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에 이 집에 이사를 오게 되었다. 혼자 있기엔 조금 큰 듯한 주택이었다. 이사를 온 다음날 부터 창가에서부터 미세하게 흘러 들어오는 울음소리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4일정도 꾸준히 울음소리가 들리자 창문으로 밖을 살폈다. 아주 작은 어린 아이가 울고 있었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제 몸보다 큰 티셔츠 하나를 걸치고 조금 작아보이는 바지에 신발도 양말도 없이 그저 쭈그려 울고만 있었다.지하철에서나 길거리에서 노숙자 분들을 보고 가만히 못 지나가는 성격이 이 아이까지 집 안으로 들일 생각을 했다. 예전에 샀지만 작아서 못 입는 옷을 들고 집 앞으로 나갔다. 쭈그린 아이는 옷도 머리도 몸도 모두 더러웠다.
"꼬마야. 왜 여기 있어. 집에 가야지."
"..."
"부모님은 어디계셔?"
말을 끝내자 더욱 크게 울부짖는 꼬마. 옆 건물에서 시끄럽다는 어떤 아저씨의 소리가 들리자 손에 들고 있던 옷으로 아이를 감쌌다. 그러자 내 손을 탁- 치며 날 째려보는 녀석. 해치는게 아닌데도 그저 내 손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참 귀여운게 옷은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꼬마야. 형은 착한 사람이야."
".."
"안 때려. 안 때려!"
그래도 못 믿겠다는 듯, 내 눈이 뚫어져라 날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야. 여기 있다가는 얼어. 형네 집으로 갈까?"
말이 끝나자 고개를 가만히 젓는다.
"왜? 안추워?"
다시 고개를 젓는다.
"음.. 추운데 왜 여기에 있으려고 해."
또 말없이 나를 쳐다본다.
"혹시.. 부모님 기다리는거야?"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4일동안 기다렸잖아. 이젠 형이 여기서 살텐데. 부모님 안..안 오실거야."
또 무섭게. 이전보다 더더욱 무섭게 나를 쳐다본다. 나이 많게봐야 갓 중학교 1학년 정도인 아이가 이렇게 무서울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형이랑 같이 부모님 기다리자. 일단 형이랑 집에 가서 몸 좀 녹이자. 응? 형이 여기다 전화번호 쓰인 종이 붙여둘게."
가만히. 정말 가만히 날 쳐다본다. 무섭지는 않다. 이젠 적응이 된건지, 이 아이가 나에게 마음을 풀어서 더이상 무섭게 보는걸 그만 두었는지는 모르겠다.
"배 안고파? 밥 먹자. 형이랑 같이 밥먹고 부모님 기다리자."
대답을 바라는건 포기했다. 어차피 키도 커봐야 150cm 정도로 보이고 하니, 공주님 안기로 이 아이를 안았다. 울면서 소리지르는 이 아이가 참 불쌍해서 집 안으로 들였다. 문을 잠궈두고 소파에 앉혔다. 저녁에 먹던 카레를 끓여 밥통에 있던 남은 밥을 담아서 아이에게 가져다 주었다. 따뜻한 물 한잔과 함께. 처음엔 집 안을 그저 바라만 보다 밥이 오자, 밥을 가만히 쳐다본다.
"맛 없어보여?"
".."
"나 그래도 사람이 먹을 정도로는 요리 할 줄 알아. 먹어봐. 배고플 텐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에 손을 가져가 대는 녀석. 너무 떠는 나머지 카레를 뜬 숟가락을 놓친다. 자기 발가락에 다 흘려버린 카레들을 멍하니 바라본다. 아니 조금 위축되어 버린것 같았다.
"엇- 조심해. 발 뜨겁겠다. 휴지 가져올게."
식탁 위에 던져둔 휴지를 가져왔다. 몇 장 뽑아서 이 아이의 발가락을 닦는데 정말 상처들에 더러운 흙까지 묻은게 참 안쓰러웠다. 다 닦자마자 발을 쑥 빼는 녀석.
"어어- 깜짝이야."
푹- 고개를 가만히 숙인다.
"왜그래- 혼자 못 먹겠어? 떠 먹여줄까?"
"..."
가만히. 또 가만히 쳐다만 본다.
"아- 해."
숟가락에 카레를 떠서 입에 넣어주었다. 오물오물- 참 맛있게도 먹는 녀석. 밥을 이런대로 저런대로 다 먹이고 아무래도 씻겨는 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밥을 먹은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 설거지도 하고, 이 아이랑 이야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 후 씻기기로 생각했다.
"설거지 하고 올게. 텔레비전 보고 있을래?"
"..."
휴. 좀 지친다. 말을 안하니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이젠 무섭게 보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냥 재방송 중인 예능프로그램을 켜 주고나서 주방으로 와서 설거지를 했다. 어차피 그릇도 얼마 없기도 하고 해서 금방 끝났다. 손에 묻은 물기를 바지에 살짝 닦고 아이 옆에 앉았다. 가만히 아이를 바라 보았다. 상처 투성이, 흙 투성이지만 텔레비전을 바라보는 눈과 코, 그리고 입이 참 아이답고 이뻤다. 어쩌다 부모는 이런 아이를 버린건지..
"꼬마야."
텔레비전을 보다 말고 날 바라본다.
"이름이 뭐야?"
"..."
"이름을 알아야 부모님 찾는데 도움이 될거야."
"..큼...요섭...양요섭.."
"이름 이쁘네 우리 꼬마."
헛기침을 하기 전에 입을 오물거리며 목소리를 내려 했지만 나지 않자 헛기침을 하고 목소리를 내뱉는 그 모습이, 자기 이름을 요섭이라고 말하는 그 목소리가 참 이뻤다. 이쁘다고 생각 할 수록 그 부모를 이해할 수 없었다.
"꼬마는 몇 살이야?"
"..초등학교 4학년.."
"음- 그럼 11살?"
고개를 끄덕인다.
"꼬마야. 꼬마 춥기도 하고 몸도 더러운데 형이랑 같이 씻을까? 혼자 씻을 수 있으면 혼자 씻고. 왠만하면 씻자. 안 씻으면 몸도 약해지고."
이번엔 내가 좀 무섭게 아이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일으켜서 옷을 모두 벗기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옷을 벗기니 온 몸에 남은 흉터, 상처, 굳은 핏자국이 나를 매우 놀라게 했다. 따뜻한 물을 틀어 온 몸을 부드러운 수건으로 닦았다. 하얀 타일에 흐르는 회색빛 물이 하수구로 내려갔다. 화장실 사우나 의자에 앉히고 난 바가지를 뒤집어 앉았다. 샴푸를 짜서 머리카락을 만지고 아이는 샴푸가 눈에 들어간 듯 손으로 눈가를 만진다. 참 귀여웠다. 린스도 하고, 부드러운 스펀지에 바디워시를 묻혀 몸을 씻겼다. 상처 부위에 비누가 닿을 때 움찔움찔 거리는 모습도 참 귀여웠다. 대충 씻기고 이제는 입지 않는 삼각팬티를 입히고, 츄리닝 윗도리에 반바지를 입혔다. 참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아이를 씻기느라 젖기도 하고 해서 나도 씻기로 했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아이를 찾았는데 소파에서 누워 잠이 들어 있었다. 다시 공주님 안기로 안아서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난 가까운 약국에 갔다. 마데카솔과 밴드, 후시딘 등등 상처에 좋다는 약들을 다 가져왔다.
곤히 자고있는 아이에겐 소독약이 조금 따가울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상처 부위에 한방울, 한방울 떨어뜨리는데도 곤히 잘 자기만 한다. 후시딘도 면봉으로 바르고, 그 위에 부채질 몇 번을 해주고 밴드를 붙혔다. 밴드가 하마터면 모자를 뻔 할 정도로 상처가 온 몸 구석구석을 차지했다. 옷가지를 다시 정돈해 주고 이불을 목까지 덮어주었다. 그리고 난 소파에 가서 남은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지만, 쉽게 오지 않았다. 저 아이는 어쩌다 저렇게 된 걸까 대충 그려지긴 하지만 궁굼했고, 저 아이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도 생각이 들고. 참 이것저것 생각나는 밤이었다.
----------------♥♥♥------------ 하트 오타지만 그냥 두고 행복한 설 연휴 보내세요!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