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훈남이네 싶었지. 왜 내가 이런 말 하니까 이상해? 다 떠나서 잘생긴건 인정하니까. 주문한 음료 기다리는지 계산대 앞에서 멀뚱하게 서있길래 어깨 건들었는데 그제서야 비켜 주더라. 아, 걔 좀 토끼 같이 생겼어. 남자 한테 이런 말은 그런가 근데 진짜 그래. 눈 엄청 동그래서. 사진? 없어 헤어진지가 언젠데. 나는 헤어지면 바로 다 지우거든. 뭔 피도 눈물도 없는거야 그게 당연한거지. 구남친이니 구여친이니 그런거 너무 찌질하잖아. 아무튼 죄송하다고 사과하는데 목소리도 좋더라고. 우리 학교에 이런 인물 좋은 남자가 있었나 싶었지 뭐. 나중에 애들한테 물어봐야겠다 생각했어. 딱 거기까지. 나는 거기 카페 자주 안 가거든 사람 너무 많아서 근데 걔가 계속 생각나는거야. 발 넓은 애들 한테 다 물어봤는데도 모르더라고. 어떤 식으로 설명했냐고? 음, 토끼 같은 남자..? 하긴 나라도 몰랐겠다. 일부로 다른 과도 돌아다녀 보고 했다 내가. 야 진짜 안 어울리지 않냐. 내가 먼저 나서서 남자를 찾아 다니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에 홀렸던거 같아. 추워서 내가 좀 미쳤었나? 아니, 너 웃으라고 한 말 아니야. 진심이야 리얼로. 이틀 정도 찾아다니다 그냥 포기했지. 마지막으로 에이 설마 있겠어 해서 간 카페에 떡 하니 있던걸 난 그 생고생을 한거야. 알고보니 거기 단골이었더라고. 난 절대 남자 한테 먼저 말 안 걸거든? 왜냐고? 아니 그냥, 가만히 있어도 말 걸어오니까. 나 방금 밥 맛 없었니? 미안, 하지만 사실인걸. 너도 알잖아. 내가 먼저 말 걸어본 남자 걔가 처음이야. 다짜고짜 물었어. 여기 학교생이냐고. 놀랐는지 안 그래도 큰 눈 더 동그래지는데 진짜 너무 귀여운거야. 그때부터 내가 꼬셨지 뭐. 먼저 좋아했던적이 드물어서 그런가, 걔랑 그래서 제일 오랫동안 사귄거 같기도 하고. 응? 아, 별거 없었어. 남들 처럼 연애하고, 싸우기도 하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고. 이것도 완전 어색하지 않냐. 나 헤어지면 끝이잖아 끝. 절대 다시 안 사귀는거 너 알지. 근데 걔랑은 다시 만났어. 몰라 그냥 편했나봐. 1년 넘게 만나본 것도 처음이고 하니. 생각해보니까 다 처음이네 걔랑 있었던건. 그립냐고? 음.., 딱히 그러진 않아. 어쩌다 가끔 잘 지내나, 여전히 여자 한테 다정할까, 그 자상하면서도 답답한 성격은 그대로 일까 하는 궁금증?
야 근데 네 남자친구는 언제와? 그래? 다 와가네 그럼. 궁금하다 얼마나 사겼다고? 1년이나 됐어? 어이없네 그런데도 한번도 나한테 소개를 안 시켜줬단 말이야? 실망이다 실망. 아니, 바쁘면 얼마나 바쁘다고. 걔는 자기 바빠도 내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그랬어. 과제도 걔가 다 해주고 그랬는데 좀 미안하긴 하다. 뭐가? 걔 이름? 아, 내가 이제까지 이름을 말 안 했네. 정신 좀 봐. 걔 이름은-,
전정국.
이름을 말했던 그 순간의 표정을 평생 잊을 수 없다. 왜? 묻는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전정국이라는 이름이 흔한 이름인가 혼잣말로 중얼거리기에 흔한 이름은 아니지 하니 그렇지? 답하며 자꾸 시선을 피하는거다. 다시 한번 왜 그러냐 물으려던 순간 누군가 테이블을 똑똑 두드렸고, 대화에 집중한 나머지 찾아온 손님을 뒤늦게서야 발견해 버린 나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려 주인공의 얼굴을 마주했다.
방금 까지도 대화의 중심이었던 그 얼굴을. 회로가 정지한 상태로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 나를 한번 내려다보곤 사랑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친구의 옆자리에 앉아 어깨에 다정하게 팔을 두르는데, 와 진짜. 쟤가 저런 옷도 입을 줄 알았나? 똑 떨어지는 핏의 수트에 값비싸 보이는 시계, 그리고 어딘가 달라 보이는 행동들까지. 처음 만났던 그 순간과 비슷한 스타일이면서도 전혀 다른 느낌으로. 이제까지 답답한 쑥맥이라고 표현 했던 모든 말이 무색하게 성숙해진 얼굴과 태도로 눈 앞에 근 2년 만에 나타났다. 내 전 남자친구가. 내 가장 친한 친구의 남자친구로.
정 국 이 달 라 졌 다ㅡ
W. 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