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아... 이 단어는 항상 내 이름 앞에 오는 수식어였다. 나는 8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에 이곳으로 입양되었다. 내가 어떻게 입양되었는지, 심지어 친어머니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한 가지 기억이 나는건 공항에서 엄청나게 울었다는 것.. 그거 하나 뿐이였다. 어쩌면 기절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낯선 방안에 누워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입양된 곳은 영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 기업 'Triumph'사 였다. 이런 엄청난 곳에서 동양인인 나를 입양한 것은 당연히 사랑과 정성이 아닌 이벤트성이였다. 기업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기 위한.. 입양이 되고 1년간은 런던 본가에서 지냈었다. 그 집엔 나보다 두살 많은 형 크리스와 5살이 된 남동생 시우민이 있었다. 시우민과는 뭐 그럭저럭 잘 지냈지만 크리스는 유독 나를 경계하며 괴롭히기 일쑤였다. 형이 나를 얼마나 싫어했는지는 세 문장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크리스와 시우민이 집 정원에서 캐치볼을 하다 크리스가 던진 공이 아버지 서재 창문을 깨뜨렸다. 그리고 방안에 가만히 있던 나는 그날 저녁 크리스와 시우민과 함께 아버지의 서재로 불려갔고 창문을 깨뜨렸다는 죄를 뒤집어 쓰고 본가에서 쫓겨났다. 나는 형이 내 앞에서 아버지께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언제까지 저런 천박하고 품격없는 애를 저희 집에 계속 두실 꺼에요? 쟤도 얼마나 우리집이 싫었으면 감히 아버지 서재 유리창을 깨요!! 파양이 안된다면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세요!!!" 그 때는 내가 영어를 듣기만 할 줄 알지 말은 잘 못하던 때라 변명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본가에서 쫒겨나 유모와 함께 이 곳 프랑스 파리로 왔다. 유모는 정말 친엄마 같았다. 내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고 영어와 프랑스어 뿐만 아니라 알지도 못하는 한국어까지 밖에서 배워와 내 모국어라며 직접 알려주기도 했다. 유모는 내가 독립을 해도 될 정도로 자란 후에야 안심이 됬는지 조용히 내 곁을 떠났다. 하지만 유모의 선택은 잘못되었다.. 유모의 장례식을 모두 치른 후에 나는 극도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내 주변엔 아무도 없고 나 혼자라는 생각에 밖으로 나가기가 두렵고 행여 용기를 내서 나갔다 온 날에는 나를 반기는 찬 공기가 싫어 외출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어렵게 들어간 예술대학도 휴학하고 미술재료 사러 나가는 것 빼고는 하루종일 집에서 그림만 그렸다. 이런 생활이 벌써 6개월째다... 오늘도 어김없이 해가 중천일 때 일어나 그림을 그리려 바로 옆방에 있는 작업실로 슬금슬금 들어갔다. "뭘... 그리지........" 멍하니 빈 캔버스만 쳐다보던 중 누군가가 초인종을 울렸다. "Qui êtes-vous?" (누구세요?) 질문에 대한 답은 없고 또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계속되는 초인종 소리에 짜증이 나서 그냥 문을 열었다.. "Bonjour, mon frère. Je me souviens que vous faites-vous?" (오랜만이네,동생. 나 누군지 기억 하겠냐?) "frère..." (형...) "Oh! Se souvenir de Junee est appréciée Puis-je venir à l'intérieur pendant une minute?" (오! 기억해주니 고마운데? 잠시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 "Yeah .. Entrent en jeu. .." (그래.. 들어와..) 12년전.. 나를 내 쫓았던 크리스가 찾아왔다... --------------------------------------------------------------------------------- 사담사담 궁금한건 언제든지 댓글 달아주세여! 너무 오랜만에 와서 사담도 별로 할께 없네요.... 아니 근데 요즘 글 잘쓰는 분들이 왜때문에 많은거져... 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여ㅠ(흐규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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