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세] 봄,봄,봄
w. 이씽
" 자, 다들 자리에 앉아. 자습시간에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
공부하기 싫어서요. 쌤. 우리 놀러가요. 퉁퉁 부은 얼굴에 입술을 비죽거리는 반 아이들을 휙 둘러본 준면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그렸다. 중간고사가 3일 남은 고2 시점에서는 그럴만도 했다. 저도 불과 몇년전에는 저 아이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살지 않았던가. 지긋지긋한 수능만 끝나면 사람 없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밤 하늘 가득 반짝반짝 빛나는 별도 올려다 보고 싶었고, 그렇게 그리던 대학생활도 해보고 싶었고.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지나간 시절이다. 허나, 그리운건 여전했다
이젠 너희도 내년이면 어느덧 고3이다. 교탁 옆을 탁탁 치며 웃는 준면을 향해 애들의 부루퉁한 입술이 댓발 나온다.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지만 이것 또한 인생에서 겪어야 할 첫번째 난관이니까. 쉿 조용 조용. 그가 검지 손가락을 입가에 살짝 가져다 댄다.
" 그대신 선생님이 맛있는거 쏠게. 뭐 먹고 싶어. "
" 봄이 되서 그런지 졸려 죽겠어요. 춘곤증이 또 도졌나봐요. "
막 연애도 하고 싶고. 준면의 교탁 앞 우스꽝스러운 외모를 지닌 남학생의 말에 반 전체가 웃음으로 물든다. 역시 내 개그란. 웃을때 덧니가 도드라지는 남자 아이가 단정하게 차려 입은 마이 위에 '김순복' 이란 초록색 계열의 명찰이 햇빛에 반짝거린다. 지혜야. 5교시에 선생님 수업이지. 준면의 시선이 닿은 곳엔 긴 생머리의 여자 아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 자자. 그럼 5교시면 딱 졸릴 시간인데 아이스크림이나 사먹자. 오늘 배우는 문학수업, 장난 아니거든. "
" 그럼 저랑 진철이가 4교시 끝나고 교무실로 내려갈게요. "
" 요녀석, 수업 조금이라도 안 들으려고 꾀 쓰기는. 알았어. 그럼 좀 있다가 내려 와라. "
헤헤 알겠어요. 순복이의 해맑은 웃음에 밝게 웃음을 내보인 준면이 왼쪽 손에 있는 손목시계를 흘끗 바라보았다. 벌써 8시 10분이다. 중간고사 시험 출제 문제 한참 바쁜 요즘, 이 시간대가 되면 그렇듯 아침마다 하는 교무회의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건 사실이었다. 자, 반장 인사. 준면이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그 물음에 대답하는 이는 없고 교실엔 적막만 맴돌뿐이었다. 반장. 없는데요. 한 아이의 음성에 준면이 숙인 고개를 슬쩍 든다.
" 반장 안왔는데요. "
" 세훈이 안왔어? "
" 뭘 새삼스럽게. 걔 원래 학교 잘 안오잖아요. 언제 옆 남고랑 패싸움 났단 소리는 들었는데. "
패싸움. 한 아이의 말을 곰곰히 듣던 준면이 자연스레 한숨을 폭 내쉬었다. 왠일로 잠잠하나 했다. 오세훈. 그 세글자가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다. 시골에서 전근을 온 이후로부터 귓가에 딱지가 가라앉도록 들었던 이름이다. 그리고 역시나, 이름 값 하듯 2학년 4반 담임을 맡은 후로도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저 본거라곤 얼굴 가득 생채기를 남기고 비틀비틀 힘 없이 주저 앉던 그 모습뿐. 여간 안쓰러운게 아니라 책임감이라도 부여해주면 학교를 다니는데에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했지만. 오늘도 역시나 나타나지 않았다.
오늘로 7일째였다. 연락 한통 없이 그 아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은 것이. 준면은 다부진 입술을 꾹 닫은채 조심스레 펜을 쥐었다. 무단결석. 한 글자 한 글자, 정갈하게 쓰여 내려가는 빨간 글자가 꽤나 조심스럽다.
* 이건 맛보기구요. 1편에서부터는 준면이가 전근온 시점부터 쓸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