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셔틀 그대 스릉흔드...♡
메시아(Messiah)
w.봉봉&천월
34(Click Here) |
"아, 아- 아아아아악!!" 숨이 막혔다. 저절로 눈이 부릅 떠지고 온 몸이 덜덜 떨려왔다. 보이지 않는 힘이 모든 것을 압박해왔다. 급하게 스탠드를 켰다. 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고요했다. 새벽마다 같은 일을 반복한지 한참이 지났다. 익숙해질때도 되었지만 이 소름끼치는 어둠은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다. "... 또 악몽이에요?" 옆에 놓인 물을 벌컥거리며 마시는 우현의 목울대가 강하게 진동한다. 악몽이었다. 김성규가 죽은 날 이후로 끊이지 않는. "괜... 찮아요?" 졸졸- 며칠동안 밤잠을 이루지 못해 뜬눈으로 밤을 지세던 성종이 우현의 빈 글라스에 다시 물을 따랐다. 글라스가 채워지기가 무섭게 우현이 다시 목을 축였다. 빨갛게 충혈된 눈이 번뜩였다. 우현의 살기어린 눈빛에 성종이 움찔- 몸을 움츠렸다. 아직까지도 이 모든게 제 탓인 것만 같은 성종이다. 며칠전부터는 죄책감에 못이겨 죽어버릴 것만 같아 우현과 함께 방을 쓰고 있었다. 심리적으로 안정은 되찾았을지언정, 성종은 매일 새벽 우현의 광기섞인 발악을 지켜봐야만 했다. 안정을 되찾은 뒤로 우현을 달래보고 얼러보고 별 짓을 다해봤지만 우현의 심경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평생을 다짐했던 연인을 눈 앞에서 떠나보냈으니 그 상심이 감히 상상도 되지 않았다. 성종도 성종대로 힘들었지만, 더 괴롭고 힘들것은 명수와 우현이었다. 성종이 어리광을 피워봤자 달래줄사람은 커녕 봐줄사람 하나 없다는게 사실이었다. "아저씨. 아무말이라도 좋으니까 대답 좀 해봐요..." "..." "많이.. 힘들어요?" "..." 우현은 변했다. 아주 많이 변했다. 성종이 고개를 폭 숙였다. 우현은 웃음과 말, 그리고 김성규를 잃었다. "자요. 자장가 불러줄게요." "..." 날카로운 시선이 성종을 향했다. 무언의 거절이었다. 성종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이불을 덮어썼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우현이 푸석하니 거끌해진 얼굴을 쓸어내렸다. 절망스러웠다. 털어낼 수 없는 기억의 조각들이 우현의 심장을 쉴새없이 찔러오고 있었다. 상처가 나서 피가 흐르다 못해 갈기갈기 찢겨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헤진 마음이 그저 아플 뿐이었다. 며칠간 눈이 왔다. 김성규를 닮은 하얀 눈이 끊임없이 내려왔다. 그걸 보면 또 마음이 아파와, 닫아두었던 창문을 슬쩍 여는 우현이다. 눈이 그친 바깥은 화창했다. 「우현아, 있잖아-」 「응?」 「첫눈이 내리면, 제일~ 먼저 너랑 보고싶다! 나 사실 한번도 눈 오는거 본 적이 없거든...」 「어이구... 알았어요, 알았어!」 김성규. 그는 아직까지 우현의 귓가에 머무르고 있었다. 모든 사물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성규와 관련된 기억들이 나타났다. 우현은 그냥 펑펑 울고싶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눈물이 파삭이며 바스라졌다. 갈라진 결정의 사이로 성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언제였더라, 난산으로 기절한 성규가 깨어났을 무렵이었던가, 「흐... 흐읍... 엄마 괜찮아?」 「... 뭐야, 남우현 너 울어?」 「내가...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제대로 가누지도 못해 흔들리는 몸으로 따뜻하게 우현을 감싸주던 성규. 그의 체온이 차가운 공기를 따뜻하게 데우고 있었다. 그가 떠난 지금 이 순간에도. 지지리도 불쾌한 이질감에 우현이 미친듯 몸서리쳤다. 고개를 돌렸다. 책상, 스탠드와 물컵이 나란히 놓여있는 책상.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옛 기록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우리 우현이 공부해?」 「어엉. 김명수가 영어단어 외우래잖아. 망할자식. 지금이 21세기도 아니고 무슨 영단어장 잡고 공부를 하냐?」 「명수가 시킨거면 조용히 해. 너한테 나쁠거 하나도 없으니까.」 「아아악! 싫어! 나 엄마랑 놀거야!」 「공부해라니깐!」 「하여튼. 엄마엄마하니까 진짜 엄마 행세려고? 알았으니까 잔소리 하지마!」 M센터에 들어온지 얼마 안되었을때, 명수가 휙 던져준 영어 단어장을 들고 우현이 한참이나 낑낑댔을 때였다. 싫다며 칭얼거리는 우현을 억지로 잡아앉히고 아줌마처럼 잔소리를 해댄 성규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웃고 떠들었던게 엊그제 일 같아 우현은 더 고통스러웠다. 성종이 놓고간 글라스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찰랑거리는 수면위에 동동 띄워진 얼음. 「나 더워, 우현아.」 「나도 더워.」 「말장난 하지말구우-」 「나보고 어쩌라고!」 「얼음 가져다줘.」 「귀찮은데...」 「그것도 못해주냐? 손이 없어, 발이 없어!」 「그럼 엄마는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아몰라몰라! 얼음 가져다줄때까지 말 안할거야!」 유독 더위에 약했던 성규를 위해 매일매일 1층 식당으로 내려가 얼음을 구해와야했던 올해 여름. 툴툴거리고 심술을 부리면서도 성규를 위해서라면 모든지 해줬던 우현이다. 더 다정하게 해줄껄, 지금에 와서야 우현은 쓸데없는 후회를 해본다. 그깟 얼음 가져다주는게 뭐가 대수였다고 그렇게나 생색을 내고 짜증부렸을까. 우현은 새삼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형형하게 빛나는 스탠드 불빛이 꼭 제 마음을 비추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졌다. 스탠드 옆에 하얀 알약 가득 든 유리병이 놓여있었다. 약병을 올려둔 쪽지를 슬쩍 들춰보니 며칠 간 물만 마시며 근근히 버텨온 우현을 걱정하는 한일의 마음이 한가득 적혀있었다. 긴 편지를 뒤로한 채 약병을 집어들었다. '농축형 영양제' 라고 적힌 스티커가 반질하게 붙어있었다. 「우현아 노래불러줘-」 「그래. 오늘도 내가 선곡...」 「싫어! 사랑했지만, 그거 불러줘. 김광석의 사랑했지만!」 「에이, 알았어. 그러고보니 엄마, 매일매일 노래 불러주는데 마이크라도 좀 챙겨주라.」 「마이크는 무슨. 거기 약병있잖아! 넌 약병들고 노래할때가 제일 멋있어!」 성규가 밥 대용으로 하루 세알 꼬박꼬박 챙겨 먹던 농축형 영양제의 약병은 언제나 우현의 마이크가 되어주었다. 그 우스운 모양새로 노래할때면, 성규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박수를 쳤고, 우현은 자신이 가수라도 된 마냥 신나게 노래하곤 했다. 언젠가부터 우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한 곡으로 정해졌다. 성규의 바램에 의해. "어제는 하루종일 비가 내렸어..." 나즈막히 불러본다. 혹시나 듣고있을지 모르는 그를 위해.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 없어." 가사가 왜이렇게 내 이야기같냐- 심장 한켠이 싸해졌다. 일으켰던 몸을 다시 침대에 눕힌 우현이 솜이 다 차지 않아 헐렁한 흰 베개의 늘어진 모퉁이를 움켜잡았다. 「야! 남우현 어디가!! 공부해야지!」 「아 몰라몰라! 나 좀 놀다온다!」 「너 진짜 죽을래?」 「아! 그렇다고 베개를 던지면 어떡해!」 「어떡하긴 뭘 어떡해. 아프지도 않으면서」 「아프거든!」 「으이그, 이 엄살쟁이야!」 성규가 지겹도록 우현에게 던져댔던 흰 솜베개. 성규를 등지고 나가는 우현의 뒷통수에 항상 정확하게 박혀왔지만 그저 솜뭉치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우현은 베개를 집어들고 성규에게 징징거리며 매달리는게 다반사였다. 성규는 그게 또 미안했는지 보들보들한 우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지나가는 가늘고 예쁜 성규의 손가락이 머리에 닿을때면 우현은 지끈한 머리가 마법처럼 가벼워짐을 느꼈다. 그래서 그랬다. 성규에게 조금이나마 더 관심받고 싶어서 일부러. 답답했다. 우현의 마음속에는 아직 김성규가 살아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김성규는 이제 없었다. 우현과 함께할 수 있는 그 어디에도.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풀어보고자 우현이 침대에서 벗어났다. 오랜 시간 환기조차 하지않은 방안에만 갇혀있으니 더 답답했다. 탁한 공기에 숨이 막혔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겨쳐진 흰 셔츠를 집어들었다. 「... 왜 그러고있어, 엄마?」 「더워서...」 「앞으론 그러고 있지마. 너무 섹시하잖아!」 「너... 뚫린 입이라고 아무렇게나 말하지!!」 성규는 우현의 셔츠를 즐겨입곤 했다. 따분하기만한 환자복에 질린 것을 시위라도 할 모양인지 자신의 몸에 맞지않게 헐렁한 우현의 흰 셔츠만을 입고 있을때면 우현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혈기왕성 제 몸을 꾹 눌러참아야했다. 그런 우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 몸만큼이나 하얀 셔츠를 걸치고 팔랑이는 성규는 해맑기만 했었다. "그날도..." 성규는 모두의 품을 떠나던 그날도 우현의 흰 셔츠를 입고있었다. 하얗기만 하던 셔츠가 빨갛게 물들어갔을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김성규가 내 삶속에 이렇게 깊이 파고들어 있었구나, 우현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잡생각을 털어내고 셔츠를 걸쳐입었다. 방을 나섰다. 복도는 고요했다. 마치 그날처럼. - 바깥 공기는 쾌적하고 시원했다. 며칠간 그 답답한 방 안에서 얼마나 참았는지 제 자신이 의심스러운 우현이다. 가만히 한일의 자택에 딸린 뒷마당을 왔다갔다 정처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얇은 셔츠 사이사이로 휑하니 바람이 스며들었다. 마음은 한결 편해졌지만 하늘을 보면 성규가 생각나는 탓에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발 끝으로 차낸 동그란 돌이 공중으로 튀어올랐다. 튀어오른 돌에 따라 얼굴을 조금 들어올렸다. 많고 많은 창문들 중 2층 중앙쯤에 자리한 그것이 홀로 외로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길고 긴 밤을 함께 달래줄 친구가 생긴건가- 피식 웃은 우현이 바닥에 널린 작은 돌을 하나 집어들었다. 그리고 곧장 불이 켜진 창문으로 던졌다. 돌이 힘없이 튕겨져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종이 창문밖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 거기서 뭐해요. 얼어죽을일 있어요?" "..." 그거 참 좋은 생각이다. 얼어죽어서 김성규 만나러 가는 거-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이 우현의 입안 가득 맴돌았다. "혹시 지금 바보처럼 얼어죽을 생각 하고 있는건 아니죠? 올라와요. 명수형 방이에요. 바로 옆방." 우현이 느릿한 발걸음을 옮겼다. 김성규. 하늘은 춥지 않아? 여기는 너무 춥다. 날씨도 춥고 내 마음도 춥고. 너도 그래? 만약에 그렇다면,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따뜻하게 데워주러 갈게. 미안해.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스물둘의 겨울. 우현은 차차 철이 들어가고 있었다. 사랑의 상처를 조심스레 감싸 숨긴 채로. 소중한 사람의 빈자리는 너무나 컸다. 뻥- 구멍이 뚫린 우현의 심장 사이사이로 차가운 겨울바람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 "궁상맞게 이게 뭐에요..." 겨울바람이 차긴 찼나보다. 코를 훌쩍이며 명수의 방으로 들어온 우현이 따뜻하게 난방이 틀어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모습만큼은 성규가 죽기 전 그때의 우현같아 성종이 한시름 걱정을 덜었다. 그러나 곧, 이불에 둘둘 쌓여 미동도 하지 않는 명수의 기척이 느껴지자 올렸던 입꼬리를 시무룩하게 내려야만 했다. "명수형, 이제 일어나봐요. 우현이형 왔어요..." "..." "..." 죽은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명수는 아무런 대답도 움직임도 없었다. 옅게 색색거리는 숨소리만이 그의 생존을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우현이 성종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날카로운 눈초리에 찔끔 나오는 눈물을 눌러참은 성종이 짐을 챙겨 우현의 방으로 향했다. 녹녹하게 데워진 방 안이었지만 공기는 싸늘했다. 아무런 말 없이 굳어있는 우현과 명수때문일까. 우현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김명수." 오래도록 열지 않아 바싹 마른 입 안이 텁텁했다. 성종이 내려놓고 간 커피를 몇번 홀짝인 우현이 날카롭게 명수를 응시했다. 그는 여전히 색색거리는 숨소리만을 규칙적이게 뱉고 있었다. "대답해라 김명수." "..." "너만 힘든거 아니다. 대답해라." "... 네." 며칠간 물 한모금조차 입에 데지 않았던 명수의 목소리 또한 퀭하니 잠겨있었다. 우현은 괜히 마음이 쓰라렸다. 명수가 왜 그토록 일찍 철이 들어버리고 어두워졌는지 알 것만 같았다. 제 자신이 그 이유를 몸소 겪고있기 때문일까. "제일 힘든건 하늘에 있을 엄마가 아니겠냐." "... 그렇죠." 사뭇 달라진 우현의 기류를 눈치챈 명수가 온 몸을 압박하고 있던 이불을 걷어냈다. 두 눈아래 짙게 내려온 다크서클이나 붉게 충혈된 눈동자- 어딘가모르게 텅 비어버린 우현의 모습이 꼭 거울을 보는 것만 같아 명수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나 큰 충격에 굳어버린 입꼬리는 덜덜거리며 경련을 일으킬 뿐 제자리를 유지했다. 아직 삐걱거리며 제 말을 듣지않는 왼팔을 겨우 올려 그런 입가를 몇번 쓸어내렸다. 이상했다. 몸이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이 세상과 이별을 할 것 같이- 말이다. "뭐하냐. 세상 다 산 것처럼." "...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마십시오." "넌 내가 아무렇지도 않아보이냐?" 장난스러운 대화에 잔뜩 가시가 돋혀있었다. 그리고 또 적막. 달그락거리는 반지 한쌍의 마찰음이 적나라하게 명수의 귀에 박혔다. "엄마가, 김성규가 주고 갔어. 나름 내가 김성규한테 준 첫 선물이었는데 죽을때 되니까 매정하게 반품하더라." "..." "나쁜놈." "..." "김성규 하나 지키지 못한 나쁜놈. 나 말이다-" 그런 슬픈 눈으로 애써 마음을 속이려들지 마십시오. 정곡을 찌르는 명수의 냉랭한 답에 우현의 두 반지를 제 오른손 약지에 나란히 끼워넣었다. 성규의 손가락 사이즈대로 구멍을 낸 반지 하나가 제대로 들어맞지 않았지만 모른척 손가락에 구겨넣었다. 반지 꽉 눌린 피부가 붉게 부어있었다. "언제였더라. 내가 M센터 취직하기 아주 오래전 이야긴데 말이다." "..." "한때 내가 강남 달동네 양아치라고 불리고 다닌 적이 있었거든." 삐익- 성종이 올려둔 커피메이커에서 짤막한 전자음이 흘러나왔다. 비어버린 머그컵을 잡아든 우현이 능숙하게 진한 커피원액을 뽑아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나, 단둘이 살았어. 무척 가난했어. 서울에 하나밖에 남지않은 달동네 중에서도 제일 외진 집에 살았으니 말 다했지." 보기만해도 쓴 커피원액에 소량의 물을 탄 우현이 느긋하게 자리로 돌아왔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명수가 귀를 기울였다. "초등학교고 중학교고 다 때려치웠어. 살기도 바쁜데 무슨 공부를 하겠냐. 원체 싸구려인 돌대가리가 돌아가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어쨌든. 연필대신 총을 잡고 숟가락 대신 담배를 물었던게 나야.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너무 익숙해져서, 내가 잘못된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현의 쓰린 이야기가 꼭 제 옛적과 닮아있었다. 노숙자들의 퀴퀴한 썩은내가 진동하던 역이 생각났다. "정말 미친듯이 살았지. 미친놈처럼 말이다. 세상이 나를 버렸으니 내가 세상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한게 한창 풋풋할 나이였던 열여섯이었어. 또래애들이 수줍은 첫사랑을 시작할때 난 뭘했는지 알아? 총, 마약, 여자. 이 셋이 내 삶의 전부였어. 꼴에 조직이니 뭐니 지껄이는 동네 건달들 사이에 껴서 죄없는 사람들 머리통이나 뚫어가며 놀음질을 했고, 모든걸 잊어버릴 수 있는 지독한 마약을 입에 댔지. 몸이 망가져간다는걸 느꼈지만 멈출 수 없었어. 이 몸은 내 몸이 아니다- 생각하고. 포기한거지 인생을. 그렇게 생각하니까 사는게 너무 서러워서 밤이 되면 여자나 품에 안고 질펀하게 놀아났어. 그렇게라도 구질구질하고 더러운 내 운명을 위로받고 싶었으니까." 항상 바보처럼 실실 웃고 어디 하나 나사가 빠진 것처럼 능글맞던 우현이 과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명수가 감겨오는 눈을 부릅떴다. 저 모든게 사실이냐고 추궁하듯 우현을 응시했다. 우현이 피식- 실없는 웃음을 뱉았다. "언제더라. 내 열아홉살 생일때였나, 그때도 늘 가던 클럽에서 여자애 몇몇을 끼고 대마초나 빨고 있었던 것 같다. 근데 갑자기 처음보는 남자가 날 어디로 끌고가는거야. 그때 들었던 말이 뭔줄 아냐?" "..."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그러더라." 몇번 장난삼아 코를 훌쩍인 우현이 말을 이어갔다. "꼴에 하나밖에 없는 유족이라고 약에 취한 나를 끌고가던데 그때 내 신세가 얼마나 우습던지. 저 남자가 하는 말이 뭔소린지도 모르겠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세상은 핑 돌고- 그상태로 끌려가서 도착한 곳이 집이더라. 우리 집. 언제 발걸음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집 말이야. 어렴풋이 본 기억이 있던 옆집 아줌마가 흰 천을 부여잡고 울고있었고, 그 흰 천은 볼록 솟아있었어. 사람 하나를 덮은 것 처럼. 너무 몸이 망가져서 하나도 정신이 없었는데 그 광경을 난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 낡은 집 벽에 묻어있던 이상한 얼룩이 어떤 무늬였는지도 기억할정도니까. 아무튼 난 덜덜 떨면서 천을 뒤집었어. 그랬더니 뭐가 있었는지 알아? 처음 보는 왠 여자가 있더라. 아주 단아하게 생긴 중년 여자였는데, 젊었을때 참 예뻤겠다- 딱 보자마자 그런 생각이 드는 여자였어. 옆에서 훌쩍이고 있는 옆집 아주머니한테 물어보니까 그 사람이 내 엄마래. 쓰레기같은 아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눈물지었을 내 어머니래. 와 난 믿을수가 없더라. 너라면 안그랬겠냐?" "... 왜 아무말도 안한거죠? 엄마한테나 저한테나. 충분히 힘들었을텐데," "말한다고 달라질게 뭐가 있겠냐.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있지. 아주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긴데, 우리 어머니말이다. 정부군한테 죽었다더라. 내가 전쟁참여를 안해서 보복당한거래. 어머니의 사체를 봤던 그날, 방 안에서 진동하던 불쾌한 냄새를 그냥 지나치는게 아니었어. 그 더러운 정부군 새끼들이..." 씨발- 우현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명수가 우현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등을 토닥였다. 서릿발같이 날서있던 명수의 눈꼬리가 살짝 내려갔다. 가만히 생각에 잠긴 우현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어머니와 죽었던 그 날과 김성규가 죽었던 그 날이 겹쳐져 우현의 머리를 온통 엉망으로 헤집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그냥 딱, 죽고만 싶었다. "하... 씨발... 그래서, 그래서 말이다. 정부한테 복수하려고 칼을 갈았어. 술이고 담배고 마약이고. 여자고 총이고 다 끊었지. 이게 결심을 하니까... 그러니까 한순간에 딱 끊기더라. 신기하게도. 그리고 가면을 썼지. 넉살좋은 평범한 청년 이라는 가면을. 아무도 내 더러운 과거를 들춰내지 못하게 내가 숨겨버렸어. 내.. 내 자신을 부정하고 싶었으니까. 그 추악한 옛날을 모두 없애고 싶었으니까!!" 챙그랑- 단단한 머그컵이 우현의 손아귀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우현이 손에 힘을 쥐면 쥘수록 손바닥에 박힌 유리 파편들이 크고 작은 상처를 만들어내며 더욱 그의 살 깊이 파고들었다. "그래서, 그래서 M센터로 온거야. M센터가 정부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과학기구였잖아. 인류 과학기술 최상의 산물이라고도 불렸지. 마침 아무 조건없이 신입채용면접을 하더라고. 나에겐 기회였지. 4년동안 정부를 향해 갈고 닦았던 칼을 이제 쓸 수 있는 달콤한 기회. 그런 추악하고 더러운 복수심을 가지고 M센터에 들어오자마자 내 눈에 나타난게 누구였는지 알아?" "김... 성규." "빙고. 천사처럼 새하얗기만 하던 김성규야. 내 생에 첫번째 사랑이자 두번째 어머니가 되어준 김성규." 우현의 지난 삶도 다른 모두와 다를 것 없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명수는 어딘가모르게 자신과 닮아있는 우현의 기구한 운명에 심심한 위로의 인사를 전했다. "M센터에 들어오고, 엄마와 함께 지내다보니까 알게되더라. 아, 이 사람들도 나와 똑같구나. 정부와 세상에게 버림받은건 M들도 똑같구나- 라고. 시시하지만 이게 다야. 김성규를 만나기 전까지 내 삶은." 다 털어놓으니까 속시원하다- 입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눈은 울고있었다. 여기까지가 우현이 견딜 수 있는 감정의 마지노선이었다. 도를 넘으면 자제력을 잃는 법이다. 우현이 조용히 입을 다물고 마음을 성찰했다. 다시는 기억속에서 꺼내기 싫었던 과거사와 성규의 생각이 이리저리 얽히고 설켜 난장판을 이루고있었다. "그리워한다면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고 누가 그러더군요. 다시... 만날 수 있을겁니다." "그러는 넌, 성열씨 만났냐?" "... 아뇨." "김성규가 떠난지 얼마나 지났다고 이렇게 그리워하는 된 나나, 이성열이 죽은지 한참이 지났어도 잊지못하는 너나. 거기서 거기다. 둘다 병신이지. 그것도 아주 상병신." "우린 왜, 왜 이렇게 슬프고 비극적이게 살아야하는거죠?" "22세기에 살고있으니까.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부정하지마. 지금 이 상황이, 우리의 이야기가, 소설이나 영화속에서만 나오던 그런 것 같지? 믿기지 않지? 근데 똑똑히 기억해 남우현. 이건 현실이야. 그리고 우린 그 현실속에서 살고있어. 알아?」 그리고 이 모든게 현실이니까. 한 여름밤의 꿈처럼 이 모든게 지나가기를. 한낯 치기어린 젊은이들의 꿈이기를- 우현과 명수는 간절히 바랬다. 모두가 그렇게 1분 1초를 버텨나가고 있었다. 현실을 달관하고 또 부정하며. 방 문에 기대어 우현과 명수의 대화를 몰래 엿듣던 성종 또한 그랬다. - "아..." 아침이 밝았다. 깨어나면 풍겨오던 짙은 성규의 향기는 역시 없었지만 우현은 꽤나 기분이 좋았다. 악몽을 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옆을 돌아보니 명수는 여전히 이불에 돌돌 말려 미동조차 없었다. 어제 있었던 모든 일이 꿈만같아 눈을 꿈벅이던 우현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손에 잔뜩 박힌 머그컵의 유리파편이 어제의 일이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우현씨! 남우현씨!" 바깥에서 우현을 찾는 목소리는 지아가 분명하다. 우현이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긴 밤을 바닥에서 지새우다 보니 온 몸이 뻐근하게 저려왔다. 문고리를 잡았다. 따끔한 느낌이 불쾌하여 얼굴을 구겼다. 유리조각 사이로 그새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달칵- 하는 문소리가 남과 동시에 지아의 경악스런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우현씨 얼마나 찾... 아, 아아아아아악! 소... 손이 그게 뭐에요?" "..." 어젯밤에는 무슨 정신으로 명수와 그렇게 떠들어댔는지 모르겠다. 목구멍이 답답한 무언가로 탁 막혀 풀어지지 않았다. 지아의 비명을 뒤로한 채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우현을 쉽사리 놓아주지 않을 듯 지아가 뽀르르 방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언제부터 그자리에 있었는지 모를 구급상자를 용케 찾아낸 지아가 우현의 손바닥 구석구석에 박힌 유리조각을 하나씩 빼냈다. 유리조각이 빠져 헐빈한 상처로 피가 용솟음치듯 샘솟았다. 지아의 경악스런 표정을 애써 무시하는 우현이다. "대체, 무슨일이 있었던거에요? 것도 명수씨 방에서..." "..." "말하기 싫어요?" "..." "너무 힘들어보여서 그래요." 작은 유리조각까지 다 빼낸 손은 엉망이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한 지아가 서둘러 의료진을 호출했다. 정작 당사자인 우현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으으, 안아파요? 난 보기만해도..." "... 이런게 뭐가 아프겠습니까." 마음에 난 상처는 감히 그 규모도 고통도 알 수가 없는데- 지아는 마음이 쓰라렸다. 어느 상황에서도 밝은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날카로운 힘이 아닌 부드러운 미소로 모두를 지휘하던 우현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현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선장이 없는 배는 가라앉기 마련, 지아가 포옥 한숨을 쉬었다. "제가 어젯밤 눈을 감을 때 보였던 남우현씨는, 예전 그대로 밝고 씩씩한 우리의 지휘자였어요. 씻을 수 없는 상처는 누구나 가지고있어요. 지울 수 없는 시련 또한 누구나 겪게 되죠. 우현씨는 지금 그 고비를 넘기고 있는거에요." "..." "성규씨가 그랬죠? 살아가라고. 끝까지 살아남아라고 했잖아요." 「우현아.」 「...」 「넌 살아. 끝까지 살아가야해. 알았지?」 「.... 엄마.」 「영원히, 안녕-」 우현이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지아의 깊고 깊은 검은 눈동자 속에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김성규가 있었다. "지아씨는... 유지아씨 당신은..." "..." "영원을 믿어요?" 왈칵- 다시금 쏟아져내려오는 눈물을 참지않았다. 지아가 우현을 따뜻하게 안아줬다. 따뜻한 온기에 우현은 꼭 성규의 품속에 안긴것같아 살풋 미소지었다. "우리 김성규 지금 하늘에서 혼자 힘들거에요... 내가 영원하겠다고, 언제나 곁에 있어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못지켜서 외로울거라고요..." "괜찮아요. 다 괜찮아요. 우현씨 탓이 아니에요." "아니야... 아니야.. 이게 다 내 탓이야!! 내 잘못이라고! 나때문에 김성규가 죽었고... 나때문에... 모두 나때문에...!" 찰싹- 우현의 왼뺨이 화끈 달아올랐다. 지아가 짐짓 화난 얼굴로 우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우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마요... 아줌마...」 「네가 니 어미를 죽인거야. 알았니? 너같은 망나니새끼가 어머니를... 너희 어머니를!」 「아니에요... 아니야... 내 탓이 아니야... 아니란말이야!!!」 열아홉. 그날. "그런 눈으로 보지마요... 지아씨..." "왜, 왜 우현씨가 자책감을 느껴야해요? 이건 모두의 책임이에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아니에요... 아니라고... 내 잘못이 아니란말이야!!!" 스물둘. 지금. 끔찍한 데자뷰는 지금의 우현을 조금씩 갉아내리고 있었다. 자신의 목을 졸라오는 어머니와 김성규의 환영에 우현이 뒷걸음질쳤다. 무서웠다. 너무 무서웠다. 내 잘못이 아니에요... "아니야!!!" "우... 우현씨?" "흐... 흐윽... 내가 ... 내가 다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용서해주세요..." "아니, 잠시만-" "엄마..." "우현씨!!!" "나 김성규가 보고싶어요... 지아씨." 그대로 우현이 쓰러졌다. 지아의 호출을 받고 급히 올라온 의료진들이 서둘러 우현을 부축하여 밖으로 나갔다. 지아가 눈을 감았다. "모두에게 평화가 찾아오기를. 신의 축복이 있기를." 시간이 갈수록 상처는 더욱 짙고 깊어졌다. 그 끔찍한 상처의 틈으로 우현의 눈물 한방울이 떨어졌다. 창문밖으로 두마리의 산비둘기가 지저귀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신이 나던지 예쁘게 지저귀던 비둘기들이 한참이 지나서야 드넓은 창공으로 날아갔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두개의 네잎클로버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 "으... 으윽... 아아아아악!" 또 악몽이다. 우현이 벌떡 이불을 거뒀다. 온 몸이 식은땀으로 젖어있었다. 뜨끈하고 답답한게 열도 나는 모양이다. "지금 일어나셨습니까?" 한일이다. 언제나 그렇듯 걱정스런 눈초리로 우현을 응시하고 있었다. 우현이 한일에게 등을 돌려 누웠다. 한기가 들었다. "지아양이 많이 미안해하고 있습니다. 불러드릴까요?" "... 괜찮습니다." 현실과의 괴리감이 느껴졌다. 저 혼자 동떨어진 다른 세계에 떨어진 것 같았다. "명수군이 방 밖으로 나와서 움직이기 시작했더군요. 아마 성종군이 가출했다는 소식을 들어서 그럴겁니다." "... 네." "아마 총명한 분이니 금방 돌아올 것 같지만... 큰일이네요. 또 어디서 혹을 주렁주렁 붙이고 들어올지 모를 분이니까," 작고 어린 성종도 나름 감정을 조절하며 잘 버티고 있는데 난 이게 무슨 꼴인가, 어이가 없었던지 우현이 푸슬푸슬 웃음을 흘렸다. 못났다. 참 못났다. 남우현. "딱 이틀입니다. 털고 일어나십시오. 성규군이 하늘에서 이 꼴을 본다면 뭐라하겠습니까." "..." "쉬십시오." 쾅- 한일이 티가 날 정도로 세게 문을 닫고 나갔다. 그러게요. 김성규가 나 이러는 꼴 보면 뭐라고 할까요? 항상 했던 것처럼 잔소리를 할까요, 걱정된다며 울기라도 할까요. 바보같다며 화를 낼까요, 묵묵히 바라볼까요. 어떻게든 해도 좋으니 딱 한번만 다시 보고싶은데, 그건 안되겠죠? 며칠간 그쳤던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게 마치 모든걸 털어내게 하려는 성규의 씀씀이인 것 같아 우현은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이미 촉촉하게 젖어버린 눈가는 성규를 그려내고 있었다. 쪽 째진 두 눈, 오똑한 코, 작게 오물거리는 입, 하얀 피부까지. 우현이 나즉히 노래를 불렀다. 선명하면서도 흐릿한 성규를 바라보며. "잠못드는 새벽 비가 내려요. 나처럼 소리쳐 울어요. 하지만 그대 어디에 있을까-" 어디있어 김성규. 보고싶어. 너도 보고싶지? "고개숙여 그대에게 사랑한다 고백했죠. 고개들어 그대가 헤어지자 말했죠-" 너무 아픈 이별은 이별이 아닐거야. 그럴거야. 몸은 떨어져있어도 우리 영원하잖아. "사랑하는 그대여 떠나지 말아줘. 혼자남을 내곁에 있어줘요 내가 미워도-" 아직 끝나지 않았어.너에게 항상이 되어주지 못해서, 영원이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오늘처럼 비가오면 그대가 생각나. 비맞으면서 울어요 그댈 그리며 살아요-" 보슬비를 보면 너가 생각난다. 푸스스 처량하게 내리는데도 그게 얼마나 편안하고 예쁜지. 꼭 너같잖아. 평생 그리워하면서 살게. 평생 너만을 생각하며 살게 김성규. 사랑해. 잠시나마라도 내 곁에 머물러주어서. - 며칠째 성종이 돌아오지 않았다. 성규를 꼭 닮은 보슬비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었다. 한 겨울치고는 참 기이한 날씨였다. 방에서 벗어난 명수는 성종을 찾아 발벗고 나섰다. 위험하다는 한일의 반대는 번번이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해가 뜰때 즈음 나가 해가 질때 즈음 들어오는 생활을 밥먹듯 하고있는 애달프고 애달픈 명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종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정부 기관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서울 중앙지구에 들어가려는 명수를 겨우 말린 한일이었다. 한일의 입장에서는 이상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성종이 그토록 매달리고 사랑을 쏟아부었을때는 눈길조차 주지않던 명수였기 때문이다. 호텔작전즈음 부터 둘의 기류가 묘하게 어긋남을 느꼈던건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변해있을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해가 뜨기도 전인 새벽녘 옷을 챙겨입는 명수를 잡아챈 한일이 진지하게 물었다. "왜 갑자기 성종군에게 이런 관심을 보이는 겁니까?" "... 그렇게 보입니까?" "평소에는 거들떠보지 않을뿐더러 무척 싫어하지 않았습니까."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구나. 명수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날 그렇게 앓아오던 작은 꼬마에게 어떻게 굴었길래 한일까지 저런 반응을 보이겠는가. 조금 찔리긴 했지만 명수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싫어한다고 한 적...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속이더라도 제 눈은..." "이제 이성종밖에 안남았잖아요." "..." "김성규를 끝으로 소중한 사람을 모두 떠나보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가 남아있더라고요. 이성종. 그 애까지 제 곁을 떠난다면 하루도 버티지 못할겁니다. 잡아야죠. 절대 떠나지 않게." 잃어버린 후에 후회하지 않게 말이죠. 명수가 우물거리며 삼켜버린 뒷말을 한일이 들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방금 들은 명수의 한마디로도 한일에게 충격을 주기는 충분했다. "그게... 이유입니까." "무엇을 더 바라십니까." "딱히 그런건 아니지만..." 아쉬운 듯 입맛을 쩝 다시는 한일을 뒤로한채 명수가 문고리를 잡았다. 눈을 꾹 감았다. 자존심이 상한다 해도 한일이 언젠가는 알게 될 사실이었다. 미리 말해놓는게 더 속이 편할 것 같았다. "이성종을 좋아하거든요." "... 네?" "그럼 전 나갑니다. 걱정되면 미행 하나 붙여주시고요." 벙찐 한일을 뒤로한 명수가 트렌치코트의 자락을 휘날리며 어느새 저 멀리 뛰어가있었다. 멍하니 서있던 한일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도련님이 바라던게 이루어졌군요." 꿈을 꾼다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그 소망이 간절하고 절실하다면. 그리고 진실된 마음이라면 뭔들 못 이루겠는가. 나즈막히 중얼인 한일이 자리를 떴다. 그날 밤에도 명수는 성종을 찾지 못했다. - 성규를 떠나보낸지 어느새 이주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신경성 발작으로 한동안 고생하던 우현이 정신을 차렸을 무렵 성종이 돌아왔다. 한일의 예상 그대로 두개의 혹을 주렁주렁 매단 채. "아... 완전 추워! 거기 누구 없어요? 여기 이성종 데려왔으니까 뭐 포상금이라도 줘야하는거 아녜요?" "아오 이 화상아... 비켜봐봐. 저기요! 아무도 없습니까!" "제발 조용히 해 너네... 명수형! 우현이형! 한일 아저씨! 아무도 없어요? 저 태민이에요!" 쾅쾅- 요란하게 대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기겁한 연구원 몇몇이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항시 지시를 내려주던 한일은 큰 거래문제로 잠시 집을 비운 상태였고, 겨우 몸을 회복한 우현은 잠이 들어있었다. 한참이나 성종을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지독한 독감에 걸린 명수 또한 몸져누워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호원과 동우는 무슨 급한일이라도 있는지 아침 일찍 이곳을 떠났기에 한일의 저택은 텅 빈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문을 열어주자니 신원확인도 할 수 없는 노릇, 연구원들이 발을 동동 굴렸다. 그때 계단으로 누군가의 인기척이 들렸다. 콜록이는 기침소리와 한껏 달아오른 몸, 명수였다. "하... 쿨럭- 문.. 문 열어주세요..." "아직 신원 확인이..." "그냥 문열어달라고요!" 벼락같은 명수의 외침에 놀란 연구원이 침착하게 암호를 풀었다. 경쾌한 전자음과 함께 추위에 얼어 찰싹 달라붙은 네명의 소년들이 우르르 집안으로 들이닥쳤다. 명수가 재빨리 그 곁으로 다가갔다. 시끄럽게 종알종알 떠들어대는 세 소년들을 떼어내자 그 중심에 바들바들 떨고있는 성종이 보였다. 명수가 무턱대고 성종의 멱살을 잡아올렸다. 40도를 웃도는 강한 열기에 온 세상이 핑 돌았지만 성종만큼은 뚜렷하게 보였다. 그것도 겁을 먹어 한껏 움츠러든채 달달 떨고있는 성종이었기에 더욱 더. "씨발... 미쳤냐 너?" "왜 보자마자 욕부터해요! 살아돌아온게 어딘데..." "너 존나... 하 씨발... 할말이 없다 할말이. 오늘 그냥 너랑 나랑 누가 죽나...!" "이봐요! 거 형씨 너무하시네!" "... 넌 뭐냐?" 노란 병아리 하나와 빨간 닭 하나. 명수의 눈에 두 소년은 딱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봐야 성종또래처럼 보이는 어린 소년들이었다. 명수가 소년들에게 꽂았던 시선을 성종에게 돌렸다. 성종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 하하- 제 친구들이니까 너무 그러지 마세요... 무슨일인지는 나중에 다 설명..." "너 정말 돌았냐? 뇌가 안움직여 씨발?"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요? 우리 작전하는데 큰 도움이 될 애들이라고요!" "네 친구라면 쟤네도 Mko겠네. 그 잘난 Mko새끼들이 정부스파이일지 누가 알아!" "좀 진정해봐요 명수형!" 길길이 날뛰는 명수의 팔을 붙잡은 태민이 급한 불부터 꺼보자는 생각에 성종과 명수를 떼어냈다. 바닥에 내팽겨쳐진 두 소년은 그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뭘 진정해. 너 대체 이때까지 어디서 뭐 하고 다녔어. 당장 다 말해라, 어?"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그걸 왜 말해요!" "씨발 걱정되잖아!" '형이 뭔데 날 걱정..." 뜨거운 Kiss Time- 노랗게 머리를 염색한 소년이 빨갛게 머리를 염색한 다른 소년의 눈을 가리고 꺄르르 웃었다. 빨간 머리 소년이 온 몸을 바둥거리며 발악을 했다. "나도 볼꺼야! 정대현 손 치워라? 어?" "싫은데~ 싫은데~ 너같은 꼬마애는 이런거 보면 안돼요오~" "아아아악!! 널 데려오는게 아니었어!!" 명수가 성종에게 닿았던 입을 뗐다. 어느새 성종의 찬 몸은 명수에게 데워저 따끈하게 열이 올라있었다. 성종의 차가운 체온에 명수의 열도 식은 듯 가라앉았다. 성종의 눈가에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성종이 명수의 뜨거운 가슴팍에 고개를 묻었다. 그와 동시에 삐걱이는 계단소리가 들렸다. 지아의 부축을 받은 우현이 시끄러운 소음에 아래층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 뭐냐." "와... 저 잘생긴 형아는 또 누구냐, 이성종? Two?" "이 무식한 새끼야. Two가 아니라 Second 겠지. 넌 한국 Mko계의 치욕이다- 치욕." "무슨 말을 그렇게하냐. 씨발 그래 나 머리 안좋다! 안좋다고!" 한참을 소리지르며 왕왕대던 두 소년이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공기를 따라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냉기의 근원지는 우현이었다. 후다닥 자리를 털고 일어난 두 소년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잠시나마 찾아온 정적을 놓치지 않은 태민이 슬쩍 중간에 끼어들었다. 우현의 미간이 작게 구겨져있었다. "음... 일단 상황 설명을 드려야할 것 같아서요. 다들 진정하시고요. 너네도 입닥치고." "그래. 말해봐." 명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태민의 뒤에서 우물쭈물 거리고 있던 빨간머리 소년이 불쑥 튀어나왔다. 태민은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얘는 이찬희라고 해요. 아까 눈치채셨다시피 Mko고요, 저랑 성종이 오랜 친구에요. 사실 호텔작전때부터 데려오려고 했는데 비리비리한게 가드를 못뚫어서 한참동안 집에 잡혀있었거든요. 하여튼 실력도 좋고... 믿을만한 애니까 그렇게 걱정 안하셔도 돼요. 저랑 성종이가 정부 뒤나 핥는 애들을 사귈리가 없잖아요?" 맞아맞아. 소심하게 동의의 뜻을 나타낸 노란머리 소년이 찬희의 옆으로 다가섰다. 우현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 아니꼬운 표정으로 두 소년을 위아래로 훑고있었다. 소년들의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었다. "얘는 정대현이에요. 물론 Mko고요, 저희 친구에요. 얘가 돌연변이 Mko라서 머리는 조금 모자란데..." "그런식으로 말하지 말랬... 죄송합니다." 뭐라 더 쏘아붙일말이 있는지 있는 힘껏 눈을 부라린 대현은 곧 우현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눈을 내리깔았다. 명수는 두 소년을 보자마자 느꼈다. 이 Mko 넷이 함께 있으면 조용할 날이 없겠구나- 하고. "아.. 아무튼 머리는 모자란데 사격실력이 세계에서 버금갈 사람이 없을거에요. 다른 Mko도 물론이고요. 나중에 보시면 알겠지만 완전 짐승이에요 짐승. 타고났다니까요. 얘가 하는짓은 이래서 그렇지 입이 가볍거나 한 애는 아니니까 물론 걱정마시고요. 이제 됐죠? 저희 추운데서 며칠동안 아무것도 못먹고 돌아다녔어요. 뭐라도 좀 챙겨줘요. 이성종 살려왔으니까." 여전히 경계태세를 풀지 않은 명수는 성종을 데리고 유유히 방으로 사라졌다. 계단에 가만히 서있던 우현이 지아에게 몇마디 짤막한 말을 남기고 비틀거리며 제 자리로 돌아갔다. 어쩔줄을 모르는 소년들에게 지아가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절 따라와요. 고생 많이 했어요." 보슬보슬 내리던 비가 그쳤다. 먹구름 사이로 환한 햇살이 비쳐들어오고 있었다. 오랜시간 모두를 잠식하고 있던 긴 어둠이 걷히고 그 사이사이로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오늘따라 날씨가 좋았다. - "아니 그렇다고 친구들 앞에서 그렇게 갑자기 키... 입... 입맞춤을 하면 어떡해요!" "... 너도 좋았잖아." "아니거든요?" "밝히긴." 눈 깜짝할 새 진한 에스프레소 한잔을 뽑아낸 성종이 담요를 뒤집어쓰고 푹신한 스툴에 앉았다. 지아가 두고간 독감약을 힘겹게 삼킨 명수가 삐딱한 시선으로 성종을 내려다봤다. 성종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눈을 내리깔고 커피만 홀짝이고 있었다. "너 어디서 뭐했냐. 말해." "싫어요." "그럼 왜 나간건지 말해봐" "설마 그것도 모르고있었어요? 이 며칠동안? 그럼 뭘했는데요!" "너 찾으러다녔지." "왜 나갔는지도 모르고요?" "내가 독심술이라도 하길 바랬냐?" 하여튼 까칠하다니까. 바깥이 시끌시끌한게 아직도 찬희와 대현이 짖어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성종이 귀를 몇번 후비적댔다. 그 짧은 시간도 명수는 애가 탔는지 다리를 달달 떨고있었다. "형들이 날 괄시하니까 그렇죠. 호원이형이랑 동우형도 모자라서 명수형이랑 우현이형까지. 나도 나름대로 정말 힘들었다고요. 엄마가 죽었는데 멀쩡한 아들이 있겠어요? 그래도 나, 괜히 이 분위기에서 짐 안되려고 꾹 눌러 참았어요. 괜찮은척 해서 그렇지 저도 많이 아프고 힘들었다고요. 알아요?" "고작 그거냐?" "고작? 고작이랬어요 지금?" 성종이 머그컵을 집어던졌다. 바닥에 약간 남아있던 진한 커피가 카펫에 가득 스며들었다. 명수는 당황했다. 성종은 왠만해서 명수앞에서 정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성종은 얼굴을 단단히 굳히고 명수를 째려보고있었다. "그래요. 됐어요. 나도 참을만큼 참았으니까 관둘래요. 이래봐야 나만 피곤하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 야, 이성종." "내가 성떼고 불러달라 했잖아요. 고쳤나 싶더니 또 다시 돌아왔네요 형은 남을 생각하는게 좀 필요할 것 같아요." 쉬어요. 우물우물 뒷말을 삼킨 성종이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방을 빠져나갔다. 혼자남은 명수가 중얼거린 마지막 말은 아무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야, 이성종. 미안하다고. |
봉봉이 사담 수근수근 이수근! |
안녕하세요 봉봉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찾아뵙게 되네요~ 일요일은 메시아 짝수편보는날 ^,^ 오늘꺼는 그닥... 큰 집중력도 요하지 않고... 성경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삼인방과 독자님들을 위해 잠시 쉬어가는 편을 마련해보았어요~ 이제 마음도 좀 가라앉히고.. 봉봉이를 향한 미움도 ㅈ... 조금 풀어주시면 어떨까... 싶네요! 배때기에 칼빵맞을까봐 근 일주일을 얼마나 두렵게 떨면서 보냈는지..☆★ 이번편은 그래요, 빈 껍데기입니다. 내용이 음슴! 그냥 나무가 많이 다크다크해지고 아파하고요.. 그래요 다들 우울하다고요... 그러하다...! 그와 동시에 메시아의 분위기를 밝게해줄! 두명의 카메오가 나타났습니다!! 께이스멜을 폴폴 풍기는 대현/찬희의 등장이죠! 두둥두둥! 메시아는 93라인이 지배한다! ←B.A.P 대현 틴탑 천지(찬희)→ 왜 친절하게 사진 첨부까지 하냐고요? 봉봉이는 베이비는 아니지만 밥을 사랑하고... 엔젤이라서 틴탑을 좋아하거든요... 그래도 모태인슲이라는게 참트루? ㅇㅇ 참트루! 이 두 카메오는 앞으로 메시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겁니다... 성경과 선녀리의 빈자리를 메우고, 어두워진 분위기를 밝혀줄 카메오들! 앞으로 더 나오니까 기대해주세요~ (점점 아이돌 다각이 되어가는 이느낌...^^;) 아이고야 덕질이 길어졌네요! 다음편부터는 50KB를 넘나드는 길이가 계속될겁니다... 메시아가 1MB를 찍을 것 같은 이 불길한 예감..☆★ 이제 전 점심을 먹으러 가야겠네요... 반찬은 부산녀자 봉봉이를 위한 오징어회....ㅋ 그럼 동우의 운명이 결정되는- 다음편도 기대해주세요! Ps. 먹박의 주인공은 35편에서 밝혀집니다 두둥두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