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 모든 게 완벽한 8월의 어느 날
스탠딩 에그 - 여름밤에 우린
사무실에서는 곧죽어도 안 가던 시간이 사이판에서는 어찌나 빠르게 흐르는지.
엊그제는 워터파크에 갔다. 파도풀에 몸을 맡겨도 보고, 블랙홀이라는 슬라이드에서 구명조끼 없이 내 키의 두 배는 족히 되는 깊은 물에 풍덩 빠져보기도 하고.
이래저래 정신없이 놀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어제는 사이판에 왔으면 그로토에서 스노클링은 해야 하지 않겠냐며 몸에는 구명조끼를 걸치고, 등에는 산소통을 메고 100개가 넘는 돌계단을 걸어 내려가 다이빙을 했다.
3개의 동굴이 연이어져 있고 그를 채우고 있는 물은 그 깊이가 족히 20m는 되어 보였다. 첫날 마나가하 섬에 갔을 때 했던 무서운 척이고 나발이고는 날려버린지 오래.
눈을 가득 채우는 바닷속 풍경에 정신을 못차리고 이리저리 헤엄쳐 다녔다. 그런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과장님의 미소는 덤. 신났으니 된 거지 뭐.
물 만난 물고기처럼 힘차게 발길질하던 나는... 인어공주라기엔 좀 무섭지 않았을까. 박지훈이 말한 '인어공주'는 디즈니의 그 인어공주는 아닌 것으로 판명난 듯하다.
원 없이 바다를 보고, 원 없이 물에 몸을 담그니 어느덧 집에 돌아가야 할 날이 왔다. 날짜로 치면 내일이지만, 새벽 비행기라 오늘 밤에 출발한다고 보면 되었다.
훌쩍 지나가버린 휴가 때문에 왠지 아침에 눈을 뜨기가 싫어져서, 나도 과장님도 다 오늘은 꽤 늦게까지 침대에서 밍기적거리고 있다.
"...잘 잤어요?"
"웅...."
"........"
"더 자자....."
둘이서 거의 동시에 눈을 뜨긴 떴는데, 3일 연속으로 물놀이를 했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몸이 천근만근이다.
잠 좀 자야겠다며 오전 일정은 싹 비워둔 터라 게으름을 피워도 괜찮았다. 밥도 미뤄두고 잠을 선택했다. 더 자자고 웅얼거린 과장님이 내 쪽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아기를 껴안은 것마냥 과장님의 얼굴을 안게 된 나. 평소 같았으면 얼굴을 감상하느라 못 잤겠지만 오늘은 정말 잠이 솔솔 온다. 턱 밑을 간질이는 과장님의 머리카락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내 허리에 올려둔 과장님의 손이 꼬물꼬물 움직였다.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눈가도 움찔움찔 하는 게 꿈에서 꽤 바쁜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아이 같다는 생각을 하며 조금 더 힘을 주어 과장님의 얼굴을 안았다. 끄응, 하며 앓는 소리를 내는 과장님이다.
가만히 과장님의 샴푸냄새를 맡고 있으니, 엊그제 워터파크에서 놀다가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에게 엄마를 찾아준 일이 생각났다.
과장님과 함께 두 명이서 튜브를 들고 타는 슬라이드를 타고 내려왔는데, 왠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려 걸어가 보니 한국인 아이가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거다.
한국도 아니고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엄마를 잃어버렸다니 이것 참 큰일이다 싶어 아이를 데리고 안내데스크로 갔다.
과장님은 아이가 울길래 보니까 엄마를 잃어버렸다고 했다고 지금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는 내내 아이는 엄마가 보고싶다며 울었다.
나는 과장님이 열심히 설명하는 동안 아이를 달랬다. 눈물을 닦아주고, 안고서 몇 번 토닥여주니 울음이 좀 가셨다.
나 또한 혹시라도 아이의 엄마를 찾지 못할까봐 불안해 하는 동안 과장님은 내 옆에 와서 아이를 안심시켜주셨다.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운 말에 아이의 얼굴에서는 울음기가 사라졌고, 이내 우리의 장난과 함께 아이는 웃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 안내데스크에서 방송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과장님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꽤 초조해 하며 아이의 엄마를 기다렸던 것 같다.
삼십분 쯤 지났을까, 저 멀리서 울상이 된 엄마가 아이를 데리러 왔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연신 허리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잠시 음료수를 사러 간 사이에 아이가 사라져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우리는 그래도 찾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준희야, 이모랑 삼촌한테 인사해야지."
"히잉.... 준희는 이모랑 삼촌이랑 헤어지기 싫은데에."
"이모랑 삼촌은 데이트 해야 돼. 얼른 인사하자."
아이의 이름은 준희였다. 준희는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처럼 엄마에게 우리와 헤어지기 싫다고 칭얼댔다.
그 사이에 금방 정이 들어버린 터라 우리도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헤어지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몇 번 엄마의 다독임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우리를 향해 말했다.
"이모랑 삼초니 데이트 잘하고 겨론해애! 안녀엉!!!"
아이고, 준희야. 얘는! 하는 준희 엄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리는 그 자리에 선 채로 민망함에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준희와 준희 엄마는 안녕- 안녕히 가세요- 감사합니다- 하는 인사말과 함께 우리에게서 멀어졌고, 가만히 서있던 우리도 이제 갈까요... 하고 걸음을 옮겼다.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과장님께 들리기라도 할듯이 크게 났다. 결혼이라... 멋쩍은 웃음만 걸친 채로 서로를 쳐다봤다.
"우으... 몇 시야...?"
한참을 꿈에서 바삐 움직이던 과장님이 몇 시냐고 물어왔다. 과장님이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있는 터라 말을 할 때마다 몸이 우웅, 우웅, 하고 울렸다.
토닥토닥, 등을 두어 번 두드리니 엄마 품에서 자던 아이가 일어나기 싫다고 칭얼대는 것처럼 끄으응, 하는 소리를 낸다.
더 자도 되는데. 했더니 아무런 대답이 없다. 언제 어디서든 나보다 한 걸음씩 더 움직이고, 한 동작씩 더 바쁘게 했으니 피곤할만 했다.
나를 배려한답시고 저 힘든 건 깊게 생각하지 않았을 사람이라 좀 미안했다. 휴가는 같이 온 건데... 그래서 더 깨우고 싶지 않았다.
과장님이 허리에 올려뒀던 손을 들어 내 등을 안아왔다. 한 치의 틈도 없이 밀착된 몸과 몸이 따뜻하게 얽혔다.
에어컨을 틀어놓고 이불을 푹 덮고 있으니 아주 부자놀이가 따로 없다. 한국에서는 함부로 못하는데 이런 거. 살풋 웃음이 나왔다.
"....배고파...."
얼마간 정적이 흐르다가 과장님의 배고프다는 말로 그 정적이 깨졌다. 나는 배고파요? 하면서 품에서 살짝 과장님을 떼어내곤 과장님을 바라봤다.
오늘따라 퉁퉁 부은 것 같은 얼굴이 사랑스러웠다. 뒷통수에 만들어진 까치집도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사이판에서 물에 몸을 풍덩 담가버린 시간 만큼이나 과장님한테도 풍덩 빠져버린 것 같다. 여행이라는 게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다.
나는 과장님의 찹쌀떡 같은 볼을 잡아 늘이며 말했다. 밥 먹으러 갈까요-? 과장님은 내게 볼을 잡힌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너무 귀엽잖아요......... 심장이 아파요 선생님.........
그렇게 우리는 마지막 날 아침을 맞았다.
-
호텔에서의 마지막 조식을 먹고,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느즈막히 짐을 챙겨서 나왔다. 짐을 다 실은 캐리어를 렌트카에 넣으니 이제 정말 떠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다. 아쉬운데 또 아쉽다고만 하기에는 오래간만에 제대로 놀은 것 같아서 그렇다고만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운전하는 과장님의 옆모습을 감상했다.
왜, 하는 목소리에 장난기가 섞여있다. 과장님은 내가 이렇게 빤히 자기를 바라볼 때면 심장이 떨려서 눈을 못 마주치겠다고 했다.
"나흘 내내 너무 꿈 같기만 해서,"
"응."
"꿈 같다, 꿈 같다, 했더니 나흘이 다 끝나버렸어요."
"그래도, 꿈 아니었잖아. 꿈보다 좋았어."
"아, 근데 과장님 아까 아침에 무슨 꿈 꿨어요? 꿈 꾸는 것 같던데."
"....비밀이야."
입꼬리를 씨익 올려 웃으며 비밀이란다. 무슨 꿈이길래 비밀인가 싶어 뭔데요- 하고 물으니 안돼. 비밀이야. 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뭐에요... 진짜 비밀이에요? 말 안 해줄 거예요? 했더니 곰곰이 고민하는 표정을 하다가, 야한 꿈. 하면서 또 한 번 씨익 웃었다.
야한 꿈-? 하고 내가 헉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니, 나와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인다. 응. 그래서 비밀이야.
"뭔데 또 꿈을 그렇게 야하게 꾸셨어 그래-"
일부러 과장님을 좀 놀려볼까 하고 능청스럽게 야한 꿈을 꿨냐고 물었더니, 우리 과장님 딱 한 마디 하셨다.
'네가 어젯밤에 너무 야했잖아. 안 그래?' .....나는 입을 싹 닫았다. 괜히 할 말이 없어져 손톱을 물어 뜯은 건 비밀이다.
말이 없어진 나를 눈치 챈 과장님이 하하, 소리를 내어 웃었다. 나는 민망해서 목덜미를 쓸었다.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괜히 까불었다...
우리는 드라이브를 했다. 사이판은 거리가 잘 닦여있는 반면 차가 많이 없어서 어딜 가도 슝슝 잘 뚫렸다. 음악을 크게 켜놓고 쌩쌩 도로를 달리니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차의 윗뚜껑도 열고 달리니 바다냄새를 머금은 바람이 들어오는 게 과연 사이판이다 싶었다. 드라이브까지 완벽하다니, 마지막날인 건 아쉬웠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바다를 배경으로 싹 닦인 도로를 열심히 달리다가 경치가 좋아보이는 곳에 내렸다. 한 켠에 차를 세워두고, 과장님과 손을 잡고 그 근처를 거닐었다.
"사진 찍어요, 우리!"
"잠깐만. 내가 하나 찍어줄게."
이런 말 하면 조금 오그라들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과장님이 찍어준 내 사진에는 뭔가, 사랑이 묻어났다.
사진은 찍는 사람의 피사체에 대한 애정을 반영한다고 하는데, 사진을 보면 과장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곤 했다.
나도 모르는 내가 짓는 표정들이 한 컷, 한 컷씩 담기는 걸 볼 때마다 과장님의 눈에 비친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찍은 과장님의 사진도 그럴까. 그러기를 바라면서 셔터를 누르곤 했는데, 과장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과장님은 한동안 나를 찍다가, 그 위치에 삼각대를 두고 그 위에 카메라를 고정시킨 뒤 내 옆으로 왔다.
타이머가 작동되면서 찰칵,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가 찍혔다.
다시 사이판에 온다고 해도 이 시간의 우리는 지금밖에 없는 우리일 테니까, 모든 추억 하나하나가 전부 다 소중했다.
찍힌 사진들을 보니 바다가 뒷배경이라 그런지 시원한 느낌이 가득했다. 새삼 우리 과장님 바다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과장님, 그리고 눈은 살짝 찌푸렸지만 입은 웃고 있는 나. 어쩌면 우리, 꽤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사진을 보며 웃는 나를 보던 과장님이 나를 안아왔다. 나는 카메라를 꺼두고 가만히 과장님께 안겼다. 한낮의 사이판은 덥긴 해도 불쾌하지는 않았다.
과장님의 품 안에서 맞는 바닷바람은 시원하고, 상쾌했다. 두 사람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그렇게 우리가 있던 공간을 채웠다.
그렇게 얼마간 더 드라이브를 하다가, 마지막날 오려고 아끼고 또 아껴둔, 사이판에서 가장 유명한 해산물 음식점에 갔다.
둘 다 하루종일 호텔 조식 빼고는 아무것도 먹은 게 없는지라, 앞뒤 재지 않고 전력을 다해 먹기 시작했다.
과장님이 워낙 안 가리고 잘 드신다는 걸 몰랐던 건 아닌데, 나 또한 잘 먹는 걸로 둘째 가라면 서운한 사람이었다.
사이판에 와있는 내내 서로 잘 먹은 터라 살이 3kg은 족히 찐 것 같다며 배를 통통 두드리곤 했다. 몸과 마음이 편하니 살이 찌는 게 당연하다.
"진짜 엄-청 신선하고 맛있어요!"
"응. 많이 먹어. 엄청 많이 먹어도 돼."
예쁘게 먹는 일은 포기한지 오래. 오늘만큼은 해산물 너 죽고 나 죽자는 마음을 가지고 온 만큼 내 온 열정을 다해 먹었다.
그래도 나름대로는 과장님 앞에서는 예쁘게 먹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은데.... 오늘부로 그것도 끝인가. 나는 정말 과장님 앞에서 내숭을 떨 수 없는가... 하며 좀 좌절했다.
잘 먹는 게 예쁘다고 할 때는 위안이 되지만서도, 나긋나긋, 사근사근 예쁘게 먹는 게 보기 좋지 않을까 하니 금방 우울해지는 거다.
손에 들고 있던 꽃게 껍데기가 쪽팔린 순간이었다.
"왜 그래?"
"....예쁘게 먹을 수가 없어요.."
"......."
울상인 내 표정을 보더니 하하하, 하고 빵 터져버린 과장님이다. 나는 진지했는데... 먹을 때도 예쁘고 싶었는데.... 했더니 숨 넘어갈듯이 웃는다.
이런 과장님을 본 적이 있었나. 없었던 것 같은데. 손에 들고 있는 꽃게 껍데기를 차마 놓을 생각은 못하고 과장님을 보고 있으니,
과장님이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어떡하냐 진짜. 귀여워서. 벙 찐 나는 무어라 답할 생각도 않고 과장님을 쳐다본다.
"너 예뻐."
".....네?"
"진짜 예뻐."
"........"
"안 그래도 예쁜데 왜 먹을 때까지 예쁘려고 해."
.....과장님 이런 말 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 나는 몰랐는데.....?
사람 심장이 멎을 만치 설레는 말을 해놓고는 아무렇지 않은듯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띄운 채 먹는 데 집중하는 과장님.
과장님은 본인의 한마디, 한마디가 내게 얼마 만큼의 위력을 갖는지 모르고 계시는 듯하다.
말이 많은 게 절대 아닌데, 한마디가 임팩트가 큰 건 처음 과장님을 봤을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안 그래도 예쁜데 왜 먹을 때까지 예쁘려고 해.'가 자꾸 귓가에 맴돌아서 더 열심히 꽃게 껍데기를 뜯지 못한 건 두고두고 후회할 만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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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에는 절벽과 동산이 몇 군데 있는데, 한밤중에 여기가 그렇게 별이 잘 보인다는 소리를 친구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차량을 렌트하지 않으면 한밤중에 동산에는 올라갈 수가 없기 때문에 자유여행이 아니고서야 밤에 올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다행히 우리는 공항에 가기 전까지 차를 빌려놓았기 때문에 마지막 코스로 그 절벽을 택했다.
밤 열두시가 조금 넘은 시간. 우리는 빙빙 둘러선 오르막길을 타고 또 타서 동산의 꼭대기에 도착했다. 가로등과 같은 불빛이 하나도 없어 온갖 곳이 칠흑같이 어두웠다.
오로지 차 앞에 달린 헤드라이트만 의지하고 꼭대기까지 올라간 거였다. 시동을 끄면서 헤드라이트가 꺼지니 다시 또 아무것도 안 보였다.
주섬주섬 휴대폰의 플래시 빛을 켜서, 그 빛에 의존하며 차에서 내렸다. 과장님이 먼저 내려서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고, 나는 과장님이 내민 손길을 의지했다.
"어어, 조심해야겠다. 진짜 하나도 안 보이네."
"응. 나 잡아. 꼭 잡아."
플래시를 켜두면 내 눈이 어둠에 적응을 못할 것 같아서 금방 껐다. 처음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는데 곧 이런저런 것들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맞잡은 과장님의 손이 따뜻했다. 크고 듬직한 손은 잡을 때마다 내 마음에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괜시리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조금 걷자마자 우리는 곧 꼭대기의 한복판에 도착했고, 그곳에는 얕은 풀들이 깔려 있었다.
우리가 내는 작은 소리들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얕은 풀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과장님은 내 옆에 앉으셨다.
온통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였다. 하늘도 너무 까매서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별을 하나 찾아냈다.
별은 한 개가 보이고 나면 수십 개가 보이는 법. 아니나 다를까 한 개가 보이고 나니 이에 질세라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 몇 개나 되려나. 그래도 다른 곳에서 본 별들은 셀 수라도 있었는데 지금 여기 밤하늘의 별들은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이렇게 별 많이 본 적 있어요? 하고 과장님께 물었더니 아니. 처음이야. 하는 답이 돌아왔다. 과장님의 목소리도 약간의 감동으로 젖어 있었다.
한참 목을 잔뜩 꺾고 하늘에 시선을 두었더니 목이 아파서, 아예 풀밭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그런 나를 느낀 과장님도 따라서 누웠다.
과장님이 누우면서 또 과장님의 샴푸냄새가 코 끝을 스쳤다. 기분 좋은 향기였다.
누우니 별은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별이 쏟아진다는 게 이런 말일까. 밤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온통 내게로 쏟아지는 것 같다.
이러다가 별똥별도 보이겠는데.....
"오! 봤어요?!"
"별똥별?"
"네!!!"
"어, 방금 또 떨어졌다."
"와!! 진짜 신기하다!!!"
별똥별이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니, 여기저기에서 따라서 하나씩, 둘씩, 같이 떨어졌다. 마치 별이 안 보이다가 한 개가 보이고 나니 다 보였던 것처럼.
감성에 젖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문득 이 별이 꼭 사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안 보이면 모르지만, 한 번 보이기 시작하면 그 사람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다 눈에 들어오는 게 똑같았다.
나도 과장님에게 별 같은 존재였을까. 문득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어졌다.
"오빠. 오빠는 나 언제부터 좋아했어요?"
"......"
얼마간 뜸을 들이던 과장님은 너 면접 봤던 날. 라고 답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의외의 답에 놀란 것도 잠시, 사람들 틈에서 너만 보였어. 라는 목소리에 또 심장이 멎는 기분.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전부터인 모양이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달싹였다.
"나 그 날 면접관이었거든. 옹성우 대신 들어갔어."
".....아.."
"다섯 명인가 앉아있는데, 너 제일 끝쪽에 있고."
"......."
"네가 하는 말이 하나도 안 들렸어. 멍해져서."
"....."
"정신 차리니까 답변은 끝나있고. 다시 보기는 해야겠고..."
"........"
"일단 네 점수는 높게 써서 냈긴 했는데,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이 낮게 줬으면 어쩌나 걱정돼서..."
"........"
"그런데 아니더라. 엄청 괜찮았대.
그래서 혼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그랬지."
말을 마친 과장님이 멋쩍은듯 낮게 웃었다. 내가 되려 멍해져서 눈만 꿈벅꿈벅 떴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얼마 간의 정적이 이어졌다. 과장님은 조용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야,"
나는 네. 하고 대답했다. 과장님은 가만히 침묵하더니 다시 입을 여셨다.
"나 많이 서툴러. 그리고 무뚝뚝해. 알고 있겠지만... 표현도 잘 못하고, 투박하고."
"......"
"내가 너한테 느끼는 감정이 나한테는 익숙하지 않은 거라. 어색하고, 맨날 실수하고 그래."
"........"
"....그래도"
그래도, 라는 말 뒤에 얼마간 과장님이 숨을 고르는 게 느껴졌다. 나는 과장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많이 사랑해.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고 있어."
"........."
"변명이 될 수는 없겠지만... 지금 아니면 이야기하기 힘들 것 같아서."
"........"
".....고마워. 내 옆에 있어줘서."
과장님의 말을 끝으로 별똥별이 하나 떨어졌다. 스스스, 소리와 함께 한 차례 바람이 불었다.
푸릇한 풀내음과 과장님의 샴푸향기가 섞여 미묘하고도 상쾌한 냄새를 만들어냈다.
사이판에서의 마지막 밤, 별을 바라보며 한 그의 고백, 그리고 쏟아질 듯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별들.
모든 게 완벽한 8월의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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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편 암호닉 (0~4차 암호닉 신청자들에 한함. 30편 업로드 전에 댓글 달아주신 분들에 한함.) [퍼지네이빌] [옹성우] [현] [새우] [호두] [녜리] [녤루] [#0613] [피치씌] [갓의건] [박참새] [0226] [도앵도] [녤과장] [샘봄] [에비츄] [유우] [늘봄] [율예] [녤부] [피치수플레] [재환콩] [다다] [구원자] [크뽀] [이히] [덧깨비] [뚠뚠] [블라썸] [영단즈] [어어] [녤꽃] [옹침] [체크남방] [1210] [구낸내] [응] [넌내희망] [강옹량] [징징이] [딸기시럽] [휘린] [과장님나이스샷] [뉄뉄] [엘제이] [너부리] [슝왈이] [파요] [■계란말이■] [라온하제] [짚고긴한커피] [수 지] [만두] [꼬꼬망] [포카리] [빨간머리] [020716] [쿠쿠] [우주] [다녤잉] [바밤바] [키친타올] [일개사원] [박우진라면] [망개몽이] [짠따라] [츄얼] [국국] [녜리2] [분홍색솜사탕] [댕댕과장] [12100809] [수저] [솜사탕] [몽구리] [쫑쫑] [0302] [칸타타] [뿌랑] [요거팅팅] [사용불가] [일오] [비눗방울] [리베르떼] [계란찜] [밍밍이] [꽃녤] [졔졍] [수박바라밤] [빠뺘뽀뾰쀼] [다녤이랑워니랑] [맥주톡톡] [우럭] [마카롱] [묭묭이] [하늘연달] [둡돌고래] [회사워니즘] [디눈디눈] [3536] [121027] [녤림캐쳐] [뚜띠따띠] [짹짹이] [아마수빈] [옹기종기] [몽글이] [메론바] [쌈장] [춘쟝] [뀨쓰] [숨] [극성갑독자] [mj] [녤리리아] [무네큥] [누나] [쀼쀼] [필통] [666666] [1122] [달달한복숭아] [비버] [동태] [zi존다녤] [딸기맛초코파이] [윙지훈] [녜르] [DMR] [데헷] [파리링] [몽구] [카르스트] [@불가사리] [땁답] [다녤의만두] [송송아] [제로] [11023] [방구뿡] 안녕하세요, Y사원입니다. 일단 드디어 30편!!! 와아!!! (박수) (함성) 오피스물 좀 써볼까 하는 마음으로 1편을 썼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편이라니.. 감개무량합니다.. 지금까지 잘 달려올 수 있었던 건 여러분들의 사랑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ㅠㅠ 항상 과분할 정도로 많은 사랑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완결까지 함께 달려욧!!!ㅎ_ㅎ 이제 사이판 에피소드는 끝났습니다. 별 보는 장면을 꼭꼭 넣고 싶었고, 그래서 BGM도 이런 느낌으로 넣어보았어요~ 많이들 좋아해주셨으면 좋겠네용...ㅎㅎ 저는 제가 못 떠나는 휴가, 여주랑 다니엘 둘을 사이판으로 보내면서 대리만족 많이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러셨던 것 같아요ㅎㅎㅎ 뿌듯합니당.. 호호 사이판은 오래 전에 두 번 정도 가봤는데, 그 때의 경험을 살려서 적은 것도 있었고, 기억이 안 나는 부분은 네이버랑 구글 등 검색해가지고 쓴 것도 있어요. 더 현실적으로 글 쓰기 위해서 늘 노력하고 있습니당.. 이제 여주와 다니엘은 다시 서울로 돌아갑니다. 다시 출근도 할 거고.. 다시 우리 옹과장님도 볼 거고.. 아직 풀어갈 이야기들이 남았으니 앞으로도 계속 함께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사랑과 댓글로 주시는 응원으로 강과장은 연재됩니다. 항상 댓글 꼼꼼히 읽고 있으니 제가 답댓을 못 달더라도 이거 읽는 거 맞아? 하는 생각은 말아주셔용ㅎㅎ 아 그리고 댓글에 암호닉 신청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항상 별도 공지 통해서만 암호닉 받고 있습니다. 이번 토요일 오후 10시, 마지막 암호닉 신청이 있을 예정입니다. 예상 인원은 아직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치만 이번 암호닉이 마지막 신청이 될 것이고, 암호닉을 신청해두지 않으시면 텍스트파일이나 특별편, 외전을 받아보실 수 없어요. 그러니 암호닉 신청하지 않으셨던 분들도 가급적 이번주 토요일을 노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Y사원은 내일 생일입니당ㅎㅎ 생일선물로 워너원고와 해피투게더를 받는 것 같아서 아주 기부니가 조아용ㅋㅋ 다들 많이 기대하고 계시겠지여? 저도 떡밥 매일매일 주워가면서 많이 기대하고 있는데... 아주아주 기대가 됩니당! 오늘 사담이 좀 길어졌는데 이만 마칠게요! 무더운 여름밤이지만 마음만은 시원하고 푸른 사이판의 바다 같기를 바랍니다. 좋은 꿈 꾸시고, 우리는 또 주말에 만나요! 오늘도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글 쓰는 Y사원 되겠습니다. 사랑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