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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주 월요일까지 과외가 비어있었다. 오히려 그게 더 불편했다. 이 좁은 집에 엄마랑 있는 것도 모자라 김재환과 셋이. 그는 말이 별로 없었다. 어렸을 땐 활발한 걸 넘어서 산만하기까지 했던 것 같은데.
 저녁을 먹으려 셋이 거실 상에 마주하고 앉았다. 엄마가 신경써서 내온 반찬이 몇 가지 보였지만 그래도 많이 조촐했다. 김재환은 잘 먹겠다는 말과 함께 수저를 들었다. 그제서야 알았다. 오른손 약지가 한 마디 잘려나갔다는 걸.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그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별 거 아니야.
 



 


 

[워너원/옹성우] 경성의 꽃 03 | 인스티즈
 

03.  


 


 



 김재환은 전화가 잦았다. 방에서 창문으로 건물 밖을 바라보면 그가 늘 휴대폰을 들고서는 담배를 피고 있었다. 하나뿐인 방을 내어주겠다는 엄마의 말에 미소 지으며 손을 내젓던 그였다. 자신은 거실 맨 바닥에 누워서 자도 괜찮다고. 엄마는 그에게 어렸을 때 나와 그의 이야길 늘여놓고 싶어했지만 그는 별로 달갑지 않아하는 눈치였다.
 엄마와 방 바닥에 요를 깐 채 나란히 누웠다. 나는 머리맡으로 다가온 강아지들을 쓰다듬으면서 조용히 물었다. 


 

 "엄마, 좀 변한 거 같지 않아?"
 "저 일을 하다보면 안 변하는 게 이상하지."
 "그런가…"
 "워낙 고단하니까 그래. 너 아빠 친구들도 다 저랬는 걸. 지내는 동안 잘 해줘." 


 

 엄마는 말을 마치고선 이내 잠들었다. 내가 김재환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세 시절은 서로 느낌이 사뭇 달랐다. 어렸을 때, 일본에서 만났을 때, 그리고 지금.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하여튼 그는 변해 있었다. 그 원인이 엄마 말 따라 무장투쟁일지라도.
 무슨 이유에선지 통 잠이 오질 않았다. 더워서 그런가. 나는 손으로 얼굴을 몇 번 파닥이다 선풍기를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에 일어섰다. 거실로 살금살금. 혹시나 그가 깰까봐서 최대한 발소리를 죽였다.
 집 안 불이 모조리 꺼져있었다. 너무 어두워서 무엇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나는 대충 선풍기가 있었던 자리를 가늠해서 다가갔다. 콘센트에서 코드를 빼고선 조심스레 들고 가려는 사이, 어둠 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자?
 목소리의 방향이 내 눈높이보다 살짝 아래에 있는 걸 보니 어딘가에 앉아있는 듯 했다. 그러고 있을 거면 불이라도 켜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려니 넘겼다. 내가 대답했다. 


 

 "더워서 선풍기 좀 켜고 자려고. 너도 하나 갖다줄까?"
 "아냐. 원래 더위 잘 안 타."
 "아, 응." 


 

 일본에서 쫓기던 그의 모습이 불현듯 스쳐지나갔다. 늦가을에 머리카락이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며 뛰어오던. 


 

 "과외 한다던데."
 "아, 엄마한테 들었어? 응."
 "많이 이상하지." 


 

 손가락은 무엇을 하다 잘려나간 걸까. 고문을 받다가? 혈서를 쓰면서?
 온통 깜깜했다. 이곳은. 


 

 "뭐가?"
 "스가타 쇼지."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가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선 내게 말을 하고 있는지. 또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선 이름이 아마… 옹성우. 였나." 


 

 나는 다급히 거실등 스위치를 찾았다. 그의 말이 계속 이어지기 전에 불을 켜야했다. 


 

 "별로 놀랄 필요는 없어."
 "……."
 "얼른 자. 늦었다." 


 

 김재환이 날 타이르듯 말했다. 그 목소리에 스위치를 켜려던 손을 멈추었다. 그가 마지막 말을 뱉고선 살풋 웃었다는 것에 확신 할 수 있었다. 그 웃음의 의미가 별로 좋은 뜻은 아니라는 것에도.
 밤새 잘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더위 탓이 아니었다. 가지고 온 선풍기는 콘센트에 꽂지도 않고 내버려 둔 채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떻게 아는 걸까. 원래 그 쪽은 정보가 그렇게 빠른가. 하긴, 자기가 머물 집 딸인데 그 정도는 대충 알고 왔겠지. 당연한 거겠지. 그렇게 가벼이 넘기고 싶었으나 결국 그러질 못했다.
 확실히 김재환은 달라져 있었다. 


 


 몇 달만에 들렸는데도 여전했다. 비어있는 책장. 서랍에 잔뜩 쌓인 라이터. 담배. 침대에 기대 앉아 그걸 입에 물고 있는 옹성우까지. 


 

 "월요일에 들어온다며."
 "일이 있어서." 


 

 성우는 여주를 떠올리며 조용히 투덜댔다. 괜히 대놓고 그랬네. 


 

 "다음 주 월요일엔 뭐 해? 할 거 없으면 또 와."
 "무슨 일로 너 방에 다 불러."
 "보여줄 사람이 있어." 


 

 과외 시간에 아예 술판을 벌여놓을 생각이었다. 그럼 그제야 알겠지. 저가 가르치는 놈은 사람 새끼도 못 된다는 걸. 


 

 "보여줄 사람?" 


 

 방을 구경하던 민현이 되물으며 성우 쪽으로 돌아보았다. 호기심 어린 눈치였다. 그는 입꼬리만 살짝 말아올리고선 대답했다. 


 

 "궁금하면 와. 네 시 쯤으로." 


 

 생각만 해도 재밌을 광경에 성우가 웃었다. 이번엔 어떻게 반응할 지도 궁금했다. 죄송하다며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할까, 아님 한 대 치면서 욕을 하기라도 할까. 민현이 따라웃으며 답했다. 


 

 "그러지 뭐. 이제 바쁘지도 않은데." 


 

 뒷 말이 흐렸다. 성우는 그 말의 의미를 알았다. 그래서 잠자코 있었다. 


 

 "일본 이제 안 가려고. 아,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가는 거지." 


 

 민현이 말을 내뱉고선 또 한번 웃었다. 별로 내키는 웃음은 아니었다. 성우가 농담조로 대답했다. 


 

 "조선에서 졸부나 해."
 "그러려고." 


 

 대신에 씁쓸한 웃음이었다. 


 

 일본과 조선을 오고가며 숨어 살았던 23년이었다. 그 정도면 시간도 지날 만큼 지났다고 생각했다. 제 출생에 대한 죄도 반 이상은 갚지 않았을까 했다. 그와 그의 친모에게 파파라치가 붙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진.
 스물 셋을 먹고 아비를 두 번째로 만났다. 호칭을 어떻게 해야될 지 몰라 먼저 부르지도 않았다. 사실 그러고 말고 할 시간도 없이 대화는 허무할 만큼 짧게 끝났다. 조선에 가있어라. 그게 끝이었다. 제 얼굴이나 제대로 한번 봤을 지가 의문이었다. 민현은 굳은 표정으로 인사를 올리고선 나왔다.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 엄마는 무슨 대화를 나눴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오히려 먼저 짐을 챙기고 있었다. 자신이 떠나는 게 당연하다는 것마냥. 그 모습을 본 순간 처음으로 억울하다는 감정을 느꼈다. 왜 우리가 떳떳하질 못할까. 그동안 죽은 듯 지냈던 건 우리였는데.
 그러나 늘 그랬던 것처럼,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자신의 죗값에 대해. 


 


 


 


 

구독료 없는 날이라서 내일 되면 구독료 0p로 돌릴 예정입니다 :) 

매번 읽어주시는 독자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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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하.....넘 재밌어요..... 민현이....으으으으 ㅠ 어떻게 이렇게 캐릭터를 잘 짜시는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
6년 전
독자2
분위기 최고예요ㅠㅠㅜㅡㅠ독보적이네요ㅠㅠㅠ재환이부터 민현이까지 느낌이 다 달라요ㅡㅠㅠㅠ잘 보고있습니당❣
6년 전
비회원92.73
분위기 너무 좋아요 ㅠㅠ 이건 진짜 초록글에 가야하는 글이에요 ㅠㅠ 비회원이 댓글 잘 안다는데 이건 안남길 수 없네요 ㅠ 오랜만에 집중하고 본 글 같아요 항상 잘 보고있어요
6년 전
비회원143.72
와.. 진짜 경성의 꽃은 분위기가..ㅠㅠㅠ 재환이 약지에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벌써 가슴이 아파요ㅠㅠㅠ
6년 전
독자3
와진짜분위기가 ㅠㅠㅠㅠㅠ 작가님 글 잘 읽고가요!!!!!~~
6년 전
비회원156.69
아아아아 진짜 분위기가 다했네요....... 너무 좋아요ㅠㅠㅠㅠ 글이 진짜 쫙쫙 읽히는 느낌도 딱 좋아요 작가님 사랑합니다....♥
6년 전
독자4
집중이 너무 잘 돼요 분위기부터 최고... 작가님 천재 세용..? 책으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네요ㅠㅠ 짱
6년 전
비회원186.42
아 진짜 꿀잼입니다 작가님ㅋㅋㅋ 분위기 짱짱!!
6년 전
독자5
흐...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이 안되는게
경성의 꽃 뽀인트!!!!
재미져요 진짜로 ㅜㅜㅜㅜ

6년 전
독자6
아 작가님 진짜 막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아시는 것 같고 분위기도 문체도 너무너무 좋아요 엉엉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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