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 02
"쌤 몇 살이에요?"
“스물여섯”
“여자 친구 있어요?”
“없다”
“쌤 키 몇이에요?”
“187”
교탁 앞에 서서 아이들의 질문에 성의 없이 답하던 흥수는 교실 한쪽에 머리를 맞대고 모여 웅성거리를 여자아이들을 발견했다. 흥수는 그곳으로 걸어가 아이들이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냈다. 핸드폰, 흥수는 그것을 뺏어들었다.
“아 쌤! 왜 가져가요!”
“왜 가져가요? 수업시간에 핸드폰 사용한 게 뭐 잘한 짓이라고”
“아 진짜 꼭 봐야 하는 거라고요!”
“꼭 봐야하는 게 어디 있냐?”
하고 흥수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핸드폰에서는 어느 유명 연예인의 생방송 인터뷰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흥수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 연예인의 얼굴을 확인했다.
“이게 누구야?”
“선생님 배우 고남순 몰라요? 요즘 완전 떴잖아요! 이제 드라마도 찍는 다구요!”
“모델 아니냐?”
그리고 흥수는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모델, 그리고 이젠 배우 고남순. 바로 핸드폰에서는 남순의 인터뷰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6년 전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이이경마저 공부를 하고야 말았던 그때 꿈도 뭐도 없이 패기롭게 옆에서 만화책이나 뒤적거리던 남순이 졸업 후 선택한 직업은 다름 아닌 모델이었다. 큰 키와 뽀얀 피부, 그리고 준수한 외모를 바탕으로 우연히 모델의 길로 들어서게 된 남순은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렸다.
“근데 얘들아”
흥수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교탁으로 향하며 말했다.
“고남순보다 내가 더 잘생기지 않았냐?”
순간 아이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흥수가 교탁은 한번 내려치더니 말을 이었다.
“아니 왜? 키도 내가 더 커, 어깨도 내가 더 넓어. 내가 낫지 않냐?”
“선생님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흥수가 흐음, 하고 헛기침을 했다.
“니들 고남순이 승리고 출신인건 아냐?”
“진짜요?”
“쌤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어떻게 알긴. 진득하게 붙어 다닌 사이니까 알지. 흥수는 피곤한 듯 교탁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자 고남순이 얘기는 이만하고. 거기 너네, 핸드폰은 오늘 수업 다 끝나고 정인재 선생님한테 찾아가라”
다시 교실이 웅성웅성. 흥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때 종이 쳤다. 흥수는 인사하려는 회장을 제지시키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교실을 나가버렸다.
*
“그래서 첫 수업을 한 소감이 어떠신가?”
“시끄럽던데요. 그리고 정선생님 여기 핸드폰”
교무실로 막 들어온 흥수에게 세찬이 능글맞게 묻자 흥수가 지쳤다는 듯 대답했다. 인재는 핸드폰은 받아들고는 흥수를 이게 뭐냐는 듯 바라보았다.
“아 수업시간에 핸드폰 써서요.”
“아니 도대체 수업시간에 뭘 또 핸드폰으로 했데?”
“고남순 인터뷰 보던데요.”
그 말에 세찬이 푸훗, 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인재도 그를 따라 미소 짓다가 흥수에게 물었다.
“남순이랑은 아직 잘 지내니?”
“잘 지낸다 뿐이겠어요. 같이 살아요.”
물론 그 놈은 바쁘다고 친구 첫 출근 날에 코빼기도 안 비췄지만.
“응? 진짜? 누구 집에서?”
“고남순이 새로 산 집에서요. 놀러 오실래요? 집 좋은데”
“그럴까?”
인재가 순순히 대답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세찬이 발끈했다.
“아니? 지금 남자 둘이 사는 집에 혼자 가겠다고요?”
“쟤네가 무슨 남자에요.”
“남자죠! 여잡니까?”
“아 선생님도 같이 놀러오세요. 왜 부부가 따로 오시려고”
흥수의 말에 인재와 세찬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어버린다. 그 모습에 흥수는 질색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신혼부부도 아니고. 결혼한 지 6년이나 된 사람들이 정말.
“박선생, 표정이 왜 그러실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계속 하십쇼.”
그리고 세찬이 웃음을 터트리며 뭐라고 하려는 순간 흥수의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에 뜨는 ‘고남순’이라는 이름에 흥수가 웃으며 세찬에게 핸드폰을 흔들어 보이고는 복도로 나갔다.
“여보세요”
“어이 박흥수 선생님. 출근은 잘 하셨나?”
“출근 전에 좀 전화하지 그랬냐?”
“늦잠 잤어.”
“오늘 인터뷰도 있었던데 늦잠?”
“이 새끼, 너 어떻게 알았어? 감동인데?”
“지랄한다. 수업하는데 애 하나가 핸드폰으로 너 인터뷰 보고 있더라.”
“하 봤냐? 이 형님 인기가 이 정도 도다?”
“끊자”
“아 진짜 장난 좀 쳤다고. 너 솔직히 나 집에 없으니까 외롭지?”
“그래서 언제 오는데”
“내일 모레 지나서? 나 집에 가고 싶어”
“아 이 애새끼”
이렇게 말하면서도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남순이 안쓰러운 듯 흥수의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아 박흥수! 나 매니저형이 부른다. 끊자 나중에 전화할게”
“어 그래라”
흥수가 끊어진 핸드폰은 주머니에 넣자 동시에 수업 시작종이 울렸다.
“아 나 수업 들어가야지?”
잠시 멍 하니 서 있던 흥수는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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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멍하네요.
진지터지기 싫은데 여전히 진지터지네요.
비랑님, 이경님, 몽쉘님, 바삭님
감사합니다ㅎㅎ
암호닉.. 이렇게 하는 맞죠? 처음해봐서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