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에 멘토스!
05
인생은 원래 마이웨이다. 늘 좁고 깊은 관계를 유지했던 김여주가 늘 되새기는 말이 저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안면을 트게 된 박지훈과 김여주의 만남은 당시에도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뭐? 최고 인싸 박지훈이랑 범생이 김여주가 같이 학교를 했다고? 둘이 사귀어? 아니 친구래. 와 미친 진짜 안 어울린다 걔네. 게다가 김여주는 중학교 입학 당시 성적이 꽤나 좋아 단상에서 선서까지 한 전적이 있는 몸 되시겠다. 그에 비해 박지훈은 … 공부를 못하진 않았지만 김여주 같은 부류의 애들과 어울릴만한 애는 아니었다. 한 마디로 전혀 안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언제 한 번은 박지훈의 친구가 지훈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너 걔랑 왜 친하게 지내냐고. 그럼 박지훈은 니가 왜 궁금한데. 하고 대답했지. 싸가지 없는 건 둘이 똑닮았더라고.
"야 김여주 길 좀 터라."
"니가 틀어서 지나가면 되잖아."
"아 … 그,"
김여주와 박지훈은 공생관계였다. 제 몸을 방공호 삼아 빌려주는 말미잘과 늘상 먹이를 가져다주는 흰동가리처럼. 좀 비유가 이상할 수도 있다만은, 김여주가 박지훈에게 갖다주는 건 먹이라기보다는 숨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숨 좀 트고 살자, 할 때 그 숨. 어쩌면, 김여주는 박지훈에게 생각 외로 큰 존재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그러니까 강다니엘과의 신경전이 있는 후로부터는 별 같잖은 애들이 김여주에게 시비를 걸 때마다 막아주는 건 박지훈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앞만 똑바로 보고 걸어가는 김여주와 달리 박지훈은 태생부터 주변에 관심을 많이 두었던 고약한 성질머리 덕분이다.
"김여주 너는 어떻게 눈 하나 깜빡 안 하냐."
"반응 해주면 더 좋아서 발발대."
"쟤네가 개새끼냐? 어 맞네 개새끼."
얼굴을 맞대어 낄낄대는 두 낯짝이 참으로 닮은 순간이었다. 그만큼이나 박지훈과 김여주의 관계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이 많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고 이런저런 풍문도 쉽게 터지는 건 예삿일이었다. 때마다 둘은 결백을 주장하곤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김여주나 박지훈은 서로에 대한 일말의 사심을 품고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미래에도 영원히.
어쨌든 간에 제 할 일만 맡아 하는 김여주의 멘탈이 회생불가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단숨에 알아챈 것은 박지훈이었다. 같은 반이 아니라 해도 아침, 점심, 저녁 수시로 만나는 김여주의 상태를 못 알아챈다는 게 더 우스울 일이라지만. (눈치가X도 없는 의웅은 제외한다) 첫날은 그냥 얘가 스트레스를 받는가, 아픈가 싶었는데 여주의 상태가 말이 아니라는 걸 확신한 건 셋째날 되시겠다. 그 때 확신했다. 김여주가 시름시름 앓아가고 있다는 걸.
그런 김여주에 불을 붙인 건 지나가던 개새끼1에 불과한 놈이었다. 소나기가 거진 양떼처럼 몰아치던 날이라 날씨도 꿉꿉한게 김여주의 심기는 건드리지 않아도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날씨도 꿉꿉, 강다니엘은 마침 자리에 없고, 돌아다니는 것보다야 자리에 앉아있는 게 좋겠다는 판단 하에 그날은 쉬는 시간에 지훈네 반으로 피신을 하지 않은 날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다니엘도 없는 반에서 염병을 떨던 놈은 한참이나 여주를 괴롭힌 새끼였다. 시도 때도없이 시비를 걸던 놈이었는데 여주가 다니엘에게 뭐라 할 순 없는 게 모든 건 다니엘이 시킨 적이 없다는 걸 잘 알고있는 탓이었다.
"야, 야. 김여주 씹냐?"
"왜 또 지랄이야 병철아."
"옆에 박지훈도 있고 이의웅도 있다 싶어서 닌 내가 만만하냐?"
"씨발, 어디서 구시대적 멘트는 갖고와가지곤 …"
그날은 또 웬일로 김여주가 가만있지 않던 날이었다. 옆에서 이어폰을 꼽고 곤히 자고있는 의웅은 깨어날 기미가 안 보이고 그래, 그날따라 그 병철인가 개철인가 하는 놈의 친구가 반에 많은 날이었다. 남은 애들은 온통 말도 못하고 눈치만 찔끔찔끔보다가 지훈을 부르러 반에서 뛰어나간 애가 한 명 정도.
"야 시팔, 생각을 해봐. 다니엘이 너 오냐오냐하니까 넌 나도 만만하지."
"그새끼가 날 언제 오나오냐했는데."
"아니 시발 그래서 만만하냐고 미친"
그 새끼가 여주의 앞까지 다가와선 책상을 발로 찬 건 금새 일어난 일이고 잠을 자던 의웅이 몸을 부르르 떨며 급하게 일어난 것도 동시에 일어난 일이다. 아마도 개철이의 심기가 불편했던 건 지보다 쪼끄만 김여주가 저를 무시하는 게 쪽이 어마어마하게 팔렸기 때문이지 않을까. 약간의 남자애들 사이에서 서열 정리라도 하는 마냥. 역시 이름값하는 놈이었다 개철이는. 다행히도 일어난 의웅에 의해서 상황은 무마되었지만 여주는 달랐다.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상의 반복이라면 수능은 커녕 코앞까지 다가온 중간고사까지 말아먹을 참이었다. 이게 다 강 그놈 때문이다. 태초부터 싸가지가 없는 김여주보다 태아시절부터 잘나게 빚어지신 다니엘의 똥꼬를 빠는 게 낫다고 판단한 애새끼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여주를 꼽주는 일이 잦아졌다. 이처럼 수근거리는 일은 이제 대수롭지 않았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욕지기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리 프로 멘탈러라고 해도 고삼한테 이러는 건, 아니 고삼인데 이러는 건 너무 쪽팔린 짓 아닌가? 물론 싸가지 없계의 대가가 되실 김여주 선생은 콧방귀나 뀌며 자습시간을 조용히 하는 데에 두둔할 뿐이다. 스트레스만 스트레스는 왕창 받아먹으면서. 그래서. 그러니까 말이다. 김여주는 중식이 지난 지금 다니엘이 있을 소각장으로 가는 중이다.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했으니.
"여기까지 발걸음 해주시고, 응 웬일로."
"능글대지 좀 마. 꼭 40대 아저씨처럼. 어?"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다니엘의 웃음소리가 소각장을 울렸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교내 소각장에는 담배꽁초라든지 하는 양아치의 전유물이 없었다. 그런 부류의 애들이 있는 모습을 본 적도 없고, 아, 하지만 양아치 중 양아치인 강다니엘이 여기서 폰게임을 주구장창 하니까 맥락은 비슷할지도 모른다.
"너 말이야, 씨발. 나한테 할 말 없냐?"
"와. 멱살까지 잡으시고, 행동이 너무 거칠다."
다니엘의 웃음소리가 멎어들어갈 즈음, 여주는 큰 보폭으로 성큼성큰 그에게로 다가가 느슨하게 풀린 와이셔츠 깃을 두 손으로 잡아강겼다. 늘상 풀린 넥타리가 둘 사이에서 대롱대롱 춤추고 있는 것은 꽤나 우스운 광경이었고, 그런 건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는 듯이 여주는 다시 한 번 다니엘의 멱을 잡아당겼다.
"같잖은 소리 좀 그만 해 양아치 새끼야."
"내가 뭘, 응?"
"너 때문에 시발 내가 무슨 수모를 당하고 있는진 아냐?"
그르렁대는 여주의 낮은 목소리는 짐승 같았다기보단 고양이의 날선 모습과도 같았다. 하룻강아지도 아닌 게, 자기보다 배는 더 큰 놈의 멱을 붙잡고 화를 내는 꼬락서니란 다니엘에게 유쾌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살면서 언제 또 자기보다 배는 더 작아보이는 여자애에게 멱을 잡혀보겠냐는 생각이 어른거렸다.
반에 들어가면 몇몇은 비웃기까지 하고, 네 친구들이 날 향해 욕하는 건 하루이틀도 아니고. 이러다 오물세례까지 받으면 용서하지 않겠다며 줄줄 말을 뱉는 김여주는 격양된 상태였다. 얼굴은 벌개졌고 말을 더듬거렸으며 한 마디가 끝날 때마다 다니엘을 몰아붙이며 다가선다. 용서하지 않겠다던 마지막 말은 물기가 서려있었던가.
"자꾸 양아치, 양아치 거리는데 너."
"…"
"내가 언제 양아치짓 했어 여주야."
순식간이었다. 약간 느슨하게 풀려있던 여주의 넥타이를 끝까지 올리며 상황의 주도권을 낚아챈 건. 서로의 옷깃과 넥타이를 잡으며. 한 명은 단추란 단추는 다 풀려있었고 다른 하나는 구멍이란 구멍은 다 막혀있는 상태로, 본격적인 양아치와 범생이의 충돌이었다.
"그리고 싸가지 없을 거면 끝까지 그러든지."
"…야."
"꼴사납게 우는 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거야?"
이번엔 한 방 먹였겠다고 생각했던 여주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지금껏 당한 것들을 생각하자니 눈물이 고였던 건지, 한 손으론 여주의 넥타이를 끝까지 잡아올리면서 다른 한 손으론 눈가를 서툴게 비벼대는 게 참 강다니엘 다웠다. 엄지손가락으로 여주의 눈아래를 천천히 닦아내는 다니엘의 눈길은 자연스레 마주할 수밖에 없었고 먼저 눈을 피한 건 여주였다. 숨소리는 사이에서 나직했고 서로를 잡고있는 손도 그대로였다.
"꼴사납지 여주야."
눈을 다시 마주하며 실실 웃는 다니엘의 낯이었다. 아- 미쳤다. 미친 게 분명했다.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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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오랫동안 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