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
-
수능을 얼마 남지 않았던 9월. 하성운은 군대에 갔다.
" 여주야 잘들어~ "
입대 전 마지막 피자를 먹던 나는 갑자기 진지하게 말하는 하성운을 쳐다봤다.
" 누가 피자 사준다고 해도 절대. 절대 따라가면 안돼. "
나를 먹을거에 눈이 먼 돼지로 보는게 분명해...
" 피자는 꼭! 오빠하고만 먹는거야 알겠지? "
끄덕끄덕
맨날 하는 뻘 소리라는 걸 알아서 대충 흘려듣고 끄덕이기만 했다.
왜냐면 피자가 너무 맛있었거든.
" 재환이나 성우나 애들이 먹자고 해도 안돼. 알겠지? "
끄덕끄덕
" 사준다고 해도 안 되는거야. 알겠지? "
끄덕끄덕
" 진짜?진짜지?약속했다 너?! "
" 나 콜라 좀 "
뭐가 그렇게 좋은지 방긋방긋 웃으며 내 컵에 콜라를 채워줬고 하성운은 그렇게 군대에 갔다.
-
2015 .
나는 성인이 되었고 원하던 학교에 붙었다.
제일 먼저 이 소식을 알려주고 싶어서 나는 편지를 썼다.
나 이제 성인이니까 잔소리 좀 그만해라. 술도 많이 먹을거고, 미팅도 많이 할거라고. 같이 피자 먹을 남자친구도 만들거라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 남자 조심해 '
‘ 특히 휴가나온 군인 ‘
-
2017 .
" 아 취한다~ "
간만에 동네 바보들과 함께 음주를 즐기고 있었다.
" 넌 왜 맨날 성운이형 빼고 먹자그래? "
그야 하성운이 끼면,
" 성운이 형 모르냐? 김여주 입에 술 들어갈 때 마다 사람이 늙던데. "
재미가 없다. 맨날 못마시게해서.
" 성운이형보다 김여주가 더 잘마시는데. "
" 야 권현빈. 니가 몰라서 하는 말이야 그건. 쟤 제대로 취하면 진짜 하..진짜 리얼 험한욕 해도 돼? "
" 야 권현빈 쟤 예전에 군인한테 차였을 때 기억안나? 그 날 이후로 진짜 성운이형 리스펙..."
" 아 그 얘기 왜 또 꺼내냐고! "
-
갓 성인이 되고 신입생이라는 타이틀이 내 이름 앞에 붙었던 그 때. 절대 해서는 안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어쩌다 보니 나는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신입생 환영회를 하던 중, 과 선배는 휴가 나온 선배 한 분이 잠깐 들렸다며 소개를 시켜 주었다.
첫 눈에 반한다는 말이 이런 것인가.
술이 쎈 나는 취하지도 않았는데 얼굴은 홍시처럼 달아 올랐었다.
휴가 나온 그 선배는 그런 나를 보며 웃어주었고 나는 사랑에 빠졌다. 우리는 어느새 '썸' 이라는 걸 타고 있었다.
-
그 선배는 복귀 전 날 학교에 찾아왔고, 복귀 전 나를 보고 가고 싶었다고 했다.
떨리는 가슴을 안고 선배와 놀이터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 저기 선배. "
" 저는 선배가 좋아요. 기다릴 수 있어요. 선배는 저 어때요..?"
첫 고백. 첫 남자친구.
그저 선배가 좋았던 나는 자처해서 고무신을 낼름 신어 버렸다.
-
" 너 미쳤지? "
내가 왜 미쳐. 아 선배에게 미쳐버렸다 나는.
" 나 정말 잘 기다릴 수 있어! "
" 아니 잘 기다리고 뭐고가 문제가 아니라고. "
" 성운이형은 뭐래 "
" 말 안 했는데 "
분명 평생 들을 잔소리보다 더 할 게 눈에 선하다.
" 성운이형 뒤로 넘어가는 소리 나만 들리냐? "
" 아니 나도 들림. "
" 나도. "
나쁜놈들. 친구가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하면 축하는 못해줄 망정..
" 아니 멍청한 김여주야, 왜 군인이야 하필. 군인을 만나고 싶은 거면 그냥 성운이형을 만나.. "
" 여기서 하성운이 왜 나와! 그냥 군인이 아니고! 멋있고 날 좋아해주는 그런! 남자친구라고! "
" 성운이형 부대 번호 좀 찍어봐.."
왜들 난리야 정말. 말 끝마다 하성운 하성운.
" 누가 보면 하성운이 내 남자친구라도 되는 줄 알겠다. "
하성운이 알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탈영 한다고 할거다.
20살이 되고 거의 선전포고를 했던 나에게 휴가 나온 군인을 조심하라고 했던 하성운이다.
내가 휴가 나온 군인에게 첫 눈에 반했다고 하면 저 바보들 말대로 뒷목 잡고 쓰러질게 분명했다.
-
' 이제 힘들어. 나도 힘든데 너 받아주기도 힘들고. 그냥 이제 여주 너가 안 반가운 것 같아. 우리 그만 만나자. 미안. 잘지내. '
일방적인 통보.
편지 한 통으로 끝났다. 병장을 달고 전역이 한달 남았었다. 나도 이제 꽃신을 신을 수 있다며 좋아하던 내가, 한 순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렸다.
20살 겨울, 김여주는 첫 사랑에게 차였다.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며 매일 밤 울었던 것 같다.
내가 차인지 모르는 친구들은 나에게 꽃신 신는다며 축하를 해줬고, 남자친구와 같은 학번인 선배들은 부러워 했다.
축하할 일도, 부러워 할 일도 모든게 다 거품이 되어버렸는데.
지나가는 군인만 보면 속이 까맣게 타 들어 갔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나도 모르게 나는 울고 있었다.
한 동안 학교-술-집
이 생활의 반복이었다.
나는 집 근처 포차에서 또 술을 거하게 푸고 있었다. 여기에 있는건 또 어떻게 귀신같이 알았는지
휘적휘적 걸어오는 권현빈과 윤지성.
" 천천히 마시라고 좀.. "
" 김여주 혼자 이거 다 마신거 실화야..? "
" 재환이 부를까.. "
" 안돼! 김재환 부르지마! "
" 이럴 때 성운이형이 있어야 되는데... "
“ 야 아서라. 성운이형 한테 말했다가는 우리 김여주한테 뼈도 못 추려…. “
소주 3병을 마시고, 한 병 더 따려고 하는 순간 누가 내 손목을 잡았다.
" 아 놔라 진짜... 나 안취해따고~ 더 마실 수 있따고~ "
" 못 본 사이에 술고래가 됐어 김여주 "
-
술에 전 나는 고개를 박고 잠들어버렸다. 얼핏 성우와 지성이 목소리가 들렸고, 익숙한데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도 간간히 들려왔다.
“ 형, 우리는 얘 엄청 말렸어. “
“ 현빈이랑 나랑 애들 다 정말 진짜 김여주 미친기지배라고 우리가 뜯어 말렸어.. “
“ 알아. 근데 여주가 미친게 아니야. 그냥 그 새끼가 쓰레기 였던 거야. “
-
왠지 모르게 너무 편해서 너무 익숙한 향기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떴다.
“ 이야~못생겼다 못생겼어. “
하성운이다. 얘가 왜 여기에 있지? 일어나려고 하니까 이마를 꾹 눌렀다.
“ 아 뭔데 너 탈영했어? 뭐야 다음주에 나온다며. “
“ 내가 탈영을 왜 하냐~ 배고파서 일찍 나왔어 “
아니 진짜 뭐지 왜 얘가 여기에 있는거냐고.. 나는 왜 하성운 무릎을 베고 자고 있고..
“ …너 사고쳤냐..? ”
“ 사고는 너가 친 게 사고. 나는 그냥 널 칠거야. ”
아프지 않게 이마에 꿀밤을 맞았다.
“ 너 하마터면 입 돌아 갈 뻔 했어. 오빠한테 빨리 고맙습니다~해 “
그러고 보니 겨울이지만 날이 풀려 나는 옷을 얇게 입고 나왔다.
근데 지금 나는 침낭안에 들어가 있는 것 마냥 꽁꽁 싸매져 있었고, 하성운은 얇은 후드티 차림이었다.
귀가 빨갛다. 추울텐데..
“ 아 덥다~ “
내 시선을 느꼈는지 선수를 친다.
힐끔 나를 내려다 본다.
부은 내 눈을 톡톡 건드리더니 한숨을 쉬는 하성운.
“ 우리 여주 진짜 어른이네 “
그저 올려다 볼 수 밖에 없었다.
“ 남자한테 차여서 술도 먹고 오빠 앞에서 울기도 하고. “
하성운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 넘어져서 피가 나도, 병원에서 주사를 맞아도 안 울던 애가 “
왜냐면 서러웠다 그냥.
“ 이렇게 잘 우는 어른이 됐네. “
나는 이마 위에 따뜻하게 올려져 있던 하성운의 손을 끌어내려 눈을 덮어버렸다.
“ 자꾸 울면 오빠 서운해. 나 군대 갈때도 안울었으면서 “
그렇게 하성운은 다시 부대로 복귀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역을 했다.
-
+) 여주를 성운에게 부탁하고 집에 돌아가는 현빈과 지성.
어두운 골목길, 여주를 성운에게 맡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현빈과 지성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앞만 보고 걷고 있었다.
현빈은 걷다 멈춰 핸드폰 액정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 야야야 잠깐만. 근데 성운이 형 원래 휴가 다음주라고 하지 않았어? 김여주 저 꼬라지로 다니는 거 알고 땡겨 나온 거냐 설마? "
“ 뭐..보나마나 김재환.."
“ 진짜 김여주 빠돌이 하성운이다.. "
“ 그거 받고 하성운 빠돌이 김재환. 덕질은 이렇게 하는 거다 진짜로. "
-
+ 고맙다는 말을 안하고는 못배기는 여주
“ 그..날….은…고마..웠..고…..피….자…사…. "
아 이게 아닌데..
그 추운 겨울날 저 때문에 감기에 걸려 복귀 한 하성운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못한게 마음에 걸려 편지를 쓰고 있는 여주.
“ 아 고맙다는 말만 쓰면 되지 뭐 그렇게 끙끙 앓고 있냐 너는 “
“ 야 한 장만 더 줘 "
“ 맞고 싶다고? "
부아악 -
하성운 따위에게 예쁜 편지지는 사치라며 재환이의 연습실에 눌러 앉아 악보를 찢어 편지를 쓰고 있는 여주.
벌써 4장째 뜯어간 여주 때문에 재환이의 손은 더 이상 기타를 치지 않고 주먹을 꽉 쥐고 있다.
" 다 썼다. 하.. 다시는 편지 안써 "
펜을 잡고 꼬박 3시간만에 편지를 다 쓴 여주.
편지에는 별 내용이 없는게 사실이었다.
그 날은 고마웠다 나 때문에 감기 걸린건 괜찮냐 다음엔 피자를 쏘겠다
그리고,
' 너 군대 갔을 때 집에서 구름이 안고 꽤나 울었으니까 서운해 하지마 하찮은 하성운아 '
-
안녕하세여 홍차화원입니당~
핡...짤방 찾기 너무 힘들댜..
동네에 성운이 같은 사람 없어요. 1인1보급 시급한데...
왜 없냐구요...
성운이 글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