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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8. 11  


"야 세운아 인원이 부족하다니까? 한 번만 부탁할게."

"선배 저 여자친구 있어요."

"걔랑 3년이라며~ 이야기 다 들었어~ 앉아있기만 해, 응?"

"3년인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안 돼요."

"너 그렇게 굴래? 형 섭섭하다 진짜."


답답했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선배인데 인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나를 미팅에 넣으려고 안달이다. 필요도 없고 나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는데도 말이다. 3년을 언급하는 건 진짜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심기가 불편했다.


"선배 세운이 그냥 놔줘요. 쟤 여친한테 잡혀살아요."


구세주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1학년 때 좀 친하게 지내던 영민이었다. 내가 잡혀사는 이미지였던가 생각해보면 전화 한 통에 달려가서 너랑 영화 보고 공강에도 모든 시간을 너랑 보냈던 것 같다. 그걸 잡혀사는 거로 착각했나. 오로지 내 의지로 좋아서 한 일들이었는데. 뭐, 상관없었다. 덕분에 나는 선배에 관심에서 벗어났으니. 하지만 그 뒤로 나는 과에서 여친에게 잡혀사는 정세운으로 이미지가 박혀버렸다. 급한 전화가 와서 서둘러 받으면 옆에서는 '또~ 여친 전화받으신다~' 라며 비아냥거렸고. 애초에 이게 왜 비아냥거릴 일인지 하나도 이해가 안 된다. 그래서 가볍게 무시하기로 했다. 단지 얼마나 대단한 여친인지 보자며 sns를 파헤칠 때는 기분이 더러웠을 뿐이다.


[ 여주]


별로 좋지 않은 회상 끝에 네 전화가 왔다. 최근 과제 때문에 너를 못 봐서 그런지 목소리가 너무 그리웠다.


"응, 왜?"

- 여보세요? 세운아 그게 지금 부어마셔(술집)인데 지금 여주가 뻗어버렸네.

"뻗었어요?"

- 어? 응 올 수 있어?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올라왔다. 이번에 술 줄이기로 약속해놓고 뻗을 만큼 또 마셨나. 한숨이 나왔다.


"네, 곧 갈게ㅇ"

- 온니 세우니 불렀어??? 걔 바뻐서 못 와~~ 그냥 놀자~~~~

- 아 무슨 소리야; 얌전히 있어. 너 취했잖아.

- 정세운은~~~ 바빠서~~~ 올 시간도 없어~~ 나만 혼자지그래~~


혀가 꼬인 채로 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주변 소음 때문에 선명하게 들리지는 않았는데 네 목소리 하나는 분명하게 들렸다. 저 말투 우리 과 애들이 여친 전화냐면서 비꼴 때 하는 말투랑 똑같았다. 


- 어? 아니야 쟤가 왜 저래... 세운이 온대.

- 거짓뫌~~~~~~~~ 이제 3년이다 이거지~~~?

"여주야, 내가 너 안 데리러 간 적 있어? 왜 계속 내가 바쁘다고 그래."

- 많어!! 저번에 국밥 먹으러 가자고 했던 건 생각 안 나?!


국밥... 아 그때 이야기 말인가.


"그때 나 시험 기간이었잖아. 끝나고 같이 간 거로 기억하는데."

- 아 몰라! 그것 말고도 많아. 전화도 잘 안 하고 어디 가자고 말해도 바쁘고!


이게 무슨 일이지. 서로 시험 기간에는 연락 잘 안 되더라도 이해하기로 했고 잘 이야기가 끝난 일인데. 뭐가 그렇게도 섭섭해서 술 마시고 저게 튀어나온 거지.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주정 부리는 일이 한두 번 일어난 것도 아니라서 술 줄이겠다고 약속도 해 놓고 결국 제자리였다. 


"내가 너 술 못 마시니까 조금만 마시라고 했잖아."

- 또 잔소리

"이게 잔소리로 밖에 안 들려?"

-너 오지 마! 필요 없어 진짜


아,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술 마신 사람 상대로 이렇게 예민해지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자제가 안되기 시작했다.


"그래, 너 집에 혼자 들어가. 너한테 나도 할 말 없어."

-뭐?

"빨리 누나 바꿔."

-여보세요...? 어 세운아.

"누나 저 데리러 안 가요. 택시 잡아서 누나랑 여주 타고 차 번호는 저한테 톡 보내주실 수 있으세요? 택시비는 제가 지금 계좌로 보낼게요. 죄송해요."

-아니야... 그렇게 해주면 나야 고맙지.

"네, 부탁할게요. 누나 저 먼저 끊어요."

-응... 응 그래.


머리가 뜨겁다. 화낼 상황은 아니었는데. 얼마 안 있어 누나한테서 택시 번호가 왔고 여주가 집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나도 침대에 누웠다. 피곤했다.



.



"야 정세운!!!!!!!!!!!!!!!!!!!!!!!!"

"세운아 미안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열어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침을 깨우는 소리가 평소보다 경쾌했다. 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지. 눈을 떠보면 네가 미친 듯이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 너 뭐야."


문을 열자 보이는 네 모습이 가관이었다. 한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거기다 울었는지 눈도 빨갛고... 무슨 일 있었나 싶어 덜컥 겁이 났다. 


"왜 이렇게 문을 안 열어...!"

"자고 있었지... 너야말로 뭐야 아침부터."

"아, 아니... 어제 미안해서... 많이 화났어?"


천천히 내 눈치를 살폈다. 눈동자를 굴리며 나를 올려다보는 표정이 정말 귀여웠다. 저 얼굴을 하면서 나를 쳐다봐놓고 내가 화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어제는 왜 술을 그렇게 마셨어. 감당 못할 정도까지."

"아니 그냥... 세운아."

"왜."

"나 네가 짜준 목도리도 매고 왔어."

"아니 그걸 왜 지금 매."

"네가 고백하면서 줬던 거잖아... 나 너무 무서워서..."

"뭐가 무서운데."

"… …"

"… …"

"... 헤어지자고 할까 봐..."


하늘이 무너진다는 표현이 적절한 거 같다. 정말 할 말을 잃었다. 일단 처음 드는 생각은 대체 왜? 내가 그렇게 불안할 정도로 최근에 못해줬나 생각해봤다. 팀플 과제가 많아서 자주 못 만나기는 했지만 틈틈이 시간 내서 잘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네 애정을 채우기에 부족한 시간들이었나 보다.


"내가 왜 너랑 헤어져. 안 그래. 화도 안 났어. 아침 몇 시부터 와 있었어? 울었어?"


하나가 걱정되기 시작하니까 물 밀려오듯 걱정이 터지기 시작했다. 다리에 모기 물린 자국들이 눈에 들어오고 바닥에 휴지들이 신경 쓰였다.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너무 무능했다. 


"안 울었어. 세운아 덥다 집에 들어가자."

"... 그래."


애써 담담하게 대답하는 네 표정이 보였다. 무서웠다고 했다. 내가 그 무서움의 원인이었다.  뒤돌아 걸어가는 네 어깨가 떨렸다. 지금 너는 얼마나 많은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나 봐."

"싫어. 나 화장실 좀."

"나 보라고. 나 봐 줘."

"안 돼."


자꾸만 고개를 숙이는 너를 잡고 품에 안았다.

작았다.

따뜻했다.

설레었다.


"미안해. 불안하게 해서. 내가 다 잘못했어."


긴 장문의 편지도 아닌데 가슴으로 와서 큰 파도를 일으킬 때가 있다. 이 표현은 네가 썸 탈 때 나한테 해 준 말인데 아마 내가 정확한 타이밍에 썼다고 생각한다. 네 표정이 저 문장을 담았다. 너는 미친 듯이 울었다. 그리고 섭섭했다고 연락 좀 자주 해달라고 얼마나 많이 불안했다고 내게 말했다.  3년 그 숫자가 나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너는 많은 두려움과 설렘을 숫자에 간직했다. 미안했다. 그리고 동시에 고맙고 기분이 좋았다. 오늘도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하고 있었다. 




주저리

좀 늦었네요. 

사실 첫 편을 적고 뒤에 내용은 보류 상태로 올렸던 거라 제목을 정하지 못하고 첫 편을 올렸는데 2편을 올리려니까 제목이 걸리네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읽을거리는 되셨으면 하네요. (욕심)

 다음 화도 나올지는 미정입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글 쓰니까 너무 재미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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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 진짜 글 분위기 너무 좋아요
정세운 따뜻한 마음 느껴지는ㅠㅜ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6년 전
모스
아니에요...!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로 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좀 늦었지만 좋은 밤 보내세요
6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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