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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김태형] 오월의 소년 12 | 인스티즈


 

 

오월의 소년 












12-01







"여주야, 기출문제집은 다 풀어봤고?"

"아, 네! 다 풀었어요."

"그래, 내신 관리 중요한 거 알지? 나태해지면 안 돼."

"네, 알겠습니다."





토요일, 아침부터 내신 대비 학원 특강을 몇 시간 동안이나 듣고 막 수업이 끝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상 위에 가득 쌓인 무거운 책들을 가방 안에 하나씩 집어넣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거셨다. 나태해지면 안 돼. 웃으면서 하시는 말씀이었지만 그게 왠지 나에겐 무겁게 느껴져 가만히 웃기만 했다. 여주는 알아서 잘하니까, 뭐. 미소를 한껏 지으시곤 내 어깨를 토닥이는 선생님에 고개를 살짝 숙였다. 다음 수업을 준비하겠다며 손인사를 하고 나가시는 선생님께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뒤, 작게 한숨을 쉬었다. 물론 학원에서 날 많이 신경 써주고, 기출문제도 더 챙겨주려 하는 건 알고 있지만 은근히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내가 항상 일등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끔은 성적이 떨어질 수도 있는 건데 주위 사람들이 나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크게 느껴질 때가 있어서. 토요일 아침 이른 시간부터 정오를 넘겨서까지 수업을 듣다 보니 엄청 피곤하기도 했고, 한창 점심때인데 점심을 먹지 못해서 배가 엄청 고프기도 했다.





"아, 피곤해."





무겁게 감기는 눈꺼풀을 문지르고, 힘을 주어 가방을 어깨에 걸쳤다. 책이 많이 들어서인지 평소보다 훨씬 무게가 무거웠다. 피곤하다. 요새 한창 시험공부하느라 밤 늦게 잠드는데, 집에 가서 또 공부할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학원 복도에 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벽에 머리를 기댔다. 빨리 시험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네. 푹 자본지가 언젠지도 모르겠다. 맨날 밥도 귀찮아서 대충 때우고. 오늘은 진짜 공부하기 싫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금세 1층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엘리베이터 안내음에, 다시 무거운 가방을 고쳐 메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뜨겁게 내리쬐는 한낮의 햇살에 눈이 부셔 눈을 찌푸렸다. 그리고 순간.





"이제 끝났냐?"

"……뭐야."

"엄청 피곤해 보이네."





너무나 많이 들어본 목소리에 황급히 눈을 가리던 손을 떼고, 눈을 깜빡여 초점을 되찾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얼굴이 있었다. 막대사탕 하나를 입에 물고 학원 건물 벽에 기대어 능청스럽게 웃는 얼굴. 순간 내가 잘못 봤나 싶어 다시 한 번 눈을 비벼보았지만, 그 얼굴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왜 그래? 눈에 뭐 들어갔어? 입에 물었던 사탕을 빼고 인상을 찌푸리며 내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는 모습에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말했다.





"김태형 네가 왜 여깄어?"

"무슨 학원이 이렇게 오래 수업을 하냐, 요샌 다 이런가."

"아니, 네가 여기 왜 있냐니까?"






그래, 김태형. 학교에서 맨날 보는 그 얼굴. 단지 학교에서의 모습과 다른 점이 있다면 교복 대신 사복을 입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얀 반팔 티에 무릎이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메신저 백 하나를 걸친 가벼운 옷차림을 위아래로 훑어보다,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섰다.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는 듯 미소만 짓고 있는 모습에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그래. 이상하다 했어. 어제 뜬금없이 내일은 뭐 하냐고 묻기에, 아무 생각 없이 학원에 특강 들으러 간다고 말을 했었다. 그냥 거기에서 끝냈어도 될 대화였는데 왜인지 이상하게 학원 위치는 어딘지, 특강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듣는지 자꾸만 꼬치꼬치 캐묻기에 대답을 해주긴 했는데. 그래, 학원에 굳이 올 줄이야.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애초에 김태형이 여기에 올 이유가 없는데. 이 주위는 다 학원가인데 김태형이 수업 들으러 온 것도 아닐 테고, 그럼 진짜 나 때문에 온 건가 싶어 가만히 김태형을 쳐다보았다. 





"아니, 그니까. 내가 모르는 문제가 있어가지고!"

"뭐?"

"답지를 아무리 봐도 모르겠어, 알려줘."

"지금 이거 물어보려고 여기까지 왔다고?"

"네가 모르는 건 꼭 물어보라며. 답이 너무 궁금해서, 막! 풀이과정이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애, 아주."





김태형은 빤히 바라보는 내 눈을 이리저리 피하다가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대뜸 가방을 열어 문제집을 주섬주섬 꺼냈다. 그러더니 휘리릭 책장을 넘겨 문제집을 펴들고는, 나한테 내미는 거였다. 모르는 문제를 알려달란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 연필로 끄적인 흔적이 남은 문제집을 내려다보다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김태형을 다시 올려다보자, 김태형은 더욱 큰 목소리로 오버하듯이 소리쳤다. 풀이과정이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애, 아주! 평소에 얼마나 문제를 열심히 풀었다고 이렇게 학구열이 넘치는 거야. 굳이 모르는 문제 있다고 우리 반까지 찾아와서 물어본거 보면 영 오버는 아닌가 싶기도 하고. 보아하니 학원 앞에서 기다린것 같은데 그만큼 이 문제가 궁금했나. 그래, 여기까지 올 정도면 진짜 이 문제가 궁금했나 보다. 나는 이내 수긍하고 풀이과정을 알려주기 위해 김태형의 손에 들린 문제집을 잡았다. 그래, 잡았는데. 왜인지 김태형이 문제집을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야, 왜 안 놔. 니가 이걸 놔야 가르쳐줄 거 아니야."

"아, 날씨 너무 덥지 않냐?"

"갑자기 왜 말을 돌려. 가르쳐 줄 테니까 얼른 줘."

"나 점심 못 먹었는데. 아, 배고파."





한쪽은 김태형의 손, 다른 한쪽은 내 손이 잡고 있어 팽팽해진 문제집을 당겨보다가 힘이 빠져 손을 놓고, 김태형을 올려다봤다. 아니, 오늘따라 얘가 왜 이래? 문제집 얘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배고프단 얘길 하지 않나. 학교 밖이라 그런가 평소보다 두 배는 정신 사나워 보인다. 아까 먹던 사탕을 다 먹었는지 막대기를 쓰레기봉투에 던져 버리고, 김태형은 제 배를 손으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 나 어제 저녁도 제대로 안 먹고 아침도 대충 먹었는데……. 배고프면 공부도 안되는데…….





"일단 점심부터 먹자. 뭘 먹어야 공부가 될 것 같은데."

"야, 갑자기 웬 점심……."

"너 아침부터 지금까지 학원에 있었잖아, 밥 안 먹었지. 배 안고파?"

"나 배 안 고프,"

"……풉."





갑자기 점심을 먹자고, 넌 배가 고프지 않냐며 묻는 김태형에 학원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배고파 죽겠다는 생각을 했던 건 까맣게 잊고, 반사적으로 배가 고프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데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내 목소리보다 더 크게 튀어나온 소리가 있었다. 꼬르륵. 모르는 척 넘어가기에는 너무 크고 선명한 소리인데다가 김태형은 그 소리를 듣고 풉 웃음소리를 내기까지 했다. 순식간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니, 평소엔 꼬르륵 소리도 잘 안 났는데 오늘따라 왜 이러는 거야? 뜨거워진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헛기침을 했다. 큼, 크흠. 민망해죽겠다, 정말. 그때 톡톡,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는 느낌에 고개를 살짝 들었다. 입꼬리를 올려 씩 웃는 김태형의 얼굴이 바로 보였다. 으, 쪽팔려.





"가자, 맛있는 거 사줄게."

"뭐, 맨날 사준대. 돈 많나 보다, 너."

"나 공부 가르쳐주는 싸부님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뭐 먹고 싶어."

"……떡볶이."

"떡볶이? 콜!"





꼬르륵 소리를 분명 들었을게 분명한데 김태형은 별말을 하지 않고 맛있는 걸 사주겠다 말했다. 괜히 내가 민망해서 틱틱 대자, 김태형은 장난스레 두 손을 모아 나를 싸부, 라고 불렀다. 오글거리게 싸부님은 무슨. 뭐 먹고 싶어. 웬만하면 진짜 배 안 고프다고 우겨볼 생각이었는데, 너무 허기가 져서 그런지 내 입은 저절로 김태형에게 떡볶이, 라고 말했다. 사실 어저께부터 쭉 떡볶이 먹고 싶었거든. 내가 말해놓고 민망한 마음에 딴청을 부리자, 김태형은 자기가 아는 떡볶이 맛집이 있다며 방방 뛰었다. 자꾸 김태형한테서 대형견 마냥 꼬리가 흔들거리는 게 보이는 것 같고, 막 헛것이 보인단 말이야. 피로감에 눈을 비비며 앞장선 김태형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빨리 와, 김여주. 배고파 죽겠다."

"야, 내 가방 완전 무겁거든! 힘들어 죽겠구만."

"진작 말을 하지. 이리 줘, 들어줄게."

"아니, 드, 들어주긴 뭘 들어줘. 그냥 내가 메고 갈게."

"어허, 너 무리하면 큰일 난다. 얼른."

"아, 됐다니까!"





천천히 걷던 내 발걸음이 답답했는지 김태형은 벌써 저만치에 서서 나를 불렀다. 누군 천천히 가고 싶은 줄 아나. 어제 새벽까지 깨어있어서 피곤한데다가 가방에 책도 엄청 많이 들어서 걷기 힘들단 말이야. 가방을 고쳐메며 끙, 앓는 소리를 내자 김태형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뚜벅뚜벅 내 앞으로 다가와선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가방을 대신 들어주겠단 거였다.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얼른 가방을 제게 달라는데, 솔직히 약간 솔깃하긴 했지만 부담스러운 게 더 컸다. 아니 뭐, 막 가방 들어주고 그러는 거, 좀 이상했다. 괜히 기분이 이상했단 거지. 그래서 계속 괜찮다며 뒤로 물러났는데, 김태형은 전혀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여서 어느 순간 김태형을 앞서서 빠른 걸음으로 뛰듯이 걷기 시작했다. 나 힘 완전 세거든! 내가 들 수 있거든! 그렇게 소리치며 김태형을 뒤돌아보는데, 알다시피 김태형의 다리 길이가 나보다 훨씬 길어서, 김태형은 금방 내 뒤에 따라붙어 내 가방을 잡았다. 





"아까 힘들다고 징징대던 게 누군데! 얼른 내놔."

"됐거든요!"

"아, 얼른. 내가 들어줄게."

"내 가방은 내가 들건데에."




가방을 꼭 잡고 안 놓으려는 김태형과, 계속 콩콩 뛰며 김태형의 손을 가방에서 떨어트리려는 내 노력은 꽤 오래 지속되었고 결국 난 지쳤다. 잠깐 멈춰 서서 이마에 흐른 땀을 스윽 닦아내는데, 문득 어깨를 누르던 가방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뒤를 슬쩍 돌아봤다. 김태형이 한 손으로 내 가방을 허공에 들고 서 있었다. 뭐냐는 눈으로 바라보자 김태형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이렇게 하면 되지롱. 나도 한 고집 하지만 쟤 고집은 진짜 못 이기겠다. 결국 얼른 앞으로 걸어가라고 보채는 김태형에게 떠밀려, 난 터덜터덜 걸어가기 시작했다. 김태형의 손에 가방이 매달린 우스운 모양새로. 정작 김태형은 잔뜩 웃고 있었지만.







12-02







"문제집 줘봐."

"응?"

"아까 모르는 문제 있다며. 아직 음식 나오려면 멀었으니까 지금 알려줄게."

"지, 지금?"

"응. 빨리 꺼내봐."





그렇게 결국 떡볶이집에 도착하긴 했다. 점심 먹을 시간이라 그런가 가게 안에는 손님들이 꽤 있었고, 주문한 음식이 나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듯싶었다. 그러다 갑자기 김태형이 날 찾아온 본 목적인 모르는 문제가 생각났던 거였다. 그래서 김태형에게 문제집을 꺼내보라고 하자, 영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제 가방에서 주섬주섬 문제집을 꺼냈다. 가방도 얇아 보이는 게 문제집 하나 달랑 들고 온 거 같은데 말이야. 참, 궁금한 문제 있다고 여기까지 나오는 것도 별일이다. 카톡으로 해도 될걸. 거기까지 생각하고 멈칫했다. 그러게, 카톡으로 하면 될걸 왜 직접 찾아왔대. 직접 옆에서 들어야 이해가 잘 되는 타입인가. 고개를 갸웃하다 김태형이 펼쳐서 건네준 문제를 보고 펜을 들었다. 그러니까 이 문제는…….





"이거 저번에 알려줬던 공식 쓰면 바로 나오는 문제야. 기억나지, 내가 알려줬던 거."

"아, 맞다. 그거."

"겉보기엔 어려워 보이는데 막상 풀어보면 단순해. 잘 봐봐."





저번에 김태형한테 가르쳐 줬던 거랑 비슷한 유형인데. 공식만 대입하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젠데 그새 까먹었나. 턱을 괴고 펜으로 문제집에 풀이과정을 적어내려가며 설명을 했다. 이렇게 하면, 답 나오지? 풀이의 마지막에 점을 딱 찍고 턱을 괸 채로 고개를 들자, 문제를 보러 가까이에 있던 김태형과 눈이 딱 마주쳐버렸다. 깜빡, 눈을 깜빡이고 멍하니 있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뒤로 몸을 뺐다. 아, 암튼 이제 알겠지? 펜을 테이블 위에 탁 내려놓고 고개를 돌리자, 김태형은 헛기침을 여러 번 하더니 소리치듯 말했다. 어, 당연하지! 완전 이해가 잘 되네! 그렇게 오버스럽게 말해놓고는 잠깐의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그러게 왜 그렇게 가까이 있어선. 아, 심장 벌렁거려. 그러다, 마침 딱 타이밍 좋게 떡볶이가 나왔다. 맛있게 드세요, 주문한 음식을 내려놓는 점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포크를 들었다. 배고파 죽는 줄 알았는데 잘 됐다.





"얼른 먹어."

"잘 먹을게! 아, 맛있겠다."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며 쿨피스를 컵에 부어 밀어주는 김태형을 무시하고 입안 가득 떡볶이를 집어넣었다. 그렇지, 이거지. 양볼에 음식을 넣고 우물거리고 있으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렇게 정신줄을 놓고 마구 떡볶이를 먹고 있는데 문득, 시선이 느껴져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한 손에 포크를 들고 튀김을 야금야금 먹는 김태형이 날 빤히 보고 있었다. 뭔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왜, 인상을 찌푸리고 김태형에게 묻자, 김태형은 튀김을 마저 삼키고는 말했다. 





"너 지인짜 잘 먹는다."

"돼지 같단 거야, 뭐야."

"그런 말 한적 없거든, 바보야."

"누가 누구보고 바보래!"

"얼른 먹어, 식는다. 아이구, 잘 먹는다."

"은근 말 돌리는 것 같다."





지인짜 잘 먹는다. 그 말에 내가 얻어먹는 입장에서 너무 많이 먹었나 싶어 민망해졌다. 그래서 괜히 틱틱대는 투로 말하자, 김태형은 깔깔 뒤로 넘어갈듯이 웃더니 말한다. 그런 말 한적 없거든, 바보야. 지금 누가 누구보고 바보라는건지. 진짜 바보가 누군데. 포크를 꼭 쥐고 책상을 쿵 치자, 김태형은 그만 성내라는 표정으로 내 손을 움직여 포크로 김말이를 찍어 내 입 가까이에 가져다댄다. 못마땅했지만 김말이를 한입 베어물고 우물거렸다. 내가 뭘 먹는게 그렇게 웃긴가. 자꾸 피식피식 웃는게 은근 기분이 나쁘다. 신경쓰지 않고 열심히 떡볶이를 먹었더니 어느새 그릇은 바닥을 보였다. 쿨피스를 꼴깍꼴깍 마시는데 김태형이 물었다. 





"다 먹고 뭐 할 거야?"

"집에 가서 공부해야지. 시험이 코앞인데."

"아까 학원에서 공부했잖아. 안 힘드냐?"

"당연히 힘들지. 공부하기 싫다아."





가방을 주섬주섬 정리하며 떡볶이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있을 일들을 상상해봤다. 나는 또 집에 가서 학원에서 준 문제집 풀고, 공부하겠지. 그러다 보면 금방 새벽일 테고. 몇 주 동안 그렇게 해왔더니 잠이 부족해져 점점 체력에 한계가 오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김태형 공부도 가르쳐주면서 내 시험공부도 해야 하니 평소보다 좀 더 무리했다고 해야 되나. 티비도 잘 안보고 놀지도 않았더니 인생이 심심하고. 특히 주말엔 더 그랬다. 한숨을 푹 내쉬자, 김태형은 가방을 둘러메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가자. 그 말에 힘이 쭉 빠진 채로 가방을 메고 일어났다. 





"힘 좀 내라고 맛있는 거 먹였더니. 왜 이렇게 기운이 없냐?"

"빨리 시험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힘들어."

"안되겠네, 안되겠어."

"뭐가아."





막 떡볶이집을 나와 축 처진 채로 서 있자, 김태형은 팔짱을 끼고 날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 틀어박혀서 공부만 하다가 큰일 난다. 핀잔주듯 하는 말에 입을 삐죽거렸다. 너는 틀어박혀서 공부 좀 해라, 라고 되받아치려다 김태형의 말에 가로막혀 입을 다물었다. 안되겠네, 가자! 몇 발짝 앞서 나가며 하는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가만히 서 있자, 김태형은 답답하다는 듯 내 뒤로 와 가방을 살살 떠밀었다. 워낙 힘이 없었던 탓에 내 발은 저절로 김태형에게 밀려 앞으로 걸어나갔다. 야, 어디 가는데! 내 물음에 김태형은 씩 웃더니 말했다. 좋은데. 







12-03







"야, 뭐야."

"너 이런데 와본 적 있어?"

"이, 있어. 옛날에 한 번……."

"이거 봐, 맨날 보충 땡땡이나 치지 제대로 놀 줄은 모른다니까."





너 오백원 짜리 있냐? 가방을 내려놓으며 묻는 김태형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얼이 빠져 주위를 둘러보는데 김태형이 그 모습을 보고 풉 웃음을 터트렸다. 급 기분이 나빠져 팔짱을 끼고 쿵쿵거리며 김태형에게 걸어갔다. 그러니까 여기가 어디였냐면, 오락실이었다. 유행하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온갖 알록달록한 오락 기계들이 있는 오락실. 예전에 한번 가봤던 적이 있긴 한데, 아무튼 난 오락실에 자주 가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드라마에서나 봤지. 항상 시험 끝나고 친구들과 놀 땐 주로 영화를 보고 맛있는 걸 먹거나, 화장품을 구경하는 게 다였다. 결론적으로 난 오락실에 처음 오는 거나 마찬가지란 말이었는데, 그걸 가지고 김태형이 저렇게 신나게 웃어대니 묘하게 기분이 나빴단 말이지. 홧김에 가방을 내려놓고 기지개를 폈다. 내가 비록 오락실에 처음 오는 거나 다름없지만 널 이겨주겠어.





"뭐부터 할래? 농구게임?"

"그래! 당장 시작해."

"되게 의욕적이다, 너."





반은 타의, 반은 자의로 끌려오긴 했지만 어쨌든 온 거 재밌게 놀다 가자는 생각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농구게임기를 가리키는 김태형의 손에 들려있던 동전을 집어 게임기에 넣자, 김태형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내 뒤를 따라왔다. 비장하게 농구대 앞에 서서 내려오는 농구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리고 농구 골대를 향해 공을 던지는 순간, 내가 운동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연히 농구공은 골대에 맞고 힘없이 떨어졌고, 열심히 공을 던져봤지만 들어가는 건 몇 개 없었다. 난 대체 왜 호기롭게 이 오락기에 동전을 집어넣은 것인가. 자괴감을 느끼며 힐끔 옆을 보자, 김태형은 물 만난 고기처럼 열심히 농구공을 던지고 있었다. 던지는 족족 골인. 어쩐지 쟤 맨날 점심시간마다 운동장에서 축구랑 농구하더라. 이번 게임은 내가 졌음을 직감하고 힘없이 나머지 공을 던졌고, 당연하게도 결과는 나의 패였다. 히죽히죽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청하는 김태형이 얄미워 보여 그대로 김태형의 손을 지나쳐 걸어갔다.





"야, 딴 거 해. 딴 거."

"화났어? 넌 처음이니까 당연히 나보다 못하지이."

"딴 거 하자니까. 이거 좋네, 이거 하자."





사실 쪼오끔 화나긴 했는데, 난 쿨한 여성이니까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새로운 오락기를 찾기로 했다. 옆에서 쫑알대는 김태형의 말을 무시하고 주위를 둘러보다 눈에 띄는 걸 하나 발견했다. 총 게임. 그토록 드라마에서 많이 봤던 총 게임. 왠지 모르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얼른 게임기 앞으로 달려가 서자, 김태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따라와 동전을 넣었다. 내 앞에 놓인 총을 들어 꽉 잡아보았다. 음, 그립감이 좋은게 다 쏴버릴 수 있을 것 같아. 열심히 폼을 잡고 있는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던 김태형은 또 한 번 풉하고 웃어버리더니 물었다. 근데 너 이거 어떻게 쏘는지 알아? 그 물음에 생각해보니 쏘는 법을 몰랐다. 그냥 이렇게 누르면 되는 거 아닌가? 손가락을 달칵 달칵거리자 김태형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숨을 내쉬더니 총을 잡은 내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자, 총 쏠 때는 이렇게."

"……."

"총알 장전할 땐 이렇게 흔들어서. 알겠지?"

"아, 어."





어, 시작한다. 모니터에 스타트라는 글이 떠오르자 김태형은 바로 내 총을 잡고 있던 손을 뗐다. 아니, 뭐. 남의 손을 덥석덥석 잡고 그러나. 약간 이유 모를 민망함이 들었지만, 게임에 집중하기 위해 총을 꽉 움켜쥐었다. 이번엔 기필코 이기고 만다. 심기일전하고, 적군이 나타나자마자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겼다. 멋있게 쏴야지, 라고 생각했던 건 다 어디로 가고 어느새 마구잡이로 총알을 장전하고 아무 데나 쏘아대는 나만 남아있었다. 방아쇠를 다섯 번 당겼다 치면, 그중 하나가 명중할까 말까였다. 분명 잘 조준했는데 왜 하나도 안 맞는 것 같지? 위기감을 느끼고 옆에 서 있는 김태형을 힐끔 보자, 김태형은 나와는 정 반대로 멋있게 폼을 잡고 한손으로 목표물을 명중시키고 있었다. 아니, 쟤는 쏘면 다 맞는데 왜 난 안되는 거야? 결국 또 나는 지고 말았다.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는 김태형을 한껏 째려보다가 흥, 하고 뒤돌아섰다. 쟤는 공부 안 하고 오락실에만 왔나, 게임을 왜 저렇게 잘해? 





"딴 거 해. 저거 하자, 저거."

"이거? 철권?"

"빨리 여기 앉아."





이번에도 지다니, 분해 죽겠다. 얼른 새로운 오락기를 찾아 먼저 앉자, 김태형은 또 할 수 없다는 듯이 내 옆에 앉았다. 이거 이름이 철권인가. 캐릭터를 선택해 싸우는 게임이었는데, 그냥 막 누르면 이길수 있을 것 같았다. 캐릭터를 선택하라는 지시에 조이스틱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음, 저 예쁜 여자 캐릭터도 해보고 싶은데. 고민하다 왠지 엄청 힘이 세 보이는 남자 캐릭터를 선택했다. 근육이 빵빵한 게, 아주 잘 싸울 것 같아. 김태형이 선택한 캐릭터는 영 내 캐릭터보다 부실해 보였다. 이번엔 이길수 있어! 잠시 기다리자 게임이 시작되고, 나는 인정사정없이 두 손으로 버튼을 막 누르기 시작했다. 어떤 버튼인지도 모르고 막 눌러댔는데, 어째 내 캐릭터는 허공에 발길질만 하고 김태형의 캐릭터는 잘만 내 캐릭터를 공격했다. 아니, 이게 아닌데. 마구 버튼을 눌러봤지만 결국 내 캐릭터는 쓰러지고 말았다. 이건 배신이야, 엄청 세게 생겼으면서. 계속 지기만 하니까 민망해져서, 아무렇지 않은 척 소리쳤다. 아직 진거 아니야!





"그래, 아직 두 판 남았어."

"이번 판엔 내가 이길 거야."

"그래 그래, 이길수 있어."





이번 판엔 꼭 이기겠다고 다짐하는데, 김태형 말투에 웃음기가 섞인 게 영 날 비웃는 것 같다. 그래, 날 비웃는다 이거지. 이번엔 본때를 보여주겠어, 라고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영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김태형도 나처럼 그냥 막 누르는 것 같은데 왜 나랑 다른 거야? 이번 판도 열심히 두 손으로 버튼을 두드려봤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오히려 아까보다 더 빨리 졌다. 침울하게 가만히 앉아있자 김태형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어……, 우리 딴 거 할까? 





"됐어. 또 질걸."

"야, 그럼 우리 저거 할까? 인형 뽑기."

"인형 뽑기?"





나 스스로도 게임에 졌다는 사실 때문에 약간 삐쳤다는 게 쪽팔렸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란 거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벌써 몇 번째 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고개를 숙이고 침울하게 있는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고는 김태형이 말했다. 인형 뽑기. 그 말에 귀가 솔깃한 거였다. 인형 뽑기라면 유튜브에서 동영상만 몇번 봤지 자신 없어서 한 번도 안 해봤는데. 내가 관심이 많아 보이는 눈치였는지 김태형은 자리에서 일어나 오락실 한쪽에 있던 인형 뽑기 기계로 갔다. 뭐 갖고 싶어, 한 번 골라봐. 잔뜩 허세 부리는 표정으로 인형 뽑기 기계 안을 가리키는 김태형에, 유리에 딱 붙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다 귀여운데……. 난 이거! 마침 중앙에 부드러워 보이는 하얀색 고양이 인형이 있어 가리키자, 김태형은 알았다며 기계에 돈을 넣었다. 우와, 나 인형 뽑기 하는 거 처음 봐. 





"너 이거 뽑을 줄 알아?"

"사실 잘 못하는데, 해보긴 해볼게."






어쩐지 게임할 때랑은 다르게 긴장한 얼굴이더라. 하긴, 인형 뽑기는 다 상술이지. 일부러 집게를 헐겁게 만들어서 계속 돈 넣게 만들고. 숨을 죽이고 김태형이 조이스틱을 움직이는 걸 지켜봤다. 누른다? 인형 위에 집게를 멈춰놓고 나를 돌아보는 김태형에, 고개를 끄덕 끄덕거렸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집게가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집게는 천천히 내려가다 고양이의 머리를 집었다. 그리고 올라가나 싶었더니, 이내 힘없이 떨어졌다. 아, 잘 안되네. 머리카락을 손으로 헝클이는 김태형에, 나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김태형의 옆에 다가가 말했다. 야, 나와봐. 내 말에 김태형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어? 왜? 나는 김태형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지갑에서 천 원짜리를 꺼내 기계 안에 넣었다. 왠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내가 뽑아볼게."

"너 처음 하는 거 아냐?"

"할 수 있거든."





김태형 말대로 처음은 맞는데. 아까부터 이상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 말이야. 보니까 잘 하면 뽑을 수 있을 것 같고. 요란한 기계음과 함께 집게가 움직였고, 나는 심혈을 기울여 조이스틱을 움직였다. 딱 고양이 인형의 머리 위에 집게를 맞춘 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버튼을 꾹 눌렀다. 알록달록한 불빛이 나오며 집게는 천천히 내려갔고, 인형의 머리를 가볍게 움켜쥐었다. 좋아, 잘 잡혔어. 이대로 올라가기만 하면 돼. 제발, 제발! 버튼과 조이스틱에서 손을 떼고, 두 손을 기도하듯 모은 채로 인형을 바라보았다. 인형은 천천히 집게에 매달려서 올라가더니, 점점 인형이 나오는 곳으로 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조금만. 침을 꿀꺽 삼키고 유리창에 딱 붙어 인형이 가는 길을 바라보았고, 결국.





"됐다! 나왔어!"

"와, 김여주 좀 하네?"

"야, 나 이거 오늘 처음 한거야! 대박이지!"

"어, 대박이다. 잘하네."





고개를 숙여 기계 안에서 인형을 꺼내 품에 안았다. 하얗고 부드러운 게 꼭 치즈 같다. 치즈보다 훨씬 크긴 하지만. 이때까지 김태형한테 계속 지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김태형이 못한 걸 내가 했다는 생각에 두배로 기뻤다. 우쭐해져서 김태형에게 인형을 자랑하자, 김태형은 인형의 머리를 손으로 톡톡 두드리며 활짝 웃었다. 나는 쟤한테 게임 다 지고 시무룩했는데 쟤가 저렇게 해맑게 웃으면 내가 나쁜 애 같잖아. 쟤도 참 성격 좋다. 아무튼, 천 원짜리만 넣고 뽑아낸 인형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영 소득 없는 활동은 아니었어! 







오락실을 나오자 어느새 하늘은 노을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놀았네. 시험이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주말에 이렇게 대놓고 놀아버리다니. 가방엔 문제집들이 가득 들어있는데 나는 지금 신나게 오락을 하다 손엔 인형을 들고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 인생 역사상 최고의 일탈이었다, 이건. 근데 또 그게 나쁘진 않았다. 요새 너무 피곤했고, 스트레스도 많았는데 아예 날을 잡아서 놀아버리니까 그 스트레스가 다 해소된 기분? 마음이 후련하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맛있는 것도 얻어먹고, 한 번밖에 안 가봤던 오락실도 가보고. 계속 지긴 했지만 그만큼 재밌기도 했고. 암튼 좋았단 거였다.


한참을 이야기를 하며 걷자 금새 동물병원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요새 학교 마치곤 시험 공부 한다고 병원에도 많이 못 갔는데. 불이 켜져있는 병원을 바라보다 김태형을 돌아봤다. 보통 병원을 기점으로 헤어지곤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은 병원 바로 뒤에 있는 아파트 단지고, 김태형네 집은 여기서 조금 더 가야 하니까.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발걸음을 멈춰 김태형 앞에 섰다.





"오늘 재밌었다, 김태형."

"나도. 오랜만에 오락실도 가보고."

"아, 그리고 네 말이 무슨 뜻인지 좀 이해 가는 것 같기도 해."

"뭐가?"





재밌었다는 내 말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김태형을 힐끔 보다가, 툭 한마디를 던졌다. 오늘 놀다 보니까 김태형이 몇 번 했던 말이 온몸으로 이해가 되는 거 있지. 말할까 말까 하다, 하고 싶은 말은 꼭 해야 될 것 같아서 입을 열었다. 내 말에 궁금하단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김태형에게 말했다. 아니, 항상 너랑 공부할 때 말이야.





"내가 멍 때리고 있거나 피곤해하면, 그렇게 있어봤자 공부 안된다고 맨날 밖에 끌고 나가고 그랬잖아."

"응, 그랬지."

"나는 그게 공부할 시간 뺏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놀아보니까 또 아닌 것 같더라. 막상 신나게 놀고 나니까 피곤한 것도 덜하고, 기분도 좋아지고."

"……."

"암튼, 뭐. 그래서. 고맙다구."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를 말하자, 김태형은 씨익 입꼬리를 올려 특유의 미소를 짓곤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이거 말하고 보니까 괜히 부끄럽네. 암튼, 고맙다구. 결국에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을 더듬거리며 겨우 말해내자, 김태형은 더 환하게 웃더니 내 머리에 손을 올려 마구 헝클어댔다. 으이구, 김여주. 김태형은 소리 내어 웃으며 내 머리칼을 헝클인 덕분에 내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얼굴 위로 내려온 머리카락 사이로 김태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김태형은 내 몰골을 보고 피식 웃더니, 내 표정을 알아채곤 재빨리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살살 넘겼다. 그래서 나는 내 머리칼을 넘기려 가까이 다가온 김태형의 표정이 그대로 보였다. 아니, 이건 좀. 눈을 깜빡거리며 김태형의 얼굴을 올려다보다 어느 순간 김태형과 딱, 눈이 마주쳐버리고. 김태형은 곧바로 손을 떼고 뒤로 두 발짝 물러나 헛기침을 했다. 갑자기 또 분위기가 미묘하게 어색해져 버렸다. 그러니까 왜 머리를 막 헝클여선. 심장 벌렁거리게.





"아, 암튼. 이제 알았으면 맨날 무리하게 공부만 하지 말고, 밥도 좀 제때 챙겨 먹고 좀 쉬고 그래!"

"네, 네가 뭔 상관이야! 내가 공부하던 말던!"

"너는 내, 내……."

"뭐!"

"내 싸, 싸부님이니까 그렇지! 나 가르쳐줘야 되잖아!"





김태형 역시 어색함에 말을 더듬으며 소리를 쳤고, 나는 그냥 알겠다고 대답하면 되는 걸 당황한 나머지 시비를 걸었다. 네가 뭔 상관이야! 그 말에 김태형은 눈을 크게 뜨고 한참이나 깜빡거리더니, 손뼉을 딱 치고 소리쳤다. 내 싸부님이니까 그렇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말에 풉 하고 웃음을 터트리자, 김태형 역시 그 말을 뱉어놓곤 웃겼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여기서 싸부님이 왜 나와. 진짜 별거 아닌데, 그게 왜 그렇게 웃긴지. 그렇게 한참을 소리 내어 마주 웃고 있다가, 겨우 웃음을 멈추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아, 하여튼 웃기다니까.





"암튼, 오늘 놀아줘서 고맙다. 월요일에 보자."

"그래, 조심히 들어가."

"……아, 맞다. 자!"

"뭐야?"





병원에 도착한지 십분이 넘어서야 겨우 작별 인사를 하고 막 돌아서려는데, 문득 좋은 생각 한 가지가 떠올랐다. 말로는 내가 김태형을 가르쳐주는 수업비로 김태형이 내게 맛있는 걸 사준다지만, 실제로 내가 큰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오늘도 거하게 얻어먹었는데 오락실에서까지 김태형이 거의 다 돈을 냈으니. 너무 날로 먹는 것 같아 미안해진 거였다. 학생들이 용돈을 엄청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뒤돌아서서 김태형을 불렀다. 아직 그 자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곳에 있던 김태형이 뭐냐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고, 나는 달려가서 김태형에게 손에 들고 있던걸 내밀었다. 인형이었다. 아까 내가 인형 뽑기 기계에서 뽑은 하얀 고양이 인형. 초롱초롱 빛나는 귀여운 인형의 눈을 내려다보다 날 바라본 김태형의 얼굴엔 약간의 어이없음이 담긴 웃음이 걸려있었다. 어서 받으라며 인형을 내밀자, 김태형은 결국 그걸 받아 손에 쥐었다.





"이걸 왜 날 줘."

"가져, 고마움의 표시니까."

"이거 들고 집까지 가라고?"

"왜, 가오 죽냐? 얼른 받아. 이걸 보면서 치즈를 생각하라고."

"그래, 고맙다. 잘 간직할게."

"큰맘 먹고 주는 거니까 잘 가지고 있어."





지금 줄게 인형밖에 없단 말이야. 얼떨결에 인형을 품에 안게 된 김태형의 표정은 황당 그 자체였다. 털도 복실복실하고 눈도 초롱초롱한게 귀엽기만 하구만. 내가 가지려다가 큰맘 먹고 주는건데. 강요하듯이 김태형에게 인형을 쥐여주자, 김태형은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 위에 두고 먼지 안 묻게 잘 털어주겠단 약속까지 꼭 하고. 나 이제 진짜 간다! 마지막으로 인형 머리를 톡톡 두드리곤 손을 흔들며 돌아섰다. 


빠른 걸음으로 저 앞까지 나아갔다가, 잠깐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봤다. 꽤 부피가 큰 고양이 인형을 손에 쥐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김태형의 모습이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다. 풉 웃음을 터트리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조심스럽게 그 뒷모습을 찍었다. 이건 두고두고 남겨둘 진풍경이야. 나중에 이거 가지고 김태형 놀려야지. 저장된 사진을 보며 웃다가, 다시 발에 힘을 주어 걷기 시작했다. 노을이 져가며 붉게 물든 하늘이 유독 예뻤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선선하고, 나뭇잎 냄새도 좋고. 왜인지 모르게 자꾸만 웃음이 입꼬리를 비집고 나오는 그런, 그런 기분. 아, 기분 좋다.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자꾸만 심장이 기분 좋게 뛰는 거, 그게 참 좋다. 















*

안녕하세요, 티티입니다! 오늘도 겨우 일주일에 글 하나 쓰기 목표를 달성했네요. 

오늘은 좀 편안한 느낌으로 글을 써봤어요! 항상 공부만 하면 금방 지치니까 한 번쯤은 신나게 놀아줘야죠!

물론 여주는 집에 가서 또 열심히 논만큼 공부를 하겠지만요. 이과 1등이니까요 ^!^

항상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님들 감사드리고 다음 편으로 만나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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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뜌입니다ㅠㅠ 이번편도 정말 잘 읽고가요ㅠㅠ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도움이 잘 되는것 같아서 더욱 보기 좋네요ㅠㅠ 작가님 항상 글 감사합니다❤❤
6년 전
독자2
ㅈㅁ입니다
아 태형이가 그야 넌 내..!! 다음에 뭔가 다른 할말이 있었을거 같은데요 히히 정말 태형이같은 남사친 있으면ㅠㅠㅠ휴 둘이 너무 보기 좋아요 순수하고 이뻐요ㅠㅠㅠㅠ

6년 전
독자3
앗 오늘제대로데이투했군여 .. 이제시험망할일만남았 ...따흑 아니야 여주는이과일등이니까 다죽인다 ㅠㅠㅠ
6년 전
독자4
워더에요ㅠㅠㅠㅠㅠㅠ부럽다ㅜㅜㅜㅜㅜㅜㅜㅜㅜ학교에 김태형가튼 사람도닛구ㅠㅠㅠ여주는 이과탑이구ㅠㅠㅠ난 슬애이긔....
6년 전
비회원78.31
청록입니다!!태형이가 여주 기분전환시켜주려고 일부러 기다리고있었어요ㅠㅠㅠ뭔가 진짜 태형이가 고등학생이었으면 이랬을것같다고 생각했던부분이라 많이 비슷한것같아서 더 설레네요 이제는 둘이 정말 서로힘이 되어주는 사이가 돼서 그런지 분위기가 더 포근해지고 편안하게 느껴져요
6년 전
독자5
태형이도 이제 뭔가 여주를 좋아하는 티가 좀 많이 나네요!ㅎㅎ 풋풋한 둘은 언제나 보기 좋은 거 같아요(о´∀`о)
6년 전
독자6
얘네 진짜 풋풋한게 너무 보기좋다ㅠㅠㅠㅠㅠ
6년 전
비회원110.169
봉이 입니당!! 앍 진도진도가 시급해요오!!! 막 근질근질합니당~~~누가 입꼬리좀 내려줘요오~~~ 감사합니당!
6년 전
독자7
[웅앵웅]
태형이가 여주가 학원 끝날 때까지 기다린 걸 보면 여주랑 놀고 싶었나봐요 오늘 둘이 한 거 완전 데이트같아서 설렜어요ㅋㅋㅋ

6년 전
비회원73.46
나까지 간질거리는 기분 꺅 나도 저런썸 좀 타보보 싶네
6년 전
독자8
핫초코
와우 이 간질간질한 느낌
과연 둘은 어떻게 할 지 궁금하구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6년 전
독자9
둘이 넘 풋풋하고 좋아요ㅠㅠㅠ
6년 전
독자10
앜 ㅜㅜㅜ흰티에 찢청 메신저백 ㅜㅜㅜㅜㅜ김태형 패완ㅇ얼.. 그나저나 이런 소소한 일탈 넘나 풋풋하자나요ㅠㅜㅜㅜㅜ아 부럽다..저는 언제..(까마득) 그나저나 김태형 알라부써마칭 그 뒷모습 나더 참 궁금해 여주야 ㅎㅎㅎㅎㅎㅎㅎㅎ 뭔가 누군가가 여주의 물건들을 노리고 있는 것 같은데..흠
6년 전
독자11
마지막 장면이 자꾸 머릿속에 그려져서 설레네요! 풋풋함이 좋네요 잘읽고가요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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