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진실된 모습을 원한다. |
뒤틀렸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간당간당 불안정한 너의 모습이 언젠가 내 곁을 떠날 것을 암시해준다.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나를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으며 연락은 확실히 처음 때보다 확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우리 그만할까? 굳은 표정으로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하던 너의 모습이 내 눈앞에 아른거린다. 뭐? 병신같이 나온 말이 고작 뭐, 라는 소리뿐. 딱히 뭐라 할 말은 없었다. 한 번도 명수와 헤어질 거라고, 이별통보를 받을 거라고 눈곱만큼도 생각 안 해보았고, 그리고 니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 것도 처음이었다. 그만 하자. 진짜... . 꾸역꾸역 내뱉은 명수의 말은 내 가슴을 지독하게 후벼댔다. 뭘 헤어져. 한참 고민하다 나온 말이었다. 물린 듯한 내 말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난 명수를 억지로 다시 앉혔다.
" 왜 그러는 건데. 응? " " 그냥 요즘 다 힘들어서 그래. " " 뭐가 힘든데. 말해. " " 됐어. 말하기 싫어. 그냥 다 그만하자. 제발. "
명수의 손목을 억지로 붙잡은 내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병신같이 명수가 아픈 것도 모르고 계속 붙잡았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나 너랑 아직 헤어지기 싫어. 그러니까... . 아, 니가 좋은데, 구구절절 흘리는 내 말을 가만히 듣던 명수는 벌게진 눈가를 소매로 비비다가 이내 내 손을 뿌리친다. 허공에 도는 내 손은 다시 명수를 잡으려고 뻗었고 그런 내 행동에 버럭 소리를 지르는 명수. 그만하자고 좀! 날카로운 너의 목소리와 함께 울리는 전화가 요란스럽게 내 귀에 웅웅 울려댔다.
" ...육성재, 내 말 잘 들어. "
간당간당한 우리 사이는 완벽하게 뒤틀어졌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 * * *
" ... 야. 민혁아. 사람이 두 개의 인격을 가질 수 있냐. " " 몰라. 너 김명수 만나러 간다며. 5분 남았는데. " " ...만나기 무서워. " " ..뭔 소리야. 빨리 가. 나도 집에 손님 오기로 했어. 지금 집에 가야 해. "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오, 하느님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민혁과 아쉬운 이별을 하고, 느릿느릿 명수를 만나기로 한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아직 명수는 약속장소에 도착하지 않았다. 「 어디야? 」 손가락을 움직여 어디냐며 문자를 꾹꾹 보내고는 고개를 드는데 저 멀리 나를 향해 뛰어오는 명수가 보였다. 하... .
" 육성재! 오래 기다렸어? " " 아니... . 나도 방금 도착했어. " " 꾸래? 노래방 갈래? " " 꾸..꾸래? 너..., 억양이 좀 싼 거 같아. " " 뭐? 나 억양 안 싸! "
항상 침착하고 모든 일에 진지했으며 가끔 짓는 미소가 나를 떨리게 했다. 항상 옳은 소리로 대응했으며 자기 자신을 절제할 줄 알았으며, 무엇보다 명수는.., 우리 명수는... . 그래.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모습은 명수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명수라고 믿었던 그의 모습은 ... '엘' 이었다.
육성재 잘 들어... . 명수가 굳게 결심한 듯 내뱉은 말은 나의 멘탈을 붕괴시키기엔 충분했다.
" 나. 계속 엘 코스프레 하는 거 너무 힘이 들어. 지친다. 정말. " " 엘...? " " 이때까지 속여서 미안해. 지금까지 나를 봐왔던 모습은... 사실 내가 아니야. " "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 " 난 이제 엘코해제를 하려고 해. " " 엘코..해제? " " 한 마디로 본 나의 모습으로 돌아올 거라는 뜻이야. 이런 가식 묻은 나의 모습이 아닌... . " " ...... " " ...엘코해제..해도 나를 지금처럼 사랑해 줄 수 있어..? "
병신같이 명수의 질문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그렇다고 외쳤다.
그렇게 완벽하게 엘코해제를 한 '엘' 이 아닌 '명수' 는... ,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였.다. 엘코해체라고 해도 얼마나 심하나 심하겠어 싶었는데 그저 웃음밖에 안 나온다. 말투부터 달라졌다. 항상 또박또박 지적인 말투의 명수가 엘코해제를 하기도 무섭게 억양이 무시무시하게 싸졌고, 약간.., 약간. 잘생겨 보였던 얼굴도 약간 꼴뚜기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병신같은 현상이 띄기 시작했다. 사실 그런 거 따지면서 연애를 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었기에 아무리 무시를 하고 넘어가려 해도 갑작스럽게 변한 명수의 모습을 바로 적응하기엔 쉽지 않았다.
" 노래방 진짜 오랜만에 간다! " " 으..응. 오랜만에 명수 노래 들어야지. " " 크하하하학. 크응. 큭. " " 너..웃음소리도 좀 싸... . " " 뭐? 나 웃음소리 안 싸거든! "
명수랑 사귀면서 거의 처음으로 티격태격 거린 것 같다. 나름 이런 것도 괜찮은 듯싶은 생각이 든다. 사실, 조금 무뚝뚝했던 명수이기에 항상 뭔가 다가가기가 어려웠고, 약간 조심스러운 감이 있었다. 어느덧 가까운 노래방에 도착한 명수와 나는 돈을 내곤 안내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노래방에 왔을 때마다 항상 명수는 잔잔하게 발라드를 불렀기에 자연스럽게 발라드를 예약하려는데 명수가 그런 나의 손을 제지한다. 노래방에 왔으면 신 나는 걸 불러야지. 마이크를 꼬옥 쥐고 당찬 투로 말하는 명수의 말에 나는 그저 말없이 눈을 끔뻑댔다. 그리고 이내 약간 들뜬 표정으로 예약한 노래는 신 나는 클럽 댄스 노래.
" 명수야.. 니가 이걸 부른다고? " " 꼭 노래는 부르라고 있는 게 아니잖아. "
그 말은 즉...?
푹신한 노래방 소파에 몸을 늬우고 있던 명수가 재빠르게 일어났고 신 나는 비트에 맞춰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부릉부릉..부릉..부릉부릉...! 시동을 걸기 시작하는 명수. 골반을 흔드는 명수의 춤사위가 심상치 않다. 씨..씨발. 저절로 낮은 욕이 튀어나왔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진정 명수가 맞는지. 한 번도 자신의 앞에서 춤을 춰본 적도, 이런 노래를 예약한 적도 없던 명수가... . 점점 절정을 향해 오르는 노래의 비트에 명수는 춤에 심취한 듯 노래방 안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oh ! oh ! oh ! oh !
더는 못 보겠어! 결국, 옆에 있는 쿠션으로 얼굴을 묻었다. 중간마다 비트 사이로 미세하게 명수의 거친 숨소리가 내 귀를 자극했다. 제발..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