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序詩
겨울은 밤이 길고 낮이 짧다. 긴 밤이 지나고, 사방을 암흑으로 덮은 눈꺼풀 새로 아침의 햇볕이 스며들어오면 그제서야 나는 눈을 뜬다. 가시지 않은 아침잠에 구부정하게 허리를 일으켜 앉고 뿌연 눈을 꿈뻑거리면 흐릿한 내 방 창문으로, 낯익고 그리운 얼굴이 보인다. 칠흑같은 암흑 속에 작은 성냥불이었던 선생님이 생각이 난다. 오래오래 곁에 두고싶은 풀꽃같기도 했고, 장갑 안의 여윈 손가락을 보듬어주고싶은 하나의 손이기도 했고, 벼락에게서 와락 안아내 지켜내고싶던 작은 몸이기도 한. 선생님이. 생각이 난다.
잠시라도 떨어지면 탈이라도 날 것 같던 친구의 연락은 잠시 뒤로 미뤄두었다. 머리맡의 낡고 헤진 공책 하나를 펼쳐든다.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비웃음을 살지 모르겠지만 어느새 습관과도 같아졌다. 노트의 빈칸에 어설픈 글씨로 빼곡히 적어놓은 시를 읽으며 나는 선생님을 생각하고, 시를 쓰며, 선생님을 생각한다. 모르는 새에 나는 시인이 되었다. 낯부끄러운 신파같은 절절한 그리움을 늘어놓는 작가가 되었다. 모서리가 뭉툭해진 공책을 덮으면서 소매깃이 헤진 교복을 생각하기도 한다.
옷장에 처박혀서 퀘퀘해진 나의 옛 교복. 거울 앞에 쭈뼛거리며 서서 옷걸이에 단정히 걸린 교복을 대어보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다. 교복이 어울릴 나이는 이미 지난 탓이리라. 쉴틈없이 움직이던 시침이 쌓이고 쌓여서 내 얼굴을 조금이나마 바꿔놓았기 때문이리라.
오늘은 날이 춥다. 유난히도 선생님이 보고 싶은 늦은 저녁이다. 그러한 이유때문에 표지가 밋밋하고 두터운 공책을 한 권 사왔다.
어찌보면 회고록이 될수도 있는, 나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나의 선생님을 담기 위해서. 진부하고 진부한 표현이지만 '뒤늦은' 고백을 하기 위해서.
나는. 선생님이 좋다. 아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