"
"혹시라도 들키면 바로 요거. 알지?"
민현이 바삐 움직이던 새끼손가락을 접고 손날을 세워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진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현은 이런 비굴한 방법까지 써야 한다니 미친개 가오 다 죽었다며 잠시 투덜거리다가 이내 나가 보라며 손을 내저었다. 진영의 등 뒤로 그의 안녕을 비는 조직원들의 경례가 쏟아졌다. 진영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건물을 나섰다. 미친개들의 부흥을 위해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언더커버. 들개파의 말단 조직원부터 시작한 뒤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 이쯤 되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들을 무너뜨린다. 이 바닥에서 흔히 쓰이는 방법이지만 성공 사례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극히 적으니 한마디로 가망 없는 도박인 셈이다. 그리고 진영은 그 도박의 담보였다.
들개들의 아지트는 미친개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피냄새를 철저히 숨기기 위해 쏟아부은 다량의 락스 냄새가 골을 울렸다. 마구잡이로 살육한 적들의 피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미친개들과는 다른 종류의 살기였다. 들개의 조직원이 되기 위해 모인 사람들. 각자 다룰 수 있는 무기를 챙겨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진영이 가진 건 이 바닥에 처음 발을 들일 때와 마찬가지로 몸뿐이었다. 꽉 쥔 주먹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해라.'
'예.'
'쓸데없는 연락은 자제하고. 굵직한 것만.'
'예.'
'필요하다면 들개 새끼들 발도 핥을 수 있을 만큼 굽혀.'
'... 예.'
'살아남아라.'
민현의 명령은 곧 법이었고 법은 절대복종을 의미했다. 진영은 '살아남겠다'고 결심했다. 팔에는 총을 맞고 다리는 칼에 찢기는 한이 있어도 살아남는다. 모자 그늘에 가려진 눈이 형형히 빛났다. 쥐었던 주먹이 풀리기 무섭게 아지트의 문이 열렸다. 앞뒤 가리지 않는 미친개가 야생에 입성하는 순간이었다. 기대와 설렘, 불안이 섞여 웅성거리던 홀 안은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나타나자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높은 자를 알아보는 인간의 본능.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곳에서 남자는 여유롭게 그들이 키워낼 개들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너."
"저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너."
"......"
"모자 좀 벗어봐라."
남자의 손끝이 진영을 향했으니 모두의 시선이 이동하는 곳도 당연히 그곳일 터. 진영이 깊게 눌러쓴 모자를 만지작대며 욕을 뱉었다. 애새끼가... 언뜻 올려다본 얼굴이 꽤나 곱상하게 생겨서는 노골적인 비웃음을 감추지 않고 있었다. 웬만하면 공개적으로 얼굴이 알려지는 일은 삼가는 게 유리하지만 지금 모자를 벗지 않는다면 눈에 들기도 전에 쥐도새도 모르게 죽어 던져지는 수가 있다. 진영이 이를 악물고 모자를 벗어던졌다. 한껏 날을 세운 미친개와 나른한 들개가 마주쳤다. 남자는 도전적인 진영의 눈빛을 예상했는지 한층 더 짙은 비웃음을 선사했다. 슬슬 열이 오르기 시작한 진영이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다시 마주한 눈이 여전히 나른했다.
"이름이 뭐야?"
"... 배진영입니다."
"얘 내 밑으로 보내."
"......"
"잘 키우면 쓸만하겠어."
나머지는 알아서. 남자는 대단한 일이라도 한 듯 흡족해하며 등을 돌렸다. 진영은 누군가가 떠밀기도 전에 재빠르게 남자의 등 뒤에 붙었다. 행운일지 불행일지 모르겠지만 진영을 선택한 남자는 박지훈. 들개의 오른팔이자 진영이 거짓으로 사랑해야 할 여자의 연인이었다.
"너는 잠깐 내 방에 왔다가 가.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
"예."
"마침 자리가 비어서 곤란했거든."
"... 그렇습니까."
"응. 웬만하면 내가 같이 있는데 일이 있으면 그럴 수가 없잖아."
그리 길지도 않은 복도를 걷는 일이 고역이었다. 진영은 최소한의 대답으로 말수를 아꼈다. 의도가 순수하든 아니든 긴장을 늦춰 순식간에 끝나버리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지훈이 드디어 걸음을 멈췄다. 복도의 맨 끝 방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역겨운 곰팡이 냄새가 훅 끼치는 게 최소한의 햇빛조차 전혀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방 한복판에 놓여있는 침대에는 긴 머리를 섬뜩하게 늘어뜨린 여자가 누워있었다. 고르게 오르내리는 배만 아니었다면 시체라도 해도 믿을 모양새였다.
"원래 신입들은 좀 굴려야 하는데."
"......"
"너는 내가 좀 급하니까 일단 따로 빼둘게."
"......"
"인사해."
"......"
"네 임무야."
여주야. 지훈이 다정하게 여자의 이름을 불렀다. 부스스하게 몸을 일으키던 여주와 진영의 눈이 마주쳤다. 진영은 지금 당장이라도 둘을 해치우고 싶어 안달나 죽겠다는 표정을 지우고 정중하고도 세심한 가면을 썼다. 얼굴선이 부드럽게 휘어지며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화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안녕하십니까."
"......"
"배진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