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 늑대소년
07
w. 마카
준면에게 책을 받은지도 어느새 일주일이나 지나 있었다. 물론 책은 엊그저께 다 읽은지 오래였지만 다시 돌려주러 가기가 애매해 지금까지 미루고 있었다. 탁탁 책상 앞에 앉아 책상 위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잠시 고민하던 경수는 언제까지고 가지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아 결국 돌려주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겉옷을 걸치고 책을 챙겨 밖으로 나가자, 거실에 앉아있던 소년이 경수의 뒤를 쫓아 밖으로 나왔다. 그 모습이 주인을 따르는 강아지 같아 귀여웠다. 아, 그래도 이건 예상치 못한 변순데. 경수는 곤란함에 머리 위를 살짝 긁적였다.
"미안. 오늘은 안 돼."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잔뜩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경수가 손을 들어 머리 위를 쓰다듬어주자 그것은 그것대로 기분이 좋은지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요즘 들어 조금씩 자신의 감정표현을 하기 시작한 소년이 자주 보이는 표정이었다. 경수는 그에 더욱더 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음번엔 꼭 같이 가자. 그러니까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그래 다음번쯤에는 종인을 데려가도 되겠지. 소년을 다시 집안으로 들여보내고 나오면서도 경수는 몇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집안에 어린아이를 혼자 두고 나가는 엄마가 된 것만 같았다. 아니, 어쩌면 엄마없이 혼자 집을 처음 나서는 아이가 된 것 같기도 했다.
"어, 왔네?"
보건소로 들어서자, 자리에 앉아 진료차트를 들여다보던 준면이 경수를 발견하곤 살짝 놀란 표정을 했다.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하는 경수에 이내 준면은 반가운 웃음을 지었다. 사실 다시 올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준면이었다. 그래서 더욱 반갑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준면은 생각했다.
"거기 앉아 있어."
지난번에 앉았던 소파로 가 앉아 있자, 곧 경수의 앞으로 준면이 코코아를 내려놓으며 맞은편에 앉았다.
"코코아 좋아해? 단거 좋아할 것 같아서."
자신의 앞에는 커피를 내려놓으며 준면이 물었다. 그에 경수는 '네.' 짧게 대답했다. 사실 단 것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여기다 대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례해 보일 것 같아서였다. '그래? 그럼 다행이네.'
"...저기, 이거."
준면의 앞으로 경수가 아직까지 품에 앉고 있던 책을 내밀었다. 그러자 준면이 씨익 웃으며 책을 받아들었다.
"이거 돌려주러 온거야?"
경수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준면이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보건실 한쪽 벽을 차지한 책장 벽쪽으로 걸어갔다. 그 앞에서 잠시 고민하던 준면이 '이리 좀 와볼래?' 하며 경수에게로 손짓을 했다. 그에 자리에서 일어난 경수가 준면이 있는 책장 쪽으로 걸어갔다.
"혹시 좋아하는 책 있어?"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책을 주욱 훑어보던 경수의 시선이 한 책 앞에서 멈췄다. 책장에서 책을 꺼내자 책 표지 위를 본 준면은 알겠다는 듯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 책은 너한테 선물로 줄게."
'네?' 경수가 의아하단 눈길로 바라보자 준면이 찡긋 웃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니까."
"아..."
벌써 크리스마스 이브였나. 이런 것조차 모를 정도로 날짜 개념에 무감각해졌나 싶어 경수는 그런 자신에게 살짝 놀랐다.
"설마, 혹시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몰랐던 거야?"
경수의 반응에 준면이 정말 그러냐는 듯 물었다. 차마 부정은 할 수가 없어 경수는 그저 어색하게 살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 준면이 어이가 없다는 듯 바람 빠지는 웃음 소리를 냈다.
"이거 완전 큰일날 십대네."
"응, 갔다올게."
엄마와의 전화를 끊고, 경수는 운전을 하고 있는 준면에게로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핸드폰 있는데도 안 들고 다니는, 아니 아예 쓰지도 않는 고딩은 너가 처음이다."
준면은 알면 알수록 경수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정말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는 줄도 몰랐단다. 이 나이대 또래 애들에게는 말이 안되는 얘기였다. 그에 크리스마스에 잠시 서울로 내려가기 위해 보건소를 비우려던 준면은 예정을 조금 앞당겨 일찍 보건소 문을 닫았다. 그리곤 무작정 경수를 이끌고 시내로 나왔다. 어머니께는 전화로 말씀드리라 하자 하는 말은 더욱 더 놀라웠다.
핸드폰 안 써요.
그렇다고 핸드폰이 없는 것은 아니란다. 요즘 시대에, 특히 저 또래 애들 중 핸드폰이 있어도 쓰질 않는 아이가 몇이나 될까. 아마 경수가 유일할거라 준면은 생각했다.
"내리십시오."
차에서 먼저 내린 준면이 경수 옆으로 다가가 차문을 열어주었다. 결국엔 경수조차도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 후로는 으레 크리스마스에 할 법한 것들을 했다. 사람 복잡한 거리를 걷고, 영화를 보고, 꽤 비싼 레스토랑에 가고. 왠지 보면 연인들끼리 할 법한 일이었지만 경수나 준면이나 그런 것을 별로 개의치는 않았다. 그런 것에 신경 쓰지도 못할 만큼 즐겁기도 해서였다.
오랜만에 사람이 복잡한 곳에 오니 경수는 기분이 조금 들뜨는 듯도 했다. 거리에 울려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롤, 거리 한가운데 세워져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 이브를 함께 보내는 연인들을 보니 정말 크리스마스구나 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고보면 서울에 있었을 때도 크리스마스를 따로 챙긴 적은 없었단 것이 떠올랐다. 그래도 항상 크리스마스에는 이유없이 기분이 좋았다. 집 안 식구 누구도 크리스마스를 특별하게 여기진 않았지만 이런 날엔 항상 들뜨곤 했던 것이 기억났다.
"너, 잘 웃는구나."
"네?"
"기분 좋아보이네."
카페에 앉아 바깥 경치를 구경하던 경수를 보며 준면이 말했다. 내가 웃고 있었나. 자신도 모르게 들뜨는 기분에 웃고 있었나 보다. 준면을 바라보자, 준면은 항상 그러하듯 입술 끝에 부드러운 미소를 달고 있었다. 웃는게 참 자연스러운 사람이구나. 경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새 준면과 있으면 편해지고 마는 자신을 발견한 경수는, 부드럽게 자신의 주변을 물들여가는 준면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아, 그러고보니 크리스마스 선물을 못샀네. 혹시 받고 싶은 거 있어?"
"아뇨, 괜찮아요."
카페에서 나와 어느새 어둑해진 하늘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문득 준면이 물었다. 게다가 준면은 이미 자신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도 주었고, 이렇게 기분 좋은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도록 해주었다. 그 이상은 경수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너무 받기만 하는 것 같아 준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냐, 내가 사주고 싶어서 그래. 그냥 오늘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어."
'정말 괜찮은데...' 경수가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준면은 꼭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인줄도 모르는, 웃음에 어색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었다. 처음봤을 때부터, 왠지 경수만 보면 항상 무언갈 챙겨주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과 같았다.
"...그럼 저, 저거 사주세요."
잠시 자리에서 눈을 도록도록 굴리며 고민하던 경수가 거리 위에서 팔고 있는 목도리를 가르켰다.
"저걸? 왜, 다른 거 더 좋은 거 고르지."
"제가 받고 싶은 거 사주신다면서요."
이번에는 경수가 조금 어린애같이 굴었다. 마음을 여니 이런 모습도 보이는 구나싶어 피식 웃은 준면은 결국 경수의 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이거, 얼마에요?"
경수가 하얀색 목도리를 집어들자 준면이 계산을 하려했다. '봉투에 담아드릴까요?' 라며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묻자, 잠시 생각하던 경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대신 곧바로 그 자리에서 목 위로 목도리를 두르곤 준면에게로 어깨를 살짝 들썩여 보였다.
"잘 어울린다."
하얀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은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준면이 경수의 머리 위를 흐뜨려뜨리며 웃었다.
준면이 머리를 쓰다듬자 경수는 문득 소년의 생각이 났다. 아직도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텐데. 목도리 끝을 매만지던 경수가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웃으며 자신과 똑같은 것의, 빨간색 목도리를 집어 들었다.
"그것도 사줄까?"
"아녜요. 이건 제가 살 거에요."
'이건 쇼핑백 안에 담아주세요.' 계산을 한 경수가 하얀 쇼핑백에 담긴 목도리를 품에 안아 들었다. 준면은, 지금껏 분위기에 들떠 기분이 좋아보였던 것과는 다른 의미로 설레보이는 경수의 모습에 조금 신기하단 표정을 지었다. 저것은 누구에게 선물해주기 위한 것인가. 누군진 몰라도 경수가 참 행복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경수의 무릎 위에는 크리스마스 케잌이 올려져 있었다. 그것 또한 준면이 크리스마스에 케잌이 없으면 되겠냐며 사 준 것이었다.
"여기서 세우면 되니?"
"네."
준면은 집 근처까지 경수를 바래다 주었다. 그대로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려던 경수는 문득 오늘 하루 종일 준면에게 받은 것 밖에는 없는 것 같아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똑똑. 차 창문을 두드리자 준면이 창문을 내리며 할 말이 있냐는 듯 경수를 바라보았다.
"선물 고마워요. 오늘 하루 엄청 즐거웠어요. 사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렇게 보내본 건 처음이었거든요."
여태까지 준면에게 그리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경수는 준면에게 적어도 마음만큼은 표현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말을 하면서도 쑥쓰러워 입꼬리가 어색하게 올라갔다.
"다음엔 저도 꼭 크리스마스 선물 드릴게요."
히줏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한 경수가 등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준면이 이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크게 웃어버렸다. 저 나이 또래 애들 중 저런 애가 또 있을까. 경수는 준면의 생각보다 더욱 순수하고, 귀여운 구석이 있는 아이였다. 겉으로는 누구도 다가오지 말라는 듯 잔뜩 경계선 모습이었지만 사실 마음을 쉽게 열고, 또 사랑받고 싶어했다.
어쩌면 경수는 조금 특별한 아이일지도 모르겠다고, 준면은 생각했다.
낮은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 선 경수는 마당 한 가운데 세워져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에 놀랐다. 준면과 시내에 나갔다 온 사이 엄마와 별장지기 아저씨가 세운 듯 싶었다. 꽤 그럴듯한 모양에 놀라고 있는 새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경수가 고개를 돌려 옆을 돌아보았다.
"어, 나 기다렸어?"
소년이 경수의 앞에 얼굴 가득 반갑단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얼마나 밖에서 기다렸는지 반짝거리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빛에 비춰진 얼굴이 잔뜩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기다리라 했다고 진짜 이렇게 기다리고 있으면 어떡해. 안에서라도 기다리지 그랬어."
땅바닥에 쇼핑백과 케잌상자를 내려놓은 경수가 손을 가져가 소년의 귀 위로 손을 덮었다. 이렇게 자신의 몸이 차가워진 줄도 모르고 소년은 그저 눈 한가득 경수를 담기에 바빴다. 하루종일 밖에서 대문만 바라보며 자신을 기다렸을 모습이 그려져 경수는 기분이 잔뜩 들떠 혼자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는 데에만 여념이 없었던 것이 너무나 미안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없다면 밖에 혼자 나가지도 못하는 소년이었기에, 더더욱 미안해졌다.
"나, 돌아왔어."
귀 위를 덮었던 손을 끌어내려 소년의 볼 위를 감싸 쥐며 경수가 나지막히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자 소년이 경수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덮으며 미소를 지었다. 차가운 볼과는 다르게 따뜻한 손에, 경수는 손등 위가 잔뜩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자나? 한밤중 깜깜해진 집 안, 경수가 소년의 방문을 뺴꼼 열며 안을 들여다 보았다. 다행히도 깊이 잠이 든 모습에 경수가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소년의 머리 맡까지 다가간 경수는 소년의 머리 맡에 빨간 목도리를 내려놓곤 그 위에 작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올려 놓았다. 그 옆 바닥에 앉아, 경수는 창문 틈으로 새어드는 달빛에 비친 잠이 든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꽤 피곤한 하루를 보냈던 소년은 입을 살짝 벌린 채 색색 거리고 있었다. 경수는 부드러운 손길로 소년의 앞머리를 쓸어넘겨 주었다. 손가락 새로 흩어지는 머리카락이 부드러웠다.
"메리 크리스마스."
지금 너는 무슨 꿈을 꾸며 잠들어 있을까. 꿈 속에서라도 자신의 말이 전해지길, 경수는 맘 속으로 빌었다.
쿵쿵쿵. 가슴이 조금씩 빠르게 뛰었다. 그리고 순간 앞머리를 쓸어넘기던 손길이 멈추었다. 경수의 입술이 소년의 이마 위로 조심스럽게 내려 앉았다. 짧게 갖다 떼어낸 입술 위가 뜨거워졌다. 경수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 위로 손을 가져갔다.
결국.
아닐거라 생각했던 마음이 결국엔 애써 손 쓸 틈도 없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일주일에 두번씩! 연재텀으로 갑니다. 그나저나 백도 외전도 써야되고... 또 써야되는 것도 생기고... 쓸게 많은 건 참 좋은데 이 똥손이 못따라주네요ㅠㅠ 암호닉 됴르륵, 똥주, 두비랍, 왕관, 동해, 고등어, 전주 비빔밥, 도도하디오, 향수, 김미자, 알찬열매, 사물카드, 얌냠냠, 흰자부자, 민트초코, 맥쥬, 끼용, 경수네, 띵뚱,김 어휴, 뭉티슈, 우왕, 경뜌, 꽁꽁, 르에떼, 오리, 소그미, 나나뽀, 다이아몬드, 됴됴, 루루, 박수함성, 타워, 됴종이, 효렌지, 감다팁, 초코, 떡덕후 감사합니다. 독자님들 댓글 볼때마다 힘이 불끈불끈 솟습니다 ㅜ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