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x) - Goodbye Summer
"○○○- 학교 가자-"
다니엘 왔다. 엄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항상 우리 엄마보다 나를 먼저 깨우는 강다니엘, 두 번 말하기도 입 아픈 내 18년 인생의 동반자.
동반자라고 하기까지는 좀 그러려나... 그치만 사실인 걸.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좀처럼 떨어져본 적이 없다. 오히려 떨어지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각진 가방을 어깨에 메고, 손에는 실내화 가방을 달랑달랑 들고 다녔던 초등학교 때부터 교복을 입고 치마 길이 1센치, 바지 폭 1센치에 희비가 오가는 지금까지 나와 다니엘은 늘 함께였다.
간밤에 잠을 설친 터라 좀처럼 눈을 잘 뜨지 못하는 내 앞에 선 다니엘은 두리번거리다 안경을 찾아주었다. 여 있다.
나는 오만상을 지으며 내 안경 안 쓴다고. 렌즈 낀지 한참 됐는데 왜 자꾸 안경을 주냐. 했더니 별다른 말이 없다. 아침부터 너무 짜증냈나...
"아침은, 먹었어?"
"아니. 너랑 같이 먹을라고 안 먹었지."
"바보냐.. 나는 진짜 아주머니 음식이면 삼시세끼 꼬박 챙겨먹을 텐데."
"뭐... 별로."
시큰둥한 반응이다. 나는 씻으러 들어갔고, 다니엘은 언제나 그랬듯 나보다 더 익숙하게 우리집 식탁에 앉아 아침식사를 기다릴 것이다.
쟤는 왜 자기네 집 놔두고 맨날 우리집 와서 밥을 먹냐... 하도 그래서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지만.
자기네 엄마가 우리 엄마보다 훨씬 요리 잘하시는 걸 알면서도 그러니 이상한 거다. 말로는 우리집 반찬이 더 맛있다고는 해도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건 내가 더 잘 안다.
내가 씻고 나와서 교복을 입는 동안 다니엘은 우리 엄마, 아빠와 함께 밥을 먹는다. 다니엘네 어머님은 우리 엄마와 대학 동기다. 두 분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떨어져본 적이 없다.
신기하고도 질긴 인연이 나와 다니엘에게까지 닿아서, 우리 또한 떨어져본 적이 없다. 그래도 지겹지는 않다. 없으면 허전한... 숨 같은 느낌?
아니, 숨은 없으면 아예 살지를 못하는구나. 그러면 다니엘 없으면 나는 살 수 있나, 없나. 잘 모르겠다. 없어져본 적이 없어서...
졸리니까 별 생각이 다 드네. 얼른 나도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슬쩍 다니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니엘이 너 이번에 성적 올랐다며?"
"아... 예. 조금요."
"너네 둘은 맨날 붙어다니면서 어쩜 니엘이만 점수가 팍팍 오르고, ○○는 내려가기만 하냐...
우리 ○○가도 공부 좀 시켜줘."
"○○가도 열심히 해요."
쓱 웃어 보이는 강다니엘이다. 엄마 딸은 난데, 아들이 다니엘인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다니엘네 아주머니도 나를 끔찍이 챙겨주시긴 하지만,
이럴 때는 서운해지는 게 사실이다. 서운한 내 기색을 눈치챈 다니엘이 어쭙잖게 내 편을 들어보이지만, 하나도 위안은 안 된다.
나는 입을 삐죽이며 신경질적으로 젓가락을 움직였고, 다니엘은 살살해라. 하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침부터 성적 얘기하니까 그렇지...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대충 젓가락만 움직이다가 금방 버스 탈 시간이 되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눈치를 살피던 다니엘도 마저 밥을 다 먹고 나를 따라 일어났다.
엄마는 잘 다녀오라고 말했지만, 아침부터 속이 상해버린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니엘을 지나 앞서서 걸어갔다.
다니엘은 엄마를 향해 꾸벅, 인사를 하는 것 같았지만 이미 난 한껏 기분이 구겨진 상태. 엄마가 미웠다.
"같이 가. 야."
꽤 속도를 내며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녀석의 긴 다리로 내 걸음을 따라잡는 것은 식은 죽 먹는 것마냥 쉬웠던 모양이다.
이내 녀석의 손에 가방이 잡혀버려 더 이상 빠르게 갈 수가 없었다. 됐어, 놔. 라고 하는데도 다니엘은 쉽게 나를 놔주지 않았다.
토라진 얼굴로 녀석을 째려보니, 찔리겠다, 야. 뭐 이렇게 눈빛이 사납노. 한다.
"아니 엄마는, 대체 내 엄마냐. 니 엄마냐?"
"니 엄마지."
"근데 왜 그렇게 강다니엘 하면 좋아서 난리냐고."
"내가 좋으신가 보지."
이 자식이.... 한껏 도끼눈을 뜨고 다시 쳐다보니 넉살 좋게 웃어보인다. 그래도 다 너 걱정되어서 하시는 말씀이지. 내가 좋아서 그러시는 건 아냐. 너 얼마나 챙기시는데.
괜히 우리 엄마 편을 드는 것도 마냥 달갑지만은 않아서, 몰라. 하며 대충 얼버무리고는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왜 아침부터 기분이 상하셨을까- 공주님- 하며 능글맞게 팔짱을 껴오는 녀석이다. 소름이 돋아서 저리 가! 하고 도망치려 했는데 또 가방이 잡혀버렸다.
좀 놔줄래? 아침부터 계속 네 손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구나. 하고 말했더니, 와. 서운타. 하면서 울상을 짓는다.
분명히 상해 있던 기분이 어쩐지 조금은 풀어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야. 나 잡아봐라. 하곤 정류장을 향해 냅다 달렸다. 탁탁탁, 다니엘의 발소리가 내 뒤를 쫓아왔다.
-
"비 온다. 데리러 갈게."
"뭘 데리러 와. 이 정도는 맞아도 괜찮아."
"감기 걸려서 또 잔기침 두 달 해봐야 정신차리지.
나오지 마라. 딱 거 있어라."
학원이 끝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챙겨다닐 만한 성격이 아닌 나는, 오늘도 가방 안에 우산은 없었다.
그냥 맞고 가야겠다, 생각하고 가방을 메는데 다니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오지 말라고, 저가 데리러 온단다.
얼마 많이 오지도 않는 비, 까짓 게 뭐라고 거추장스럽게 데리러 오기까지 하나 싶어서 됐다고 했더니 굳이 고집을 피웠다.
이럴 때 내가 고집을 부려버리면 싸움이 날 거라는 걸 알았기에 더 이상 말하지는 않았다. 그대로 가만히 다니엘을 기다렸다.
문득 지난주 비 오는 날이 생각났다. 그 때에도 다니엘은 나를 데리러 왔는데. 그 앞선 주에도, 그보다 전에도, 다니엘은 항상 나를 데리러 왔다.
파란색 장우산을 들고 항상 나를 데리러 왔다. 녀석은 꼭 자기처럼 생긴 파란색 장우산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사람에게 파란색 장우산을 닮았다고 하는 건 실례인가?
그치만 정말 닮았는 걸. 길쭉한 것도 닮았고, 시원시원한 것도 닮아서. 녀석이 들고 있는 파란색 장우산을 보면 꼭 저 같은 것 들고 다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
멍하니 서서 별 부질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귓가에 다니엘의 목소리가 닿아 왔다. 오늘도 파란색 장우산이다.
나는 손을 들어 머리를 살짝 가리고 녀석을 향해 걸어갔다. 녀석은 자연스럽게 내 위에 우산을 씌우고는 내 머리카락에 맺힌 빗방울을 털어주었다.
내 너 올 때까지 생각해봤는데, 너 이 우산 좀 닮은 것 같다. 했더니 녀석이 헛웃음을 지었다. 뭐꼬. 사람한테 우산은... 하면서 짓는 시원한 웃음이 파란색이다.
학원에서 집까지는 걸어갈만한 거리였다. 비를 맞고 간다고 해도 흠뻑 젖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굳이 데리러 나오니 고맙긴 해도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할 말이 있었던 게 생각나 입을 열었다.
"맞다. 예전에 우리 아빠, 서울로 발령날 수도 있다고 그랬잖아."
"어."
"그거, 났단다. 그래서 우리 서울 가야된대. 오늘 엄마가 그러더라."
"........"
"아마 너희 어머님한테도 이미 말했을 거야. 제일 먼저 말했겠지."
"...그럼 우리, 떨어지는 거가."
"뭐... 그렇지."
우리가 떨어지는 거냐는 녀석의 물음이 조금은 쓸쓸하게 들렸다. 내리는 비가 처량해서 더 그렇게 들렸던 걸지도 모른다.
물론 나도 그 사실이 달갑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었다. 언젠가는 서울에 갈 수도 있다, 라는 걸 생각지 않고 살았던 건 아니었지만, 막상 간다고 확정되니 좋지만은 않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왔던 동네, 만나왔던 친구들, 함께 했던 공기를 떠난다는 건.... 실은 거기까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오늘 낮에야 들은 아빠의 서울 발령 소식. 학원 끝나기 전에는 다니엘을 만날 시간이 나지 않아 이렇게 밤이 된 지금에서야 이야기할 수 있었다.
녀석은 집에 닿을 때까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나 또한 무슨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 멍해졌던 것처럼, 녀석도 멍해진 거겠지. 그 사실이 달갑지도, 좋지만도 않을 건 다니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들가라."
"응. 고마워."
"......."
"잘자. 내일 보자."
"....언제 가는데, 서울."
"다음달."
"......."
다음달이라는 내 말에 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우리집 앞에서 내가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다니엘이 터벅터벅, 제 집으로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뒤를 돌아 다니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를 닮은 파란색 장우산이 온몸으로 비를 맞아내는 모습이 조금 안쓰럽게 느껴졌다.
넓은 등이 오늘따라 축 처져 보인다. 기분 탓인가... 비가 와서 그런가.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다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서울 가기 싫다. 나도 모르게 든 생각에 되려 내가 놀랐다. 처음에 가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좋아했던 것 같은데.
막상 떠나려니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불안하기까지 한 거다. 부산 좋은데. 안 가겠다고 떼라도 써볼까. 그치만 안 되겠지...
하아, 하고 한숨이 밀려나왔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과 헤어짐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 사뭇 부담스러워졌다.
-
"다들 알고 있겠지만 ○○가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됐어.
오늘이 학교에 오는 마지막 날인데, 앞에 나와서 잠깐 인사할래?"
담임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어... 그동안 고마웠고, 로 시작하는 상투적인 말로 반 친구들에게 인사를 했다. 말이 길어지면 눈물을 보일 것 같아서 일부러 짧게 마무리했다.
옆 반인 다니엘과 워낙 붙어 지내는 바람에 반 친구들과 아주아주 친하게 지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잘해줬던 아이들이라 정이 붙었던 모양이다.
그 중에는 큰 눈을 울먹이며 나를 봐주는 친구도 있어서 좀, 마음이 그랬다. 미안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그런 기분이었다.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돌아왔다. 책상을 빤히 바라보는데 다니엘이 남긴 낙서가 있었다. '졸지 마라'.... 수업시간에 졸리면 이 낙서를 보고 정신을 차리라며 써 놓은 거였다.
물론 효과는 하나도 없었지만, 당시 다니엘이 지었던 미소와 내가 흘렸던 웃음이 생각나 괜히 쓴웃음이 나왔다. 입 안이 썼다.
내가 있던 모든 곳에, 모든 것들과 안녕을 고하기에 한 달은 짧은 시간이었다. 발령 소식을 들은 날부터 한 달은 족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좀 여유롭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짧다면 짧을 수 있는 18년 동안 내가 머물러 왔던 공간을 떠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특히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더 심했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서울 간다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면서 같이 밥도 먹고, 시간도 보내고 하면 괜찮았는데.
이상하게 다니엘과는 그게 잘 안 됐다. 처음 이사 간다는 소식을 알린 다음 날부터 녀석은 눈에 띄게 나에게서 정을 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같이 있던 시간이 확 줄었고, 아침에도 더 이상 우리집에서 밥을 먹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와 등하교길을 함께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미묘하게 달라진 태도가 있었다.
내심 서운한 마음이 생기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다니엘을 탓할 수도 없는 일. 상처 받을 만한 일에는 지레 겁부터 먹고 마는 녀석의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니 그냥 모든 게 어쩔 수 없는 게 되어버렸다. 녀석과 나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우리는 떨어지고 마는구나... 그냥 이런 생각들.
그렇게 이사 가기 전 날이 되었다. 그게 학교에서의 마지막 날보다 하루 늦었던 이유는 이삿짐 정리를 나도 도와야 했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짐에 정신이 없었음에도, 다니엘은 혼자 학교 갔으려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도 그 생각을 하면서 내 자신에게 놀랐다.
이 와중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이상하다, 이상해. 그렇게 내 자신에게 되뇌이며 짐을 들어 옮겼다.
내리쬐는 햇살 때문에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엄마. 이거 챙겨?"
"어머, 이게 아직도 있었네.."
"응. 안 버렸나봐."
잔뜩 쌓인 짐을 챙기다 어렸을 적 사진첩을 발견했다. 뽀얗게 먼지가 쌓인 표지를 털어 넘겨보니, 앳된 모습의 나와 다니엘이 브이를 하며 웃고 있는 사진이 보였다.
언제적이야, 이게... 대충 봐도 다섯 살도 안 되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포동통하게 볼에 살이 오른 남자애 하나, 여자애 하나. 사진만 봐도 꺄르르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정말. 늘 함께였구나.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는 게 이런 데에서 티가 난다. 사진이 재밌어서 입은 웃고 있는데 어쩐지 마음은 심란했다.
다니엘은 혼자 학교 갔을까. 아까 들었던 생각이 다시 한 번 더 내 머리를 치고 올라왔다. 쓸쓸해 보이던 비 오는 날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파란색 장우산.
혀를 내어 가만히 입술을 축였다. 그러고는 사진첩을 덮었다. 보고 싶을 것 같다... 조심스레 고개가 끄덕여졌다. 챙기는 박스 안에 사진첩을 고이 넣었다.
"얘, 다니엘 왔다."
"어? 다니엘?"
정신없이 짐을 챙기니 어느새 해가 져 세상이 어둑어둑해졌다. 그런 다음에는 금방 밤이 되었고.
이사 가기 전날이라 그런지 유독 쏜살같이 흘러가는 시간에 놀라다가, 저만치 가만히 서있는 다니엘의 모습에 또 한 번 더 놀랐다.
엄마가 다니엘을 가리키며 내게 다니엘이 왔다고 말했고, 나는 고개를 들어 흘러내린 땀을 닦으며 다니엘을 쳐다봤다. 정갈하게 가방을 멘 녀석이 보였다.
보기 드문 표정이었다. 드문 것 맞나? 본 적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닌가? 생각을 하면서도 입으로는 왠 일이야. 하고 물었다. 왠 일인지 모르는 것도 아닌데.
"...나갔다 오자. 잠깐만."
잠깐만 나갔다 오자는 말에 손에 껴둔 목장갑을 벗어냈다. 킁킁, 몸에서 땀냄새가 날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지 뭐. 하면서 앞서가는 녀석을 따라 걸었다.
다니엘은 그렇게 한참을 걸어갔다. 가는 동안 나와 다니엘 둘다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학교는 혼자 갔냐고 묻고 싶은데 그 물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15분쯤 걸으니 나와 다니엘이 다니던 초등학교가 나왔다. 동네가 좁아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는 다 붙어있어서 15분이면 족히 닿을 수 있었다.
불 꺼진 운동장은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어른들이 졸업한 초등학교에 가면 운동장이 그렇게 작아보일 수가 없다는데, 이미 내 눈에도 작아보이는 운동장이었다.
같은 동네에 있어도 마음 먹고 들르지 않는 이상 들어오기는 쉽지 않았던 곳이라, 다니엘이 나를 여기 데려온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우리가 다닐 때는 없었던 계단식 스탠드가 생겼다. 다니엘은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았고, 나도 그의 옆에 읏차, 하는 소리를 내며 앉았다.
"오랜간만이지, 여기."
"응. 이렇게 작았나 싶네."
"......"
내 말에 다니엘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왜 여기까지 데려왔는지 힌트라도 주면 안 될까.
1분, 2분, 더 흘러갈수록 궁금증만 더해져서 심장이 빨리 뛰는 것 같았다. 초조해진 마음에 계속 몸이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것 같다. 억지로 손깍지를 껴 마음을 가다듬었다.
한참을 뜸들이던 다니엘이 결국 입을 열었다.
"...내 니 좋아한다."
".....뭐?"
"생각해봤는데, 내 니 좋아한다."
"....무슨 말이야, 그게."
"그냥 친구가 간다고 하는데 이렇게 서러울 수가 없다고.
그냥 친구가 아니니까 이렇게 서러운 거라고, 싶었다."
"...다니엘."
"언제 다시 볼 지 모르는데, 말 안 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서."
"......."
"나 편하자고 말한 거니까 괘씸하면 미워해도 된다."
"......."
심장 언저리에서 뭔가 울컥 하고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모르긴 몰라도 올라오면서 내 눈물샘도 툭 쳐버린 것 같다.
참고 있던 건지, 다니엘의 말을 들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눈물이 금방 눈동자를 가득 채웠다. 그러고는 투둑, 툭, 하며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다니엘은 내 얼굴을 슬쩍 보더니, 놀란듯 와 우노. 울라고 한 말 아닌데. 하며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왜 우는지 나도 모를 일이라 대답은 못했다.
다니엘은 손을 들어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 손길이 우습게도 따뜻하고 다정해서, 눈물이 더 많이 나는 것 같았다. 우는 모습이 못나 보일 걸 아는데도 멈출 수가 없다.
가야제. 짐 많던데 어머님이 찾겠다. 한참 나를 다독여주던 다니엘이 어려운 말을 꺼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올 때는 저만치 한참을 앞서가던 다니엘이었는데, 갈 때는 나와 걸음을 맞춰주고 있다. 그 걸음이 슬퍼서 겨우 멈춘 눈물이 또 터질까봐 조마조마했다.
다니엘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 집 앞까지 나를 데려다 주었다. 둘만 있는 시간은 지금이 마지막일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다니엘을 바라봤다.
녀석의 얇은 눈매가 나를 향하고 있었다. 아까 그 고백에는 어떤 답도 하지 못했는데. 이제라도 답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딱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관뒀다.
그게 그렇게 후회될 일인 줄 알았으면 나도 같은 마음이라고, 한 마디만 할 걸. 그 한 마디를 못해서 몇 년을 후회할 줄은 당시의 나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고마워. 연락할게."
애써 꺼낸 한 문장은 그게 전부였다.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다니엘이 뒤를 돌았다.
다니엘은 내일 학교를 가야 하니, 지금이 정말 마지막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머니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인사를 하러 오신다고 말씀하셨는데. 다니엘은 아니겠구나. 그렇다면 지금이 다니엘의 마지막 뒷모습이겠구나.
생각은 하면서도 나는 가만히 선 채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를 잡을 수도, 불러 세워 말을 걸 수도 없었던 거다.
그럴 자신도, 용기도, 없었지만 가장 먼저는 그 만큼 성장하지 못했을 때니까. 내가 수많은 후회 속에서 시간을 보내게 될지 몰랐을 때니까.
그렇게 녀석을 한없이 그리워하게 될지... 생각할 수도 없었으니까.
-
서울은 부산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아이들이 곰실거리는 서울말을 쓰고, 무뚝뚝하던 내 말투 또한 곰실거리게 바뀐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막 이사와서 적응하기 바빴던 고등학교 2학년을 지나, 공부하기 바빴던 3학년, 그리고 치기 어린 연애를 해보기도 했던 스무살이 지나도록 서울살이는 계속되었다.
부산 생각이 안 났던 건 아니었고, 부산 생각 중 8할이 다니엘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연락할 용기가 없었다.
부모님끼리는 종종 만나는듯 했으나, 엄마 입에서 다니엘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나는 금방 묵묵부답이 되었다. 그 중에는 내게 일체 연락 없던 다니엘도 한몫 했다.
헤어질 때에는 분명 연락한다고 이야기했었는데, 마지막 장면이 서러워서 그랬는지 그 연락이라는 게 전혀 쉽지가 않았다. 나에게는 너무나,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만난다고 해서 예전같을 수 있을까. 예전과 같게 그를 대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컸다. 그러지 못하느니 최대한 늦게 만나는 게 나을 거라고. 그런 어쭙잖은 믿음이 있었다.
대학에 와서 만난 친구들 중에, 부산에 있을 때 같은 학교였던 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다.
서울에서 부산 친구를 만나니까 정말 반가웠는데, 한편으로는 다니엘이 생각나 말할 수 없이 서글퍼지기도 했다.
부산에는 별 일 없었는지, 서울 생활은 어땠는지 등을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야기는 다니엘로 흘러갔다. 내 옆에는 다니엘, 다니엘 옆에는 나였으니 놀랄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최대한 그 화제 만큼은 피하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가 우리한테 그랬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더 그랬을 거라 생각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금마 부산대 갔지. 근데 바로 군대 갔다."
"....."
"1학년 끝나고 갔는지, 한 학기 끝나고 갔는지 들었는데 까묵었다.
쨌든 서울 안 간다고 고집부려서 부산대 갔다던데."
"서울을... 안 간다고?"
"응. 서울 가기 싫다고 담임한테 엄청 고집부렸대.
학교에서 서울대 하나 나올 줄 알고 기대했는데 제 고집이 그러니 다들 항복한 거지."
"........"
항상 고집을 부리는 녀석은 아니었는데 저가 곧죽어도 싫은 일은 끝까지 안 하는 고집은 있었다. 같은 맥락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서울에 가기 싫다고 고집을 부렸던 걸까. 혹시 그 이유 중에는 나도 있을까. 부질없는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고3 무렵, 엄마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은 있었다. 서울대 갈 성적이 나와줬는데 서울만은 안 가겠다며 고집을 부려 아주머니가 아주 골치가 아프다는 말.
말로는 부모님과 헤어지기 싫어서 그랬다는데, 다 큰 놈이 그럴 리는 없고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라며... 그랬던 게 기억났다.
결국 갔구나, 그래서. 서울에서 학교 다녔으면 좋았을 텐데. 혹시라도 우리 만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닿으니 나도 몰래 한숨이 나왔다.
연락도 못한 채로 끙끙 앓고 있는 게 대체 몇 년이야.... 그럴 거면 그냥 연락을 하든가. 자신도 없으면서 왜 맨날 생각만 하고 있는 건데. 이런 내 자신이 한심해졌다.
"전역은 언제래?"
"내년쯤 아닐까. 애들 중에서는 제일 먼저 갔으니 제일 먼저 나올 거다."
"...그렇구나..."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하면서 집에 있는 사진첩 표지를 열었다, 닫았다 한 게 몇 번인지.
엄마에게 차마 말은 못하고, 혼자서 사진을 보다가 내 방에 엄마가 들어오기라도 할까봐 문까지 걸어잠그고 계속 사진첩을 들여다 봤던 날들.
이제 사진이 아닌 너를 보고 싶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말아 마신 소맥 때문에 취기가 올라와서인가. 눈 앞에 파란색 장우산을 든 다니엘이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시간은 흐르고 흘러 사망년이라는 3학년도 끝나갈 무렵.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르바이트의 노예가 되어 주말이란 주말은 다 반납한 채로 살고 있었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패밀리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는 생각보다 적성에 맞았고, 하다 보니 1년 넘게 하게 되어 나름 고참 소리를 듣고 있었다.
패밀리 레스토랑 아르바이트의 장점 중 하나는 또래가 많다는 것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친구도 많이 생기고 이래저래 놀 일이 많았다.
오늘도 마감이 끝나면 거나하게 한 잔 걸치러 가자고 말이 나왔다. 몸은 힘들어도 소맥 한 잔씩 기울일 생각을 하면 참을 만했다.
말이 좋아 마감이지, 다 끝내고 나면 얼추 시계는 새벽 한 시를 가리키기 마련이었고, 달리다 보면 세시, 네시가 훌쩍 지나있었다.
2학년이 끝나면서 자취를 시작한 게 그나마 신의 한 수라고 생각했다. 옆에 자리한 후임을 보며 별 이유 없이 그저 웃어보였다. 왜요? 묻는 말에 좋아서. 라고 답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능글맞아지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아니면 정말 조금씩 나이가 쌓이는 걸까. 예전과는 달리 신기할 정도로 점점 얼굴이 두꺼워진다.
"누나, 누나는 첫사랑이 언제에요?"
한 잔, 두 잔이 석 잔, 넉 잔이 되면서 몸이 노곤해진다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시계는 세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오늘 한 번 해 뜰 때까지 마셔보는 건가, 싶으면서도 집에 가서 빨리 씻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와 동시에 내가 아끼는 동생인 박우진이가 첫사랑이 언제냐는 질문을 던졌다. 부산 출신이라 이상하게 더 마음이 갔다.
첫사랑이라.... 연애를 한 것도, 흔히 말하는 첫키스를 한 상대도 아니지만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딱 하나였다. 다니엘.
술이 들어간 상태에서 다니엘 이야기가 나오니 또 이건 눈물 없이 이야기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울기까지 한 건 아니지만 말하다 보니 목이 멘 건 사실이었다.
"비 오는 날이면 항상 파란색 장우산을 들고 날 데리러 왔는데,
그 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까 그게 사랑이었나봐."
"......."
"보고 싶고, 만나고 싶기도 했는데. 겁이 나서 못 만났어.
예전처럼 못 지내느니 안 만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무서워서."
"......."
내 이야기에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졌다. 이러다 해 뜰 때까지 놀기는 커녕 지금 파해버릴 것 같았다. 안 되는데.. 나 더 놀고 싶은데.
장난삼아 내게 첫사랑을 물은 박우진은 대역죄인이 된 마냥 고개를 숙였고, 나는 분위기 왜 이러냐며 다들 술잔을 들으라고 소리쳤다.
보고싶네, 다니엘. 속에서 조용히 끓어오르는 그리움을 애써 삼키며 술도 함께 삼켰다. 마시고 마시면 생각이 사그러들까봐.
-
"아아... 죽겠다...."
막판에 달려서인지 집에 도착할 때쯤 되니까 속이 울렁거리는 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어지러워...
집에 갈 때까지만 몸이 좀 버텨주면 좋겠는데, 피곤한 상태에서 첫사랑을 안주 삼아 그리도 술을 부어 넣었으니 이런 꼴이 날만 했다.
아, 머리야... 핑핑 도는 머리를 감싸며 택시에서 내렸다. 톡, 토독, 하면서 비까지 내리기 시작한다. 아니 이게 뭔 경우야... 무슨 비야, 비가.
우산을 안 챙기고 다니는 건 열여덟 살 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사람 참 한결같다고 생각하니 나도 몰래 웃음이 나왔다.
끌어올려진 건 입꼬리인데 어쩐지 관자놀이 부분이 훅 당기니 더 두통이 심해졌다. 얼른 집에 가야겠다, 하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아... 비...."
집에 거의 다다랐을 때 쯤 빗줄기가 굵어졌다. 하아. 힘들어 죽겠는데 날씨까지 도와주지를 않는다. 진짜 어지러운데.
거의 뛰듯이 걸어서 집 앞에 다다랐다. 탁탁탁, 소리가 들리도록 짧은 계단을 올라 공동현관문 앞에 섰는데 어쩐지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익숙하다기엔 낯설어졌을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낯설어졌다기에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 아니, 모습. 사람이니까.
"....다니엘?"
공동현관문 계단 앞에 누군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파란색 장우산을 쓰고. 내리는 비를 처연히 맞으면서.
다니엘? 하고 묻는 내 말 뒤로 장우산은 빙 돌아갔고, 빼꼼히 사람의 얼굴이 나왔다. 다니엘.... 다니엘이었다. 강다니엘.
나는 가득 찼던 취기가 한꺼번에 싹 가시는 걸 느꼈다. 앉아있던 다니엘이 다리를 펴 일어났다. 파란색 장우산을 들고 있는 모습은 교복이 아닌 것만 빼고는 그대로였다.
"너가... 어떻게 여길."
"...일찍일찍 좀 다녀라."
5년을 못 만났는데 당장 어제 만난 것 같은 말투, 분위기, 그리고 표정. 머쓱하게 웃어 보이는 모습이 5년 전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
녀석이 내게 가까이 오려고 하길래 나는 내게서 날 엄청난 술냄새에 자동으로 손이 올라갔다. 손사레를 치며 녀석을 피했다. 가까이 오면 안 돼.
녀석은 싫은데, 왜. 하면서 내게 좀 더 다가왔고,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막았다. 숨으로 나가는 술냄새가 쪽팔려서.
"몇 시냐, 지금. 해 뜨겠다 좀 이따."
"아니... 어떻게 온 거야. 뭔데, 지금."
"연락한다며. 그러고서 5년 동안 한 번도 없는 건 너무하지 않냐."
"....야. 그러는 너는,"
"전역했어.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는 말에 쿵, 하고 심장이 내려 앉는 듯했다. 전역했다는 말은 다음 문제였다. 심장이 멈춰버린 것처럼 숨이 안 쉬어졌다.
녀석은 파란색 장우산을 접었다. 그제야 보이는 얼굴. 조금 더 남자다워졌고, 조금 더 키도 컸다. 안 그래도 올려다 봤는데 더 올려다 봐야 한다.
엊그제 전역하고 무작정 짐부터 싸서 서울 왔어. 수소문 해보니까 너 여기 산다고 그러대. 뭐 아르바이트 한다고, 마감까지 하느라 늦을 거라고 듣긴 했는데 한 시가 다 되도록 안 오는 거야.
그래도 기다린 게 아까워서 계속 기다렸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겁도 없냐, 너는.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잔소리가 이어졌다. 잔소리 또한 타임워프로 5년 전과 같은 기분.
"...나 안 만나려고 서울로 학교 안 온 거 아니었어?"
"소문이 거기까지 났냐... 맞는 말이긴 한데 후회 엄청 했어, 나."
"왜."
"까불지 말고 서울부터 갈 걸. 그러고 너 꽃신 신겨줄 걸 그랬다."
꽃신 신겨주기 전에 누굴 고무신으로 만들려고, 하는 생각에 일단 주먹이 나갔다. 이 자식이... 했더니 아아. 아퍼.. 하면서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쏴아, 쏴아,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가 우리를 감싼다. 비를 맞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빗소리에 지난 시간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다시금 진지하게 쳐다본 다니엘의 얼굴. 살며시 눈물이 내가 나올 차례냐며 비집고 일어서는 기분에 고개를 들었다. 그런 나를 캐치한 다니엘은 울보. 하면서 손을 뻗어 나를 안았다.
"...늦어서 미안."
툭, 하고 파란색 장우산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 기억에서 맴돌기만 하던 파란색 장우산의 주인이 나를 안아주고 있으니까.
"...오늘 술자리에서 누가 나한테 첫사랑이 언제냐고 물어봤는데."
"응."
"네 이야기 했어. 늘 파란색 장우산 들고 데리러 와준 친구... 있었다고."
"잘했네."
"근데 다시 만나기가 무섭다고. 예전처럼 지낼 수 없을까봐. 그런 얘기도 했어."
"......."
내 말 다음으로 다니엘의 마른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아니네. 내가 잘못 생각했네."
"........"
"나도 너 좋아했어. 그리고 지금도 좋아해."
"........"
"나 편하자고 얘기한 거니까 괘씸하면 미워해도 돼."
5년 전 이사 가기 전날 밤, 그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다니엘이 내게 했던 말 그대로를 내가 했다.
쿵, 쿵, 일정하지만 좀 더 거세게 뛰고 있는 심장소리가 둘 모두에게서 났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지금이 꿈이 아니라는 걸 깨닫기 위해서.
"그럴 리가 있냐."
잠시 나를 제 품에서 떼어낸 다니엘이 나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따뜻한 입술이 내 입술 위에 닿아왔다. 그렇게 나는 눈을 감았다. 손으로는 다니엘의 팔을 꾹 쥔 채.
첫사랑이었다.
더보기 |
안녕하세요. Y사원입니다. 다들 즐거운 토요일 보내셨는지요? 간만에 단편을 들고 왔습니다. 예전에 암호닉 [피치씌] 님으로부터 받았던 소재인데... 쓰기까지 오래 걸려버렸네요ㅠㅠ 쓰다 보니 저도 옛 생각이 나기도 하고... 뭔가 독자님들 기억 조작할 수 있을 것 같고...ㅋㅋㅋ 그래서 재밌었습니다. 다니엘로 단편을 쓰는 건 처음인데, 강과장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소재 처음 읽었을 때부터 이 bgm이 생각났는데, 기억 조작에서는 최고봉인 곡이 아닐까 싶습니다ㅋㅋㅋ 언제 들어도 좋고 여름에는 특히 더 좋죠ㅠㅠ 여튼 더 늦어지기 전에 얼른 올려놓고 갈게요! 내일은 강과장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단편도 읽으러 와주셔서 감사해요♡ 오탈자 있으면 댓글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은 맥주가 아니라 청하를 들이키고 와서.... 위험해요. (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