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하이 - 춥다(Feat. 이하이)
급하게 잡힌 미국 출장 때문에 전무님은 며칠 간 자리를 비우셔야 했다. 그 때문에 당분간 주어진 일만 하면 되었던 프로젝트 팀은 간만에 여유가 좀 생겼더랬다.
이대로라면 칼퇴도 충분히 가능했다. 오늘 칼퇴를 한다면 집에 가서 밀린 집안일을 좀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빨래도, 청소도, 설거지도, 여유 생기면 해야지, 하고 미뤄둔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이러다 바퀴벌레라도 생기면 어쩌나 싶어 계속 집안일이 마음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유를 좀 가지고 일할 생각으로 휴게실에 잠시 들렀다. 전무님이 오시고 난 뒤 직원 휴게실에는 근사한 커피머신이 하나 새로 생겼다.
커피를 좋아하시고, 또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전무님이 직원들 커피값 조금이라도 더 아끼라고 친히 사비까지 털어서 장만한 커피머신이었다.
휴게실 있는 층마다 하나씩 들여왔으니 한두 푼은 아니었을 거다. 별 것 아니지만 전무님이 멋있어 보였다. 적재적소에 돈을 잘 쓰는 돈 많은 사람이 의외로 별로 없다는 건 머리가 좀 자라고 나서야 안 사실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누르면, 얼음이 몇 개 떨어지곤 에스프레소와 물이 함께 나온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먹는 습관은, 이것 때문에 여러 번 감기에 걸려도 고치기 쉽지 않다.
크흠, 아직 채 가시지 않은 감기기운에 목을 한 번 가다듬으며 커피가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그 와중에 토독, 토독, 토독, 휴게실 바닥을 두드리는 남자의 구두소리가 귀를 울렸고, 곧이어 익숙한 향기가 가까워짐이 느껴졌다.
몇 년 간의 공백이 있었기에 아주 익숙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오랜 시간을 맡았으니 익숙하지 않다고도 할 수 없는 그 향기.
그 향기의 주인은 옹성우였다.
"...오랜만이다."
딥티크 탐다오.
처음 만난 날부터 그는 그 향수를 썼다. 짙고 깊은 물냄새가 독특해서 그에게 '향수 뭐 쓰세요?' 하고 물었더니 그는 말했다. '비밀인데. 근데 제 여자친구 되면 알려드릴 수 있어요.'
향수가 뭔지 알고 싶어서 여자친구가 된 건 아니었지만, 그래놓고 씨익 웃어 보이는 그 얼굴이 개구지게 귀여워서 좋아졌다.
개구지고 귀여워서 좋아진 줄 알았더니, 정신 좀 차리고 보니 되게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도 좋았고. 그 정도면 반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법도.
어쩌다 내가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거의 사귀는 내내 했던 것 같다. 외모도, 성격도, 능력도,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잘난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그에 비해 나는... 모든 게 너무 평범했고.
"......"
"잘 지냈어?"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그의 눈빛에는 많은 감정이 섞여 있어 쉽게 읽어내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는 대사를 잃었다. 내가 무언가 말을 하기 전에 그의 감정부터 읽어내려 했는데, 그러지를 못해서 벌어져 있던 입만 다문채 그와 눈을 맞췄다.
그는 내게 물었다. 잘 지냈냐고. 나는 도저히 그의 감정을 읽어내지 못해서, 더 이상의 시도를 포기하고 고개를 떨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왜 왔어."
용기 내 꺼낸 목소리는 요동치는 파도처럼 달달달 떨렸다. 부끄러웠다. 기어이 꺼낸 한 마디가 이리도 떨리다니.
내 물음에 그는 약간의 정적을 가졌다. 내 손에 들려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보는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런 나를 보고 그는 여전하네, 라고 말할 것만 같아서.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이유야 많았지. 많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너였어."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바라보던 눈을 다시 들어 그를 보았다. 이제는 그의 눈빛을 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서글픔. 기다림. 그리움... 그리고 약간의 열망과 두려움도. 내 착각이 아니라면 그것들이 그의 눈빛에 들어가 있다.
그는 또 한 번의 정적 끝에 다시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다."
딥티크 탐다오.
처음 만난 날부터 그는 그 향수를 썼다. 짙고 깊은 물냄새가 독특해서 그에게 '향수 뭐 쓰세요?' 하고 물었더니 그는 말했다. '비밀인데. 근데 제 여자친구 되면 알려드릴 수 있어요.'
향수가 뭔지 알고 싶어서 여자친구가 된 건 아니었지만, 그래놓고 씨익 웃어 보이는 그 얼굴이 개구지게 귀여워서 좋아졌다.
개구지고 귀여워서 좋아진 줄 알았더니, 정신 좀 차리고 보니 되게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도 좋았고. 그 정도면 반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법도.
어쩌다 내가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거의 사귀는 내내 했던 것 같다. 외모도, 성격도, 능력도,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잘난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그에 비해 나는... 모든 게 너무 평범했고.
"......"
"잘 지냈어?"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그의 눈빛에는 많은 감정이 섞여 있어 쉽게 읽어내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는 대사를 잃었다. 내가 무언가 말을 하기 전에 그의 감정부터 읽어내려 했는데, 그러지를 못해서 벌어져 있던 입만 다문채 그와 눈을 맞췄다.
그는 내게 물었다. 잘 지냈냐고. 나는 도저히 그의 감정을 읽어내지 못해서, 더 이상의 시도를 포기하고 고개를 떨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왜 왔어."
용기 내 꺼낸 목소리는 요동치는 파도처럼 달달달 떨렸다. 부끄러웠다. 기어이 꺼낸 한 마디가 이리도 떨리다니.
내 물음에 그는 약간의 정적을 가졌다. 내 손에 들려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보는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런 나를 보고 그는 여전하네, 라고 말할 것만 같아서.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이유야 많았지. 많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너였어."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바라보던 눈을 다시 들어 그를 보았다. 이제는 그의 눈빛을 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서글픔. 기다림. 그리움... 그리고 약간의 열망과 두려움도. 내 착각이 아니라면 그것들이 그의 눈빛에 들어가 있다.
그는 또 한 번의 정적 끝에 다시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다."
딥티크 탐다오.
처음 만난 날부터 그는 그 향수를 썼다. 짙고 깊은 물냄새가 독특해서 그에게 '향수 뭐 쓰세요?' 하고 물었더니 그는 말했다. '비밀인데. 근데 제 여자친구 되면 알려드릴 수 있어요.'
향수가 뭔지 알고 싶어서 여자친구가 된 건 아니었지만, 그래놓고 씨익 웃어 보이는 그 얼굴이 개구지게 귀여워서 좋아졌다.
개구지고 귀여워서 좋아진 줄 알았더니, 정신 좀 차리고 보니 되게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도 좋았고. 그 정도면 반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법도.
어쩌다 내가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거의 사귀는 내내 했던 것 같다. 외모도, 성격도, 능력도,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잘난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그에 비해 나는... 모든 게 너무 평범했고.
"......"
"잘 지냈어?"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그의 눈빛에는 많은 감정이 섞여 있어 쉽게 읽어내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는 대사를 잃었다. 내가 무언가 말을 하기 전에 그의 감정부터 읽어내려 했는데, 그러지를 못해서 벌어져 있던 입만 다문채 그와 눈을 맞췄다.
그는 내게 물었다. 잘 지냈냐고. 나는 도저히 그의 감정을 읽어내지 못해서, 더 이상의 시도를 포기하고 고개를 떨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왜 왔어."
용기 내 꺼낸 목소리는 요동치는 파도처럼 달달달 떨렸다. 부끄러웠다. 기어이 꺼낸 한 마디가 이리도 떨리다니.
내 물음에 그는 약간의 정적을 가졌다. 내 손에 들려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보는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런 나를 보고 그는 여전하네, 라고 말할 것만 같아서.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이유야 많았지. 많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너였어."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바라보던 눈을 다시 들어 그를 보았다. 이제는 그의 눈빛을 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서글픔. 기다림. 그리움... 그리고 약간의 열망과 두려움도. 내 착각이 아니라면 그것들이 그의 눈빛에 들어가 있다.
그는 또 한 번의 정적 끝에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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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생각할수록 이상하단 말야."
"뭐가?"
"지금 뉴욕 시간으로 오후 9시가 넘었거든?
근데 무슨 일로 전화를 하신 걸까?"
"..뭐 급한 일 있나 보지."
"급한 일인 것 같진 않았는데 말야."
"야, 너 또 쓸 데 없는..."
○○야. 이게 절-대 쓸 데 없는 게 아니에요. 야, 내 말 좀 들어봐.
만약에 너가 나한테 숨기는 게 진짜로 아니라고 한다면, 네가 아직 전무님 마음을 눈치 못 채고 있는 거라는 것밖에 안 돼.
봐봐. 거기까지 가서 너한테 전화 할 일이 뭐가 있겠어. 설령 업무 관련이라고 해도, 일은 아-까 끝나고 지금은 들어와서 쉬고 계실 시간인데.
그런데 너한테 사무실 전화를 먼저 건 게 아니라, 휴대폰으로 했다가 안 받아서 사무실로 거셨다는 거지.
냄새가 나, 냄새가 나. 이건 필시 러브야, 러브. 그렇지 않고서야....
청산유수로 쏟아지는 박지훈의 말에 그냥 두어 번 고개를 저어주었다. 아니라고 여러 번 이야기를 해도 들은 척조차 하지 않는 박지훈이라, 이제는 부인하기도 지친다.
박지훈도, 김재환도 회사 안팎에서 나와 전무님과의 핑크빛 러브러브를 몰아가고 있지만, 정작 내가 느끼기엔 그게 아닌 걸.
전무님이 싫거나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말이 맞다면 전무님의 태도가 영 소극적이어서 그렇다.
그래서 그냥 호의로 하시는 행동들인지, 아닌지 당최 잘 분간이 안 가는 거다.
그런 부분에서는 또 제대로 된 판단을 못하는 내가 전무님의 마음을 뚫어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아니, 사실 불가능하지.
모르겠다. 누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게 진짜이건 간에, 어쨌든 지금은 타이밍이 영 좋지 않다고 생각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전무님께는 연락을 좀 드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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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Y사원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러분! 제가 너무나 오랜만에 글잡에 왔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반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ㅠ_ㅠ 성실하지 못한 작가는 몸둘 바를 모릅니다.. 엉엉.. 여러분 다들 연말 잘 보내셨어요? 저는 연말 무대들 부지런히 따라잡다 보니 어느덧 2018년이 끝나 있더라구요. 워너원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있는 울 애깅이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더라도 제 글은 계속 됩니다! 여러분도 함께 해주실 거죠?????? <구남친이 입사했다>는 좀 짠내가 나는 글이 될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좀 으른으른하고, 다른 글들에 비해 분위기가 무거우면서도 성숙한? 그런 느낌이요. 색깔로 치면 짙은 보라색 정도 될 것 같은데, 많이 기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써볼게요. 다시 글에 대한 감을 찾으려 노력 중이에요. ㅜㅜ 모쪼록 2019년 한 해도 건강하시고! 하는 일마다 잘 되시고! 새로운 도전이나 시작하시는 분들께는 바라는 성과가, 삶을 이어가시는 분들께는 소소한 기쁨이 이어지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