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ed_ piper
w. 달 월
-일주일에 걸쳐 썼더니 매우매우 깁니다! 브금 꼭꼭 들어주셨으면 해요 ㅎ.ㅎ
-브금은 필청입니다!!꼭꼭 들어주시기!!
- 아 그리구 댓글은 자까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아무말 환영, 격하게 반겨드림) 희희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15.
평소 같으면 딱딱해서 잠시 누워있지도 못할 내 방의 맨 바닥이, 지금 만큼은 이상하리만치 편안하다고 느꼈다. 아니, 사실은 신경쓸 겨를이 없어 딱딱한 줄도 모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불편할까, 내 허리를 살짝 받혀주는 정국이의 손 때문일지도. 빗소리를 배경으로 조용한 방안에 우리 둘이 내뿜는 숨소리만이 들린다. 그러다 짧은 마찰음을 내며 그가 내게서 살짝 떨어졌고, 차가운 공기를 만난 내 입술이 이내 차가워지는게 느껴졌다. 내가 괜한 짓을 했나, 짧은 순간에 여러 생각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그러다 이리저리 흔들리던 나의 눈이 그의 어두워진 갈색 눈을 마주한다. 잠시 알수없는 표정이 그의 얼굴에 맴돌고, 가까워진 따뜻한 입술이 다시 내 입술에 부드럽게 안착한다. 계속 이어가기에도, 그렇다고 멈추기에도 두렵다는 듯한 키스가 이어졌다.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꼭 잡고 그대로 있었다. 비에 잔뜩 젖은 옷이 아직도 축축한 느낌이 내 손바닥에 그대로 퍼졌다.
계속되는 키스에, 이번에는 내가 먼저 그에게서 떨어졌다. 숨이 차서. 그런 나를 보고, 제 이마를 내 이마에 살짝 가져다 대고는 낮게 웃는다. 나만 숨이 찬 것은 아니었는지 내뱉는 가쁜 숨이 느껴진다. 눈동자에 가득 나를 담은 정국이 내 머리를 감싸 자신의 어깨에 폭 안기게 나를 끌어안았다. 심장이 쿵쿵 너무 크게 뛰어서 그에게 들릴 것을 확신했다. 그렇게 가만히 내 머리를 쓰다듬던 정국이가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솔직하게 다 말해줘서. "
몰려오는 부끄러움에 아무말 못하고 그저 그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천천히 나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정국이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러다가 그 움직임을 멈추고는 나를 살짝 품에서 떼어놓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던 그가 입을 다시금 열었다.
그리고, 설렌다는게 뭔지 알려준 것도.
촉촉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내 가슴 깊숙이 까지 스며들었다. 얼굴에 확 오르는 열기에 입술을 살짝 물었다. 지금 이런 상황에 나와 정국이가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리고 이 모든게 그에겐 잠시 지나가는 해프닝일까봐. 이 모든 것이 술기운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도 모르게 입술을 더 세게 물게 만들었다. 정국이의 눈길이 내 입술로 내려왔다가 다시 나를 담는다.
"그런거 아니에요. "
"..."
"술김에 그런거 아니라구요. "
금세 내 생각을 다 읽어내고는 살짝은 신경질적으로 입을 여는 정국이다. 그리고는 그와는 상반되게 다정하기 그지 없는 손길로, 꽉 물고 있던 내 입술을 살짝 매만진다. 물고 있던 입술이 살짝 풀어진다.
" 누나, 생각 많아지면 입술 무는 버릇있는거 알아요? "
"..."
"그런데 그만해요 그거, 쓸데 없는 생각 하는거. "
정말 얘 앞에서는 하나도 숨기질 못한다. 내가 표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건지, 정국이가 눈치가 빠른건지 모르겠지만. 뭔가 대단한 보물이라도 발견했다는 듯이 눈을 반짝이며 내 입술에서 눈을 떼지 않는 시선이 민망해서 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계속 담아뒀던 쓸데없는 생각들 중 하나가 튀어나왔다.
"... 후회해? "
"뭘, 우리 방금 키스한거?"
아무렇지 않게 키스라는 단어를 말하고는 담담하게 나를 쳐다보는 눈에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전혀. “
단발마의 두글자일 뿐이었지만, 안에 담긴 의미가 매우 크게 내게 다가왔다. 이어서 그럼 누나는? 하고 묻는 질문에 나도, 전혀. 하고 답하니 큭큭거리며 웃어댄다. 민망하게. 웃지말라고, 가볍게 그의 가슴팍을 때렸다. 알겠다며 웃음기를 살짝 머금고는 내 주먹을 자신의 손으로 다 가려지게 감싼다. 늘 그렇듯 저 장난스러운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늘 당해내지 못하는 내 모습도 마찬가지였고. 하지만 지금 흐르는 묘한 기류는 우리 사이에 무언가가 달라졌단 것을 상기시키는 것만 같았다.
16.
어젯밤에는 그렇게 비가 쏟아지더니. 따사로운 걸 넘어서 따갑기까지 한 햇살이 내 잠을 깨웠다. 살짝 눈을 감았다 뜨니, 저 멀리 어지럽게 펼쳐져 있는 이불이 보인다. 왜 저기 있지, 내가 잠꼬대가 심한 편도 아닌데, 하고 무거운 눈을 다시 감았다.
“아, “
순간적으로 스쳐지나 가는 어제의 기억에 짧게 탄식이 터졌다.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얜 어디 간거지. 뒤쪽에서 들리는 작은 기침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여기서 꽤 떨어진 차가운 쇼파에서 이불도 없이 잠을 청하고 있는 정국이 보였다. 내가 혹시 자다가 뭐 잘못했나, 이런저런 걱정을 하며 이불을 주섬주섬 챙겨서는 정국에게 다가갔다.
곤히 자고있는 얼굴이 새빨갛다. 내뿜는 숨도 뜨겁고. 거기다가 간간히 작은 기침까지 내뱉는다. 설마 하고 이마를 짚었더니 역시나 불구덩이 마냥 이마가 뜨거웠다. 어제 다 마르지도 않은 옷을 입힌 채로 재운게 화근이었다. 속상한 마음에 이불을 덮어주고는 그 앞에 앉아 토닥여주었다. 그것이 잠을 깨운 건지 천천히 눈을 뜨는 정국에 입을 열었다.
“왜 여기서 자. 몸이 이렇게 불덩이인데. 말도 안하고. “
“... 옮을까봐. 감기. “
괜찮아, 별로 안아파요.
하고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며, 옮는다며 돌아 눕는 정국에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그러면 내가 뭐가 돼. 안 아프기는, 계속 기침하면서.
“전정국, 병원가자. 병원. 너 열 엄청나. 더 심해지기 전에 얼른.“
“아, 안가요. 이거 좀 자면 나아. “
“더 심해지면 내가 뭐가 돼. 미안하게 만들지말고 가ㅈ... “
그렇게 미안하면, 그냥 옆에서 계속 아까처럼 토닥여줘요.
그게 더 효과있을거 같으니까, 슬쩍 내 쪽으로 다시 돌아누우며 말을 덧붙이고는 바닥에 내려 놓았던 내 손을 덮은 이불 위로 끌어올리는 정국이다. 하여간, 말 끊기는 전정국 전매 특허인가보다. 졌다, 졌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는 천천히 토닥여주니 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스르륵 눈을 감는 정국이다. 애기같아. 덩치는 산만해가지곤 토닥임을 받으며 잠드는 모습이 꽤나 이질적이었지만 어쩌겠는가, 귀엽게만 보이는데. 계속 천천히 토닥여주니, 5분도 채 되지 않아 새액 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곤히 잠든 정국이다.
“띠링. “
그 순간에 이 방 어디선가 나는 핸드폰 알림음에 주위를 둘러 보았다. 혹여나 잠에서 깼을까 하고 정국이를 보니 세상 모르고 잘만 잔다. 가만히 자고 있는 정국이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다시 한번 울리는 알림음이 나를 자리에서 일어서게 만들었다. 내가 누워있던 이불 위를 뒤적거려 내 핸드폰을 찾았다. 홀드 키를 눌러서 화면을 켰지만, 아무런 알람도 뜨지 않았다. 내껀 아닌데.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니, 현관쪽에 뒤집혀져 있는 정국이의 핸드폰이 보였다.
홈키를 눌러 화면을 켜보니, 여러 개의 알림이 계속 뜨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인스탄가. 연신 울려대는 핸드폰을 일단 무음 모드로 돌리고, 계속 올라오는 알림을 하나 눌러보았다.
'Selin_98 님이 회원님이 태그된 게시글을 좋아합니다. '
그 기본적인 암호 설정도 안해 논 것인지, 바로 인스타로 넘어가는 화면에, 이걸 봐도 되나 싶었지만 호기심이 더 커서 자연스래 넘어가는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마 어제 있었던 술자리에서 찍은 사진인가보다. 태그 되어 올라 온 사진 같았다. 인스타 안해서 몰랐는데, 전정국도 인스타를 하는 구나. 깔아야하나, 하는 생각으로 정국이의 프로필을 눌러 게시글을 보니, 자기 사진 올린 것은 하나도 없고 몇개의 풍경 사진만이 덩그라니 있었다. 전정국 답네. 근데 원래 이런 풍경사진에도 좋아요가 많이 달리나. 600개가 넘는 좋아요 갯수와 많은 댓글 수에 놀라고 있는데, 갑작스래 알림창에 뜨는 알림이 눈에 들어왔다.
'Selin_98 @JK0901 헐 이 자리에 나는 안부르고!!힝 담주 공연 뒷풀이에선 같이 놀아줘요! '
세린, 세린이라. 언제 한번 들은 이름인데. 괜히 찝찝한 기분에 멍하니 화면만 보고 있는데. 정국이가 올린 풍경 사진 밑의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Selin_98 이거 저랑 저번에 공연한 날 찍은거죠>< 우리 오빤 사진도 잘찍어 ㅎㅎ '
사진을 자세히 보니, 우리집 앞 공원인 것 같은데. 그날 같이 있었던 같이 공연 한다던 여자애 이름이 세린이었던가, 하고 프로필을 들어가서 확인해보니 맞다. 왠지 익숙하다 했더니, 맞구나. 하얗고 오목조목하니 이쁘게 생겼다. 그 날 정신이 없어서 대충 인사만 했는데. 얼핏 정국이랑 친해서 궁금했다며 조잘거리던 목소리가 생각나는 것 같기도 했다. 많이 친한가. '우리 오빠. ' 라고 하는 거 보니. 자꾸만 심란해지는 감정에 한숨을 폭, 쉬고는 그만 보자, 하고 정국이의 핸드폰을 바닥에 내려 놓았다. 이런 내 속은 알지도 못하고 전정국은 잘만 자고 있다.
지잉- 지잉-
내려 놓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연신 울려대는 핸드폰을 잠시 노려보다가, 살짝 뒤집으니 알림창이 아닌, 전화가 왔다고 알리는 화면이 보였다.
'22기 김세린. '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 해야하나. 이 상황에 맞는 표현인진 모르겠지만, 괜히 훔쳐본 것 같아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이 전화를 받아야해, 말아야해. 세상 모르고 자고있는 애를 깨울 수 도없고. 좀 냅두면 끊어질까, 싶어서 가만히 두었지만 다시 걸려오는 전화에 안되겠다 싶어 통화하기 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
"정국 오빠 핸드폰 아닌가요? 누구세요. "
"아, 정국이가 지금 아파서 자고 있어ㅅ... '
"네? 거기 어딘데요? 병원인가요? "
요즘 애들은 말 끊는게 취민가. 내 말은 싹뚝 잘라먹고 병원이냐 묻는 세린의 음성에 고민에 빠졌다. 이걸 말해 줘야 해, 말아야 해. 오늘 참 여러번 고민 시키네. 한참을 말이 없으니 이상하다 느꼈는지, 다시 한번 오늘 오빠랑 약속이 있었어서 꼭 만나야하거든요, 하곤 대답을 촉구하는 목소리에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 여준데, 여기 탄소동 탄소아파트 201호야. "
"... 아, 여주 언니셨구나. 저 금방 갈게요. "
수화기 너머로 떨떠름한 음성이 여기까지 전해졌다. 금방 오겠다며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뚝 끊긴 전화를 들고 한손으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쌌다. 이여주, 멍청이. 그걸 왜 말해주냐.
똑똑-
삼십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진짜 빠르다. 열이 오르는지 이불을 다 풀어 헤쳐놓은 정국이에게 다시 이불을 꼭꼭 덮어주고는 문으로 걸어갔다. 문을 여니 이것저것 손에 많이 든 세린이가 보인다. 어색하게 안녕, 하고 인사하니 안녕하세요, 하고 까딱 고개짓을 하곤 들어가도 되죠? 하곤 묻는 세린에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주었다. 이렇게 잘 알지도 못하는 애를 집에 들인건 처음인데. 문을 닫고 너저분한 방을 살짝 정돈 하고는 쇼파 쪽으로 향했다. 가만히 걱정스럽게 정국이를 내려다보고 있는 세린의 모습이 보인다. 아주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후, 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정국이를 살짝 흔들었다.
여전히 꿈속을 헤매는 듯 부스스하게 일어난 정국이의 볼을 살짝 매만지며 잠을 깨웠다. 옆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래서 더 다정스럽게 정국이의 이름을 부르며 꺠운 것 같다. 나 왜이러니, 추잡하게.
"정국아, 세린이 왔어. 좀 나았어? 어때. "
이마에 손을 대니 아까보다는 좀 가라앉은 것 같은 온도에 다행이다, 하니 봐봐요, 금방 괜찮아진다니까. 하며 고맙다며 웃어보이는 정국이다.
"오빠, 많이 아파요? 아프면 병원가야지. 왜 여기에 있어요. 내가 죽 사왔으니까 먹어요. "
높은 하이톤의 목소리에 살짝 고개를 돌린 정국이가 그제야 세린을 발견하고는 표정을 살짝 굳힌다. 아무 말도 없이 넌 여기 왜 있어, 하는 표정으로 빤히 세린을 쳐다보는 정국이다.
"그렇게 볼 필욘 없잖아요. 오늘 공연에 올릴 곡 정하기로 했잖아요. 전화도 안받고, 너무해요. "
“아, 곡 정하기로 했지. 미안, 좀 아파서. 그냥 나중에 카톡으로 정해도 되는데. “
퉁명스래 대답하는 정국의 말에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괜시리 내가 다 민망해져서, 부엌에서 상을 가져다가 폈다. 자, 일단 먹고 얘기하자. 세린이가 사왔으니까, 하니 그제야 몸을 일으켜서는 상 앞에 앉는다.
"오빠가 좋아하는 호박죽으로 사왔어요. "
"고마워. "
애교 넘치는 목소리로 오빠, 오빠 거리는 세린에 작게 웃어보이고는 한 숟갈을 드는 정국의 모습을 보니 괜히 씁쓸했다. 애가 참 밝고 애교가 많네. 뭔가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에 나는 대충 몇 숟갈 뜨다 말고, 쇼파에 가서 앉았다. 그런 나를 보고는 덩달아 숟가락을 내려 놓고는 쇼파로 걸어온다. 넌 먹고와, 라는 눈빛을 보내니 고개를 저으며 입맛 없어, 하고는 바닥에 앉아 쇼파에 기댄다. 멋쩍게 상 앞에 앉아 있던 세린이가 입을 열었다.
"오빠, 인스타 제 댓글 봤어요? 어제 지민 오빠가 사진 올렸던데. "
괜히 뜨끔해져서 쇼파 위에 앉아 애매한 웃음을 띄었다. 그럼 봤고 말고. 다음에 같이 술 먹자고 댓글 단거 봤지.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되뇌었다. 아직, 이라고 간단히 답하고는 한숨을 작게 내쉰 정국이가 고개를 뒤로 젖혀 쇼파에 기댔다. 잠시동안, 쇼파 위에 앉아 있던 나와 눈을 맞추고는 작게 웃어보인다. 자꾸 왜 저래. 설레게. 그러다가 한쪽 팔을 올려 눈을 가리고는 입을 여는 정국이다.
"세린아. "
"응, 오빠. "
"나 좀 졸려서 그런데, 곡 나중에 정해서 카톡이나 전화로 알려줘도 될까? "
낮게 잠긴듯한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살짝 당황한 듯한 표정을 한 세린이가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그럼 저녁에 전화해요, 하곤 짐을 챙겨 일어난다. 그래도 손님인데, 역까지 데려다주고 올게, 하고 함께 일어섰다.
-위랑 다른 브금이에요!!꼭꼭 들어주세요.
너무 얇게 입고 나왔나, 비온 다음날이라 그런지 한껏 쌀쌀해진 날씨에, 두팔을 비비며 세린이와 역 쪽으로 함께 걸었다. 춥지도 않은지 나보다도 훨씬 더 얇은 차림새를 하고 있는 세린이의 표정이 미묘하다. 뭔가 생각에 한참 잠겨있는 듯한 표정이다. 역 앞에 거의 다다랐을때 그제야 세린이가 입을 열었다.
"언니, 진짜 오빠랑 친한가봐요. "
"... 어? 응. 친하지. "
"오빠가 저렇게 언니네 집에서 잘 정도로 친한가봐요? "
가시가 잔뜩 돋은 말을 하는 세린에 뭐라 답을 할 지 몰라 의미없이 하하, 하고 웃었다. 이런 내 반응에 피식 웃고는 아니에요, 하곤 묵묵히 걷는다.
"그럼... "
무언가를 말해야 겠다는 마음을 먹은 듯한 운을 띄우는 그녀의 말에 바닥을 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나 오빠 좋아하는데, 도와주세요. 언니 오빠랑 친하니까. "
내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는 내 손을 덥썩, 잡고는 반달 눈을 만들어 내게 웃어 보이는 세린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를 몰라서 계속 어버버 거렸다. 바보도 아니고, 아니면 아니라고 말을 해야하는데. 그럼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고마워요, 언니. 하고는 역으로 뛰어 내려가는 세린의 뒷모습을 멍하게 쳐다보고만 있었다. 당했다, 라는 생각이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들었다. 아마 느꼈겠지. 내가 정국이 좋아하는 걸. 복잡해진 상황에 한숨이 땅이 꺼지듯이 쉬며 집으로 향했다. 저 멀리에 익숙한 실루엣이 내게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추운데, 감기 걸릴려고. "
너가 할말은 아니지, 전정국.
작게 콜록이며 가방에서 제 가디건을 꺼내서는 내게 둘러주는 정국이다. 자긴 반팔입고 뭐하는거야. 됐다고, 너 입으라고 둘러준 가디건을 풀어 내니, 내 어깨에 다시 두르고는 꽁꽁 묶어버린다. 그러곤 맑게 웃고는 역까지 데려다줘요, 라며 나를 뒤돌아 세운다.
"괜찮아? 열은 아까 좀 내렸던데. "
"괜찮아요, 덕분에. 내가 뭐랬어. 병원가는 거 보다 효과있다니까. "
여전히 작게 기침을 내뱉으며 대답하는 정국이다. 퍽이나 효과가 있어 보이네. 어느새 도착한 역에서 들어가려다 말고 뒤도는 정국에 눈을 맞췄다. 이제 눈 정도는 제대로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간질거리는 느낌은 여전하지만.
"세린이 와서 불편했죠, 걔 신경 쓰지 마요. "
신경쓰고 있었던게 티가 났나보다. 아니라고 고개를 젓고 손을 흔들었다. 그제야 표정을 풀고는, 그럼 갈게요, 카톡할게, 하고는 역으로 들어가는 정국이다.
맞다, 가디건. 집쪽으로 향하다가 뒤를 돌았지만 이미 그는 역안으로 들어간 뒤였다. 얼마나 세게 묶어 놓았는지 잘 풀리지도 않는 가디건에 웃음이 터졌다. 진한 비누향이 가디건에서 풍긴다. 가슴 속을 간질이는 이 느낌이 싫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고 정국이의 가디건을 벗어서 가지런하게 접어 쇼파 위에 올려놓았다. 읏챠, 하고 편하게 쇼파에 누웠다. 이제야 내 집 같네. 비로소 느끼는 편안함에 눈을 감은 것도 잠시, 바닥에서 울려대는 핸드폰 진동에 몸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다. 잠시도 쉴 틈을 주질 않네.
"여보세요. "
"여주, 나, 나 물어 볼꺼 있어. "
살짝 들뜬 김태형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내 귓가에 닿았다. 우리 태태가 왠일로 이렇게 들떴을까. 뭔데? 하고 물어보니 살짝은 망설이는 듯한 음, 하고 고민 소리가 들린다.
"다음주에 나 공연 서기로 했는데, 여주랑 같이 하고 시퍼. 어때? "
나? 마이크 안 잡은지 일년이 넘었는데.
와, 근데 김태형 전역한지 얼마나 됬다고 벌써 공연이야, 역시. 우리 학교 아이돌. 하고 부둥부둥 해주니 한껏 더 쾌활한 목소리로 조잘조잘 거리며 이야기를 한다.
"오래 됐으니까, 같이하자. 나 너 아니면 누구랑 같이 해. "
"나야, 끼워주니까 고맙긴 한데... 나 너한테 피해만 주면 어떡해? "
무슨 피해야. 같이 서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진짜 김태형, 말 정말 이쁘게 해요. 혹시나 피해를 줄까 겁이 나기도 했지만,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서 알겠다고 까짓꺼 해보지 뭐, 하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니 역시 이여주, 라며 한손으로 벽을 치며 둔탁한 박수 소리를 내는 태형이가 안봐도 눈에 보이는 듯 하다.
"그럼 내일 부터 연습하자. 수업 마치고 동방 와. "
알겠어, 하고 전화를 끊고는 다시 쇼파로 가 누웠다. 머리 맡에 곱게 개어놓은 정국이의 가디건이 보였다. 아까 공연 노래 정한다는게 혹시 이건가. 그런거라면 같은 무대에 서겠네. 두 눈을 꿈뻑하고 한번 감았다가 떴다.
'나 누나 노래 부르는 거 진짜 좋아해요, 멋있어. 나중에 꼭 보여줘요. “
며칠 전 정국이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번이 그 기회인가. 열심히 해야겠네. 김태형이 정말 알게 모르게 잘 도와주는 것 같아서 신기했다. 다 알고 도와주는 건가. 내일 태형이가 말한 대로 그 밀당 작전인지 뭔지가 통한 것 같다고 꼭 말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끝으로 그렇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16.
“그래서, 얼떨결에 그 여자애 도와주는게 됐다고? “
“응. 어떡해. 진짜 최악이야. “
“멍청아, 그게 얼마나 힘든데 그러겠다고 했어. “
살짝 걱정스런 표정을 띄곤 무릎에 올려놓은 기타를 능숙하게 튜닝하는 태형이다. 정작 자기는 잘 도와주고 있으면서. 그러곤 자, 하고 튜닝된 기타를 내게 건네는 태형에 입을 다시 열었다.
“아 맞다, 근데 너가 해보라고 했던 방법이 먹혔나봐. 효과 있더라. “
“... 어? 왜? “
예상 못했다는 표정을 하는 태형에게 여지껏 일어났던 일들을 줄줄이 회포했다. 물론, 키스했다는 얘기는 빼고. 내 얘기를 한참 가만히 듣더니 심각한 표정을 하는 김태형이다. 걔 진짜 안되겠네, 라고 읊조리고는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연습해야 한다며 일어선다. 다행이라고 말해줄 줄 알았는데. 약간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급한건 공연이 맞으니까. 당장 다음주라 상당히 촉박한 것은 사실이었다.
-세번째 브금입니다ㅎㅎ위에 것들이랑 다른 노래에요.
브금이랑 대사랑 맞춰서 읽어주시는 도짜님은 완전 센스쟁이>< 쪼오끔 천천히 읽어주세요!
시간은 물처럼 흘러갔고, 정신차려보니 어느새 공연 당일, 무대 뒷편에서 다음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야, 어떡해, 떨린다. "
"괜찮아, 어후, 손에 땀이 왜 이리 났어. "
내 긴장을 풀어 주려 내 손을 맞잡고는 위 아래로 흔들어 대는 태형에 가볍게 웃음이 샌다. 자기도 긴장 했으면서. 맞잡은 손이 살짝 떨리는 것이 보였다. 옷깃도 제대로 정리도 안되있고.
자, 됐다. 흐트러져있던 옷깃을 정리를 해주니 고맙다고 또 헤헤 거리는 김태형이다. 그렇게 웃는것도 잠시, 긴장감이 다시 우리를 감쌌다. 제발 실수만 하지말자. 그렇게 바닥을 보고 중얼중얼 가사를 되새기는데, 무대 앞쪽에서 누나, 하고 크게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화이팅, 이라며 주먹을 말아쥐어 보이는 정국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나마 진정시켜 놨는데, 부담감이 더 커진다. 사실 가까이서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는데 막상 저렇게 지켜 보고있을 것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했다. 이제 올라가야 한다는 사인을 받고 무대위로 천천히 한 발자국씩 내딛었다. 이윽고, 무대를 비추는 새하얀 조명에 눈이 시려 잠깐 감았다 떴다. 다시 눈을 뜨니 그제야 무대 주변이 보인다. 꽤 많이 모인 사람들에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그 사이에서도 유난히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전정국이 눈에 띈다.
"오늘 저희가 부를 노래는 offonoff의 ' bath' 입니다. “
침착한 태형이의 목소리에 꺄악거리는 여자 아이들의 환호성이 무대 주위를 매웠다. 아, 다 김태형 보려고 이렇게 온거였구나. 왠지 많더니만. 다들 이런 정보는 어떻게 알고 온 건지 신기할 정도였다. 잠시동안 조명이 꺼지고,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흐른다.
거긴 날씨가 어때.
나의 하늘과 밤엔.
자꾸만 떠오르는 기억이 계속 내게 말을 건네네.
반주와 어우러져 마치 원래부터 하나의 음이었던 것 같은 태형이의 음색에 환호성이 간간히 들려온다. 아까 긴장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여유롭고 차분하게 첫 소절을 부르며 나와 눈을 맞추는 태형이다. 진지한 얼굴을 하다가 나를 보곤 긴장하지 말라는듯 살짝 웃는 눈을 만든다. 그에 나도 같이 살짝 웃어보이고는 슬며시 눈을 감아보았다. 조명 때문에 눈이 부실 바에는 이렇게 눈을 감는 편이 나은것 같았다. 아무것도 보이지않으니 조금은 긴장감이 조금은 사그라들고, 태형이의 음색에 맞추어 천천히 마이크를 들었다.
지금 나는 무표정을 해.
너가 없이 무슨 말을 해.
생각보다 차분한 목소리가 나왔다. 그런 나를 찬찬히 비라보고 있던 태형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제야 무대 앞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나도 덩달아 자연스래 앞을 보니, 무대 아래에서 가만히 나를 지켜보던 정국의 눈과 시선이 닿았다.
어떤 걸로도
대신할 수 없는 말로는 설명 할 수 없는
무슨 기분일까.
무슨 마음일까.
그 눈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눈을 맞추며 노래를 이어 나갔다. 내가 전에 정국에게서 받았던 느낌을 조금이나마 전할 수 있지 않을까해서. 미묘한 표정으로 나와 눈을 맞추는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늘 그랬지만 지금은 도무지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보고싶어.
이렇게 보고 싶으면
그건 사랑이래.
이건 사랑이네.
몇번이고 입에 붙도록 연습했던 구절인데, 지금 이 상황에서는 낯설게만 느껴진다. 이렇게 마주보고 노래 할 줄은 몰랐으니까. 뭔가 한번 더 고백하는 느낌이네.
내 노래에 고개를 끄덕이며 가사를 따라하던 정국이가 , 급하게 무대 뒷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모습이 보인다. 바로 우리 다음 무대인가 보네. 어느새 막바지로 다다른 노래에 나는 마이크를 내려놓고는 마지막 소절을 부르는 김태형을 찬찬히 응시했다. 조명에 눈이 부시지도 않는지 찬찬히 관객들과 눈을 맞추는 그에게서 여유로움까지 느껴진다.
이제 나는 네게 말을 해.
나의 맘이 흘러 넘치게
how much I love you.
I'll never let you down.
한층 더 짙어진 태형이의 목소리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나를 똑바로 바라본 채로. 아까 내가 불렀던 구절보다도 더 낯설은 김태형의 모습에 잠시 벙쪘다.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에 잠시 가슴이 뛰었던것도 같다. 아, 이래서 내가 저 모습을 좋아한다니까. 나뿐만이 아닌 모든 관객들이 모두 그랬을 것이다. 노래가 끝나고 터져나오는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그것을 증명하는 듯 했다. 뿌듯한 얼굴을 하고는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는 태형에 무대 맨앞에 있던 한 여자가 무언가를 건넨다. 아기자기한 쇼핑백이다. 선물인가보네. 그에 맑게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태형이다. 계탔네, 저 분. 왜인지 살짝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여주, 수고했어. 같이 해줘서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못했을 거야. "
무대에서 내려와선 연신 고맙다고 말하는 김태형이다. 뭐가 그렇게 고마운 게 많아. 말도 참 이쁘게 하지. 오히려 내가 고맙지, 하니 살풋 웃고는 방금 받은 쇼핑백에서 뭔가를 꺼내서 열더니 그중 하나를 내게 건낸다.
"먹을래? "
초콜릿이다. 아마 직접 만드신 것 같은데. 이걸 내가 어떻게 먹어, 너 팬분이 주신건데, 하니 됐어, 내가 받은게 너가 받은거랑 똑같지, 하곤 내 입속에 쏙 넣어준다. 맛있네. 달콤쌉싸름한 맛이 입안 가득 하다. 진짜 우리 학교 아이돌답다 김태형, 하고 엄지를 척 펼쳤더니 살짝 민망해 하며 무대나 보자며 나를 무대 앞 쪽으로 이끄는 태형이다. 자리를 옮기자마자, 다음 무대가 시작되었고, 무대위로 올라오는 정국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 뒤를 이어서 생글생글 웃으며 올라오는 세린이도. 무대아래 있는 내게 잘보라며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르키는 정국이다. 그런 정국이를 보고 나를 발견한 세린이가 슬쩍 인사를 한다.
-마지막 브금이에요!!!마지막 까지 들어주실꺼죠 ?.?
"쟤야? "
우물우물 입에 초콜릿을 담고는 내게 속삭이는 김태형이다. 살짝 고개를 끄덕이니 뭐야, 하곤 제 입에 초콜릿을 하나 더 넣는다. 김빠지는 반응에 뭐긴 뭐야, 이쁘잖아. 애교도 많고, 하고 말끝을 흐리니 초콜릿을 하나 더 꺼내서 내 입에 쏙 넣고는 입을 연다.
야, 너가 훨씬 예뻐.
달달한 초콜릿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괜히 민망해져, 우물거리며 고개를 저으니 나를 빤히 보고는 하나도 안 부족해, 애교는 너도 많고. 라고 덧붙이고는 무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김태형이다. 내 자존감 지킴이네, 고맙다는 말을 할 타이밍을 놓쳐 마음속으로 몇번 되뇌었다. 고마워, 김태형.
무대 위는 이제 막 노래가 한창이었다. 곡은 상큼발랄한 연인같은 선곡이었다. 아무래도 그런 곡이다 보니 서로 호흡을 맞춰야해서, 무대 쪽으로 돌리는 시선보다는 서로를 보며 노래하는 시간이 많았다. 뭐 자기 잘보라면서, 봐주지도 않네. 누가 보면 둘이 사귀는 줄 알겠어. 괜히 섭섭한 마음이 든다. 그런 나를 슬쩍보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는 태형이다.
어느새 정국이와 세린이의 무대도 끝이나고, 무대 아래있던 사람들도 이리저리로 흩어진다. 무대 잘 끝낸 기념, 노상이나 하러갈까, 하고 나를 툭툭 치는 태형에 고개를 끄덕이곤 편의점에서 간단한 안주거리와 맥주를 사서 벤치에 앉았다. 건배사 한번 할까, 하고 맥주캔을 드는 태형의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우리 둘만의 건배사였다. 1학년때 거의 맨날 했었는데. 그러자, 하고 내 맥주캔을 태형이의 캔에 살짝 가져다댔다.
"김태형, 이여주 천재 짱짱 뿡뿡맨!!!!"
학교가 떠나가라 소리치듯 건배사를 내뱉고는 몰려오는 부끄러움에 우리 둘다 고개를 푹 숙였다. 진짜 유치 뽕짝이었다, 우리. 푸흐흐 하고 웃음이 터졌다. 새내기때는 매번 술 마실때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외쳤었는데.
그렇게 또 예전 이야기에에 푹 빠져있는데 누군가가 슥, 지나가다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이쪽으로 되돌아온다.
"어, 누나. 태형이 형 안녕하세요. 여기서 드시는 거에요? "
아, 전정국이네. 괜히 태형이가 불편할까봐 눈치를 보고 있는데, 너도 같이 마실래? 하고 정국이를 자리에 앉히는 태형이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안 불편하겠어? 하고 물으니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일이래, 낯 엄청 가리는 김태형이. 그렇게 살짝은 어색한 공기가 감돌때, 또 다른 누군가가 자연스래 내 옆에 앉는다.
"언니, 저도 같이 마셔도 되죠? "
내게 슬쩍 팔짱을 끼고는 웃어보이는 세린의 등장이다. 안된다는 듯이 휘휘, 가라고 손짓을 하는 정국에 저번에 같이 마셔주기로 했잖아요, 하고 혀짧은 소리를 내는 세린에 어떻게 더 이상은 거절을 할 수가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도대체 이 조합은 뭘까. 나랑 제일 친한 친구 김태형, 내가 좋아하는 전정국, 전정국을 좋아하는 김세린. 그리고 나. 도무지 알 수 없는 조합에 가만히 맥주캔만 깔작거렸다. 애초에 올때 부터 준비를 해서 온건지 두캔의 맥주를 가방에서 꺼내서는 정국에게 건내는 세린이다. 어이없다는 듯 입을 떡 벌리고는 와, 하고 반응하는 김태형이 보인다.
"오빠, 짠짠. 나랑 짠짠 해요. "
하이톤의 애교섞인 목소리가 귀를 울린다. 이 상황 너무 불편해. 잠시 화장실 갔다 올게, 하고 그 곳에서 벗어났다.
17.
여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 따라가려던 정국을 태형이 잡는다. 얘는 너가 처리해야지, 하는 눈빛을 보내니 알겠다는 듯 다시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여는 정국이다.
"김세린. "
"응? "
"이쯤 했으면 됐잖아, 낄자리 안 낄자리 구분할 나이는 되지 않았나. "
"... "
"이렇게 말해도 못 알아 들을 것 같아서, 좀 가라고. "
그제야 사태파악을 한 세린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흥미진진한 상황에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태형이가 입을 뗀다.
"그러니까, 처신 잘하라고 말했잖아. 너 뭘 믿고 그렇게 자신만만한지 모르겠네. "
"... 이제 확신이 있으니까요. "
그 확신 너무 믿지마.
핸드폰을 확인 하고는 급하게 자리를 뜨는 태형이다. 웃기시네, 작게 실소를 터뜨린 정국이 가만히 맥주캔을 입에 가져다 댔다.
답답함에 자리에서 나온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찜찜한 기분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그냥 집가고 싶은데, 그래도 말해야겠지 싶어서 핸드폰을 들어 김태형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 속 안좋아서 먼저 갈게. 너도 그냥 나와. '
카톡을 보내고 후,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채 30초도 지나지 않아, 느껴지는 진동에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
" 여주 기분 상했지. 괜찮아? '
속이 안좋다는 것은 너무 뻔한 거짓말이었나. 바로 내 기분을 묻는 태형에 살짝 답답했던 마음이 풀린다. 누군가 물어봐주길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조금? 괜찮아. "
"거짓말. 목소리만 들으면 알지 내가. "
"... 사실 좀 많이. "
"알아, 알아. "
"내가 너무 부족한거 같아. 별것 아닌데 사소한 거에 기분이 상해. "
"좋아하면 당연한거야. 괜찮아. "
"사실, 세린이도 세린인데. "
"응응. "
"... 너가 너무 부러운거야, 아까 무대하는데. "
계속 나를 다독여 주는 목소리에 마음 깊숙이 담아두었던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내가 말하고도 놀라서 잠시 멈춰섰다. 김태형은 매번 이런식으로 나를 무장해제시킨다. 매번 솔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 뭐가 부러웠어. "
"그냥, 다들 너 보러 무대 아래에서 응원해주고, 선물도 주고 그러니까. 괜히 그렇더라. 난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넌 어딜가나 인기 많으니까. 특히 무대 할때는 더. "
"야, 너도 인기많아. "
망설임 없이 나오는 말이 위로 차원으로 하는 것 처럼 느껴져서, 위로라면 정중히 사양한다, 하고 말하니, 정말이라고, 우리 동아리에도 몇 명 있다고 대답하는 태형이다.
"무슨, 우리 동아리에서 누가 날 좋아한다고. 됐어. "
"진짠데. "
"누군데, 누가 있는데. "
잠시동안 음, 하고 고민하는 태형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민하는거 봐, 하고 입을 떼려는 찰나에 덤덤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내게 전해진다.
일단 나 있고, 그리고 또 한명 있는데, 그건 말 안해줄래.
어느새 나를 찾아내서는 뒤를 도는 김태형이 보였다. 뭐라고? 내가 잘못들었나. 전화를 끊고는 나에게 다가오는 태형에 너 방금 뭐라고 했어, 하고 물으니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답한다.
“나, 너 좋아한다고. 그러니까 이제 도와주는 거 안해. “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나를 똑바로 보고 말하는 태형에 머리가 새하얘진다. 당황스러움에 가슴이 뛰는 건지, 또는 설렘인지 모르겠는 울림이 나를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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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달 월 입니다!
원래 자각몽으로 다시 돌아오려고 했는데 글을 잠시나마 놓고있다보니 P_p가 너무 쓰고싶더라구요. 그리고 도짜님들도 너무너무 보고싶구...그래서 이렇게 왔습니다!! 빠밤><
희희 드디어 태형이가 고백을 해써요.. 드디어 해따구요!!!!! 담담하고 진심을 담긴 고백씬을 진짜 제가 3화를 쓸때부터 고민을 했는데 잘 표현되었는지 모르겠어요 ㅎㅎ이번화는 진짜 제가 하는 분위기를 전하고 싶어서 비지엠과 움짤에 시간을 좀 많이 투자하였어요!.! 노래가 잔잔하니 잘 맞는것 같더라구요. 태태가 bath 커버해주면 전 정말 앓다 죽을 예정...너무 잘 어울릴거 같아요. 브금 4개나 되가지고 귀찮으셨죠 흑흑 ㅠㅠ
이건 다른 얘긴데, 이번에 글을 천천히 쓰다보니 저는 글을 막 쓰고 쌓아두는 성격이 못되는구나 를 알게 되었어요... 한편을 쓰고나니 다음 편을 쓰기보단 한편에 계속 살을 붙이고 수정하고... 그러다 보니까 이렇게 길어지게 되더라구요. 도무지 다음편을 쓸수가 없어져버렷...! 거의 일주일간 이번 편만 쓴것 같아요! 재밌게 읽으셨기를 간절히 빌고 있답니다 희희.
쨌든, 하고픈 말은 정말 매번 말하지만 늘 감사드리고 사랑합니다❤
아, 그리구 신알신...
80을 넘어가고 있는데 정말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80분이 제 글을 찾아주신다니 정말 행복해요 ㅎㅎ
늘 좋은 글로 보답하도록 노력하는 달 월이 되겠습니다.
. (아, 시험기간이라 쪼끄미 늦을 수도 있단점! 일주...일 정도?히..)
기다려주신 독자님들 너무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혹시 보고 싶으신 리퀘있으시면 마구마구 던져주세요.
제가 옴뇸뇸뇸 씹어서 써보도록 할게요! 생각나는거 있으시면 그냥 막막막 던져주세요 ㅎㅎㅎ 물론 독자님이 말하신 것같은 분위기를 그대로는 전할 자신은 없지만요!!
(사실 이제 소재의 부족으로 허덕이는 ing)
-오타, 맞춤법 지적도 감사히 받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