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아 죽겠어. 내가 신입생도 아닌데 내일 갈 엠티를 준비하는 이유는 며칠 전 부터 암암리에 계획되어 온 불문과와 전자공학부의 만남 때문이었다. 신입생들 노는 곳에 눈치없이 끼는 것 같아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성이름 너도 가는거지?"
"나 진짜 귀찮을 것 같은데..."
"안오면 하성운은 니네 과 여자애랑 놀아야지 뭐."
옹성우의 깐족거림은 당해낼 수 없었다. 우리는 사귀기로 하고난 후 바로 그들에게 들켜버렸고 놀림감이 되었다. 옹성우는 아마도 날 이용해 우리 과 여자애들이랑 어떻게 해보려는 것인데, 난 옹성우가 둔 수에 넘어 갈 수 밖에 없었다. 하성운은 간다고 했었거든. 어쨌든 그래서 엠티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부러 짐도 미리 다 싸놓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망했다."
꼭 무슨 일이 있을 때만 침대가 날 붙잡는 것 같다. 분명히 일어났었는데 다시 한 번 더 일어나버렸고 당연히 시간은 모이기로 한 시간을 훌쩍 넘어있었다.
부재중통화
옹성우 (1)
하성운 (12)
핸드폰을 확인하고는 내 머리를 두어번 때렸다. 하성운한테 바로 전화를 걸었고 통화음이 두어번 울리더니 바로 연결되었다.
"야.... 나 어떡해."
[지금 일어났지?]
"응..."
[빨리 준비하고 나와.]
"너도 아직 안갔어?"
[니가 안왔는데 어딜 가. 집 앞에 있으니까 준비하고 나와.]
나는 그 말에 알겠다고 대답한 후 바로 씻고 화장을 했다. 꼭 촉박할 때마다 준비가 더 잘되는 느낌이었다. 준비를 다 하고 미리 챙겨놨던 짐을 들고 빠르게 집을 나섰다.
"하성운!"
오래되진 않았지만 꽤 오랜만에 보는 하성운이 반가웠다. 하성운은 차 안에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나와서 내 짐을 받아줬다. 그러면서 내 머리에 딱콩을 갈겼다.
"내가 너 이럴 줄 알았지."
하성운의 팔에 달라붙으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이런 적은 없었는데 오늘은 내가 잘못한거니깐...
"진짜 성이름이는 나 없었으면 어쩔 뻔 했어."
금세 자만해진 하성운을 보며 표정이 약간 굳어짐이 느껴졌지만 이번만큼은 좀 져줘야 할 것 같다.
"그래~ 진짜 어쩔 뻔 했어. 가자 가자."
목적지는 부산이라 했다. 여기서 부산까지 운전해야 할 하성운이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나는 둘이서만 있을 시간이 많다는 점이 좋았다.
"근데 진짜 오래 걸리겠다. 너 옆에서 자기만 해봐."
"야 내가 늦잠까지 자고 와놓고 여기서도 자겠냐. 그게 사람이냐.."
하성운은 시동을 걸며 자신의 손을 폈다. 아마도 내 손을 달라는 의미인 것 같은데 한 손으로 운전하겠단 거야?
"위험해. 두 손으로 해."
"안 위험해."
하성운은 가방 위에 두었던 내 손을 가져갔고 금세 그냥 잡았던 두 손을 깍지로 바꿔 끼웠다.
"가면 사람 많아? 안그래도 니네 과 사람 진짜 많잖아."
"그럴걸? 근데 아마 우리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없을거고 우리보다 한두살 적은 애들이 많을거래."
"아..."
한참을 달리던 와중에,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나는 지금 잠이 온다고. 그렇게 나는 사람이 아니었고 지각을 한 주제에 조수석에서 잠이나 자는 파렴치한이 되어 버렸다.
"잠 오면 좀 자. 깨워줄게."
"아니야. 나 절대 안 자."
"괜찮으니까 좀 자둬."
"....아니야. 절대 절대."
하성운은 붙잡은 손을 자기 볼에 가져가더니 자신의 볼에다가 가볍게 부볐다. 얼굴엔 옅은 미소를 띄었고 그 뒤로 아무 기억이 없다. 왜냐면 방금 일어났기 때문이다. 난 분명 잔 적이 없는데 일어나버렸다. 괜히 느껴지는 데자뷰와 함께 하성운 생각이 나 슬금슬금 하성운의 눈치를 봤다.
"...힘들었지."
"완전."
할 말이 없었다. 오늘 누가 하성운한테 술을 권하면 몽땅 내가 마셔주겠노라 다짐했다. 다들 모여있다는 곳으로 가니 옹성우와 황민현이 보였다.
"야 성이름~"
"안녕."
"너 왠지 차에서도 잔 얼굴이다?"
"....그럴리가."
뜨끔했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방 안에 하성운과 나의 짐을 내려놓고 나오니 벌써부터 술 판이 시작되었다. 근데 옹성우랑 황민현은 둘이서 놀거면 도대체 왜 우리 과랑 같이 오는 걸 기대했던 거야?
"니네 계속 둘이서만 있었어?"
"우리가 숫기가 없어서..."
"웃기시네."
옹성우가 숫기가 없다는 말은 좀 웃겼다. 나도 어차피 아는 얼굴도 많이 없었기 때문에 옹성우와 황민현 주변에 앉았다. 하성운은 담배를 피러 나갔다. 내가 담배 저걸 언제 한 번 다 버리던가 해야지.
"마실래?"
"니네 진짜 궁상맞아 보여."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공대 남자애들은 다 우리 과 여자애들이랑 있는게 보였다.
"괜찮아..... 우린 이름이가 있잖아.."
내가 있다면서 황민현 넌 왜 눈물을 훔치는데....
"저기.... 형."
"어?"
그때 한 남자가 옹성우 옆으로 와서 말을 걸었다. 이 과는 아마도 얼굴보고 뽑는게 분명하다. 그리고 이게 사실이라면 입학사정관들의 안목은 아주 나이스다. 그 남자애와 작게 대화를 나누던 옹성우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음흉한 미소를 지어댔다.
"야 이름아 얘도 합석해도 되지?"
"어 상관 없어."
그 애는 바로 옹성우 옆에 앉았고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는게 눈에 보였다.
"저...누나."
부끄러워 하는 모습과 달리 은근히 붙임성이 좋아보였다.
"누나 불문과시죠..?"
"응."
"저는 전자공학부 17학번 박지훈이에요!"
"그렇구나..."
잘생겨가지고 또박또박 자기 소개를 하는데 엄청 귀여웠다.
"아, 나는 불문과 15학번이고,"
"이름은 성이름. 불문과 여신이래."
옹성우는 쓸데없는 사족을 달며 깐족댔고 황민현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옆에서 박지훈은 그저 베시시 웃기만 했다.
"저 누나 페이스북에서 봤어요!"
"어..?"
"우연히 봤는데 너무 예쁘셔서..."
베시시 웃으며 이런 말을 하는 박지훈에게 녹아내리지 않을 여자가 어디있을까 싶을 정도로 웃는게 예뻤다.
"어.. 고마워."
"하... 내가 학교 다니는 동안엔 전쟁이 없길 바랬는데..."
옹성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고 뒤에선 누가 내 어깨를 감싸며 앉았다. 보지않아도 하성운임을 알 수 있었다.
"어? 지훈이네?"
박지훈은 하성운이랑도 친한 듯 해보였다.
"아.. 안녕하세요 형."
박지훈은 전보다 굳어진 표정을 보였고 울상인 표정으로 물었다.
"누나 혹시 남자친구 있어요...?"
"응? 어 있는데?"
나는 검지손가락으로 하성운을 가리키며 대답했고 하성운은 내 검지 손가락을 쓰다듬으며 나와 박지훈을 번갈아 쳐다봤다.
"아... 그렇구나.."
"..성우형."
옹성우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무음의 웃음을 내뿜었다.
"형이! 누나 남자친구! 없다고! 했잖아요!"
박지훈은 옹성우의 어깨를 내리쳤고 옹성우는 동생에게 맞아도 그저 좋은지 계속 웃었다.
"뭐야 지훈이 너도 성이름 좋아했었어?"
"어~ 그랬대~ 우연히 봤는데 너무 예뻤대~"
"야아 그만해."
나는 계속 웃으며 깐족대는 옹성우를 말렸다. 그렇게하지 않았으면 아마도 누구 한명은 무사하지 못했을 것 같았다.
"누나 제가 한 말은 다 잊어주세요. 전 정말 성운이 형이랑 사귀는 줄 모르고..."
"아, 당연하지."
나는 박지훈의 간곡한 부탁에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동생으로만 생각했던 탓인지 그 말들이 진지하게 들려오지도 않았었다. 박지훈은 금세 해맑아져서 같이 자리에 어울렸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참 좋았는데, 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남자가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어이고 우리 사랑하는 동생들 여깄었네~?!"
".... 야 니들 선배들은 안온다며.."
".... 저 형 삼수해서 우리랑 동기야."
"이 여성분은 누구실까?!"
누가봐도 이 사람은 진상이었다. 이 남자뿐인 자리에서 여자는 나 하나 뿐이었기 때문에 저 말은 나를 지칭하는게 틀림없었다. 재수 없게도 박지훈 옹성우 황민현 맞은편에 나와 하성운이 있었기에 짝을 맞추려는 것인지 이 남자는 내 옆에 앉았다. 훅 풍겨오는 술냄새에 어질했다. 남의 술냄새로 이렇게 토가 쏠리긴 처음이었다.
"불문과시구나~!"
"아... 네."
박지훈이나 이 사람이나 처음 보긴 매한가지였지만 내 태도에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제 잔 받으십쇼~!"
이 남자는 다짜고짜 내 앞의 빈 잔에 술을 채워넣기 시작했다.
"아 형 얘 술 잘 못해요."
금시초문이었지만 이렇게 한 잔씩 받아먹다가는 이 남자가 계속 여기 있을까봐 하성운의 말에 얌전히 수긍했다.
"에이 한 잔 가지고 안죽어 안죽어!"
"형, 안돼요."
"그럼 나랑 러브샷 하면 반틈만 마시기, 오케이?"
예?
"뚜! 뚜루 뚜 뚜 ~"
자기가 직접 입으로 알콩달콩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노래를 불렀다. 그 남자는 정말 내 잔에 딱 반만 채웠고 또 자기 잔에도 술을 채웠다. 이미 거하게 취해서 내 거절표시도 먹히지 않았고 앞에서 옹성우가 에이- 하지마요 하며 말려도 도무지 듣지를 않았다. 술을 따르고는 내 팔을 자신의 팔에 끼워넣으려고 할 때 쯤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씨발."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하성운의 욕이었다.
"왜 말을 못 알아 쳐먹어."
"뭐, 뭐 씨발?! 씨이발?!"
그 남자는 얼굴이 시뻘개진 채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둘 사이에서 어쩔 줄을 몰라했고 옹성우와 황민현도 일어설까 말까 눈치를 보는 듯 했다.
"너도 나 무시하냐?! 어? 내가 만만해?"
"아유 형 그러게 왜 그러셨어요. 진정해요."
"너 뭘 믿고 설치냐?! 남자새끼가 등치도 작아가지고."
그 순간 내 귀에서 빠직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새끼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만 건들수있는 하성운을 건드려버렸고 그때부터 이미 이 새끼는 나한테 뒤진 목숨이었다.
"야... 너 뭐라고 했냐?"
"이건 또 뭐야?!"
"야 일로와."
나는 바로 그 새끼의 머리 끄댕이를 잡아챘다. 이미 별로 없는 머리숱, 그냥 다 없애줘야겠다.
"아 아! 안놔?!"
"뭘 놔. 뒤졌다니까?"
계속 머리끄댕이를 잡고 사정없이 당겼다. 하성운은 뒤에서 날 끌어낼려고 했지만 이럴수록 이 새끼 머리만 더 아픈거였다. 역시 우리는 환상의 콤비였다.
"안 놔?! 이게 진짜 돌았나!"
"어 나 돌았어~"
아, 기억난다. 초등학생때도 하성운 괴롭히는 놈들은 다 이렇게 혼내줬었는데.
"이야.. 진짜 개판이구나.."
옹성우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더니 자기도 쌓인게 있었는지 달려들어서 등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저번에 빌려간 내 오만원이나 가져와!"
"아 이건 또 뭐야?"
점점 내 팔에 힘이 빠져나갈 때 쯤 나는 하성운에게 눈짓을 했고 알아들은 하성운은 내가 팔을 놓자마자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아수라장이던 안과 비교하면 밖은 천국 그 자체였다. 그런데 하도 머리를 쥐어짜서 그런지 손에는 께름칙한 냄새가 베어있었다. 하성운은 옆에 수돗가로 나를 데리고가서 손을 씻겨줬다.
"야 넌 진짜 그 덩치를 보고도 덤빌 생각이 들었냐?"
"몰라 진짜 짜증났었어.. 근데 너 유리 깬건 괜찮아?"
"응 괜찮아."
손을 씻으며 하성운의 손을 이리저리 관찰했다. 얘는 내가 걱정을 하는 순간에도 나에게 입술을 들이밀었고 나도 입술을 살짝 내밀어 짧게 입을 맞췄다.
"진짜... 너한테 덤비면 뼈도 못추리겠더라."
"그러면 죽지."
손을 다 씻고 하성운의 차 앞에까지 걸어왔을 땐 마땅히 축축한 손을 닦을 곳이 없어서 그냥 하성운을 안아버렸다. 자기 등에 손을 닦는 줄도 모르고 하성운은 나를 꽉 안아주었다.
"우리 그냥 지금 갈까?"
"뭐래 너 술 마셨잖아."
"그렇네... 그럼 그냥 차에서 잘래?"
"뭐?!"
"뭐가, 그냥 차에서 자자고."
"아... 그래."
하성운은 잠시 품에서 벗어나더니 웃으며 물어왔다.
"왜? 왜 놀란거야? 왜애?"
부끄러워져서 그냥 하성운의 머리에 딱콩을 갈겼다. 얘 앞에선 뭔 말을 못해요.
"우리 바다보러 갈래?"
하성운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을 따라가보면 해안가가 보였다. 원래부터 바다와 계곡을 좋아하는 나는 당연히 그 제안에 응했다.
"진짜 시원하다."
바닷바람이 불어왔고 내 어깨를 감싸오는 하성운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난 너랑 사귀고 계속 매일매일이 행복한데,"
잔잔한 파도소리와 하성운의 목소리만이 내 귀를 자극했다.
"우린 왜 헤어졌었을까."
나 혼자서도 많이 생각했던 질문이었지만 그 끝엔 역시나 답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다시 하성운의 품에 안겼다. 지금이 좋으니까 과거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냥 알 수 있었다. 서로 헤어지고 많이 힘들었다는 거, 또 보고싶어 했다는 거. 그런 생각들이 나니깐 조금씩 눈물이 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우는게 느껴졌는지 하성운은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왜 울고 그래."
"안 울어. 짜증나니까 고개 숙여."
나는 항상 부끄럽거나 그러면 말이 험하게 나갔다. 그런 점을 아는 하성운은 웃으면서 그냥 잠자코 고개를 숙이는 척을 했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들면서 내 두 볼을 감싸고는 눈물을 닦아줬다.
"내가 미안해."
"이제와서 그런 얘기 해서 뭐해. 나도 잘 한거 없는데 뭐."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다가 하성운은 마지막으로 내 볼을 손등으로 닦더니, 입을 맞춰왔다. 아까 짧게 입 맞췄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하성운은 모래사장에 나를 천천히 앉혔고 그 와중에도 입술을 떼진 않았다. 가끔씩 입술을 떼고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는 하성운을 눈 앞에서 봤을 땐 온 몸이 찌릿찌릿했다.
그냥, 그 밤은 유난히 길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한 번 날려먹어서 속이 좀 많이 쓰리네요...ㅎㅎ 앞으로는 임시저장을 습관처럼 할 것..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써지더라구요!
계속 엎었다가 뒤집었다가 하다가 엠티가 일등이 되어버렸네요.ㅎㅎ!
사실 시기나 장소등등 현 상황과 맞지 않더라도 빙의글이니 너그럽게 이해해주쎄요.
여러분들 아쉬우시죠.......?
그렇다고 생각하고, 너만하냐 조별과제 나도한다 조별과제를 쓰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성운이 질투, 조별과제를 아쉬워 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방금 신알신 수 700명을 달성한 기념으로...
저기 있는 것들을 다 하진 못할것 같으니 아쉽게 2등을 한 조별과제를 보여드릴려고 해요!
이번 주말은 특별편으로 달려보아요.
그리고 독자님들이 응원해주신 덕분에 자소서도 잘 마감했습니다!
기 팍팍 받아가요.ㅎㅎ 이젠 최저가 기다리고 있네요...ㅎㅎ
아무튼 다들 너무너무 감사드려요.ㅎㅎ
이번 화는 암호닉 받습니다!!
[암호닉] 꼭 이렇게 신청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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