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bristophilia 01 |
아침부터 집 앞 우체통을 빼곡히 채운 신문들을 가져와 지호형에 관련된 기사가 하나라도 나왔는지 한 장씩 빠짐없이 살펴보는 것은 내 하루를 시작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행사, 말하자면 셔츠의 첫 단추를 끼우는 것과도 같았다. 한 글자라도 놓칠까 싶어 한 장씩 꼼꼼히 보던 중, 드디어 찾았다. 지호형이 나온 기사. 내용이 뭐든 중요치 않다. 형만 볼 수 있으면 되니까. 기사를 정성스레 잘라 벽에 테이프로 꼼꼼히 붙여 형의 얼굴을 한 번 쓰다듬은 후 몇 걸음 물러나 감상을 했다. 형의 기사로 가득 찬 벽 한쪽 면은 매우 만족스러웠고, 벽에 붙은 형의 얼굴들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확인하고 또 했다. 형이 신문에 나오지 않는 날이면 아침부터 자기전까지의 기분은 깔끔하지 못하고, 셔츠의 첫 단추가 어긋난 것처럼 하루가 삐걱대는 듯했고 그로 인해 집 밖 어디에도 가지 않은 채 형이 가득한 벽에 기대 시간이 지나길 기다릴 뿐이었다. 테이블 위는 정리되지 못하고 쌓인 편지지와 봉투들이 가득했으며, 오늘도 형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쌓인 종이 더미 안에서 새하얀 편지지 한 장을 꺼내 펜을 들었다. 내 속에 담긴 감정들을 형에게 전하기 위한 것인 만큼 정성스레 꾹꾹 눌러 써내려갔다. 너무 눌러 쓴 탓에 먹이 닳기도 전에 망가져 쓰레기통에 들어간 볼펜들만 해도 한 박스는 나올지도 몰랐다. 할 말은 무진장 많다. 평소에 있었던 일을 일기처럼 쓰기도 했으며 빠짐없이 안부를 묻기도 하고, 응원도 했으며 가끔은 고백도 했다. 물론 내 진심은 고백으로만 편지지를 빼곡히 채우고 싶을 뿐이었지만, 형이 나를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조금 더 컸기에 일상적인 얘기도 곁들이는 것이었다. 내게 지호형은 영웅이었으며, 심적으로만이 아닌 외적으로도 의지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기사에서 흔히 말하는 희생자들은 형을 더 돋보이게 하는 도구일 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희생자들에 관한 기사들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듯한 지호형에게 거슬리는 족쇄가 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희생자라니? 세상 사람들의 단어 선택은 옳지 않아 보인다. 희생자는 오히려 형이겠지. 형은 타당한 이유가 있기에 행동을 행한 것이 틀림없다. ㅡ 화창하게 햇빛이 비치는 바깥 날씨는 최상의 기분을 유지하게 시키는데 한몫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형에게 편지를 부치고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디지털기기 판매점 앞은 어쩐 일인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근처로 가니 진열대에 달린 벽걸이 TV에서 뉴스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속보 '우지호' 재판 1심 무기징역 선고. [인스티즈 뉴스속보]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이태일 부장판사)는 연이어 20대 여성을 납치해 성폭행 후 살해한 혐의(살인 등)로 구속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우지호(27)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자신과 관계없는 피해자를 성폭행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한 뒤 근처 뒷산에 묻는 범죄를 저질렀다.”며 “우리 사회의 근간을 저해하는 반인륜적 범죄를 수차례 저질러 놓고도 반성의 기미나 개선의 여지가 없어 무기징역이 불가피하다”며 무기징역 선고의 이유를 설명했다. 어, 지호형이다. 재판을 치르고 나오는 형은 매일 신문에서 보이는 모습처럼 오늘도 싱글벙글이다. 당당하고 여유롭게 손을 흔드는 형은 마치 슈퍼스타인 것 같은 느낌도 들게 했다. 역시나 멋진 사람이다. 윙크하며 오른손 검지로 카메라를 가리키는 듯한 행동은 필히 내가 보낸 편지를 전부 읽어봤다는 내게 보내는 신호일 것이다. 눈앞에서 형을 보고 싶었다. 불과 얼마 전 면회를 다녀왔건만 여전히 보고 싶은 마음은 줄어들 기미조차 없다. 지호형에게 당장에라도 달려가고 싶지만, 형은 재판으로 피곤할 테니 당분간 참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속보는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그에 따라 나 역시 행복한 기분을 마음껏 누리는 중이었다. "저 정신병자는 사형시켜도 모자라. 어휴 무서워서 세상 살아가겠어? "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지만, 그따위의 말을 뱉은 사람은 금세 어디론가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정신병자라니, 오히려 그 사람이 미친 것이 틀림없다. 사람 볼 줄 모르는 눈은 둬서 뭐할래. 우리 지호형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데. 하긴, 나한테 멋져 보이는 형을 다른 사람들도 멋있다. 여기면 의미가 없다. 나만의 형이니까. 아- 형이랑 단둘이 어디론가 떠나서 나만 죽도록 형을 보고 싶었다. ㅡ "미친 새끼, 오늘도 슈퍼스타 납셨더만. 자, 표지훈인가? 아주 네 열성 팬이더라?" 무심하게 앞에 툭 던져지는 편지 더미에 벽에 기대앉아 있던 지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비꼬듯 얘기하는 교도관을 째려보다 편지 더미를 주워들어 쓰레기통에 툭 던졌다. 게이 새끼 주제에 같은 좆 달린 게 뭐가 그리 좋은건지. 나 같으면 사양하겠구만. 쭉쭉빵빵에 말캉말캉한 촉감을 상상하던 지호의 머릿속에 겹치는 지훈의 얼굴에 쯧- 혀를 찼다. 우지호가 바라는 것은 여자와 꿈, 딱 두 가지뿐이다. 이름을 널리 알려 세상 누구라도 자신의 이름을 모를 수 없게 하는 것. 그게 지호의 꿈이었다. 어떤 계기로 이름을 알리게 되는지, 그 이유 따위는 상관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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