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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알고있다. 사랑이 영원할 수는 없다. 그래도 우리만큼은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임영민은 세상에서 최고로 다정한 사람이고, 또 나를 너무 사랑해주었고, 나 역시 사귄지 2년이 훌쩍 지나서까지도 임영민의 행동과 말투에 설레곤 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결혼까지도 골인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나는 그 생각을 고쳐먹고 있다.
여자의 직감은 참 예리하고 그래서 무섭다. 나는 평소에 그닥 그런 직감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 아니었는데 이번만큼은 어찌 여자다운 직감을 잘 발휘한 것 같다. 아니면 그 정도로 임영민이 변해버린 걸까, 둔한 내가 알아챌 정도로?
언제부턴가 나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예뻐서 못 견디겠다는 듯이 쳐다보던 그 눈빛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서운하다고 말했지만 임영민은 우리가 서로 편안함을 느끼는 연인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좋다고 말했다. 나는 그걸 철썩같이 믿고 생각했다. '그래. 사람 관계가 언제나 한결같을 순 없지.' 참 병신같은 생각이었다.
그 후 또 언제부턴가는 내가 우리의 옛날 카톡을 읽으며 잠들기 전 혼자서 질질 짜는 일이 많아졌다. 나도 임영민처럼 편안함을 사랑해보려고 했지만 참 어려웠다. 그래서 서운함을 토로하면 다시 비슷한 패턴의 대답이 돌아왔다. '여전히 너를 사랑하는데 그 표현을 전보다는 덜 하게되는 것 같아.' 나는 이 대답에 바보같이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려고 노력했었다. 그리고 이후로도 나는 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요 며칠간 우리는 잘 만나지도 않고 카톡도 잘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아니, 사실은 내가 열심히 카톡하면 몇 시간 후 임영민이 답장하고, 내가 만나자고 하면 임영민은 그 날의 스케쥴을 읊으며 거절하는 형태의 사이가 되었다. 어쩌다가 한 번 만나면 지루한 듯한 임영민의 표정이 너무 가슴을 찔러와서 금방 헤어지기 일쑤였다. 예전 같았으면 굳이 나를 더 보고싶다며 집 앞까지 바래다줬을 임영민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였다. 이런 관계가 너무 힘들어 헤어질까도 고민해봤지만 임영민이 없으면 30분도 제대로 못 견디고 죽어버릴것만 같아서 관두기로 했다.
지금도 나는 이전에 보낸 카톡의 1이 지워지기도 전에 여러 개의 카톡을 보내버렸다.
[영민아,빠빠는 영민이가 너무 보고싶다!!!]
[영민이는 빠빠가 안보고싶나봐]
[카톡도 하나도 안읽고]
[뭐하는지도 너무 궁금한데 오지도 않고]
[친구들이랑 놀고있는지 아니면 게임하는지]
[밥은 먹었는지 너무 궁금행애애애애애ㅐ애애애애애]
[바보쟈시가ㅠㅜㅠㅜㅠㅜㅠ헝]
예전같으면 우리 빠빠공주 내가 많이 보고싶었어요~? 하면서 10분도 안 돼서 전화를 걸었을 임영민이지만, 사실 지금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 30분 안에 카톡을 읽어주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영원히 다정할 것만 같던 임영민이 이토록 변해버렸다는 게 참 웃기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하긴 뭐, 2년이면 이미 헤어졌을 연인들은 차고 넘친다.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사랑은 체내의 화학물질의 작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서, 언젠가는 반드시 끝나게 되기 마련이라고. 그런 생각을 하면 그래도 우리는 나름 오랫동안 깊게 사랑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너무한 것이, 나는 정말 임영민과 내가 결혼까지 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의 임영민을 보면 추억 회상도 어려울 지경이지만, 불과 1년을 조금 넘길 때까지만 해도 임영민은 '결혼하자, 빠빠야.' '우리 빠빠,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요.'와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살았기 때문에, 나는 그를 감쪽같이 믿었었다. 아니, 어쩌면 그 때까지는 정말로 나를 사랑했지만 그 이후로 나에게 질린 것일수도 있다. 그래. 가만히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마음이 답답해져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무 기대 없이 핸드폰을 보니 왠일로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임영민에게 답장이 와 있었다.
[나 게임하고 있었어요]
[미안]
무슨 게임 하는데? 라고 물으려고 자판기를 열심히 두드리는데 임영민에게서 카톡 하나가 더 왔다.
[빠빠야 내일 만날까 우리?]
임영민이 자기 입으로 만나자고 한게 (정확히는 손으로 한거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침대에서 일어나 펄쩍 뛰면서 소리없이 비명을 질러댔다.
[좋ㅇ]
그런데 좋아!! 라고 쓰려니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자기는 맨날 내가 만나자고 하면 이날 뭐가 있고, 누구랑 만나고, 게임 뭐를 해야하고 하면서 항상 거절하는데, 나만 만나자는 말에 덥썩 좋다고 대답하자니 좀 자존심이 상해 급히 쓰던 말을 지우고 다시 적었다.
[나 몸이 안좋아서 내일은 집에서 쉬려고]
일부러 평소에 말하던 것보다 차갑게 말했다. 임영민도 나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날 좀 걱정해줬으면 했다.
[알겠어]
하지만 돌아온 임영민의 대답 세글자에 손에서 힘이 쭉 빠지고 눈에서는 눈물이 핑 돌았다. 임영민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옛날이라면 어디가 아프냐고, 병원은 다녀왔냐고 물으며 당장 보러 달려온다고 난리난리를 치다가, 결국 내 거절에 얼굴 3초만 보여주면 안되겠냐고 울먹이던 임영민인데 이제는 고작 알겠어 랜다. 그 때 임영민에게서 다시 카톡이 왔다.
[푹 쉬어요]
[아프지 말고]
알겠어 세글자를 보고 울적해졌던 마음이 아프지 말라는 말에 조금은 괜찮아졌다. 자식이 그래도 조금 걱정했다면 일찍 좀 표현해주지, 왜 뒤늦게서야 말해서 내 마음을 이렇게 흔드는지 모르겠다. 비록 임영민의 금쪽같은 데이트 신청을 거절해버리고 만 셈이 되었지만, 그래도 임영민의 걱정 아닌듯한 걱정에 나름 행복한 기분으로 다시 침대에 누웠다.
[응응!!]
[너도 게임 너무 많이 하지말고!]
[나가서 바람도 좀 쐬고!]
[답장도 지금처럼 빨리빨리 좀 해주고!]
[사랑해 영미니 ♥]
그 짧은 사이에 또 게임을 하러 간건지 영민이는 다시 답장이 없었다. 하긴, 어차피 답장이 금방 왔다고 해도 그 안에 하트가 있거나 정성이 담겨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하트를 붙여주는 걸 그렇게나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하트를 붙여주지 않는 임영민이 야속하지만 사실 그런지가 꽤 오래 되었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이 실망하거나 슬프진 않다. 뭐, 정리해서 말하자면 임영민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익숙함을 나도 경험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과연 익숙함의 정의는 무엇이며, 이는 인간에게 해로운 것일까 이로운 것일까를 고민하는 동안 노트와 연필을 가지고 후다닥 달려와서 침대 위로 다시 기어 올라왔다. 임영민과의 데이트를 멋지게 파토냈으니 오래간만에 그에게 시달려 제대로 누려본 적 없는 나만의 힐링 타임을 가져보기로 한 것이다.
우선, 내일 할 일 목록을 세웠다.
〈빠빠 할 일 목록>
1. 문구점 들르기 - 예쁜 펜과 일기장 사기
2. 분위기 좋은 카페 가기
3. 지금까지의 나 - 지금의 나 - 앞으로의 나에 대해 쓰기
4.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임영민에게 전화걸어 사랑한다고 말하기
유치하지만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 나니 기분이 좀 좋아졌다. 이제 좀 자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면 임영민을 만날 때보다 훨씬 예쁘게 꾸미고 옛날에 내가 가자고 졸랐던 시내에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로 가 에어컨과 함께 방학을 누려야겠다. 라빠빠, 오늘도 화이팅. 내일도 화이팅. 그래도 임영민은 날 아직 조금은 사랑하고 있다. 화이팅.
본격 멍청한 주인공 이야기 |
다음 화에서는 카페로 가 힐링을 시작합니다. 글 쓰는게 생각보다 너무 어렵네요... 주인공과 영민이는 대학생이고, 같은 과에 동갑이구요! 현재 종강을 하고 여름방학을 즐기고 있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타 지적 환영합니다! 다들 좋은 밤(?)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