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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몬스타엑스 김남길 이준혁 강동원 엑소 성찬
P 전체글ll조회 1175l 1



01

* Cain, The World ; 낡은 탑의 지하 문이 삐걱거리며 요란하게 열렸다. 소년은 재빠르게 문 틈새로 파고들었다. 아무도 없는 내부를 빠르게 스캔한 소년은 악취가 풍겨오는 방치된 지하를 넘어 계단을 뛰어 올라 위층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북적북적 모인 틈새로 소년이 파고들었다.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소년의 몸 어딘가에 역십자가의 모양새를 한 흉터같은 낙인이 찍혔다. 소년의 왼쪽 맨발에 채워진 정교한 옴 문자가 새겨진 금제 발찌가 번쩍 빛을 발하고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여전히 소년의 존재를 모르는 듯 가만히 제 갈길을 향해 걸었다.


* Abel, The Wheel of fortune ; 탑의 아벨이라고 불리는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탑의 중상부에 위치한 곳에서 비밀스럽게 머물고 있었다. 그는 신의 간택자였다. 동그랗고 맑은 눈 위로 신의 안개가 내려앉아 탁해질 때, 그는 신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탑의 사람들은 그의 몸 안에 들어 앉은 신의 자아를 찾아댔다. 아벨은, 속세에 지친 나머지 속세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숨었다. 그는 이 탑을 나가고 싶어했다. 탑의 신이 간택한 인간은 여길 나갈 수 없다, 무겁게 짓누르는 신의 굴레는 그로 하여금 더 어두운 심연의 빛을 머금게 했나니, 어두운 구름을 응시하던 소년의 눈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이 자리했다.


『What A Horrible night.』

* Whore of Babylon, The Hanged Man ; 바빌론의 창녀라고 불리는 소년이 있었다. 사창가를 배회하는 소년. 여자마냥 곱상한 외모에 흰 피부, 회색빛 눈과 머리를 가진, 뚜렷한 삼백안이 매력적인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이 온 후에, 탑의 사창가에는 이런 소문이 돌았다. 그 소년은, 육욕에 미친 자들을 처단하는 신의 사자라고. 혹자는 바람의 아이라는 이야기도 넘실거렸다. 소년은 늘 어딘가에 맴돌며 꾸준히 같은 곳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다. 탑의 사람들은 그를 종종 보았다는 말을 했지만, 그 사람들의 자취는 어딘가로 감추어졌다. 진실로 그 소년이 신의 사자인가, 하는 사람들의 억측이 허공에 둥둥 떠 다닐 뿐이었다.


* A God, The Sun ; 탑을 지배하는 자는 누구인가. 탑의 지배자. 탑의 왕이자 탑의 신. 신전 앞에 선 소년은 혀를 툭 찼다. 탑의 신, 태양의 가호 아래 우리는 영생을 누리리니. 금으로 만들어진 판 위로 새겨진 글자는 그가 혀를 차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신을 찬양하다니. 어디 찬양할 것이 없어서 신이라는 허울뿐인 존재를 찬양하는가. 소년은 통탄했다. 잔뜩 눌러 쓴 로브의 두건을 더 깊게 눌러 쓴 소년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후드 자락 사이로 소년의 금발이 흩날렸다. 금색의 빛가루가 소년의 뒤를 따라 흩어졌다. 아벨, 아벨은 어디 있는가. 탁한 음기를 잔뜩 머금은 아벨의 징조는 심상치 않았다. 이대로, 이대로 날아가 버리려는가. 그의 등에 자리잡은 검은 태양 문양이 붉은 빛을 띄었다.


* A Magician, The Moon ; 달의 눈을 가진 아이다. 눈동자가 투명했다. 투명하고 맑은 눈동자 속 푸른 기운이 감도는 안광이 그의 눈동자를 채우고 있었다. 아, 사람들은 놀라워했다. 소년의 피부는 희었고 머리칼 역시도 푸른 빛을 띈 검은색이었다. 사람들은, 소년을 달의 아이, 혹은 빛의 아이라고 칭했다. 소년의 얇은 등줄기 옆에 자리한 날개뼈는 톡 튀어나와 있었다. 당장이라도 날개가 튀어 나올 듯한 그 모양새에 사람들은 간혹 그를 천사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18세가 되는 해에, 사람들을 피해 탑을 오르겠다는 일념으로 각 층 어딘가에 숨겨진 계단을 찾기 시작했다. 꼭 탑의 꼭대기에 있는 태양을 만나려무나, 제게 항상 되뇌듯 말하던 제 할미의 뜻을 따라 달의 아이는 그렇게 탑의 위로 떠올랐나니, 그의 날개뼈 위로 새겨진 검은 달이 푸르게 빛이 났다.


* A Sin, The Fool ; 탑의 지하. 탑의 최하층. 탑을 열고 닫을 수 있으며 탑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자.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탑의 규율을 깨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탑의 최하층을 지키는 수호인임과 동시에, 탑을 나갈 수 있으면서 스스로 구속되길 원하는 죄의 굴레에 걸린 자요, 어리석은 자였다.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알 길이 없었다. 자신을 심연 속에 밀어 넣으며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그 고통을 잊어낼 방도를 잘 알고 있지만 행하지 않는 가학적인 자.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만들어낸 심연이었다. 누군가가, 누군가가 이 곳으로 와 주기를 바란다. 오늘도 그는 허공에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은 자리에 고이면 썩기 마련이었다. 악취를 풍기는 물이 그 자리에 조용히 파원을 그렸다.


* The Tower ; 탑의 기류가 뒤숭숭해졌다.



+ + +

제 1 장

-조우-
01

+ + +



클로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클로이는 잠에서 깨었다. 느릿하게 부은 눈을 부비며 일어나자 집 문을 열고 들이닥친 옆 가게의 포주가 뚱뚱한 배를 출렁거리며 헐레벌떡 달려들었다. 클로이, 사람이 죽었어. 그는 나른함에 취해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표식은? 남겨져 있어. 남자가 당혹감과 혐오감이 잔뜩 물든 얼굴을 하고 말했다. 정확히 심장만을 도려냈더군. 남자는 제 옆에 바짝 붙어 잔뜩 땀 냄새를 풍기며 진득한 쩐내를 제 몸에 옮겨븉였다. 클로이는 남자를 세게 뿌리치고는 여자의 시신을 향해 걸었다.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는 곳을 헤집고 들어가자 그 곳에는 왼쪽 가슴이 넝마가 된 여성의 시체가 있었다. 희고 매끄러운 피부 위로 달과 별의 인두자국이 나 있었다. 정확히 심장만이 없다. 코를 찌르는 시체 썩는 냄새에 클로이는 눈을 찡그렸다. 어쩐지 잠잠하다 싶더라니. 여성의 얼굴을 확인해보니 마이라였다. 얼마 전 처녀 딱지를 떼고 이 사창가에 팔려온 아이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아이였다.


신이시여. 사람들이 탄식했다. 늘 있는 일인 듯 사람들은 가만히 그 주위에 서서 시신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피가 엉겨붙어 붉어진 땅 위의 시신을 클로이가 들어 올렸다. 시체에서 물이 줄줄 흘러 떨어졌다. 클로이는 들어올린 시신을 소각장에 아무렇게나 던져 넣었다. 철퍽, 기분 나뿐 소리와 함께 시신은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 클로이는 잔뜩 엉겨 붙은 핏 자국을 보며 인상을 썼다. 사람들 사이를 둘러보자 이상한 기류의 인간이 눈에 띄었다. 온 몸에 검은 로브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클로이는 눈을 찡그리며 그 검은 로브의 사내를 다시 노려보았지만, 그는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회색의 머리가 언뜻 보인 것 같기도 했다.



+ + +



“계단을, 열어 주십시오.”


소년이 간청했다. 신전의 사제들에게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사제들은 이미 돈에 눈이 먼 한심한 작자들이었다. 소년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사제들은 완고했다. 금을 가져오지 않으면 계단을 열어 주지 않겠다. 하고는 가소로운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나 후드를 벗었다. 사제는 소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푸르게 빛나는 눈은 이세계의 것이라 봐도 무방했다. 사제는 본능적으로 소년에게 서린 거대한 위험을 느꼈다. 그리고는,


“이 자를, 이 자를 잡아 가두어라!”


소년은 빠르게 일어나 자신에게로 다가오며 서서히 반경을 좁혀가는 호위병들을 피해 도망쳤다. 날랜 몸놀림은 온 몸에 사치스러운 갑옷을 잔뜩 두른 병사들 사이에서 압도적으로 강했다. 소년의 체중을 실은 발길질에 병사들이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쿠당탕,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도 사방에서 울렸다. 신전 안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소년은, 다음 층으로 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는 신전의 뒤에 위치한 비밀 제단으로 서둘러 자리를 옮겨 뛰었다. 공교롭게도 소년은 앞에서 멈추어 서야만 했다. 비밀 제단으로 통하는 길은 봉해져 있었다. 소년은 혀를 차며 벽을 짚고 날아올랐다. 신전의 벽을 뛰어 넘어 밖으로 도망친 소년의 뒤로 병사들이 계속 따라붙었다. 절그럭거리는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소년의 심장을 더욱 바짝 죄었다.

소년은 급히 신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상점가로 뛰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숨어 들 생각이었다. 뒤를 돌아 확인하니 병사들은 여전히 제 뒤를 쫓는 중이었다. 소년은 다시 앞을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잘그락거리는 갑옷의 소리가 약간 멀어질때쯤 소년은 무사히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 수 있었다. 바쁘게 상점가를 오가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어느 옷 가게로 향한 소년은 빠르게 제가 입고 있는 까만 후드 로브를 벗어 던지고 푸른 로브를 거머쥐었다. 옷 가게를 지키던 소녀는 소년의 행동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 때였다. 바깥에서 누군가가 우렁차게 외치는 소리가 온 가게를 울렸다.


“검은 로브를 입고 있었던 푸른 눈의 소년을 찾으면 포상으로 금 한 덩이를 주겠다!”


가게 밖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가게 안은 조용했다. 소년은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소녀는 당혹감에 물든 얼굴로 소년의 땀에 젖은 얼굴을 보았다. 검은 로브, 푸른 눈. 소년의 행색을 뜯어보던 소녀는 이내 몸을 굳혔다. 소년은 푸른 로브를 입으며 씩 웃었다. 이실직고해도 상관 없다는 듯한 소년의 태도에 소녀는 어리둥절해졌다. 어수선한 소리와 잘그락거리는 갑옷 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왔다. 태연하게 서 있는 소년 대신 소녀가 숨을 죽였다. 가게의 문 앞에 드리워진 발이 걷히고 흰 갑옷으로 몸을 두른 병사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소녀가 흘깃 가게 안을 둘러보자 소년이 갑자기 사라져 있었다. 병사는 소녀를 미심쩍은 얼굴로 훑으며 퉁명스레 말했다.


“소녀여. 검은 로브, 푸른 눈의 소년을 본 적 있는가?”
“…….”


병사는 망설이는 소녀의 눈 앞에 금 한 덩이를 보여주며 말했다. 자, 어디 있는지 알면 사실대로 말해다오. 금을 주마. 소녀의 까만 눈이 갈 곳을 잃고 흔들리다 허공에 멈추었다. 다락에 올라 있는 푸른 로브 자락 사이로 푸른 눈이 호선을 그리며 접혔다. 소녀는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병사는 기다렸다는 듯 혀를 쯧 차고는 이렇게 어린 년이 뭘 알겠냐며 바닥에 침을 탁 뱉고는 다시 발을 걷고 나가 버렸다. 소란했던 가게 안이 조용해지자 소년이 다시 다락에서 내려오며 웃었다. 고마워. 소녀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소년은 품 속에서 주머니를 꺼내더니 빛나는 돌을 하나 꺼내어 소녀에게 건네 주었다. 소녀가 이게 뭐냐는 눈을 하자 소년이 다시 웃었다.


“문스톤이라는 건데, 달을 머금은 돌이야.”
“…이걸 왜 나한테 주는 거니?”
“고마움의 표시이기도 하고… 나중에 널 지켜 줄 거야.”


소년은 다시 눈을 접어 웃더니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소녀는 손에 놓인 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소년의 눈동자 색을 닮은 돌이었다. 소녀는 인기척이 없어진 가게 안에서 돌을 손에 꽉 쥐었다. 차가운 기운이 소녀의 손 사이를 비집고 스며나왔다.



+ + +



밤이 되자 소년은 모습을 드러냈다. 은은한 달빛을 밫은 소년의 로브가 더 파랗게 빛을 머금었다. 소년은 텅 비어버린 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를, 그 사람을 찾아야 한다. 추종자. 태양의 추종자라는 그가 머물러 있는 곳. 태양의 추종자들은 탑을 오르려는 자들의 길잡이가 되어 준다고 했다. 각 층의 어딘가에 숨어 있는 추종자들을 찾아야 했다. 추종자는, 밤에만 드러나는 붉은 눈을 가졌다고 했다. 소년은 카타콤으로 향했다. 카타콤 안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기 때문일까. 소년의 눈이 파랗게 빛났다. 그 푸른 빛은 은은한 안광의 빛무리를 만들어 내며 흩어졌다. 청명한 푸른색 속에 감추어진 소년의 상념이 깊게 잠들었다.

소년이 들어선 지하 묘지 카타콤 안은 습했고 더웠으며 음기가 가득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음기에 섞인 악취에 머리가 아파진 소년이 코를 틀어쥐고 벽에 손을 짚었다. 머리가 빙글 돌려지는 기분이 들며 소년은 계단에 주저앉았다. 여기서 이럴 수는 없어. 소년은 힘겹게 발걸음을 딛으며 두통을 호소했다. 그 때 바로 제 옆에 누군가가 붙어 섰다.


“이렇게 맑은 아이가 이런 곳에 행차를 해 주셨군 그래.”
“…누구십니까.”
“……달?”


남자는 기가 찬 얼굴을 하고 소년의 로브 후드를 벗겨 내었다. 끌려 내려가는 후드 자락에서 소년의 검푸른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그리고 소년의 온전한 흰 얼굴이 드러나자 남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말 달이란 말이냐, 탄식하듯 말한 남자는 이내 가만히 소년의 눈을 들여다보더니 한 발자국 물러났다. 머리가 많이 아플 테지. 하고서는 소년의 머리 위로 제 손을 얹었다. 소년은 탁한 기운이 가득 찼던 제 머릿속이 맑게 개는 것을 느꼈다. 남자는 덧붙였다. 여긴 네가 출입할만한 곳이 아닐텐데. 소년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추종자.


“추종자를 찾으러 왔다고?”
“…그렇다.”
“하지만 꼬마야, 네가 찾던 추종자는 이미 죽었는걸.”
“…뭐라고?”


남자가 비릿하게 웃었다. 내가 죽였다. 하고 덧붙이는 남자의 등 뒤로 시퍼런 칼날이 보였다. 소년은 칼을 똑똑히 보았음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는 의아하다는 얼굴로 빙그레 웃었다. 간이 큰 소년이군. 하고서는 칼을 꺼내 든 그의 손을 가만히 보던 소년은 허리를 숙였다.


“태양의 추종자를 뵙습니다.”


남자가 소년의 말에 호탕하게 웃으며 칼을 손에서 놓았다. 챙그랑, 금속성의 물체가 이끼가 드문드문 낀 돌 위로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었다.



+ + +



신이시여, 어찌 저를 버리시나이까. 온통 검은 색으로 뒤덮힌 저택 안에서 소년이 울부짖었다. 청아하고 맑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색의 눈동자 위로 눈물이 차올라 흔들렸다. 카인은, 카인은 왜 오지 않는 것이며 당신의 자아는 왜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까. 절망에 가득찬 목소리가 텅 빈 거실을 울렸다. 밀랍으로 만든 초의 촛불만이 거실 한 가운데에서 위태로이 흔들렸다. 어둠 속으로 스민 그림자가 요동쳤다. 소년은 붉게 가라앉은 눈을 굴렸다. 어둡게 내려앉은 주변 공기가 소년의 폐를 짓눌렀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는 운명이었다. 판판한 가슴 위로 새겨진 삼각의 전시안이 뜨겁게 달아올라 불타는 듯 아팠다. 익숙한 아픔에 소년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픔이 점차 사그러들자 소년은 거실 한 구석으로 걸어가 쌓아 둔 책더미를 뒤져 낡은 책을 집어 들었다. 제게 전해진 고서 중 가장 낡은 것이었다. 소년은 한숨을 쉬며 유독 낡은 부분을 펴서 촛불에 비추어 읽었다. 그 대목만을 몇 번을 읽었는지 너덜너덜하게 종이가 얇아져 있었다.


『카인과 아벨, 그 날의 새벽. 달마저 지고 태양이 아직 뜨지 않은 어슴푸레한 새벽에 아벨의 굴레가 벗겨지리라.』

『그 굴레가 벗겨지는 날엔 신마저 그를 잡을 수 없으리니, 그는 자유롭게 날 수 있으리라.』


그 글의 밑에는 사람의 형상이 둘 그려져 있었다. 한 사람은 붉은 눈을 가진 사람이었고, 한 사람은 특이하게도 왼쪽 발에 금으로 된 장신구를 차고 있었다. 두 사람의 가슴 정 중앙에 무언가가 그려져 있었다. 붉은 눈의 사람에게는 삼각의 전시안을, 다른 사람은 역삼각의 전시안이 그려져 있었다. 소년은 가만히 책을 덮었다. 제 뒤에 서 있던 시녀가 조용히 물었다. 주인님, 불을 꺼 드릴까요. 소년은 뒤를 돌며 슬피 말했다. 그래, 오늘은 더 일찍 자고 싶구나. 소년의 목과 등이 이어지는 부분에 자리한 십자가 문양이 더욱 검게 물들었다.

저를 놓아 주십시오. 소년의 음성이 구슬프게 안을 채웠다.



+ + +



“어떻게 알았지?”
“손을 보고 알았습니다.”


소년의 말에 남자는 더욱 호탕하게 웃으며 재밌다는 듯 이유를 재촉했다. 뭘 보았길래 그런 거지?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손등에 있는 호루스의 눈을 보고 알았습니다. 하자 남자는 손등을 보여 주며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썰미는 참 좋구나. 남자는 칼을 주워 들고 소년에게서 등을 돌려 카타콤 안으로 더 깊숙히 내려갔다. 소년은 남자를 따라 들어서며 점점 어두워지는 지하에 눈을 찌푸렸다. 평평한 바닥에 닿자 남자는 소년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소년은 남자에게 끌려 가며 내부를 살폈다. 정교한 흑요석 세공품이 자리잡고 있는 내부는 꽤나 넓었다. 예배를 위한 제단에는 자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 자리를 중심으로 육망성이 땅에 그려져 있었다. 남자는 육망성의 중심에 앉으며 소년을 빤히 보았다.


“소년, 네 이름은?”
“백이라 하옵니다.”
“백... 잘 지은 이름이군. 나를 찾은 이유는?”
“다음 층으로 가는 길을 알고 싶습니다.”


남자의 눈이 커졌다. 다음 층? 소년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었다. 남자는, 아니 태양의 추종자는 입을 꾹 다물더니 말을 하지 않았다가 이윽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네가 달의 아이니 특별하게 해 주는 말이다. 모든 층에는 태양의 계단이 있고 달의 계단이 있다. 계단이 둘로 나뉜 이유는, 계단을 열 수 있는 시간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름대로 태양의 계단은 낮, 달의 계단은 밤에 열린다. 너는 지금… 하고 소년을 빤히 보던 남자는 말했다. 신전에서 계단을 열어 달라고 했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왔구나. 소년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어떻게 알았냐는 눈치였다. 남자는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말했다. 아이야, 그 계단은…


“신전에서 만들어 낸 가짜 계단이란다.”
“네?”
“계단은 그런 공개적인 장소에 존재하지 않는다. 신전이라면 더더욱.”
“…….”


진짜 계단은 다른 막다른 곳에 있단다. 예를 들면, 하고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의 벽으로 향해 손을 얹었다. 남자의 손등에 그려진 호루스의 눈이 빛나는가 싶더니 지하묘지 전체가 흔들렸다. 돌 조각이 몇 개 소년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소년은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망칠 태세를 취했다. 남자는 태연하게 손을 얹고 서 있을 뿐이었다. 소년은 어리둥절해 하며 가만히 자리에 굳어 있었다. 흔들리던 벽이 갈라지며 빛이 새어들었다. 소년은 눈을 크게 떴다. 갈라진 곳에 푸른 빛을 띈 계단이 존재하고 있었다. 소년은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남자는 다시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부드럽게 말려 올라간 입꼬리에서 인자한 음성이 흘렀다.


“백현, 달의 아이야. 태양을 꼭 만나거라.”


그리고 그는 바람에 휘날리듯 사라졌다. 텅 빈 지하 묘지 내부엔 소년밖에 남지 않았다. 소년은 의구심에 사로잡혔다. 내 진짜 이름을 어떻게…? 백현은 텅 빈 묘지 안을 살짝 돌아보고는 계단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차가운 냉기가 그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 + +



검은 후드를 눌러 쓴 회색 머리의 소년은 어딘가로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었다. 자신을 뒤쫓는 사람들을 피해 막다른 골목길로 숨어든 소년은 턱까지 차오른 숨을 내쉬었다. 헉헉거리는 거친 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우르르 사람들이 내달리는 소리가 휩쓸고 지나가자 소년은 그제야 자리에 툭 주저앉았다. 소년의 품 속에서 날을 잘 벼린 단검과 함께 붉은 액체가 반쯤 든 유리병이 굴러 나왔다. 소년은 벽에 머리를 기대고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구르는 유리병을 집어들어 미약한 빛이 드는 쪽으로 비추었다. 이제 딱 한 명 남았다. 소년이 숨을 몰아 쉬며 단검을 쥐고 다시 품 속으로 밀어 넣었다. 닳고 떨어진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맨발로 일어선 소년은 제가 매고 있던 가방에서 다른 색의 후드를 꺼내어 뒤집어 썼다. 어차피 곧 밤이라 보이지도 않을 테지... 작게 중얼거린 소년은 조심스레 유리병을 품에 감추었다.









*

안녕하세여 P임다 하하 이런 판타지물을 쓰게 되다니 저로서는 상상도 못한..... ㅜㅠ 설정도 엉망이고 전개도 좀 빨라서 속이 터질 수도 있으니 미리 주의를 해 주시길 바라며... 브금셀렉에 실패한 저는 이만 총총 사라짐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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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오마이 읽기 전브터 이런 대작스멜이 나는 글ㅇ라니.... 흥분해서 댓글부터 달게 생겼네요
10년 전
독자2
아아ㅜㅠㅠ이런 대작을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ㅏㅂ니다ㅜㅜㅜㅜ 암호닉 신청을 해도 될까ㅛ? 통통으로 하고 싶어요 지금 사정 때문에 비회원이라 꼬박꼬박 달순 없지만 최대한 자주 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 너무 설래서 댓글에 뭐라 써야 할 지 모르겠네요 다사 곱씹으러 가야겠어요. ㅠㅠㅠㅠ좋으글 감사합니다
10년 전
P
허거덩 네 됩니다 암호닉 되세요 ㅜㅜ 이런 글 읽어주셔서 진짜 감사함다... 헝ㅇ엏유ㅠㅠ
10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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