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교시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의자를 뒤로 끄는 소리가 들렸다. 김태형이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김태형을 올려다 봤다. …설마 전정국한테 가려는 건가. 온 몸을 잠식하는 불안함에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 시선을 느낀 김태형이 고개를 살짝 옆으로 틀어 나를 내려다 봤다.
“다녀오께.”
“….”
“성공할 테니까 걱정 말고.”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 입꼬리를 한껏 올린 김태형이 내 머리를 슥슥 쓰다 듬더니, 퍽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흘끗 쳐다보다가 수학 교과서가 놓여진 책상 위로 시선을 던졌다. 잡념을 떨치기 위해 수학 시간에 열심히 받아적은 수식들을 쳐다봤지만 소용 없었다. 터져 나올 것 같은 한숨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너무 떨려서 손을 가만히 두질 못하겠다. 기대하지 말자. 전정국의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오든, 기대하지도 말고 실망하지도 말자.
“…정국이?”
아. 김태형이 벌써 전정국 자리에 도착했나 보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내가 왼쪽 엄지손톱을 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오른손으로 왼손을 꾹 잡고 책상 아래쪽으로 내렸다. 바보같이 이게 뭐라고, 이렇게나 떨리지.
“나는 그 뭐냐, 2학년 1반 김태형인데.”
“….”
“밥 같이 먹을래? 나도 아미 친구거든. 너도 아미 친구잖아.”
결국 김태형의 입에서 나와버린 내 이름에,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어떤 대답이 나오더라도 신경 쓰지 말자, 그냥 태연하게 웃어 넘기자. 수없이 다짐하고 되새기는 마음과는 달리 몸은 잔뜩 경직되어 있었다.
“…아미도 같이 먹어?”
전정국의 목소리였다. 전정국이 내뱉은 한마디에,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둥둥 떠다녔다. 나랑 같이 먹으면 안 먹겠다는 건가? 역시 내가 불편한 건가?
“응. 당연하지!”
김태형의 대답에 따라 전정국의 대답도 달라지는 걸까.
“그럼 같이 먹자, 밥.”
…아. 빠르게 이어진 전정국의 대답에 고개가 뒤로 틀어졌다. 시선을 느낀 듯한 전정국이 내 쪽을 쳐다본다. 조용히 시선이 맞물렸다. 두 번째 눈맞춤이었다. 전정국이 뒷목을 긁적이며 작게 웃었다. 멋쩍을 때마다 나오던 습관이었다. 달라지지 않은 그 습관을 보니, 참 속도 없이 반가운 감정이 들었다.
“…아, 안녕.”
여전히 나와 마주 보고 있는 전정국의 시선을 슬쩍 피하며 인사를 건넸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인사였다. 전정국은 대답이 없었다. …무시 당한 건가. 바닥에 두었던 시선을 다시 올리자,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전정국이 보였다. 인사를 너무 작게 해서 못 들은 거였나. 왠지 민망해져서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였다.
“안녕.”
“….”
“김아미.”
인사를 건넨 전정국이 해사하게 웃었다. 토끼같이 귀엽고 예쁘게 웃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3년의 공백치고는 꽤 익숙하게 느껴지는 전정국의 모습을 보며 이상하게도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 벅차오름을 느끼면서, 밝게 건네진 인사에 대답하듯 작게 고개를 주억였다.
“와, 아미랑 정국이 진짜 친구 맞네!”
“….”
“둘 다 옛날 친구 오랜만에 만난 소감이 어때?”
김태형의 말에 그제야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러니까, 아까까지만 해도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던 전정국의 주변이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거다. 전정국과 내 사이가 궁금한 듯 전정국을 쳐다보며 눈을 빛내는 사람들도 있었고, 나와 전정국을 번갈아 바라보며 속닥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에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재빠르게 고개를 돌려 책상 위로 엎어졌다.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아니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만, 맞서는 것이 두려운 나에게는 피하는 것 말곤 선택지가 없었다.
하지만 시야를 차단했다고 한들, 귓가에 박히는 아이들의 말소리까지 차단할 수는 없었다.
쟤 갑자기 왜 저래?, 이상하네, 얘기하기 싫은가, 태형이 민망하겠다. …
“아미랑은 진짜, 친한 친구였던 거 맞아.”
바늘처럼 콕콕 나를 찔러오는 말들 속에서 전정국의 목소리가 툭 끼어들었다. 교실에는 잠깐 침묵이 감돌다가, 궁금증을 쏟아내는 몇몇 아이들 때문에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어떻게 친했는데? 나 진짜 궁금해.”
“아, 근데 김아미는 반응이 왜 저래?”
자신에게 쏟아진 질문들에 전정국은 어떤 대답을 할까. 두 번째 질문에 올 대답은 ‘나도 몰라.’겠지. 본의 아니게 같이 받아야 할, 혹은 내가 받아야 할 질문들을 모조리 전정국에게 떠넘겨 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여기까지고, 이제 그만 물어 봤으면 좋겠어.”
돌아온 전정국의 대답은, 내 예상 범위를 한참 벗어나는 것이었다.
“자꾸 낯선 사람들 입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게 조금 불편해서.”
이어지는 말 또한 그랬다. 코끝이 찡 아려왔다. 열다섯 살의 전정국이 구석진 곳에 처박혀 있는 나를 부드럽고 다정하게 제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저답지 않게 날카로운 대답 속에 숨겨진 배려가 너무나도 잘 보여서.
교실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눈을 감았음에도 불구하고 확연히 어색해진 분위기가 피부로 와 닿았다. 저번 쉬는 시간에도 그렇고, 나 때문에 자꾸 어색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원래 나는 김태형 친구라는 타이틀을 빼면, 반에서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였는데. 한숨이 터져 나오려고 했다. 이 상황에서 한숨 쉬면 진짜 분위기 더 어색해지겠지? …아. 그럼 안 된다. 절대 안 돼. 지금 이 분위기를 더 망치면 안 된다는 일념 하에 한숨을 꾹 참으려는데, 웬걸. 헛기침이 튀어 나와버렸다. ……아, 망했다. 그래도 한숨보단 그나마 좀 낫나.
“아, 미안. 불편할 줄은 몰랐네.”
“맞아. 우리가 생각이 좀 짧았다.”
“정국아 그럼, 점심 다 먹으면 매점 가서 같이 아이스크림 먹을래? 내가 살게.”
“응. 시간 있으면.”
“오! 그럼 나 휴대폰 번호 좀.”
“앗! 나두!”
“나도! 나도!”
그러나 내 그런 깊은 걱정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내가 헛기침을 하든, 뭘 하든 딱히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좁혀졌다고 생각했던 전정국과의 거리감이 다시금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전정국과 내 사이에는 자그마치 3년이라는 공백이 존재하고 있으니까. 어색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했다.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점심 다 먹으면 문자 할게. 답장 줘!”
“나도, 나도!”
“나도!”
“한 사람한테만 해! 정국이 정신 없겠다.”
그래도 마음 한켠이 씁쓸해져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쏟아지려는 감정들을 애써 외면하기 위해서 다른 생각을 하고자 했다. 이따 점심시간에 전정국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 같은 생각들을. 어찌됐든 내 모든 생각들은 결국 전정국으로 귀결되는 셈이었다. 이러는 게 당연한 걸까, 당연하지 않은 걸까. 명확한 답은 모르겠다. 다만 지금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그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전정국은 과연 어떻게 지냈을까에 대한 부분이었다.
좋은 친구들은 많이 사귀었을까, 여전히 미술 쪽으로 진로를 생각하고 있을까, …혹시 문득 내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내가 너를 생각했던 것처럼.
함께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딱 그만큼 너에게 정이 들었다. 정이 든 만큼 좋아했고, 그래서 네가 말도 없이 떠났을 때에도 네게 올 연락을 기다렸다. 엄마 다음으로 내 투정을 잘 받아주던 너였으니까, 연락이 오면 잔뜩 화난 척도 하며 투정 부리는 상상을 몇 번이고 했었다. 너를 그리워 하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하다가 종내에는 잊으려고 했다. 그리고 이제는 꽤 잊혀졌다고 생각될 때즈음, 네가 다시 나타났다.
“쉬는 시간 끝났다.”
“그럼 이따 보자, 정국아!”
“안녕!”
너와 나는, 이제 예전처럼 다시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
“수업시간 5분 정도 남았으니 잠깐 쉬었다가 밥 먹으러 가.”
“쌤! 그냥 지금 가면 안 되나여?”
“이 자식아. 그럼 너도 혼나고 나도 혼나.”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도 그 사이에 끼어서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가 문득, 5분 뒤에 전정국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는 생각이 스치니 몸이 일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솔직히, 엄청 긴장 된다.
교과서를 덮고, 서랍 안에 넣으려는데 팔뚝을 소심하게 두드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옆을 돌아보니 역시 김태형이었다. 김태형은 왠지 모르게 풀이 죽은 얼굴을 하고서는 쪽지 한 장을 내 쪽으로 건넸다. 눈 앞에 놓인 쪽지를 조심스럽게 받았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저렇게 풀이 죽어있지. 느껴지는 궁금증에 반듯하게 접힌 쪽지를 빠르게 펼치고 내용을 읽어내려 갔다.
[아까 전에, 쓸데없이 물어본 거 미안해.]
뭐가 미안하다는 거지. 미안할 게 있었나? 얘가 나한테 뭘 물어봤었지. 생각이 안 나는데. 이건 건망증인가, 치매인가, 아님 김태형이 수업시간에 졸다가 꿈을 꾼 건가. 시선을 돌리자, 김태형이 아까 전 그 표정 그대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나한테 뭘 쓸데없이 물어봤지?”
“그거… 소감 물어본 거.”
“소감? 소감? …아, 아. 그거.”
소감이라길래 수상소감밖에 생각이 안 나다가, 저번 쉬는 시간에 있었던 일이 더올랐다. 아, 그때. 김태형이 질문하고 얼마 안 돼서 내가 훽 엎드려 버렸지.
“그게 뭐가 미안해. 그건 내가 미안해야 되지. 질문 무시해서 미안.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아냐, 네가 뭐가 미안해! 내 잘못이지!”
“아니, 김태형 넌 잘못한 거 없다니까? 그거는 내 잘못이라니….”
“네 잘못 아냐! 내 잘못이야!”
아, 깜짝이야. 확 커진 김태형의 목소리에 흠칫 몸을 떨며 주위를 살짝 훑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의 시선이 김태형과 내 쪽으로 몰려 있었다. 나 이 상황에서 또 엎드리면, 김태형에게 마음의 짐을 한 트럭 더 얹어주는 거겠지.
“뭐야? 둘이 싸워? 그냥 둘 다 잘못 없는 걸로 해.”
무심하게 툭, 내뱉으신 선생님의 한마디에 교실은 금세 웃음바다가 되었다. 나는 털푸덕 책상 위로 엎드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보기보다 섬세하고 마음 여린 김태형을 생각해서 애써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괜찮다는 의미로 김태형을 바라보며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들었지? 둘 다 잘못 없는 걸로 하자, 그럼.”
“…응.”
내 말에 기분이 좋아진 듯한 김태형이 환히 웃어보이며 대답했다. 해맑은 표정을 보니 괜시리 웃겨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후로도 김태형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 받다 보니 어느덧 5분이 지나버렸다.
긴장하며 기다렸지만 내심 오지 않길 바랐던 점심시간이, 와 버린 것이다.
*
전정국과 함께하는 점심시간은 생각보다 별 거 없었다. 급식을 함께 먹는 4명의 친구들과 김태형은 전학생인 전정국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질문을 퍼 부었고, 나는 전정국과 조금 떨어져 앉아서 그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며 가끔씩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기만 했다. 김태형은 3교시 쉬는 시간에 있었던 일을 의식해서인지 나와 전정국이 친구였다는 사실을 꺼내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그동안 뭐 때문에 그렇게 긴장을 했던 걸까. 전정국과 내 사이에는 이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심지어 대화 한마디 나눠보지 못했다.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후식을 먹기 위해서 요구르트 뚜껑을 뜯었다. 시원한 요구르트를 원샷한 뒤, 뜯은 뚜껑을 동그랗게 구겨서 빈 요구르트통 안에 넣었다. 요구르트는 원래 얼려 먹어야 제 맛인데. 그렇게 별 영양가 없는 생각을 하는데 불쑥, 시야에 안 뜯은 요구르트 하나가 나타나더니 정확히 내 식판 앞에 놓여졌다. 누구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집에 가서 얼려 먹어.”
“….”
요구르트의 주인을 찾기도 전에, 전정국이 먼저 말을 건넸다. 내 시선은 당연하게도 전정국 쪽으로 옮겨갔다. 전정국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띄우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요구르트 줬으니까,”
“….”
“친구들 밥 다 먹으면, 나 학교 구경 좀 시켜주라.”
사고회로가 멈춰버린 느낌이었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고,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로 잔뜩 어지러워지고, 그래서 전정국을 두 눈에 오롯이 담아낼 수 없었다.
★☆암호닉님들★☆ 농장 님 달밤 님 땅위 님 망개침침 님 아이스 님 울샴푸 님 정리 님 핑쿠리 님 ☆사담☆ 안녕하세요ㅜㅜㅜㅜㅜ 제가 너무 늦게 왔죠...? 죄송합니다... 원래 저런 애매한 곳에서 끊으려는 생각이 없었는데 분량....조절....이 필요할 것 같아서ㅠㅠㅠㅠ 뒷부분을 싹둑 잘라버렸네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자르나 안 자르나 재미 없는 건 똑같으니까요!!!!! 종일 컴퓨터만 붙잡고 있었더니 뇌가 안 돌아가는 지경에 이르러서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저도 모르겠어요..... 저번편에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 정말 감사했습니다ㅜㅜ 암호닉 정리하다가 깜짝 놀랐어요 무려 8분이라니..8ㅁ8.... 정말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 제가 우리는 친구일까 2편에서 최근에 달아주신 댓글들에는 답글을 달았는데, 소설이 올라왔을 때 달아주신 댓글들에는 (답글을 달기엔 너무 늦은 것 같아서) 답글을 안 달았거든요ㅜㅜ 그래서 이번편은 만약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바로바로 답글을 달 생각입니다.! 그럼 여러분 주말 잘 보내시고 평일도 행복하게 잘 보내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 이 중에서 어떤 게 더 읽기 편하신가요?? 1. 굴림체+가운데 정렬 2. 굴림체+왼쪽 정렬 3. 돋움체+가운데 정렬 4. 돋움체+왼쪽 정렬 밑에 투표창을 만들어놨는데 투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ㅎㅎㅎㅎ암호닉과 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