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도착하고 본 민박집의 구조는 전체적으로 봤을 땐 이층에 복층 구조였음. 처음 차에서 내렸을 때도 생각했지만 마당이 넓어 집 밖에는 화초를 키우는 선반들이 외부 인테리어를 돋보이게 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느낌을 받았음. 손에 있는 짐을 옆에 잠깐 세워놓고 하나씩 화분을 들어다 보기 시작했을 때쯤
아까 그 남자가 멀리서 이런 내 행동을 지켜보는 듯 했음. 저를 힐끔 봤다가 아까부터 손에 들고 있던 장작을 내려놓더니 불을 피울 준비를 하는 것 같았음. 누구일까, 여기 주인일까. 주인이라기엔 너무 젊은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그마저도 바빠보이는 남자의 행동으로 인해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손에 들린 화분만 유심히 봤던 것 같음. 싹이 돋아난 자리에서 예쁘게 열매를 맺은 꽃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 나는 이 화분을 여기 있을 때만큼은 옆에 두고 키우고 싶었음. 용기내어 남자에게 다가간 나는 용기만 냈지, 막상 입은 떨어지지 않아 두 손으로 화분을 꼭 쥔 채 남자가 하는 일을 바라보고 있었음. 옆에 제가 온 걸 보았는지 숙였던 허리를 피는 남자에 자동으로 고개가 올라갔던 것 같음.
"꽃 예뻐요."
"... ..."
처음 말 걸어본 것도 이상한데 다짜고짜 와서 꽃 예쁘다는 말이라니. 남자 입장에서 보면 자기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나는 편하게 꽃 구경이나 하다 말을 건 것처럼 보여 어떻게 보면 약올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아도 엄청 어색한 상황에 오고 가는 말도 없고 딱 죽을 맛이었음. 어색한 상황에 두 눈을 꼭 감고 그렇게 한 몇 분을 있었을까. 천천히 눈을 떠 앞을 바라본 나는 남자가 있을 자리를 보는데 남자는 어디로 간 건지 보이지 않았고 장작만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음.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는 남자에 민망함과 함께 순식간에 달아오르는 볼이 느껴졌고 그대로 제가 놓았던 짐들이 있는 곳으로 가 민박집으로 들어갔던 것 같음. 화분도 들고 갈까,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말하는 도중에 아무말 없이 자리를 떠난 남자가 괜히 미워져 선반 위에 다시 올려놨던 것 같음.
후에 안 건데 제가 화분을 들고 서 있었을 때 다니엘은 창고 깊숙히 있는 화분을 찾아 내가 있는 자리로 돌아왔는데 내가 없어서 슬펐다고. 제가 그때 든 화분에 있는 꽃은 이미 열매를 다 맺어서 키우기엔 다 자란 화분이라 다니엘이 가지고 온 화분을 키워줬으면 했다고 들었음. 고르게 깔린 흙 위에 돋아난 새싹만 풀 죽은 표정으로 바라봤을 다니엘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던 것 같기도.
* *
화분을 놓고 집으로 들어온 나는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음. 거실에 깔린 카펫은 자주색이었고 집 분위기에 맞는 아늑한 조명이 반겼음. 음, 근데 이렇게 들어와보니까 그래도 민박집 주인한테 허락도 없이 집에 들어오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해 발만 현관에 서 있는 상태로 집에 들어가지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었음. 아까 그 남자가 주인인가. 아까 일 때문이라도 괜한 자존심에 남자에게 물어보지는 못 하겠고 손톱만 까득 물고 있는데 안방에서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노부부가 나왔음. 누구신지? 제가 온다는 사항은 모르셨던지 백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노부부 중 남성이 제게 왔음. 외국인처럼 보이는 남성에 바짝 긴장해 어떻게 설명을 해야하나, 잘못하면 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한 정신 나간 여자로 볼 수도 있을 법한 상황에 여행 갔을 때 한때 바디랭귀지로 통했던 모션을 취하려고 했을 때였음. 손에 들린 짐들을 보여주며 노부부에게 설명하려 짐을 들었을 때였을까.
짐을 들고 있던 손이 별안간 당겨지는 신기함에 옆을 보니 제 짐을 가로채간 아까 그 남자가 보였음. 말없이 손에 제 짐들을 양손에 들더니 옆으로 지나가는 남자를 보면서 나는 가만히 그런 남자의 뒷모습을 멀뚱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음. 그러자 노부부는 이해한 듯 보였고 실례가 많았다며 고개를 숙이는 남성에 괜히 제가 더 부담스러워져 같이 고개를 숙였던 것 같음. 나름 웃음소리가 들리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마음 편히 웃을 수 없던 나는 남자가 올라간 이층을 바라보았음. 내가 있는 곳에서 이층을 올려다보면 이층의 구조가 살짝 보이는 모습이었고 이층에서는 일층을 내려다볼 수 있는 그런 구조였음.
남자는 제 짐을 이층에 놓는 듯 해보였고 의도치않게 남자와 눈이 마주치게 된 나는 남자의 눈을 보고 별로 이런 나를 안 좋아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음. 말없이 혼자 남의 집에 들어온 것도 모자라 다짜고짜 화분을 달라니. 여기서 지내면서 나는 남자와 순탄치만은 않은 생활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