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rt Signal
회색빛 커튼 틈새로 쨍쨍하게 내리쬐는 햇볕 덕분에 미간을 잔뜩 좁히며 깨어났다. 낯선 풍경에 아, 하는 탄식을 내뱉었고, 어제 재환과 있었던 일이 떠올라 다시금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걸치고 있는 그의 체육복 반바지도, 협탁 위에 곱게 개어져 놓인 내 교복 치마도. 내 마음을 어질러놓기에 충분한 자질이 있었다. 괜스레 부끄러운 느낌에 고개를 숙였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기까지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낯부끄러웠으니깐. 고작 4번 본 게 다인데, 재워달라니. 그것도 울면서. 그제서야 남자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았다. 많이 당황스러웠겠지.
"......"
겨우 용기를 내어 문을 열었을 때에는, 공허한 공기만이 나를 감싸왔다.
남자를 찾기 위해 한참 거실을 배회하던 중, 식탁 한 켠에서 노란 쪽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일어났으면 010-1996-0527로 전화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식탁 의자에 앉아 한 글자, 한 글자 끄적였을 그가 상상이 되어서.
핸드폰 홀드키를 눌러 잠금을 해제한 뒤, 11자리의 번호를 차근차근 눌렀다. 잠겼을 목을 가볍게 푼 후에야 간신히 전화를 걸 수 있었다. 약간의 불안함이 나를 감싸왔다. 안 받으면 어떡하지.
여보세요.
신호음이 세 번쯤 울렸을까 다행히도 전화선을 타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저 일어났어요...."
(잘 잤어?)
"네... 뭐, 그럭저럭."
(내가 잠깐 나와 있어서- 냉장고에 도시락 있으니까 그거 데워 먹어.)
"감사합니다."
자고 일어나, 살짝 허기가 졌고 그것을 용케도 알아채낸 재환은 도시락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왠지 모르게 심장이 간질거렸다. 분명 낯선 공간에선 적응을 잘 하지 못했던 나였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냥...... 이상했다고 해야 하나.
남자도, 그의 친구도 집에 없고 나 혼자였지만, 적막만이 맴돌 뿐이었지만, 낯선 공간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 나였지만,
"......"
이상하게도, 전혀 외롭지 않았다.
Heart Signal
매일 휴일에도 교복만 입다가, 오랜만에 최대한으로 꾸며입은 나의 차림새가 어색하고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남자의 연락 한 통에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왔을 땐, 아버지가 이미 일을 가신 후였고, 그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서둘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선호는 이상하게 바라보았지만.
"누나, 어제 어디 가 있었던 거야? 연락한다면서. 순 거짓말쟁이야, 아주."
"어...... 선호야."
"잠시만, 사복이네. 어디 가?"
"아, 어....."
"....."
"약속이 있어서-"
-밥은 다 먹었겠지.
-그건 그렇고, 오늘 시간 비나?
-뭐... 별일 없으면 버스킹 구경 와도 되고.
내겐 아주 특별한 약속이었다.
처음 와보는 거리였다. 남자의 문자에 덜컥 가겠다고 생각 없이 답장을 보낸 나의 불찰이었다. 지하철을 타는 것 까진 괜찮았다. 2호선이야, 논술 학원을 다니면서 자주 타보았었으니까. 역에 도착하니 펼쳐진 익숙지 않은 환경들이 나를 반겼고, 중요한 건 난 이곳의 지리를 모른다는 점이었다. 스스로를 자책하며 휴대폰 길 찾기 애플리케이션에 의지하는 것이 최선의 노력이었다.
여차저차 10분쯤 걸었을까, 버스킹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가 남자가 말한 그 거리인가 보다. 물론, 많이 걷긴 했지만..... 잘 찾아온 게 어디야.
시계를 보니 6시가 거의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고, 두리번거리며 남자를 찾기 시작했다.
"네가 찾고 있는 얘는, 저기."
"어...."
"곧 시작하겠네. 얼른 가 봐-"
"그쪽은 안 가요?"
"나도 7시에 버스킹 있어서, 준비하러 가야 돼."
갑작스레 내 앞에 나타난 남자의 친구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친구끼리 닮는다더니.... 불쑥불쑥 나타나는 그들 때문에 심장이 쪼그라질 지경이었다. 자신의 손가락까지 동원해 위치를 알려준 덕에 쉽게 재환을 찾긴 했다만.
"아.... 어쨌든 감사합니다."
"그래, 나중에 봐."
확 튀는 핑크색 뒤통수가 수많은 인파 속에 묻혀 사라진 후에야 발걸음을 돌릴 수 있었다.
남자의 버스킹 장소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인원이 모여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일찍 올걸. 이대로 있다간 정말로 목소리만 듣고 갈 것 같아, 그나마 비어있는 사이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제서야 보이는 익숙한 인영에 화색이 돌았다. 그도 잠시, 남자의 옆에 앉아있는 누군가로 인해 내 표정이 보기 좋게 굳어지고 말았다.
.....저 여자는 누구지.
"오늘 부를 첫 번째 곡은 듀엣곡이고...."
"......"
"....아무튼 잘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로 목을 축인 후, 그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몇 번 끄덕이는 게, 아마 시작하겠다는 일종의 사인 같았다. 나의 예상이 적중하는 동시에, 기타에선 듣기 좋은 선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음악을 잘 알지 못했지만, 듣자마자 알 수 있었다. 달콤한 사랑 노래라는 것을.
예쁘네 오늘도 어제만큼 아니 오늘은 더 예뻐졌네
그의 목소리는 참 좋았고,
어젠 너무 좋은 꿈을 꿨어 지금 말해주긴 간지러워서 말하기 싫어
인정하긴 싫지만, 여자의 목소리도 참 고왔다.
사귀는 사이라도 되는 마냥,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는 그들은 내 눈에도 너무 예뻐 보였다.
그 사이에 내 속에선 불이 나기 시작했다. 다양한 감정들이 뒤틀리고, 섞이고, 싸우고 복잡했다. 왜 이러는 건지.
"감사합니다."
"....."
"바로, 다음 곡 들려드리겠습니다."
어지러운 내 감정만 남긴 채, 그렇게 듀엣곡은 끝이 났다. 다음 노래는 김재환, 혼자 부르는 것 같았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웬일인지 그는 기타를 조심스레 내려둔 뒤, 앞을 보고 서있던 몸을 사이드 쪽으로 돌렸다. 자연스레 시선이 맞닿자, 나를 바라보며 살풋 웃고는 마이크를 드는 남자였다.
"가운데 쪽만 보고 노래하면, 옆에 분들이 섭섭해하실까 봐-"
.....참, 자기다운 발상이야.
마침내 잔잔한 선율이 흘러나왔다.
It`s a beautiful life
난 너의 곁에 있을게
It`s a beautiful life
너의 뒤에 서 있을게
뒤숭숭하고 미묘한 느낌이 잠시나마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내 눈을 피하지 않고 예쁜 가사 구절을 부르는 그에 착각을 해도 될 것만 같았다.
그만큼 아슬아슬했다. 마이크 선을 타고 흘러져 나오는 목소리가 내 감정선을 건드렸다. 톡하고 건들면 전부 와르르하고 무너질 것 같았으니까.
제법 선선해진 계절의 하늘이 어둡지만, 밝게 물들여지고 있었다.
Epilogue |
"야, 너 걔한테 관심 있지." "....누구." "그 고등학생." "....." "아까 그 고딩 보면서 노래 부르던 거 아니냐." "....봤어?" "어, 아주 눈에서 꿀이 뚝뚝-" "......" "적당한 선에서 끊어라." "몰라..... 아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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