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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선] 우리에게 끝은 없다 0 5 | 인스티즈






내상의 표정









 숲에서 내려오자 저녁이 다 되어 있었다. 낚시 도구를 챙기면서 그가 말했다.



“ 남는 시간엔 뭐해요? ”

“ 그쪽은요? ”

“ 나야 투자하느라 이런저런 궁리를 하죠. ”

“ 무슨 투자요? ”

“ 땅, 집, 주식… ”

“ 돈 좋아해요? ”

“ 구차하게 벌진 않아요 ”

“ 많이 버셨나봐요 ”

“ 괜찮은 편이예요. 남는 시간에 뭐 하느냐고 물었는데… ”

“ ……글쎄요 ”



 잠잔다고 말할 수는 없어서 나는 머뭇거렸다.



“ 잠자나 보군요. 어때요? 나랑 게임 해보지 않을래요? ”



 나는 무슨 말이냐는 눈으로 그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숲에서 고요한 시간을 보낸 뒤라 그런지 우리 사이엔 일종의 우정이 형성된 것 같았다. 그는 내 눈을 조용히 들여다보았다.



“ 당신 눈을 보면, 어둡고 차가운 숲이 그늘 속에 숨어 있다가 이제 막 나온 것 같아. 전혀 닮지 않았으니… 어디선가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지금 막 만들어진 사람처럼. ”

“ 여자에게 늘 그런식으로 말하겠죠.”



 나는 좀 가볍게 넘겨보려고 빠르게 대응했다.



“ 글쎄요. 하긴 두 눈을 꼭 감고 잠만 자니까 그런지도 모르죠. 어때요, 나와 게임을 해보지 않겠어요? ”



 그의 득의만면한 얼굴에 웃음이 어리고 있었다.



“ 무슨 게임이요? ”

“ 구름 모자 벗기 게임 ”

“ 구름 모자 벗기 게임? 이상한 이름이네요, 무슨 뜻이예요? ”

“ 혼자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질 때엔 분명했는데, 지금은 나도 모호해요. ”

“ 어떻게 하는 거죠? ”

“ 게임의 유효 기간은 사 개월이에요. 그 동안 서로를 허용하죠. ”

“ 그건 왜죠? ”

“ 사람 사이의 긴장이 지속되는 기간이 대략 그 정도죠. 게임엔 긴장이 필수 요건이니까. 게임이 유효한 기간 내에도 둘 중 누군가가 상대방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 게임은 끝나요. 게임이 아웃되면 다시는 만날 수 없어요. ”

“ 만나고 싶으면… ”

“ 남은 감정은 영원 속에 익사시켜야죠. 게임의 규칙이에요. ”

“ 쉽지 않은 게임이네요. 그런 게임을 왜 해요? ”

“ 글쎄, 우선 사는게 지루하고, 당신이 마음에 들고… 그러나 사랑한다는 따위 귀찮은 결과가 생기는 건 질색이니까. ”

“ 이 게임을 자주 해요? ”

“ 흥미를 끄는 낯선 여자가 나타나면… 자주는 아니고 이따금. ”

“ 게임에선 늘 이겼어요? ”

“ 이 게임에서는 아무도 이기지 않아요. 지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



 모든게 장난 같았다. 아무튼 재미있는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담한 척 웃었다. 그런데도 나의 얼굴이 뻣뻣해졌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생에 대해 순진한 여자였다.



“ 당신은 게임을 하게 될 거예요. 달리 할 일이 없을 테니까. ”



 그가 단정적으로 말헀다.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얼굴에는 웃음이 완전히 가셨다. 숲에서우리는 두 그루의 나무나 두 마리의 다람쥐처럼 천진하기도 하고 무심하기도 한 모습으로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내가 그랬듯이 그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순수하리만치 완전히 텅 비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때문에 숲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와 나를 구분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일어설 때 마주 보았고, 그리고 동시에 미소지었었다. 나는 우리가 은밀하고도 무척 특별한 정서적 경험을 했다고 느꼈다. 그가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진심이라고 말했다면 차라리 그보다 어리둥절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는 자신만만해 보였다. 절대로 자신이 질 리가 없다는, 결코 나 같은 여자를 사랑하게 될 리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 두려워요? ”



 한 순간이었다. 그는 내 몸을 와락 붙들었고 그리고 몇 발자국을 옮겼다. 다음 순간 그는 우리를 바닷물 속에 내던져버렸다. 나는 그에게 꽉 붙들린 채 물 속에 빠져버렸다. 수영을 하지 못하는 나는 공포 때문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엇다. 처음에 물이 얼굴을 뒤덮자 저절로 허우적 거리며 그에게 엉겨붙었다. 당혹스러운 한순간이 지나가자 그는 두 손바닥으로 나의 양쪽 뺨을 가볍게 덮고 위로 올렸다. 그리고 말했다.



“ 바닥을 딛고 서요. 당신보다 더 깊지 않아. ”



 그러자 정말 발이 바다 밑바닥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물은 거의 목까지 찼다. 나는 그의 팔을 뿌리치고 물 속을 걸어나갔다. 선착장은 높아서 바닷가 가장자리로 걸어가야 했다. 파도가 전혀 없어 물의 저항이 크지 않았지만 마음처럼 빠르게 앞으로 나가지지는 않았다. 처음 물에 빠졌을 때는 너무 놀라 그의 뺨이라도 올려치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둥둥 떠오르는 몸을 가누며 천천히 걷는 사이에 나는 애초의 가분과는 다르게 빠르게 안정되었다. 바다에선 따뜻하고 신선한 해초 냄새가 났고 잠긴 머리카락은 물고기의 지느러미처럼 물결에 흐느적흐느적 일렁거리며 몸이 둥둥 떠오르려고 했기 때문에 잔뜩 집중해야 했다. 


 온통 젖어서 바다로부터 나온 뒤에도 어쩐지 그에게 화를 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장난에 동조하듯 웃기라도 할까 봐 애써 미간을 찌푸려야 했을 지경이였다. 논리나 이성이나 이지 같은건 상관없엇다. 본능적으로 그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가 심각한 표정을 만들어 짓고 원피스 자락을 걷어올려 물을 짜기 시작하자 그가 말했다.



“ 사람들은 옷을 입은 채로는 바닷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지만, 옷을 입은 채 바닷물에 빠지는 것도 인생이예요. 마음속에 금지를 가지지 말아요. 생은 그렇게 인색한 게 아니니까. 옷을 말리는 것 따윈 간단해요. 햇볕과 바람 속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되죠. 좀 짜지기는 하겠지만. ”

“ 하지만 해가 있을 때의 얘기죠. ”



 어쩔 수 없다는 듯 나는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 바닷가의 저녁은 따뜻했다. 바람이 털실처럼 포근하게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차 안에서 타월을 꺼내와 닦아주기 시작했다.



“ 대체 어떤 여자들이 그런 게임을 할 거라고 생각해요? 권태로운 여자들? 사치스러운 여자들? 아니면 타락한 여자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간략하게 말했다.



“ 나빠지고 싶어하는 여자들. ”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는 제대로 본 셈이었다. 제도의 온실 속에서 복무하기보다는 차라리 남몰래 나빠지고 싶어하는 일련의 여자들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 나도 틀림없이 그 부류니까. 그도 옷을 대강 짜고 수건으로 팔과 얼굴을 닦았다. 긴 팔과 긴 다리와 곧은 목과 곧은 척추… 모든 뼈들이 길고 곧은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몸 전체가 좀 냉정해 보였다.






 김창수를 만났던 날 이후로 거의 매일 그 휴게소에서 모닝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절 안내 표지판을 지나 늘어서 있는 은행나무 가로수들을 지나면 고개 위 휴게소가 나왔다. 오후에 후를 학교에서 데리고 오다가도 들러 팥빙수 따위를 먹고 휴게소의 등나무 그늘이나 잔디 위에서 보내다가 돌아왔다. 휴게소 집 딸이 후와 한반 친구여서 둘이 만나면 잔디밭을 데굴데굴 구르며 좋아했다. 휴게소 여자는 늘 부엌에서 그릇을 씻거나 김이 하얗게 오르는 솥에서 국수를 건져내다가 손님을 맞았다. 머리를 남자처럼 짧게 자른 여자인데 몸집이 크고 콧등에 땀이 맺혀있었다. 서른두 살이나 셋쯤 되어 보였다. 화장이라곤 전혀 하지 않았고 반지 하나 끼워지지 않은 손은 물에 불어서 두툼하고 컸다.


 내가 말을 걸거나 인사를 해도 휴게소 여자는 번번이 묵살했다. 그 여자는 늘 바쁘게 보였으며 근본적으로 좀 무뚝뚝한 여자 같았다. 바지를 입은 뒷모습을 보면 꼭 작고 다부진 남자 같기도 했다. 여자는 나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낮 내내 빈둥거리니까. 사실 시골 아낙들처럼 농사를 짓든지, 도예 단지에 가서 그릇 만드는 일을 하든지, 화원이나 제재소에 일하러 가지 않는 한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나는 아픈 여자였고 여전히 아무것도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내 인생은 낮잠을 자거나 휴게소에서 빈둥거리는 동안 항아리 속에 갇힌 빗물처럼 부패하고 있었다.






 병원에 간 건 여직원이 다녀간 날로부터 삼 개월이나 지나서였다. 그즈음 머리카락 밑을 만져보면 두피 아래층이 전체적으로 물렁하고 아팠으며 언제나 뜨거웠다. 잠자는 시간은 점점 늘어났고 잠이 들면 혼수 상태처럼 깊이 떨어져버렸으며 어쩌다가 외출할 때마다 물건을 잃어버렸다. 그 삼 개월 사이에 가방을 다섯번이나 잃어버렸고 두 번이나 방금 구입한 물건이 들어 있었던 쇼핑 백을 분실했다. 김주영은 번번이 가방을 찾아 들른 곳을 거꾸로 돌아다녀야 했다. 세 번은 되찾았고 두 번은 완전히 분실했다. 그로 인해 지갑과 함께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도 분실했는데 나는 무심한 채로 그냥 시간을 흘려보냈다. 어쩌면 그런 상황 속에서 김주영이 느낄 끔찍한 근심과 죄책감을 나는 한편으로 즐겼는지도 모른다. 김주영은 묵묵히 잃어버린 물건들을 찾아다녔다.


 김주영은 당시 내가 바보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던 것 같다. 그는 병원에 가자고 졸랐다. 그런데도 나는 병원에 가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했다. 나 자신에 대해 완벽하게 좌절해 이미 무심해진 것인지, 아니면 바보가 될 수도 있는 미래에 대한 극도의 공포감 때문인지, 혹은 상처 자체를 그처럼 수치스러워했던 것인지,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늘 아프고 연약하다는 사실을 그가 한순간도 잊지 못하도록 폐부 깊숙히 인식시켰다. 나는 어쩌면 원한을 가지고 커다란 벌레처럼 그의 머릿속에 드러누워 그의 생을 갉아먹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제대로 섹스도 하지 못했다. 한동안은 몸이 일으키는 거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 개월이 지날 쯤엔 오히려 내가 초조해졌다. 그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할 수가 없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내 몸 속에 있는, 그의 부정한 육체를 조롱하는 긴 혓바닥이였다. 기껏 불빛의 조도를 낮추고 침대에 나란히 누워 한없이 자신을 다스리며 그를 향해 조심스럽게 방향을 틀 때면 그 긴 혓바닥이 먼저 목구멍으로 쑥 올라와 차갑고 미지근한 욕지기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냄새….


 냄새를 맡지 않기 위해 나는 뇌는 무감각해지려고 긴장했고 그 긴장과 동시에 두통이 시작되었다. 두통 속에서 몇 번의 섹스를 치른 후로 나는 섹스를 두려워하게 되었고 그도 꺼리게 되었다. 우리는 어리둥절하고 놀라고 불안해하며 고립되어갔다. 이젠 두 몸 사이에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가 나의 몸을 만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근친상간보다 더 곤혹스러운 변태적인 감각의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벌레가 살갗에 떨어지는 것같이 불쾌한, 너무나 불쾌한 기억이 되살아날 것만 같은 일종의 공포가 그와 나의 살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차라리 김주영을 그 여직원에게 보내버렸더라면 그 뒤에도 생이 이처럼 어려웠을까, 차라리 내가 정말 떠나버렸더라면 어땠을까….






사담


 상황전개, 결과 모두 미정(未定)입니다.

여자의 마음이 흘러가는대로 글도 천천히 흘러갈 것 같습니다.

애초부터 탄탄하게 구성 된 스토리의 글이 아니여서… 어떻다고 드릴 말씀은 없지만,

극 중 인물을 편하게 따라오며 봐주시는 것이 더 좋을거 같다고만 말 할 수 있을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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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와ㅠㅠㅠㅠ정말잘쓰시네요!!!!잘읽고갑니다ㅠㅠㅠㅠ
11년 전
독자2
ㅜㅜㅜㅜ잘읽고가여!ㅜㅜㅜㅜㅜ
11년 전
독자3
작가님 사랑해요.. 꾸준히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감사히 잘 읽고 있어요!
11년 전
독자4
잘보고 갑니다! 스토리 탄탄하지않아도 금손!
11년 전
독자5
김주영 망할.............갖고싶다.....여친이랑 행쇼
11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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