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녹차하임
"불의 반에 새로왔다는 애가 너야?"
"그런데?"
진짜 초등학생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덩치에 종대가 찬열의 뒤로 쏙 숨었다.
백현은 꼿꼿히 고개를 들고 찬열에게 떡대라고 불린 종인을 보았다.
피부가 까무잡잡하긴 했지만 이목구비가 뚜렷고 잘생긴 얼굴에 그의 주변에는 어느새 여자아이들까지 합류해 놀고있었다.
백현은 종인의 주변에 있던 아이들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안그래도 백현의 눈치를 보고있던 아이들이 흠칫했지만 백현보다도 큰 종인을 믿고 눈을 피하지는 않았다.
호오- 이것들이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사실 종대, 찬열, 백현의 서열은 백현이 월등히 높았다.
찬열은 싸움을 잘한다기보다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아 대표로 뽑혔던 것이고 종대는 말이 많고 친화력이 뛰어나 대표라고 할 수 있었다.
그에비해 백현은 그야말로 싸움닭이었다.
누구를 먼저 해하려 하지는 않지만 누군가 시비를 걸어오면 가차없었다.
찬열의 같은 반 남자아이들은 찬열에게 불만이 많았다.
여자들의 기에 눌려 대표로 세우긴 했지만 비실거리는 찬열이 영 못마땅했다.
더군다나 백현과 친해져 든든한 빽까지 생겨 당당해진 찬열에 남자들은 더욱 싫어졌다.
그래서 종인이 오자마자 바로 갈아타버린 것이다.
"너가 반대표 되고싶다고 난리라며?"
"아니, 관심없는데?"
백현이 눈을 흘기며 물어보자 종인이 바로 대답했다.
모두의 생각과 다른 대답에 백현을 포함한 모두가 당황했다.
종인은 강한 인상과는 달리 정말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백현을 멀뚱히 내려다보았다.
백현이 고개를 획 돌려 찬열에게 어떻게 된거냐며 눈짓을 주자 찬열도 모른다며 고개를 도리질쳤다.
"하지만 너때문에 박찬열이 무시당하고 있잖아!"
"박찬열?"
"쟤!"
백현이 손을 쭉 뻗어 뒤로 물러나있던 찬열을 가리키자 종인이 활짝 웃어보였다.
그 웃음에 찬열과 그 뒤에 숨어있던 종대까지 멍해져 종인을 바라보았다.
"거기 있었구나? 안녕, 난 김종인이야. 나 너랑 친해지고 싶어!"
"... 에?"
종인 찬열 앞으로 걸어가 인사를 건넸다.
이쯤되자 종인을 뺀 모두가 공황에 빠져들었다.
민호를 믿고 찬열을 무시했던 무리들은 점점 사색이 되어갔고 백현은 좋은게 좋은거라며 종인의 말을 쉽게 받아들이고는 고개를 돌려 사색이 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종대는 신이나서 종인에게 말을 걸었고 종인도 웃으며 잘 받아주었다.
찬열도 곧 쭈뼛쭈뼛 말을 하자 셋이 신이나서 떠들어댔다.
자신에게 눈길이 떨어져있는 틈을 타 백현은 떨고있는 무리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 감히 박찬열을 울려? 너네 죽을래? 누가 박찬열 무시하랬어. 내가 분명히 잘 챙기라고 말했지?!"
"...저,저 그게..."
"다음엔 진짜 가만히 안놔둘거야. 조심해."
"으,응!!"
백현이 주먹을 올리며 협박하자 무리는 동시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보라는 손짓을 하자마자 부리나케 도망치는 무리들을 보면서 백현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해맑게 웃으며 돌아섰다.
세 사람에게 다가간 백현은 찬열의 머리를 콩 쥐어박았다.
"바보야, 착한애잖아."
"... 미안."
명백한 실수에 할말없이 볼을 긁적이던 찬열이 베시시 웃었다.
백현은 종인을 보고 자기소개를 했고 종인도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알고보니 종인은 비글들보다 두살이나 적었다.
또 생긴건 엄청 무뚝뚝하고 조용하게 생겨서는 비글라인 못지않게 헐랭한 웃음과 모습을 보여주는 종인이었다.
그런 종인이 마음에 들었던 비글들은 니니 또는 종구라는 별명까지 지어주면서 잘 놀아주었다.
종인도 곧 잘 형이라며 비글들을 따라다니자 선생들은 비글이 한마리 늘어나는거 아닌가 싶어 초조해졌다.
그만큼 종인까지 합세한 백현들의 무리는 원내에서 그야말로 천하무적이었고 유치원은 그들의 왕국이었다.
종인이 불의 반에 합류하여 세사람의 균형을 깨지자 비글들은 반을 가지고 싸우는 일은 없어졌다.
사실 세 사람은 반의 우열이 어떻든 상관 없었는데 단순히 그걸로 노는 것과 그에 따른 선생들의 반응이 재밌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뿐이었다.
이제 비글들은 종인이를 놀리는 맛에 푹 빠져 하루가 멀다하고 종인을 놀려댔다.
항상 달려와 비글들이 놀리는 것을 이르며 울어제끼는 종인을 토닥여주면서도 선생은 종인의 희생으로 가슴 졸이는 사고가 줄어든 것에 속으로 종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의 이런 평화가 좀 더 이어지기를 바랬다.
선생들의 간절한 바램이 통했는지 비글들은 유치원을 졸업할 때까지 종인을 놀리는 맛에 살았다.
졸업식 당일 종인은 졸업의 의미를 모르고 헤실헤실 웃다가 이젠 유치원에서 그들을 볼 수 없다는 말에 울음을 터뜨렸다.
기절초풍할 성량의 울음소리가 유치원이 떠나갈 듯 한동안 계속되자 종인에게 동화되어 같이 울던 비글들도 질렸는지 그만 울라며 사정했다.
끄윽끄윽 겨우 울음을 그친 종인을 냅두고 셋이 속닥속닥거리더니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언제 모여 만들었는지 비글들이 작은 손으로 열심히 직접 만든 카네이션을 각자의 담임선생님에게 내밀었다.
"쌔앰! 우리 초등학교에 같이 가는거죠?"
"오다가 주웠어. 이거 가져."
"선생님! 이거보다 선생님이 더 이뻐요! 그래도... 이거 받을거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당치도 않는 물음을 하는 종대와 벌써부터 중2병걸렸나 싶은 백현의 시크함.
그리고 여자 마음 사로잡는데는 도가 튼 찬열이를 보자 그동안 수고스럽던 하루하루는 이미 기억속에서 미화되었다.
선생들은 너희들을 절대 잊을 수 없을거야... 하고 아이들을 꼬옥 안아주었다.
그들의 포옹이 기분 좋았는지 학사모를 쓴 아이들의 얼굴에는 어느새 똑같은 웃음이 빙그레 걸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