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50분. 드르륵, 소리와 함께 2학년 2반 교실 앞문이 열린다.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낄낄 웃어대던 아이들이 두 담임의 등장에 부지런히 자기자리로 돌아갔다. 그 모습들을 혀를 쯧쯧하며 바라보던 세찬은 교탁 앞에 서 교실을 한바퀴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지각 없나? 저기 맨날 비어 있던 세자리도 채워져있고 왠일들이냐?"
"선생님. 고남순 없는데요?"
뒷자리를 흘깃, 바라본 하경이 손을 들어 말했다. 그 말에 꽉 찬 뒷자리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인재가 살짝 표정을 굳히며 대답했다.
"남순이, 오늘 좀 아파서 학교 못 나온데"
그 말에 교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고남순이가 아파? 고남순이? 야, 고남순 다시 학교나오기 시작한지 얼마나 됬다고 또 안나오냐? 많이 아픈가? 근데 고남순 아픈거 진짜 상상 안간다-. 세찬은 다시 시끄러워진 교실에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니까, 오늘 인사는 부회장. 부회장, 이상"
"차렷, 경례"
아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쉬어라, 라는 말을 남긴 채 두 명의 담임은 교실을 나갔다. 교실이 일순간 소란스러워졌다. 그 소란스러움 안에서 흥수는 인상을 확 찡그리며 책상에 옆드렸다. 신경쓰이는 새끼-. 흥수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
"그러니까요 쌤! 오늘 야자 대신 고회장 병문안 가면 안돼요?"
그리고 야자 전 청소시간. 두 담임 앞에서 반 아이들이 남순의 병문안을 가자고 애교아닌 애교, 애원아닌 애원을 하고 있었다.
"아 쌤! 그래도 고남순이가 우리반 회장인데! 집에 아무도 없다면서요! 아 가요!"
"맞아요, 가요! 고남순 사는 집도 궁금하고 네?"
세찬은 아이들의 머리를 한번씩 쥐어박고 자리에 앉힐까, 생각하며 인재를 돌아보았다가 절반 이상 아이들에게 넘어간 인재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좋다. 야자할 사람은 남아서 야자하고 고회장 병문안 갈 사람은 병문안 가자. 야자도 안하고 고회장 병문안도 안가면 알아서 해라?"
"네!!!"
아이들의 신나서 가방을 싸기시작한다. 절반정도가 자리에서 일어나있었다. 하경도 모르는 척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세찬은 여전히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흥수를 보며 슬쩍 웃고는 말했다.
"아 그래. 박흥수, 너는 강제로 병문안이다."
그 말에 교실은 조용해지고 앞을 가만히 응시하던 흥수가 고개를 들어 세찬을 바라본다.
"넌 놔두고 가면 야자 튈거 같아서. 따라와"
평소같으면 한번 세찬을 노려볼 법도 한 흥수가 조용히 일어나 가방을 챙긴다. 짜식, 걱정되나 보지. 꼴에 친구라고. 세찬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
띵동- 띵동-
몇번에 걸쳐 초인종 소리가 주택가를 울렸다. 그러나 안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인재는 당황한 표정으로 세찬을 바라보았고 세찬은 한숨을 쉬며 전화기를 꺼냈다.
"어 뭐야. 고회장 전화도 안 받는데?"
세찬에 말에 모두 실망하고,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쌤,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요?"
"고남순 이거 진짜 많이 아픈가?"
"그게 아니라 아프다고 하고 어디 놀러간 거 아니야?"
그때 남순의 집 대문만 뒤쪽에서 멍하니 응시하던 흥수가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나간다.
"대문이라도 발로 차게?"
세찬의 물음에 아이들이 에이 설마, 하면서도 설마?! 하며 흥수에게 시선을 보았다. 예상과 다르게 대문 앞 작은 화분에 앞에 쭈그려앉은 흥수가 화분 속에 손을 넣고 무언가를 찾는다. 그리고 다시 몸을 일으킨 흥수의 손에는 열쇠하나가 들려져 있었다. 모두가 놀라 흥수를 바라보았다. 순간적으로 그들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흥수야 그건……?"
흥수는 묵묵히 열쇠로 대문을 열며 대답했다.
"여기 살았었거든요 고남순"
"응?"
"3년 전에도, 훨씬 더 전에도"
근데 이 멍청이가 도둑이라도 들면 어쩌라고 아직도 저기 열쇠를 두고 있네요. 흥수가 마지막 말을 삼키며 대문을 열었다. 그 열쇠는 옛날 남순이 예고도 없이 집에 자주 놀러어던 흥수를 위해 놔 두었던 것이었다.
집 안은 싸늘했다. 거실 불은 켜져 있었지만 누가 집안에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집이었다. 아이들은 처음 와보는 남순의 집이 신기하니 두리번 거리며 곳곳을 살피고 있었다.
"근데요, 강선생님. 우리 이렇게 그냥 들어와도 돼요? 남순이는 모르고 있는데……."
"에이 뭐 설마 지 병문안 왔는데 경찰에 신고라도 하겠습니까.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흥수는 인재와 세찬의 대화를 듣다가 거실 곳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서랍장의 위치, 부엌의 구조, 집 구석에 쌓여있는 만화책 등 그의 기억과 지나치게 닮은 익숙한 공간에 흥수는 머리가 지끈거려 오는 것을 느꼈다.
"근데 고남순 방이 어디야? 병문안을 왔는데 사람이 안보이네?"
누군가의 말에 모두가 일제히 흥수를 바라본다. 그 시선을 얼떨떨하게 받던 흥수가 남순의 방문앞으로 걸어갔다. 천천히 문고리위에 손을 올린 흥수에게로 옛날 남순과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나란히 앉아 만화책을 보던 두사람, 가위바위보 하나로 몇 시간은 거뜬히 놀던 두 사람, 같이 라면을 끓여먹던 두 사람, 같은 이불을 덮고 형제마냥 잠들었던…… 그것들이 모두 그저 옛날의 추억이라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 흥수는 가슴이 시큰거렸다. 눈을 감았다 뜬 흥수가 문고리를 열었다. 3년전 닫아버렸던, 그리고 닫혀버렸던. 아직까지 열리지 않았던 그 방문이 천천히 열렸다.
--
진짜 순수한 우정이에요
그래서 일부로 담임하고 애들도 데리고 왔음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