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유선호
-유선호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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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동인 내게 어릴 적부터 동생이 있었다. 이복동생 그런건 아니고 그냥 엄마들끼리 친해서 자연스럽게 어릴적부터 알고지낸 그런 소꿉친구같은 동생말이다. 동생이 없던 내게 병아리같이 귀여운 얼굴로 누나하고 졸졸 따라다니는 선호의 모습은 무척이나 귀여웠다. 그래서 남들이 보면 진짜 동생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모습이 챙겨주며 예뻐해줬는데, 키가 훌쩍자라나던 순간부터 코를 흘리며 내 손을 꼭 잡던 귀여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키와 귀여움을 맞바꿨는지 얄미운 모습만 남은 유선호를 보며 충격을 받아서 밤마다 몰래 어릴때 선호 사진을 꺼내보며 다시 귀여운 선호를 돌려달라고 기도를 한적도 있었다.
2살이나 나보다 어린데도 밥을 엄청 잘먹어서 나보다 훨씬 큰 키덕와 또래보다 성숙한 얼굴에 같이 밖에 나가면 오빠와 사이가 좋다면서 나를 동생으로 봤다. 그때부터 갑자기 오빠병이 생긴 유선호는 자신을 오빠라고 불러보라며 키도 자신이 훨씬크고 밥도 나보다 더 많이 먹었을거라며 심심하면 내게 와서 오빠라고 부를것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내가 미치지않고서야 2살이나 어린 애한테 오빠라고 부르겠는가 그것도 예쁜짓도 하지않는 애한테 말이다. 그래서 오빠라고 부르라는 말에 늙게 생기셔서 좋겠어요, 아저씨라고 한번 불렀더니 대단히 충격을 받은 얼굴을 한후로 오빠라고 부르라는 개소리를 자제하기 시작했다.
유선호가 얼마나 약았냐면, 고등학생도 됐는데 술 한번만 먹어보자고 며칠동안 엄청 귀찮게 졸라서, 결국 부모님이 여행을 가셔 집이 비던 날 함께 술을 마셨다. 그런데 처음 술을 마셔본 내가 주량을 알았겠는가, 생각보다 잘 넘어가는 술에 내가 주량이 쎈가보다하고 정신없이 먹었다. 내가 술을 쉬지도 않고 들이키는 모습을 보고 선호는 '너 처음 먹는다고 하지않았어? 그렇게 먹다가 훅간다.'라고 말렸지만, 이미 몽롱해진 정신에 기분이 좋아진 내게 그 말이 들릴리가 없었다. 그리서 내 술잔을 뺏는 선호에게 쫄리면 빠지시던가라고 말하며 원샷을 했다.
등에서 느껴지는 따가움에 눈을 뜨자 여행에서 벌써 돌아온 엄마가 술병을 내 눈앞에 흔들어 보이더니, 다시 매운 손으로 내 등짝을 후들겼다.
"아이고 집에서 얌전히 선호 좀 챙기고 있으라고 했더니, 술을 마셔? 이 가시나가!"
"어??엄마!! 그게 아니라"
"마실거면 어 맛만보던가, 이 술병이 다 몇개야! 아니지 어디서 고등학생이 술을 마셔 마시긴!"
"나도 안 먹으려고 했는데, 유선호가 먹자고 계속 꼬셔가지고 어쩔 수 없이 마신거야"
"이게 어디서 거짓말이야 거짓말은. 선호가 너가 술을 마시자고 꼬셔가지고 어쩔 수 없이 자긴 딱 한잔만 마셨다고 하던데"
"아 저거 구라치는 거야! 빈병을 좀 봐! 내가 저걸 어떻게 혼자 다 마셔!! 유선호 쟤가 먹자고 한거라니까 한잔은 무슨.."
"왜 계속 선호 핑계를 대긴 대, 얼굴은 퉁퉁 부어가지고.
저 착한 선호가 너를 꼬셨겠니, 꼬셔도 여주 너가 꼬겼겠지"
평소에 엄마가 저를 좋아하는걸 아주 잘 아는 유선호는 이 상황에서도 그걸 아주 잘 이용하였다. 그래서 어제 나만큼이나 술을 많이 마시고도 엄마가 끓여준 북어국을 먹으면서 해장도 못하고 쓰린 배를 부여잡는 내게 혀를 내밀며 얄밉게 웃었다. 아으 그래 저 자식의 수에 넘어간 내가 잘못이지.
유선호에게 당한것은 그 일뿐만이 아니었다. 집에서 다트 던지기를 하다가 화분을 깨먹고 나서 내게 덮어씌우거나 시험을 죽써서 이모에게 혼나고 있다가 현관으로 들어오던 내 뒤로 숨어서 이모의 손힘을 대신 맞보거나하는 일은 입밖으로 꺼내기도 귀찮을 만큼 자주 있는 일이었다.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얄미웠지만 그래도 선호를 마냥 미워할 수는 없었다. 중학교때 무서운 일진들에게 돈을 뺏길때도, 다리를 다쳐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때 나를 업어준것도 나보다 어린 선호였으니까. 평소에는 얄밉게 굴어도 속으로는 나를 생각해주는 동생이었기에 미워도 미워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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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호는 선천적으로 애교가 많았다. 애교가 부족한 나를 대신해서 엄마에게 애교많은 딸이 되어주었다. 이모라고 부르며 살갑게 구는 선호를 엄마가 싫어할리가 없었다. 오히려 집에 장군감같은 딸밖에 없어서 외로웠는데 좋다면서 딸인 나보다 선호를 더 좋아했다.
나도 예전 같으면 엄마보다 선호를 더 예뻐했을테지만, 지금은 유선호의 실체를 모르고 나보다 선호만 더 예뻐하는 엄마에 섭섭함이 느껴졌다. 그거 다 유선호의 연기에 속고 있는 거라고요.
우리집 소파에서 누워 제 집인양 과자를 입안으로 털어놓으며 tv를 보는 유선호를 보자 여기가 내 집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아, 우리 치킨 시켜먹자"
사춘기가 오면서부터 누나라는 호칭은 어디다가 빼먹고 왔는지 김여주라고 부르며 자기가 오빠인양 행세하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어짜다가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을때만 애교를 부리며 '누나아~'라며 내게도 애교를 부려왔는데 그럴때마다 감격스러워서 선호의 계략임을 알고 있음에도 넘어가버리곤 했다. 어쩌다가 내 신세가 이렇게 되었는지... 몇분뒤에 다시 김여주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한탄을 할뿐이었다.
"김여주"
"아 쫌! 누나라고 부르라고!"
"니가 무슨 누나냐? 키도 작은게"
"니가 비정상적이게 큰거거든."
"네에네에 키가 결코 작지않으신 김여주씨, 키크고 오면 누나라고 불러드릴게요"
매번 유선호와의 말싸움에서 지는 걸 알았지만, 그럼에도 한번더 도전했다가 또 한번의 패배만 얻을 뿐이었다. 키크는건 이미 늦었으니 화술학원이라도 알아봐야겠다.
"귀여운 선호가 보고싶다"
"너 아침부터 정신놨냐?"
"아휴 진짜 귀여웠었는데 언제 이렇게 못생겨져가지고, 누나가 마음이 아프다"
내 말을 들을 생각도 없는 선호는 또 시작이네라는 말만하고는 먼저 학교를 가버렸다. 먼저 가는 선호의 뒷모습에 손을 휘적거리다가, 선호가 없으면 버스에서 이리저리 치일 생각에 벌써 한참이나 앞서가고 있는 선호를 향해 뛰었다.
"야 그렇다고 혼자가냐? 이렇게 같이 가면 얼마나 좋아"
"너만 좋겠지."
정곡을 찌르는 선호의 말에 정답이라고 상큼하게 웃어주곤 다시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런 만원버스에서의 유선호는 제법 쓸모가 있단 말이지, 이럴때라도 써먹어야지 내가 얼마나 잘해주는데 이정도로는 내가 잘해주는 것에 반의 반도 안되지만 말이다.
혼잡한 버스 속에서도 밀리지않고 서서 듬직하게 나를 받치고 있는 모습에, 그래도 잘 컸네라는 생각을 했다. 뒤에서 내 머리냄새를 맡았는지 '너 머리 안감았냐'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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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호가 너무 보고 싶어서 쓰는 글이에요, 선호를 오빠로 하기에는 너무 양심이 찔려서 결국 동생으로....
가볍게 쓴 글이니 재밌게 읽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