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튼 그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약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딱히 다른 것은 없었다. 그 시간동안 아팠던 무릎은 약간의 상처만이 남았고 알바를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가끔 팀갤 눈팅하면서 눈물을 흘린다는 것과 다가오는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이거라도 타라라는 마음과 또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내년 시즌에는 더 잘했으면 바람 등등 지고나니 더 떠오르는 야구 생각을 하면서 지냈다. 물론 이런 내 모습을 보는 동기들이나 선배, 후배들은 날 안타깝게 쳐다봤지만 (심지어 기아 좋아하는 선배들도 있었는데 내 앞에서는 딱히 티를 안 내주는 센스를 발휘했다)
한국시리즈에서 패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내 완벽한 하루에 또 한 가지 슬픈 사건이 생겼다.
내가 일하는 호프집에 선수들이 가끔 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보통 홈 선수들이 오는 건 아니고 원정 선수들이 오는 거라 내 사랑하는 선수들을 만나기 위해 시작했던 건데 이상하게 내가 알바를 딱 시작한 이후부터 내 사랑하는 선수들이 오지 않았다. 왜냐? 당연하다 나는 엔씨의 마지막 광주 원정 경기 당일부터 알바를 시작했으니까. 어차피 시작한 거 열심히라도 하자는 마음에 계속 했고 다른 팀 선수들도 오고 그래서 아쉬웠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팀의 선수와 그냥 타 팀의 야구 선수는 달랐다. 아니 이게 중요한 말이 아니고 어쨌든 이 말을 왜 꺼냈냐면 그냥 이 호프집은 야구 선수들이 많이 온다는 사실 때문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홈 선수들 말고 원정 선수들이.
근데, 왜, 평소에는 오지도 않던 기아 선수들이 이곳에 오는 건가. 그것도 강다니엘이 포함된.
강다니엘은 왜 끝내기 홈런을 쳤는가?
B. 인연인가?
사장님께 대충 물어보니 그냥 친한 선수들이 모인 거라고 했다. 비슷비슷한 또래들이 모여서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해서 모인 거라고. 빨리 가서 주문이나 받으라는 사장님의 말에 한숨이 나왔다. 서, 설마 내 얼굴 기억하나?
"안주는 닭발, 맥주는 500cc 다섯 잔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더 필요하시면 불러주세요!"
다행, 정말 다행이었다. 저 선수는 내 얼굴을 보면서도 제대로 기억 못 하는 것 같았다. 그래 제발 그냥 일개 종업원이라고 생각해. 차마 말은 할 수 없는 내 고요 속의 외침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래, 그러다가. 딱 뒤를 돌려고 하던 그 순간에.
"야 강다니엘, 저 분 그 분 아니야? 너랑 부딪쳐서 다치셨던 분"
"맞네, 맞는 것 같은데? 와 강다니엘 네가 다치게 했던 분도 기억 못 하네. 끝내기 쳐서 그런가?"
"헐 진짜네. 헐, 세상에 못 알아보다니 죄송해요. 아니 것보다 무릎은 어때요? 괜찮아요?"
옆에 있던 김재환 선수의 말로 인해서 내 정체를 들통나고 말았다. 아니 뭐 들통날 정체도 없긴 했지만. 내가 그 부딪친 당사자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강다니엘은 괜찮냐면서 나를 막 추궁하기 시작했고 본인이 준 번호로는 왜 연락을 안 했냐 그동안 걱정 엄청 했다. 팀 일정만 아니었어도 바로 병원으로 같이 가는 건데 못 가서 정말 죄송하다 등등 한 일주일 안 만나는 동안 나에게 궁금했던 모든 것들을 속사포로 말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선수들도 쟤가 엄청 걱정 많이 했다면서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라고 말을 했다.
서울고 출신, 1라운드 출신. 떠오르는 유망주, 기아 타이거즈 리빌딩 코어, 모든 언론에서 찬양하는 사나이.
나와 같은 팀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증오의 대상. 처음에는 광주 시내에서 마주치기만 해도 욕이 나올 것만 같았다. 실제로 친구들도 더 싫어지겠다? 이런 말을 했으니까.
"진짜 연락 주세요. 번호 아직 안 버리셨죠? 혹시나 버리셨으면 다시 적어드리고. 제가 진짜 밥이라도 한 번 사고 싶어요. 너무 죄송해서"
그런데, 왜. 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가?
역시 강다니엘은 광주의 슈퍼스타였다. 술을 마시고 있으면 강다니엘과 그 주변 선수들에게 계속 다가가서 정말 고맙다는 말은 남기고 사랑한다는 낯간지러운 말을 남기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매우 엄청 많았다. 계속 말을 거는 사람들이 불쾌하지도 않은 것 같은 강다니엘은 계속 대답해주고 싸인을 하고 사진도 찍어주었고 그 주변 선수들은 그런 강다니엘의 모습을 보면서 오오오 라는 웃긴 효과음을 넣어주기 바빴다.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던 사장님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김여주 양은 강다니엘 선수 별로 안 좋아하지 않아?"
"네? 갑자기 왜요?"
"아니 그냥 엔씨 엄청 좋아하잖아. 아직도 기억 나 네가 좋아하는 선수 맞춰서 시즌 아웃 시킨 선수 엄청 싫어하던 네 모습"
"설마 그런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유추를"
"맞아"
야구에 인생을 바치다 못해 인생을 털어놓은 나는 좀 과격하게 팬질을 하는 사람이었다. 욕은 기본이오, 우리 팀이어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도 예외는 없었다. 실책을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한탄이 나오고 티비를 꺼버리는 충동심이 마구마구 올라오기 시작하곤 한다. 그 실책으로 인해서 점수가 나오면... 음 생략하겠다. 과거에 내가 좋아하던 선수가 사구로 인해 엄청 큰 부상을 입은 기억이 있는데 당시 나는 매우 흥분해서 엄청 욕을 하고 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나도 나쁜 언행이었던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너무 슬펐다. 왜 하필, 왜? 이러면서 엄청 슬퍼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내가 이러니 사장님이 저런 추측을 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러니 나도 이상하단 말이다. 왜 그런 큰 증오심이 들지 않는 거지.
이런 골치아픈 문제는 생각 하기 싫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자. 문제는 답이 전혀 안 보인다는 거지만.
괜한 생각을 계속 하다가 선수들이 앉은 좌석을 보니 다 먹었는 지 돈을 내기 위해 카운터로 오는 기아 선수들이 보였다. 사장님은 기아 골수팬답게 끝내기 홈런을 친 강다니엘의 술값을 받을 수 없다며 하하하 웃으시며 술값을 반값으로 자르기 바빴고 선수들은 그런 사장님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아아아 맞아요 사장님, 저희 닭발 하나 포장 부탁드려요."
"왜 집에서 먹게?"
"어휴 당연하죠. 닭발은 여기가 짱이라서 계속 먹고 싶은 마음이 엄청 들어서"
"어휴, 평소에는 잘 오지도 않으면서 말은"
"앞으로는 많이 오겠습니다"
"오냐, 30분 뒤에 와"
그들은 강다니엘과 함께 팀에서 친한 모임의 막내를 맡고 있다는 김재환의 상큼한 메세지와 삼십 분 뒤에 봐요 사장님~ 이라는 말과 함꼐 떠났고 나가기 직전 강다니엘은 나를 향해서 [연락해요] 라는 입모양을 남기고는 그대로 사라졌다. 아아, 왜 나는 고개를 끄덕였는가. 저 선수는 왜 엄청난 기대롤 하고 있는 걸까. 나한테 인사를 한 거 보면 닭발을 찾으러는 안 오는 걸까.
의미없는 생각들이 점점 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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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지났다. 오늘은 일요일 알바가 없는 날. 나는 강다니엘이 준 쪽지를 보면서 엄청난 고민을 하고 있다. 내가 이 번호로 연락을 해야 할까 아니면 안 해야 할까. 엄청난 고민을 하다가 절대로 통화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번호를 입력하고 문자를 하나 보내기로 다짐했다. 문자창을 열심히 보면서 나는 더 깊은 절망에 빠졌다. 뭐라고 보내야 하지? 안녕하세요 저번에 봤던 호프집 알바…. 절대로 안 된다. 이건 허접하다 그러면 뭐라고 보내지 늦게 연락을 넣어서 죄송해요 저 저번에 봤던…. 이것도 아니다. 나는 더 깊은 절망에 빠졌다. 신이시어 저는 왜 말주변이 없습니까…….
[안녕하세요. 강다니엘 선수 저 저번에]
결국 여기까지 쓰고 포기했다.
다시 머리를 굴리기 위해서 열심히 자판을 열심히 쳐다보다 내 손가락이 실수로,
[전송되었습니다]
전송 버튼을 눌러버렸다.
아…. 신이시어….
"진짜 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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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 하실 분이 있긴 할까요 암호닉 받긴 받습니다!
쓰고 싶은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되려면 작품 시점 내년 4월이... 되야... 아... 언제 쓰죠 아직 캠프도... 골든 글러브도... 얘네 사귀지도 않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