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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엠 전체글ll조회 1554l 5










T에게

태민x기범

w.비엠(BM)







발신지 Korea, Seoul (대한민국, 서울)

       Ki-bum Kim 김기범


수신지 Great Britain, London (영국, 런던)

       Tae-min Lee 이태민







1.

  안녕 태민아.


  오랜만에 너와 자주 가던 장소에 와봤어. 왜, 우리 두 사람 폴라로이드 사진 찍어주고 걸어 놨던 곳 있잖아. 그냥 길 따라 걷다보니 그곳이더라. 그때 우리가 앉았던 자리에 앉으니까, 여전히 너와 나의 사진이 있더라고. 그땐 뭐가 그렇게 좋아서 웃고 있었는지, 참 티 없이 맑아 보였어. 한참이고 그 사진만 보고 있으려니, 주인이 나를 알아보시더라고. 솔직히 알아보실 줄은 몰랐는데, 반갑게 맞이 해주시기에 나도 같이 반갑게 인사했어. 항상 같이 오던 남학생은 어디에 두고 혼자 오냐고 그러시더라.


  태민아, 오랜만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너를 찾는 것을 듣는데 참, 기분이 이상했어.


  내 표정이 안 좋았었나봐. 주인은 그저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카운터로 돌아가시더라고. 나름 표정관리 한다고 했는데, 아직, 네 이야기가 나오면 조금 씁쓸한 기분 때문에 표정에 드러나곤 하나봐. 아, 표정 관리 연습 해야할까봐. 시험기간에 너 몰래 친구랑 놀고 난 뒤에 도서관으로 나를 데리러 온 네 앞에서는 그렇게도 잘 되던 거짓말이었는데 지금은 영 안 되네. 참, 웃기지?







2.

  과제할 것이 생겨서 오랜만에 도서관을 찾았더니, 어떤 남학생이 반갑게 인사를 하는 거야. 누군지 기억이 안 나서 한참을 쳐다보고만 있으려니, 웃으면서 밖에서 이야기 하자고 나를 데리고 나가더라. 너도 알잖아, 나, 신입생 OT도 얼굴만 비추고 가기 일쑤인대다가, 동아리 활동도 잘 안하고, MT도 잘 안가는 거. 기껏해야 신입생 OT때 본 것 같은데 영 기억이 안 났어. 누군지도 모를 남학생 손에 이끌려서 도서관을 나와 교정을 걸었다고 하면, 네가 질투하려나?


  질투하지 마 태민아, 너도 아는 사람이더라고.




  ‘기범선배 저 기억 안 나죠?’

  ‘……응.’

  ‘저 종인이에요. 태민이 친구, 김종인.’




  네 친구 종인이었어. 이름 듣는 순간 기억이 나더라. 아무튼 종인이가 학교에서 보는 건 오랜만이라며 밥을 사준다고 해서, 또 무의식적으로 너랑 가던 식당으로 향했어. 근데 너, 그곳에 나 말고 종인이랑 도 자주 갔나봐? 이걸 보면 어떻게 알았냐고 묻겠지? 종인이가 고등학생 때 자주 오던 곳이라고 말해줬어.


  하여튼 이태민도 엄청 거짓말쟁이야, 나랑 처음 오는데 맛있으니까 자주 오자고 할 땐 언제고.







3.

  지금 한국은 새벽이야, 영국은 낮이려나? 어때, 영국 공기는? 여긴 요새 안개가 자주 껴서 아침마다 안 그래도 심한 교통체증이 더 심해졌어. 원래 영국이 안개의 나라라는데, 요즘에도 그래? 한국은 봄인데도 정말 추워. 어쩌면, 네가 없는 한국이라 더 추운 것 같아.


  태민아, 여긴 좀 추워. 나 없는 너는, 안 춥니?







4.

  문득 궁금했어. 종인이도 나한테 물어 봤던 건데, 태민아, 넌 왜 그렇게 급하게 한국을 떠나야 했어?







5.

  요즘 학교는 축제 기간이야. 그렇지만 재미는 없어, 그저 무료하고 따분해. 네가 없이 처음 맞이하는 축제인 것 같아서 더 그런 기분이야. 푸른 녹음이 교정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혈기왕성한 젊음이 곳곳에서 느껴졌지만, 내겐 아무런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들일 뿐이야.


  아, 그나마 다행인 건 종인이가 옆에서 재잘재잘 떠들어 줘서 소소한 즐거움은 있어. 너 없으면 놀 사람 없던 내가, 종인이 덕에 여러 사람을 알았어. 종인이가 소개시켜준 애들은 모두 다 친절하고 착하고 활발해. 언젠가 네가 한국에 온다면 너한테도 소개시켜주고 싶은 애들이야. 그 중에서 찬열이라고, 나랑 동갑인데 잘생기기도 참 잘생겼는데 생긴 거랑 다르게 그들 무리 중 가장 활발해. 종인이가 바쁠 땐 얘가 항상 먼저 다가와서 재잘재잘 말을 하곤 해. 네가 좋아할지 어떨 진 모르겠지만, 조금씩 네 빈자리가 허전하지 않아.







6.

  오늘 집으로 택배가 하나 왔어. 너는 이 집에 없는데 너를 찾는 택배였어. 그래서 새삼 공허한 너의 빈자리를 느꼈어. 너한테서 얼핏 들은 적 이름인, 김종현이라는 사람이 보낸 거야. 그 사람은 네가 한국에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아 보였어. 내가 네 앞으로 온 택배 함부로 열어봤다고 화내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너 그러면 정말 나쁜 거야. 언제 와, 보고 싶어.







7.

  공부밖에 모르는 바보 이태민. 나보다 공부가 더 좋지? 그래서 한 번도 연락이 없는 거지? 편지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반송되지 않는 거 보면 제대로 가고 있는 건 맞는데, 왜 답장은 안 해? 너 미워. 확, 편지 끊어 버릴까봐. 안 그래도 요즘 우표 값 올랐단 말야. 그렇다고 내가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있어서 이러는 거 아니야. 오해하지 말라고, 바보야. 멍청하게 내가 돈 없는 거 걱정할까봐 그래.







8.

  이제 가을이 거의 끝나 가. 지난 시간동안 중간고사 때문에 바빠서 편지를 하나도 못 썼어. 삐진 거 아니지? 대신 이번에 엄청 길게 쓸게.


  너도 알잖아, 나 시험기간이면 자주 밥 거르는 거. 매일 커피만 입에 달고 사니까 너도 항상 걱정했잖아. 나 아직도 그 습관 못 버렸어, 더군다나 챙겨주는 네가 없으니까 더더욱 시험 기간 중 밥 먹은 것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야. 나는 나름 멀쩡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내 몰골이 말이 아니었나봐. 복도에서 찬열이를 마주쳤는데 글쎄, 만나자마자 그 큰 눈이 더 커지더니 내 팔을 붙들고는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었냐고 묻는 거야. 처음엔 얘가 웬 호들갑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유리창에 비춰진 내 모습 보고 사람 몰골은 아닌 것 같더라. 그래서 덕분에 찬열이한테 밥 얻어먹었지. 자꾸 친구나 후배들한테 밥 얻어먹는 것 같다고? 부정하진 않을게, 사실이니까. 근데 이건 네 잘못도 어느 정도 있어, 네가 항상 밥시간 되면 찾아와서 밥 먹자고 했었잖아, 너 없으니까 지금이 밥 먹을 시간인지 아닌지 구분조차 안 가. 네가 내 버릇 잘 못 들인 거야.


  어쨌든, 참 사람 습관 변하기 힘든 것 같아. 네가 영국으로 간 뒤에 허전함은 채워졌는데 아직도 네가 있을 때의 사소한 습관들은 여전히 날 괴롭게 해. 내가 너에게 남긴 사소한 습관은 없어? 넌 그 습관들 때문에 슬프지 않았어? 아니면 내가 보고 싶다거나 하지 않았어? 내가, 그립지 않았어?


  있잖아, 태민아 나는, 아직 네가 남기고 간 습관들로 인해 눈물이 나. 네가 너무 보고 싶어 미치겠어.







9.

  으슬으슬 춥기도 하고, 자꾸 목이 잠기 길래 병원에 갔더니 감기래. 약 처방 해주면서 불편한 곳 있으면 또 오라고 했어. 근데, 너 없으면 밥도 잘 못 챙겨 먹는 내가 약이라고 잘 챙겨 먹을 수 있을까? 약봉투를 받아 들고 오면서 몇 번이고 고민이 되었어. 허튼 돈 쓴 건 아닌가 싶어서. 날이 조금 풀렸다고 느껴져서 금세 좀 얇게 입었더니 몸이 고생하네.


  이걸 보는 넌 아마, 인상을 쓰고서 하여튼 김기범 못 말린다고 생각했겠지?


  그래, 나도 참 애 같은 것 같아. 너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 그러니까 적당히 좋은 거 듣고, 보고, 배웠으면 어서 내 옆으로 돌아 와. 너 없이 이번 겨울은 또 어떻게 보내지? 정말 앞길이 막막해. 그런데 너는, 나 없이 잘 지내나봐. 어째서 연락 한 번이 없는 거야? 첫 눈 오기 전에 온다면서. 근데 그거 알아? 설악산에는 벌써 첫 눈이 내렸대.







10.

  감기가 생각보다 꽤 오래 붙어있어. 이것 봐, 챙겨주는 네가 없으니까 그 흔한 감기도 쉽게 안 나아. 요즘 들어 갑자기 네가 자주 생각 나.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 아침에 등교하려고 이를 닦으려 세면대 앞에 섰는데, 네 목소리가 들렸어.




  ‘형 또 물 틀어놓고 이 닦죠?’




  깜짝 놀라서 줄곧 틀어놓고 있던 물을 잠그고 주변을 둘러보니 좁은 화장실엔 나 뿐 이었어. 그리고 아침 먹기 귀찮아서 대충 우유 한 잔 마시려고 냉장고를 여는데도 네가, ‘냉장고에 빵 있잖아, 이거라도 먹고 가요.’ 라고 말하는 게 들렸어. 실제로 냉장고에 빵이 있었냐고? 아니, 냉장고엔 아무 것도 없어. 너도 알잖아, 혼자 있을 때 뭐 안 챙겨 먹는 거. 이게 다가 아니야. 신발 신으려고 현관에 섰을 때도, ‘밖에 추운데 이게 뭐예요. 빨리 목도리 챙겨요.’ 라고 네 목소리가 들렸어. 심지어 거리를 걸을 때에도, 학교에서도, 수업 중에 아주 잠깐 졸았을 때도 날 깨운 건 네 목소리였어.


  나, 자꾸 너의 목소리가 들려, 태민아. 이거 생각보다 중증이지?


  태민아 사랑해.







  기범이 연필을 내려놓았을 때, 띵동,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또 태민의 앞으로 택배가 온 건가 싶은 생각에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여니, 역시 택배 기사가 서있었다. 다만, 택배의 주인은 태민이 아닌 바로 제 자신이었다. 김기범씨 맞으시죠? 택배 기사의 물음에, 제가 주문한 것이 있었던 가 곰곰이 생각하면서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서명 해주세요. 제게 내밀어지는 종이에 서명을 하면서도 갸우뚱 했다. 택배 기사로부터 꽤 무게가 나가는 상자를 받아들고 현관문을 닫았다. 단조로운 연한 갈색의 택배 상자를 멀뚱히 보다가, 발신인을 확인했다.


발신지 Great Britain, London (영국, 런던)

       Tae-min Lee 이태민


수신지 Korea, Seoul (대한민국, 서울)

       Ki-bum Kim 김기범


  발신지에 있는 익숙한 이름에, 기범은 제 눈을 믿지 못하고 여러 번 눈을 깜빡이며 몇 번이고 발신지에 적힌 이름을 보았다. 눈가를 손으로 세게 문질러 보기도 했지만, 글씨는 변함없이 태민에게서 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태민이 갑작스럽게 한국을 떠난 뒤, 일 년 하고도 6개월 만에 온 것이었다. 기범은, 상자를 거실로 가져와 바닥에 내려놓고 그 앞에 주저앉아, 차마 상자를 열어 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봉하고 있던 테이프를 쭉, 잡아 뜯었다. 상자가 열리고, 그 안에는 날짜별로 가지런히 정리 된 비디오테이프가 여러 개 들어있었다. 굳이 비디오테이프의 내용을 보지 않아도,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이 되어 기범은 그 순간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고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겨우겨우 터질 것 같은 감정을 추스르고 제일 앞에 있는 비디오테이프를 꺼내, 플레이어에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무릎을 모으고 앉아 까만 화면을 보고 있으려니, 곧 화면이 밝아지며 깔끔한 디자인의 벽지가 보였다.




  [짜잔! 놀랬어요?]




  민무늬의 벽지만 있던 영상에, 한국에서 보았던 모습 그대로의 제 연인이 예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환하게 웃고 있는,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얼굴이 화면에 보이자 기범은 겨우 참았던 눈물이 시야를 뿌옇게 만들었다. 기범은 혹시라도 제 연인의 얼굴이 사라질까 싶은 마음에 얼른 눈물을 훔치고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 태민은, 마치 기범이 눈물을 닦아내길 기다린 마냥 한동안 말없이 웃고만 있었다.




  [바보, 울고 있었죠? 울보 기범이형, 안 그래도 못났는데 울면 더 못나져요.]


  [하하, 농담이에요. 울다가 갑자기 눈 흘기면서 보는 거 아니죠?]




  이어지는 태민의 말에, 기범은 모난 표정을 풀고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마치, 제 행동을 모두 다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아 놀랍기도 했다. 어어, 형 방금 웃었죠?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나요! 기범이 웃자, 연이어 들리는 태민의 말은 꼭, 지금 기범과 태민이 영상통화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 보고 싶었다고 한 번에 다 보면 안돼요. 알았죠? 오늘 이거 봤으니까, 이걸로 오늘 하루 버티고 그 다음 날 다음 거 보고 그래요.]


  [자, 나랑 약속한 거예요? 약속-.]




  다섯 번째 손가락만 펼쳐진 채로 내밀어졌다. 기범은, 무의식 적으로 영상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가 곧, 다시 손을 거두었다. 약속을 끝으로 첫 번째 영상도 끝이 났다. 까맣게 변한 텔레비전에 비친 제 자신이 울음기 가득한 얼굴로 미소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이 퍽 우스워 모처럼만에 소리 내어 웃었다. 상자에 남은 테이프의 개수를 세어보니, 제가 보낸 편지의 수만큼 와있었다. 기범은 태민의 말대로 상자를 다시 정리하고서 방으로 가지고 들어가, 옷장 안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태민이 보고 싶을 때마다, 하나씩 꺼내 보기로 다짐했다.


  태민아 고마워. 정말 고맙고, 사랑해.








BGM. Elvis Presley - Always On My Mind


비엠

T에게 가 있으니 K에게 도 있어야겠죠?

연재할 일은 없지만 키총이지만 탬키 단편 위주로 글 쓰려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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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ㅠㅠㅠ 아 글 너무 따뜻해요 고맙습니다 좋은 글 읽게해주셔서 덕분에 얼어붙은 손꾸락 녹이고가요 T^T♡♥ 태민이가 기범이한테 보낸 비디오 너무 궁금해요..
11년 전
비엠
뒤이은 번외가 있을 예정입니다. 댓글 감사해요 :)
11년 전
독자2
헐 ㅠㅠㅠ 신알신 ㅠㅠㅠㅠ 왜캐아련할것같죠..? 태민아 ㅠㅠㅠ 기범아 ㅠㅠ
11년 전
비엠
아련하다면 아련할 것 같아요. 댓글 감사합니다 ;)
11년 전
독자3
어머 키총이라니ㅠㅠ 탬키라니ㅠㅠㅠ 글 분위기 되게 아련하면서도 좋네요ㅠㅠㅠ 신알신 하고 가요ㅠㅠㅠㅠ
11년 전
비엠
댓글 정말 감사해요. 앞으로 자주 봐요 :)
11년 전
독자4
신작 알림 할게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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