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산들] 외로운 그대에게.
w. 정디녕
00.
정환이 일어나 자신의 방 한 켠에 위치해 있는 거울에 자신을 비춰 보았다. 깔끔하게 다듬은 머리카락에 교복을 입고 있었다. 교복은 정말 교복을 정석대로 입는다면 이렇게 입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깔끔하게 입고 있었다. 정환이 거울을 한참동안 보다 책상 앞으로 가 문제집 몇 권을 뽑아들었다. 문제집이 꽤 두툼해 채 몇 권 넣지도 않았는데 가방이 두툼하니 무거워졌다. 마지막으로 가방에 필통을 집어넣고 문까지 닫혀 꽉 막혀있는 방을 환기시키려 창문을 열었다. 학교가 시험기간이라 일찍 마쳐준다고 한 것일텐데도 밖은 벌써 어두웠다.
정환이 살짝 멍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았다. 어두웠다. 자신의 교복색과도 같은 어두움이였다. 어두웠다. 자신의 피부색과는 다른 어두움이였다. 어두웠다. 자신의 눈동자와 같은 어두움이였다. 어두웠다. 이 집과 같은 어두움이였다. 어두웠다.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지 않았던, 어두움이였다. 마치 자신의 현재를 다 비춰주듯 한 어두움이였다. 주변에 가로등도 없는 후미진 곳에 혼자 살아가는 정환에겐, 항상 어두움이였다.
그래. 늘 자신은 어두웠다. 밝음을 배워서 밝게 자랐어야 할 어린 시절에, 밝음보다도 어두움을 빨리 배웠다. 가족과의 단란함보단 같이 살아도 혼자 사는듯한 느낌을 주는 서늘함을 먼저 배워버렸다. 자신의 어미는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 오늘도 그 남자의 집에 갈 것이다. 자신의 아비는 다른 여자와 함께 웃으며 일을 할 것이다. 짝수와 홀수날을 정해 짝수엔 어미가 들어온다. 홀수엔 아비가 들어온다. 각각 다른 사람을 데리고. 서로 바람을 피는걸 알면서도 서로의 부와 명성을 차지하기 위해서 이혼을 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집에 들이는 날짜까지도 서로가 겹쳐 불편하지 않게 정했다. 그 빈틈없는 짝수와 홀수의 날짜 속에서 나는 없어져야 했다.
그렇다고 나도 그리 불쌍하진 않았다. 돈 많은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태어나, 그 돈들을 마음대로 꺼내다쓰며. 그렇다고 질 나쁜 친구들을 사귀지도 않았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더니, 나도 부모와 같았다. 부모의 부와 명성에 나를 숨기며, 의존하며. 그렇게 부모를 지켰다. 그랬지만 원초적이게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하는 법을 배웠어야 했을 가정은 자신에게 사회 4대악이라는 방임만을 주었을 뿐이였다. 그랬기에 정환은 이 모든게 단조로웠다.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는 조용히, 아주 가까운 상대에게 귓속말을 하듯 전한다. 그럴 바에야 안 하는게 더 낮지만, 집에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려 줄 것이라는 자그마한 희망을 소지한 내게 최면을 거는 말이였다. 가방을 챙겨들고 교복을 입은 채로 밖을 나섰다. 중학생 시절에도 시험은 중요했지만, 고등학생이 된 후로는 시험기간이 아니라도 도서관에 항상 있게 되었다. 그렇게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였다. 성적은 하위권을 겉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맨날 풀지도 못할 문제집을 가지고 도서관에 항상 간다는 것은, 집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음이 아닐까. 늘 나는 모순적인 인간이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발걸음은 도서관을 향했다. 내 앞에 보이는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한번 건넌 후, 다시 한번 더 건너면 된다. 하지만 신호등은 내가 가는 방향의 순서와 반대로 켜져서, 돌아올떄는 편했지만 갈 떄는 주로 무단횡단을 하곤 했다. 게다가 자동차고 사람이고. 별로 다니지 않는 속골목이라 무단횡단을 하지 않은 채 신호를 기다리는 것은 살짝 바보같기까지 했으니까. 횡단보도를 한 반쯤은 왔을까. 그렇게 별로 건너지도 못했는데도 옆에서는 끼익-, 하는 귀가 찢어질듯한 타이어 마찰음이 났다.
"으앗!"
"학생! 왠 무단횡단이야, 무단횡단은! 똑바로 다녀!"
"죄송합니다!"
차에 탄 사람이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화를 냈다. 하기야 화가 많이 날 테지. 아무리 무단횡단이라도 자신이 치이면, 보행자를 우선으로 봐 주기 때문에 분명 물어줘야 했을 것이다. 그래도 오랫만에 날 걱정하는 소리가 그렇게 밉지많은 않아서 사람좋은 미소를 보이며 뛰어 건넜다. 그러다 다시 뒤를 돌아 아저씨를 보니, 날 살짝 쨰려보며 입으로는 욕을 지껄이며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모습은 자신을 낳은 엄마의 내연남이였다.
한번 집에서 그만 학교를 다녀오고 나서 너무 피곤해서 잠이 든 적이 있었다. 자다보니 집이 소란스러워서 깬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남자와 엄마가 하는 상식적으로든, 법적으로든 하면 안되는 행위를 하는 걸 보고는 들키지 않게 황급히 나간 적이 있었다. 그떄 본 그 옆모습과 똑같았다. 그냥 한번 눈 꼭 감고 치여볼 껄 그랬나. 하는 생각이 심심하게 들 때쯤, 빨간 불을 내던 신호등이 초록 빛을 냈다.
보통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였지만,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건너편에는 실루엣이 앙상해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누굴까. 하지만 누구던 제겐 상관이 없었다. 신호가 바뀌고 그 남자도, 나도 앞을 향해 나아갔다. 그 남자는 내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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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처음으로 진들을 써보게 된 정디녕 이라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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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