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이봄
황제를 위하여
너는, 웃는 낯으로 날 보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네 시선 안에 머무는 나를 언제고 내쫓고 싶어 안달난 사람처럼 굴면서도
너의 것이 아닌 다른 시선에 머무는 나를 더 못 견뎌하는 너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황제를 위하여
“거슬려.”
짝이 바뀌었다.
나이답지 않게 아기처럼 웃으며 늘 다정하게 대해주던 강다니엘은 나와 제일 먼 대각선 끝자리로 배치되었다.
그리고 내 옆에는 삐딱하게 턱을 괴고 앉아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날 쳐다보는 황민현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럼 다시 원래대로 자리 바꾸는 건 어때?”
도대체간 녀석은 이해가 안 되는 놈이다.
나를 그렇게도 싫어하면서 굳이 제 곁에 날 두려하는 연유를 알 수가 없다.
황민현은 내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사각사각 샤프소리를 내며 수학 문제집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길쭉한 검정색 제도 샤프는 제 주인을 닮아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문제집 위를 유영했다.
저 샤프라도 부수면 내 속이 좀 편할 텐데. 아니, 황민현을 부술 순 없잖아.
“꽃이 안 펴.”
“뭐?”
한참 소리 없이 문제집을 풀던 황민현이 여전히 문제집에 시선을 둔 채 말했다.
“김재환이 화분을 줬는데 꽃이 안 핀다고.”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지.
황제는 유아기에 고착된 사람처럼 일방적인 말만 해댔다.
내 사촌동생이 딱 저렇게 맥락 없이 구는데.
녀석의 말에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느낀 나는 슬쩍 이어폰을 끼며 못들은 척 들고 있던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네가 피우라고, 그 꽃.”
허나,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내 옆에 앉아있는 건 그 누구도 아닌 황제였으니.
녀석은 미간을 찌푸리며 내 이어폰 한쪽을 빼버렸다.
그리고는 내게 꽃을 피우라 명했다.
내가 정원사냐고.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내저었다.
애당초 식물 키우는 데에 취미도 소질도 없을뿐더러 혹여나 식물이 죽는 날에는 나를 가만두지 않을게 분명했다.
“달리야, 내가 부탁하는 걸로 보여?”
황제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해맑은 얼굴로 소름끼치는 말만 골라서 하는 건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두려울까.
무능한 나는 어색하게 녀석을 따라 웃을 뿐이었다.
*
“어어. 괜찮아?”
고작 5분 사이에 강다니엘은 세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화분을 돌보라는 어명 탓에 함께 하교하게 된 황민현이 자꾸만 발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진짜 미친 새끼. 처음에는 실수라고 생각하며 웃어넘기던 다니엘도 슬슬 열이 받는 모양인지 얼굴에 웃음기가 가신 상태였다.
“자꾸 왜 이러냐, 너.”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황민현은 교복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다니엘을 향해 개구지게 웃어보였다.
“곱게 미쳐라. 넌 답이 없다.”
다니엘이 황제를 향해 혀를 내둘렀다. 나도 다니엘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였다.
또 어떤 부분에서 핀트가 나가서 저렇게 엄한 사람을 괴롭히는 건지. 궁금하면서도 또 한 편으론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다른 녀석들과 달리 황제에게 할 말 다 하는 강다니엘의 태도가 참, 맘에 든다고 속으로 새겼을 뿐이었다.
“달리야, 쟤네 집 꼭 가야 돼?”
“안 가면 내 책상 갖다 버린대.”
내 말에 골치가 아픈지 강다니엘이 중지와 엄지로 제 양쪽 관자놀이를 부여잡았다.
와중에 황민현은 그깟 게 뭔 대수라는 듯이 미동도 없이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녀석은 소리 없이 입을 벙긋거렸다. 뭘 봐.
저, 저, 싸가지. 나는 황민현의 태도에 혀를 내둘렀다.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제는 휘적휘적- 긴 다리를 움직여 내 뒤로 다가왔다.
그리곤 내 교복 뒷덜미를 움켜쥐어 제 옆으로 날 세웠다.
좀 곱게 데려갈 순 없는 거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책상은 있어야 멀쩡히 학교에 다닐 수 있을 터였다.
“그럼 화분을 아예 달리 줘. 꽃 피면 다시 너한테 주면 되잖아.”
“싫은데. 내 화분을 왜 쟤네 집에 놔.”
흘끗 아래를 보니, 어찌나 꽉 쥔 건지 다니엘의 주먹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강다니엘 속이 좀만 덜 물렀으면 황제 얼굴 어느 한 구석은 쥐어 터져 있었을 것이다.
어디 보통 얄미워야지. 나는 다니엘이 녀석을 때리지 않는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판단이 안 됐다.
“됐어, 꽃 필 때까지 우리집 와.”
황제가 내 머리칼을 뒤로 젖히며 귓가에 속삭였다.
*
노을 지는 간유리 사이로 지친 기색이 역력한 내 모습이 일렁였다. 속눈썹사이로는 오늘 마지막 볕이 스며들어왔다.
유리에 비친 거실 전경. 거실 소파 위에서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있는 황민현. 노예처럼 한숨을 푹푹 내쉬며 화분을 보살피는 나.
‘멋진 신세계’
황민현은 저와 어울리지 않는 책을 읽고 있었다. 넌 ‘이기는 대화법’ 이런 게 어울려. 멋진 십새끼야.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오늘도 꽃이 피지 않은 레몬타임 위로 칙칙- 물을 뿌렸다. 레몬타임은 내 속도 모르고 레몬향을 풍기며 싱그러운 자태를 자랑했다.
“그깟 꽃 하나 못 피우고.”
황제가 읽던 책을 덮으며 내 속을 긁어댔다. 어쩐지 즐거워 보이는 모습에 속이 쓰려왔다.
일주일 째 녀석의 집에 들어서면 득달같이 창가로 달려가 화분을 살피는 일을 지속했지만 꽃은커녕 봉오리마저 발견할 수 없었다.
의심스러운 마음에 꽃이 안 피는 종은 아닌지 검색해봤으나 황제가 그렇게 양심이 없는 놈은 아니라는 결과물을 내어줄 뿐이었다.
“야, 황민현, 이거 뭐야.”
오늘도 꽃을 피우지 못한 레몬타임을 야속하게 바라보다 받침에 고인 물을 버리기 위해 화분을 드니 하얗고 앙증맞은 꽃잎이 눈에 들어왔다.
좁쌀만해서 잘 보이진 않지만 이건 분명 꽃잎인데. 이거 분명 사진에서 봤던 꽃인데.
“뭐가.”
황제는 한 쪽 다리를 꼬며 되물었다. 그 태연한 모습에 순간적으로 내가 잘못한 건가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사라졌다.
“너 설마 꽃 핀 거 떼어냈어?”
황제는 대답이 없었다. 떼어낸 거 맞구나. 시발, 이 시발 새끼.
그동안 틈만 나면 매일 검색했던 꽃 피우는 법, 식물 영양제, 꽃이 안 펴요 등 온갖 검색어들이 태풍처럼 휘몰아쳤다.
매일 화분 앞에서 전전긍긍하며 애태우는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을까.
그제야 내가 올 때마다 굳이 거실에서 책을 읽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미친. 지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새끼.”
“재밌잖아.”
그리고, 꽃이 안 펴야 네가 매일 오잖아.
황민현이 부러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작정하고 나를 약 올리는 그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올라서 눈가가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울기 싫은데. 정작 아프고 힘들 땐 눈물도 안 나더니 왜 이렇게 화날 때마다 눈물이 나는 건지.
시야가 흐려지면서 황민현의 모습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하필 또 검정 옷이라 저승사자 같잖아.
“너 진짜 나한테 왜 이래, 진짜, 왜.”
나는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눈가가 축축했다. 어설프게 작은 물방울이 속눈썹 위로 도롱도롱 고인 것이 느껴졌다.
“우니까 좀 낫네.”
황제가 여지껏 본 것 중 가장 환히 웃는 낯으로 내 눈물을 닦아냈다.
녀석의 손은 생각보다도 더 차가웠다.
"나도 몰라, 이유 같은 거."
황제와 나의 사이는 분명 이상한 게 맞는데,
둘 중 그 누구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
독자: 뭐야 우리 다녤 분량 왜냥 없어 (벽뿌)
할미: 따흐흑,,, 죄송할미다... 서브 남주를 활용 못하는 병 말기에 걸렸읍니다....
정신차려서 다음엔 녤이 분량도 늘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읍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이 할미 접어쓰기를 하고자 여러번 도전했는데
번번히 실패하여 포기했다는 것을.....
그러닌 사족 안 접어 쓴다고 미워하지 마십쇼........^^7 충성충성
[암호닉]
뿜뿜이/집착쪼하/사란/시릿/연우/해야/브룩/모찌/희48/고구마/수선화/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