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건아, 너밤이랑 싸우지 말고 누가 너밤이 괴롭히면 이건이가 지켜줘야 해. 알겠지? 너밤이 너도 마찬가지고. 둘이 싸우지 말고. ”
“ 네, 엄마! ”
“ 네! ”
너는 내가 지켜야 할 존재였다.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던 말이었다. 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도움이 되는 존재로 지내라고.
다행히도 우리는 싸운 적이 몇 번 없었고 쌍둥이처럼 붙어 다니면서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내가 부산으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
내 기억으로는 덤덤하게 대학교 때같이 다니자며 헤어졌던 것 같은데 부산 와서 엄청 울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너도 똑같이 며칠을 울었다고 했다.
태어나서부터 같이 있었는데 막상 떨어지니 허전함이 커서 그랬었나.
그렇게 간간이 연락하며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1학년 겨울 방학을 맞았을 때 외국으로 가자는 부모님의 제안이 있었다. 결정까지 꽤 오래 걸렸던 것 같다.
새로운 걸 좋아하는 나는 외국으로 가려고 했었지만 괜히 서울에서 내려올 때 한 약속이 걸렸다. 대학교 때 만나자는 말 하나로 악착같이 공부했다.
어디든 원서를 쓰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성적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맞닥뜨린 외국 제안은 나에게 큰 혼란을 주었다.
“ 외국 대신 서울로 가고 싶어요. ”
“ 괜찮겠니? 서울에서 혼자 살아야 할 텐데. ”
“워너밤 있잖아요. 걔랑 놀면 되니까. ”
한 달이 걸린 결정이었다.
그리고 바로 나는 전학 준비를 했고 다행히도 네가 다니는 학교에 전학이 가능해 절차를 밟고 부모님은 외국으로, 나는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 오랜만이다? 야, 너 왜 이리 키가 커졌냐. ”
“ 니가 땅꼬마는 아이고? ”
이사 첫날부터 도와주시겠다며 ##워너밤의 부모님이 오셨다.
그리고 짐 푸는 게 끝날 즘 네가 집으로 들어왔고 6년 만에 본 얼굴은 어릴 적 모습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많이 달라졌다.
눈높이가 같던 초등학교 때와 달리 차이가 꽤 났고 힘겨루기 할 때 비슷했던 너는... 그래, 나보다 약할 뿐이지 센 것 같았다. 그건 변하지 않았구나.
잘 지냈냐며 인사를 건네는 너와 악수를 할 때 난 내 결정이 인생 최고 잘한 일이라고 느껴졌다.
“ 연속 2년 같은 반이라니. 누나를 너무 따라다니네 우리 동생. ”
“ 뭐라카노. 오빠가 그리 좋나. 2년 내내 따라다니그로. ”
“ 아니거든? ”
“ 그라면 내도 아인데? ”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 모두 같은 반이 된 우리는 별 어색함 없이 초등학교 때처럼 잘 지냈고 그렇게 힘들다는 고3도 잘 보내고 있었다.
여름이 지나고 수시 철이 되자 선생님과의 상담이 여러 번 이루어졌다.
서울에 와서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런지 상위권도 노려볼 만하다는 말씀에 3개는 상위권, 3개는 너와 맞춰서 쓰게 되었다.
심리학과. 부산에 있을 때 관심이 있던 과는 아니었지만 서울에 와서 너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목표가 심리학과인 걸 알고 쓰게 되었다.
결과는 운이 좋았던 건지 6개 모두 합격. 당연히 가장 높은 곳으로 가보라는 선생님의 말보다 네 결정이 더 중요했다.
물론 너 역시도 경영 쪽으로 가보라고 했지만 나란히 같은 학교 같은 과로 진학했다.
“ 넌 왜 여기로 왔어. 더 높은 곳으로 안 가고. ”
“ 니는 와 여기로 왔는데. ”
“ 난 내가 가고 싶은 과였으니까. 심리가 좋아서. ”
“ 내도 이게 내 가고 싶은 과다. ”
네가 좋아서.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아마 너랑 한 약속보다 네가 좋아서 여기에 온 것 같다.
같은 학교에 진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은 집을 나란히 붙여 구해주셨고 심심하면 서로 집에 놀러 갔던 것 같다.
과제며, 시험공부며 그리고 학생회 일까지 같이 하게 되었고 입학부터 술자리란 술자리에는 항상 같이 다녔으니 사귄다는 소문은 당연히 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때마다 아니라고 확실하게 못을 박았고, 둘 다 사실이 아닌 소문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편이라 계속 둘이서 다녔던 것 같다.
“ 좋아해. 너는 어때? ”
무사히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이 되자마자 학회장 선배에게 고백을 받았다. 당연히 대답은 거절. 괜찮다며 웃는 모습 뒤에는 화살이 너에게로 가는 걸 느꼈다.
한 번은 말을 꺼낸 적도 있지만 괜찮다며 신경 쓰지 말라는 말에 나는 최대한 옆에 있기로 했다. 적어도 나랑 있을 때는 안 건드는 걸 느꼈으니까.
“ 안녕하세요 선배님! ”
“ 왔나, 우리 후배님들 ”
그러다가 3월 중반쯤 16들을 정식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춤 동아리에서 눈에 띄는 후배가 있었는데 걔가 바로 우진이었다.
성격도 좋고, 춤도 잘 추고, 우리 과고. 거기다 부산에서 왔다고 해서 친해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따로 몇 번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한 날은 너와 인사를 하길래 물어보니 같은 토론 동아리라고 한다. 저번에 애 멘탈을 턴 게 너였구나.
그 날 내내 저기압이었는데. 같이 술도 마셨다는 네 말의 말에 조금 마음 한편 이 뒤틀리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셋이서 나름 잘 지내고 있었다.
“ 괜찮겠어 진짜? 난 정 미루기 힘들면 엄마한테 부탁드릴까 싶었는데. ”
“ 안 괜찮은 건 뭐가 있노. 어차피 큰 아부지나, 어무이나 바쁘시고 사돈 어르신들도 바쁘다메. 어차피 곧 방학이라 괘안타. 옆집에 ##워너밤도 있고. ”
“ 그래, 그러면 일단 너희 형수한테도 물어볼게. ##워너밤이야 아내랑도 친하고. ”
그렇게 1년이 지나 3학년 중반을 달리고 있는데 오랜만에 지성이 형이랑 통화를 하다 급하게 출국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조카를 맡게 되었다.
원래 아기를 좋아했고, 옆에 너도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아기를 좋아한다고 잘 보는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건 조금 후의 이야기.
“ 가지 마라. ”
“ 뭔 개소리야. ”
선호가 온 첫 날 달래다 정말 애가 목이 다 쉬겠다 싶어 너를 불렀는데 무슨 자신감으로 가려는 걸 잡았는지 모르겠다.
자연스럽게 거실로 나와 이불을 덮고 버티니 먹히지 않을 줄 알았는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막상 자려고 눈을 감으니 잠이 안와 그날은 푹 자지 못하고 잤다 깼다를 반복했었다. 어느 누가 좋아하는 사람과 한 집 안에서 지내는데 편하게 잘 수 있겠는가.
그날 밤은 첫 수학여행을 가기 전 날 밤보다 더 설렜다.
“ 우진이가 선호한테 잘 가더라. ”
“ 다음에 우진이가 키즈카페 오라던데. ”
그리고 선호가 온 뒤로 생각보다 갑자기 더 친해진 우진이가 걸렸다.
가장 좋아하는 후배이기는 하지만 친해진 만큼 눈치는 빨라졌고 우진이가 워너밤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괜히 질투가 나서 틱틱거리기도 했다.
“ 회식 있다는데요? ”
그날은 유난히 보내기 싫은 날이었다. 1학년 때 부딪혔던 복학생 선배도 온다는 말에 더욱더 그랬다. 뭔가 불안했고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선호 돌잔치 장소를 예약하고 나서 저녁 시간이 되어 너까지 집을 나가고 난 뒤 선호마저 잠에 들자 그다음부터 심심해 죽는 줄 알았다.
카톡을 남겨봐도 오랜만인 회식 자리에 즐겁게 놀고 있는 건지 답도 없고 나중 되어 확인해보니 1은 사라졌지만 답은 없는 걸 보고 교수님께 잡혔거니 생각하고 넘겼다.
“ 흐으, 히끅, 으애애애앵! ”
“ 선호야... 깼나... 다시 자가 우리. ”
문제는 그다음 날 새벽에 일어났다. 보통은 칭얼거리고 마는데 크게 우는 선호에 벌떡 일어나 다시 재우려고 토닥이는데 선호 몸이 뜨거운 걸 느꼈다.
이마에 손을 대보고 작은 몸에도 손을 얹어봐도 똑같았다. 선호가 아프다. 이 결론을 내린 바로 너에게 전화를 걸고 문자를 하고 카톡으로 연락을 했다.
하지만 감감무소식인 반응에 선호에게 옷을 입혀 아기 담요로 감싼 후 뛰어나갔고 바로 택시를 잡아 대학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접수를 하고, 진찰을 받을 때까지도 연락은 없었다. 너무 불안한 나머지 성우 형에게 연락을 했고 고맙게도 바로 달려 나와 주었다.
“ 다니엘, 전화 온다. 진동 울려. ”
“ 어, 어? 행님 잠만. 마, 워너밤. 이제 전화 하나. ”
[어... 행님 저 우진인데요.]
“ ...어. ”
[ 그... 누나가 많이 취해서 일단 업고 집까지는 왔는데 집 비밀번호를 몰라서... 계속 물어봐도 다 틀리고 그래가꼬... ]
“ ...1211. 금마 단순해 가꼬 호실 그대로다. 많이 취했나. ”
[ 오늘따라 쪼매 마이 마셔가꼬 그런 것 같은데 일단 누나 눕히고 나중에 연락 드릴게요. ]
“ 우진아. ”
[ 예? ]
“ 아이다. 고생했다. 들가라. ”
[ 예.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대놓고 좋아하냐고 물어볼 배짱도 없었다.
그리고 물어볼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좋아한다는 대답이 돌아오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도 잘 안다. 이 상황이 싫었다.
아픈 선호를 놔두고 새벽 4시 넘게 술을 마시고 들어온 워너밤도 싫었다. 그 아이의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탓하게 되는 나 자신도 싫었다.
선호 퇴원시키면 비밀번호부터 바로 바꾸자고 해야지. 이 와중에 그 생각이 드는 내 마음도 싫었다.
“ 너밤이도 착했대? ”
“ 어... 그런갑다. 우진이가 데려왔는 갑다. 오랜만에 마이 마셨는 갑더라. ”
“ 또 신경 쓰이겠네. ”
“ 뭐... 우짤끼고... 어쩔 수 없는 기지. ”
“ 조금 있다가 수속 밟고 오면 될 거야. 아, 아기 수첩 같은 거 있으면 도움 될 것 같은데. 없어? ”
“ 아마 집에 있을 낀데. 갔다 오까. ”
“ 선호 내가 보고 있을 테니까 갔다 와. 너도 놀랬을 텐데 바람도 쐴 겸. ”
“ 미안타 행님아. 일단 갔다 오께. ”
그렇게 병원 1층으로 내려와 널 만났을 때 사실 반가웠다. 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고 선호가 입원한 호수만 말해주고 그대로 지나쳐 집으로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한 것은 아기 수첩을 챙긴 것이 아닌 서랍 안에 꼭꼭 숨겨둔 담배를 찾아 물었다.
대학 와서 호기심에 선배들과 피웠던 담배는 얼마 안 가 너로 인해 끊게 되었고 그때 마지막으로 산 담배가 아까워 뜯지 않은 그대로 몰래 한구석에 박아 넣었다.
라이터를 껐다 키기를 반복하다 결국 내려놓았다. 너 때문에 힘들어 담배를 물었는데 몸에 안 좋다며 끊으라는 네 모습이 생각나 피지도 못하고 그대로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나도 참 중증이다. 아기 수첩을 챙겨 병원으로 가니 병실 앞에 지금은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 보였다.
그냥 지나치려 하는데 손목을 잡는 네 행동에 여태 묵혀놓은 감정이 터져 나왔다. 널 향한 원망이 아닌데 괜스레 너에게 향하게 되었다. 상처받는 얼굴이 보였다.
마음이 시려왔다. 날 좀 봐달라는 애정의 갈구가 너에게는 상처가 되어 박히게 되었구나. 그리고 그 상처가 다시 나에게 꽂혀 상처를 남기는구나.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는 듯 주먹을 꾹 쥐고 어렵게 말을 이어가는 네 모습에 당장이라도 네 손을 펴주고 싶었다. 저렇게 쥐면 상처 나는데.
정말 한심하게도 나보다 네가 걱정되었다.
“ 니 동생이잖아. 내 동생이야? 난 그냥 도와준 것뿐인데 내가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진짜 하나하나가 후회돼. 내가 왜 그런 부탁을 들어줬는지. 왜 선호를 만났는지. ”
이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 뒤를 잇는 말들을 듣다 보니 또 나중에 후회할 걸 알면서도 감정에 못 이겨 말을 한다는 걸 깨달았다.
저번에는 이렇게 아픈 말들이 아니었는데 오늘은 되게 아프네.
“ 좋아한다. ”
이렇게 말하려고 한 건 아닌데.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좀 더 근사한 곳에서, 멋진 옷을 차려입고, 좀 더 용기를 가지고 하고 싶은 말이었는데.
이미 뱉어버린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에 후회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너는 주저앉았다. 지금 너를 일으키면 어떤 답이 나올지 몰라 불안해 놔둘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도망쳤다. 병실 안으로 들어와 문에 몸을 기댔다. 멀어져 가는 발소리를 듣고 나 또한 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성우형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봐도 답할 수 없었다.
짝사랑이 끝났다.
안녕하세요 22개월입니다.
오늘도 숨김 기능은 되지 않는군요...ㅂㄷㅂㄷㅂㄷ
그리고 이번 편은 다니엘 혼자만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노래도 넣고 배경도 어둡게 해봤어요 ㅎㅅㅎ 과연 다니엘과 여주의 운명은?!?!?
제가 암호닉을 어떻게 정리를 해야할까 고민중이라 안 올리고 있는데 신청 되는거니까 걱정 하지 마시고 신청 해주세요! 제일 최근 편에다가요!
그리고 15편까지 받을 예정입니다. ㅎㅅㅎ
그럼 이만 전 가보겠습니다! 여름 감기가 걸린 것 같네요.. 껄껄.. 다들 늦은 더위와 냉방병 조심하세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