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모바일 (밤모드 이용시)
댓글
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단편/조각 만화 고르기
이준혁 몬스타엑스 김남길 강동원 엑소 성찬
문달 전체글ll조회 4148l 4
등장인물 이름 변경 적용

[이동혁/정재현] Paper Tiger, Scissors Rabbit (Re:2 | 인스티즈 

 


 


 


 

Paper Tiger, Scissors Rabbit 

w.문달 


 


 


 


 


 


 


 


 


 


 

♡ 


 


 


 


 


 


 


 


 


 


 


 


 


 


 


 


 


 

 실로 어색했다. 호랑이랑 토끼랑 그리고 ? 

정재현이 먼저 인사를 해오길래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리며 맞인사를 했다. 

차마 아까 급식실에서 고마웠다 라고 말을 꺼낼 정도의 친화력은 없어서 인사 정도로 말을 아꼈다. 

이동혁과는 전부터 아는 사인지 둘이서 잘 붙어있었다. 

더욱 외로워진다.. 

앞서 걸어가는 둘 뒤로 쓰레받기를 들고 따라가는 내 폼은 누가봐도 대장을 쫄래쫄래 뒤따르는 똘마니 같았다. 


 

우리 반이 중앙 통로와 제일 근접해 있기에 중앙 계단을 갖고 있는 중앙 복도를 청소하는 반이 되었다. 

애들이 많이 왔다갔다거리며 검정 때 묻은 신 자국을 내고 다니고, 물에 잔뜩 젖은 걸레를 질질 끌고 다니다 붙은 머리카락, 먼지 뭉치들을 두고 가기도 하고, 아무튼 발들이 너무 많아서 그냥 청소 시간이 거의 끝나가기 1분 전쯤에 급하게 보이는 먼지들만 대충 쓸고 걸레로 한번 훔치는게 제일 편하다. 

이동혁과 정재현은 원칙적으로는 타면 안되는 엘리베이터를 선생들 보란듯이 타고 내려갔다. 아무래도 매점을 가는 모양이었다. 

뭐야,나 왜 따라온거야 뻘쭘하게. 

길 잃은 애처럼 복도 한 가운데에 서 있다가 간간히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애들과 반갑게 인사하는 인사 로봇이 되어 있는데 걸레를 가랑이 사이에 끼우고 애처럼 가던 김동영이 내 앞에 멈춰섰다. 


 


 


 


 


 


 

"여기서 뭐하냐?" 


 


 


 


 


 


 


 


 


 

"너는 뭐하냐? 갈 길 가지? 나 여기 청소거든? 잘 됐다. 가는 김에 깨끗하게 밀어주면서 가라." 


 


 


 


 


 


 


 

"누구 좋으라고~ 너 혼자 해?" 


 


 


 


 


 


 


 


 

"아아니. 이동혁이랑..그리고 한 명 더 있어." 


 


 


 


 


 


 


 

이동혁이라는 말에 김동영은 바로 혀를 내두르며 이번년도 주구장창 고생만 하라며 내 어깨를 토닥이다 갔다. 

나는 그와중에 아까 이동혁이 내게 던지듯 줬던 셔츠가 생각났다. 

교실로 돌아갈 쓸데없는 구실이 생겨버린 것이다. 

내가 그걸 어디다가 놨뒀더라. 


 


 


 


 


 


 


 


 

"저기, 이거는 내가 빨아서 돌려줄게." 


 


 


 


 


 


 


 


 


 

"당연히 그래야지." 


 


 


 


 


 


 


 


 

아까의 일 역시 다시 떠올랐다. 

재수없는 호랑이. 

 


 


 

 


 


 

 


 


 

 


 


 

 


 


 

 


 


 

 


 


 

 


 


 

 


 


 


 

 


 

♡ 


 


 


 


 


 


 


 


 


 


 


 


 


 


 


 


 


 

J의 시선 


 


 


 


 


 


 


 


 

 


 


 

 


 


 

 


 


 

 


 


 

이동혁은 잠이 많다. 그렇게 잠이 많은 주제에 은근히 성실해서 수업시간은 또 집중을 잘 한다. 너무 졸려서 꾸벅댈 때가 많지만 그래도 조용히 잘 듣는 편이고, 성적도 잘 나온다. 


 


 

 


 

호랑이 꼬리 떼고 잠만보 해라. 


 


 

장난으로 나온 말에 버럭하며 금방 혼현을 드러내는 꼴은 살짝 쫄리긴 해도 귀여웠다. 


 

내가 아는 이동혁은, 

첫인상이 살짝 더럽고, 같이 있다보면 애가 참 서툴다는 걸 알게 해주고. 

뭐, 4년째 봐왔어도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다. 입장 바꿔서는 이동혁도 그럴 것이다. 가령, 지금같은 경우 말이다. 


 

어려서부터 사교 모임에 줄곧 나가 다른 집안 콧대 높은 또래 여자애들을 꽤나 만나봤던 이동혁은 여자애들이라면 다 거기서 거기라며 어울리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알았다는 서혜린을 제외하면 관심도 없고. 

자기한테 추잡스럽게 달라붙어 아양을 떠는 것들이 간혹 생기면 가차없이 으르렁 거렸다. 


 

안좋은 냄새나 풍기고 지랄이라면서. 

자기랑 비슷한 레벨한테는 그 나 마 점잖게 굴긴 하는데 그 아래는 정말이지 싸늘했다. 


 


 

그런데 이동혁 옆에 토끼 한 마리가 앉아있네. 

그것도 나에게 익숙한 토끼였다. 

1학년 때 이동혁네 반에 있었던 토끼와 매우 닮아서 쌍둥인가 했는데 둘이 종종 붙어 있는 걸 보고 맞구나 확신했다. 

그때 이동혁은 자기 몸에서 꼬순내가 나는 것 같다고 맨날 내 조말론을 빌려 뿌리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쉬는 시간에 토끼 구경하러 찾아가본 이동혁 교실에는 호랑이 눈치 본다고 안절부절 못하며 자라처럼 목을 움츠린 김동영이 인상 깊게 박혀있었다. 


 

토끼는 어디 안 가고 이번에도 호랑이 옆에 앉아 있다. 

마찬가지로 잘게 떨며 팔을 대고 누워있는 이동혁 눈치를 보는 모양새가 불쌍하면서도 귀여워서 간간히 쳐다봤다. 

얼마나 정신을 한 곳에 모으고 있으면 자기 대각선 뒷자리가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도 모를까 싶었다. 

 


 


 


 

김도화 


 


 


 


 

담임이 첫 조례 시간에 출석부를 부를 때 가까이에서 작게 울림이 생기더니 대각선 앞에 앉은 토끼가 손을 들고 대답했다. 

토끼 이름이 김도화 였구나. 


 

김도화. 

수많은 이름들 가운데 하나인데도 계속 곱씹혔다. 


 


 

김도화는 확실히 튈 정도로 이동혁을 신경썼다. 앙칼진 이동혁 다음으로 귀엽게 여겨졌다. 

특히나 작년에 봤던 토끼와 같이 복도 창문으로 눈만 내민 채  이동혁을 주시하는 김도화를 보고 나는 간신히 웃음이 터질 뻔 한 걸 참았다. 

최대한 그 쪽을 쳐다보지 않는 게 그들을 도와주는 거겠다만,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귀여운 행동에 눈이 안 갈 수 없었다. 그래도 나름 머리를 써서 내게 말을 걸어오는 애를 일부러 복도 창문쪽을 등지게 해서 세웠다. 이렇게 하면 티 안나게 볼 수 있지. 

토끼들은 금세 귀도 보이지 않게 어디론가 달아나 버렸다. 


 

그러더니 매 쉬는 시간마다 작년의 토끼가 교실로 찾아와 김도화를 만나는 것이다. 하나보단 둘이 낫다 이건가. 암튼 결과가 귀여우면 됐다. 


 


 


 


 


 


 


 

"정재현,밥 먹으러 가자." 


 


 


 


 


 


 


 

깊이 잠들었다가도 시종 시간에 맞추어 단박에 잘 깬다. 

눈을 비비며 기지개를 켜는 이동혁의 어깨에 팔을 얹고 급식실로 내려갔다. 

내 팔은 금방 버려졌지만. 


 


 


 


 

토끼들 옆에 치타가 붙어있는건 절로 이목이 가는 광경이었다. 

게다가 한 다리 건너 아는 애였다.그렇게 친하지도 않았지만 인사 정도는 하는 사이. 

이민형이었지,이름이. 

토끼들 볼 겸 인사도 할 겸 셋이 선 줄을 지나가는데 뭐에 정신이 팔렸는지 김도화가 들고 있던 빈 식판이 아찔하더니 엎어지려 하는 참이길래 바로 받아서 올려줬다. 

갑작스런 손길에 많이 놀랬는지 김도화는 그 작은 입만 옴죽대다가 어정쩡한 자세로 눈을 마주쳤다. 


 


 


 


 


 


 

"뭐하냐. 줄 긴거 봐. 어서 안 서고 뭐하냐아!" 


 


 


 


 


 


 


 


 

"그럴거면 너가 먼저 달려가서 서 있지 그랬어." 


 


 


 


 


 


 


 

내 등을 탁탁 치며 옆에서 타박하는 이동혁에 나는 계속 김도화에게 고개를 돌린 채로 대충 대답했다. 

식판 하나도 제대로 못 들어서 어떻게 이동혁 옆에서 버티려고. 


 


 


 

내 예상과는 다르게 김도화는 오전에 비해 깡이 세졌다. 한문 시간에 선생님은 수업 준비가 덜 됐다며 자습을 시켰고, 떠들거나 자지 말라며 일전에 경고를 날렸다. 


 


 


 


 


 


 

"옆 사람 졸면 책임지고 깨워라~" 


 


 


 


 


 


 


 

그게 토끼를 곤경에 빠트렸나보다. 

쉴새없이 제 오른쪽을 힐끗대는 도톰한 볼에 나는 풀던 문제집에서 손을 잠깐 떼고 머리 식힌다는 기분으로 김도화를 관찰했다. 

길지도 짧지도 않는 속눈썹이 간간히 움직이며 무언가를 끊임없이 주시하길래 경로를 따라가 보니 끝에 이동혁이 수업이 끝날 때마다 하나씩 쌓아올린 교과서들이 걸려있었다. 대충 올려둔 터라 위태해 보였다. 게다가 머리가 앞으로 점점 고꾸라지는 걸 보니 밀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김도화는 선생님과 이동혁을 번갈아 보다가 이내 한손으로 이동혁의 교과서 탑을 잡고,남는 다른 손으로는 탑의 허리 부분이라 할 수 있는 곳을 잡는다. 

뭐지, 싶어 목을 좀 더 빼 기웃거려보니 이동혁이 어디에 맞받았는지 가볍게 뒤로 밀리며 허리를 펴고 일어나 김도화를 쳐다보았다. 

부딪히면 교실에서 가장 큰 소릴 내며 무너질 상황을 막아보려나보다. 꽤나 흥미로워 아예 손에서 펜을 놓고 편한 자세로 그 다음에 보일 이동혁의 반응을 관전했다. 


 


 

토끼가 자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엑스자를 친다. 

자지 말라는 말인거 같다. 거기에 대고 이동혁은 미간을 굳히며 왜 라고 반문한다. 그 뒤로 바디랭귀지는 계속 이어졌다. 그니까 자지 말라는 거 같은데 평소같으면 진작에 무시했을 그 행동을 계속 봐주다가 귀찮다는 듯 다시 엎드린다. 

김도화는 잠깐 씨근대는 듯 하더니 이동혁을 흔들기까지 했다. 토끼치고 장족의 발전이었다. 작년의 토끼는 이동혁이 짧게 다음 교시,오늘 급식 메뉴,목말라 하면 다 발발 뛰기만 하며 대답만 했다는데. 


 

몸으로 말하기도 지쳤는지 아예 종이를 찢어다가 들어보이던 김도화와 이동혁은 결국 선생님 눈에 띄고 말았다. 

그러게 진작에 토끼 말을 들었어야지. 어리석은 호랑이. 

김도화 뒷통수에서 이동혁을 향한 원망이 가득 느껴졌다. 

축 처진 포니테일이 마치 토끼 귀 같다는 착각이 일었다. 


 

아무래도 손들고 있는 체벌에 적절하지 못한 복장이 김도화는 많이 신경 쓰이는 듯 보였다. 그보다 더 눈길이 가는건 토끼를 과하게 신경쓰는 이동혁이었다. 

선생님 눈치를 살살 보더니 기어코 교복을 한꺼풀 한꺼풀 벗으며 멀찍이 떨어진 김도화에게 교복 셔츠를 전달하는 것까지 완벽하게 해냈다. 

여태껏 알고 지내며 그렇게 먼저 호의를 베푸는 이동혁은 경이로울 정도로 새로웠다. 김도화가 저를 쳐다보니 바로 초점 없이 정면을 향해 틀어버린 이동혁이다. 

나는 그런 이동혁에 어깨를 들썩이며 핸드폰을 슬며시 꺼내들었다. 


 


 


 


 


 


 


 


 


 

"너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토끼, 김동영 있잖아. 걔랑 김도화랑 닮은 거 같지 않아? 쌍둥인가." 


 


 


 


 


 


 


 


 

하강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대뜸 그 얘길 꺼내니까 이동혁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로 거울에 반사된 나에게 말한다. 


 


 

 


 


 


 


 


 


 


 

"정재현, 넌 내가 아둔한 호랑이로만 보이나보다?" 


 


 


 


 


 


 


 


 

살짝 비틀어올린 말끝에 너털 웃음을 지으니 거울에서 뒤돌아 나와 정면으로  눈을 맞춘다. 


 


 


 


 


 


 


 


 

"눈만 마주쳐도 쫄아있는 거 하며 냄새까지." 


 


 


 


 


 


 


 


 

뒷말은 문이 열린다는 소리와 함께 삼켰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진작부터 알았다고. 

모르면 멍청이게. 


 


 


 


 


 


 


 


 


 


 


 


 


 


 


 


 


 


 


 


 


 


 


 


 


 


 


 


 


 


 


 


 


 


 


 


 


 


 


 


 


 


 


 


 


 


 


 


 


 


 


 


 


 


 


 


 


 


 


 


 


 


 


 


 


 


 


 


 


 


 


 


 


 


 


 

 비가 올 것 같으면서도 하늘은 회색빛 먹구름만 가득했다. 

여자저차 3월이 넘겨졌다. 달력이 붙은 기둥 옆에 앉은 아이가 3월 달력을 찢었다. 진작에 찢어버렸어야 했다. 벌써 4월의 첫째주가 지났으니. 

달은 넘기겠는데 한 학기라고 멀게 두고보면 한참 멀었다. 

교실은 꿉꿉했지만 에어컨은 아직 틀려면 멀어서 창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며 달캉거렸다. 


 


 


 


 


 


 

공부에는 딱히 흥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예체능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나 진짜 뭐해먹고 살지. 

김동영은 노래라도 잘해서 엄마 졸라서 끊은 보컬 학원이라도 열심히 다니지. 

내가 잘하는거는... 먹는거? 

거기까지 가지가 뻗치니 갑자기 오늘 중식,석식 메뉴가 궁금해졌다. 

정성스레 하나하나 네모나게 잘라 한 클립에 모아놓은 식단표를 필통에서 꺼냈다.  어제 급식표를 떼 동그랗게 뭉쳐 책상 한 귀퉁이에 몰아넣었다. 

그러다가 이동혁이 그어놓은 검은 선을 넘어가버렸지만. 

지금 이동혁은 졸고 있고,뭐 어떠냐 내가 나중에 치우면 돼. 하는 생각을 하며 오늘 메뉴를 속으로 읊었다. 

나는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 

호랑이 새끼는 생각보다 예민했단 걸. 


 

토끼지만 풀떼기는 사양하는 내가 중식 메뉴에 있는 미니 삼겹살&쌈채소에 정신이 팔려 어느새 눈을 뜨고 매섭게 노려보는 호랑이를 잊고 있었다. 


 

그저 돼지족은 힘들겠다. 아무리 기형적으로 태어난 아기들만 식용으로 분류해 키워서 잡아 먹는다지만 동족상잔 아니냐. 라고 팔자 좋게 남 걱정을 했지. 

누가 옆에서 툭툭 치길래 헤벌쭉한 표정 그대로 그쪽을 향해 돌다가 침을 흘릴 뻔 했다. 


 


 


 


 


 


 


 


 

"너 넘었어. 얘도 넘었고, 쟤도 넘었어." 


 


 


 


 


 


 


 


 

얘에서 내 팔꿈치를 가리키고,쟤에서 아까의 그 코딱지만한 급식표 뭉치를 가리키는 이동혁이다. 

어떡하지. 일단 미안하다고 해야하나. 


 


 


 


 


 


 

"아..미안," 


 


 


 


 


 


 


 

그러다가 갑자기 울화가 치밀었다. 

내가 왜 미안해야 하지?이건 단지 유성 매직 선일뿐인데? 

부질없는데?원래 내 책상인데? 

마음 같아서는 만화 속 한 장면처럼 입에서 불을 뿜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책상도 뒤집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텐데 현실은 소심하고 작고 약한 토끼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 선 지우면 어떻게 돼..?" 


 


 


 


 


 


 


 

김도화 

난 널 사랑하지만 너 지금 헛소리 지껄인다. 

자기애 지수가 낮아지는 질문이었다. 

내 말에 이동혁 역시 기가 차는 듯 한쪽 눈썹을 움찔거리더니 말한다. 


 


 

 


 


 

 


 


 

 


 


 

 


 

"지워봐." 


 


 


 


 


 


 


 

지울 수 있으면. 


 


 


 


 

나는 아니라고 열심히 좌우로 머리를 흔들었다. 

김도화가 골백번 잘못했네 씌이뻘. 

내가 금방 수그리니까 의기양양해져서는 눈을 반짝이며 수업에 집중하기 시작하는데 그 모습이 아니꼬우면서도 미웠다. 

네놈이 호랑이만 아니었더라면. 

아랫입술을 빨며 턱에 힘을 주다가 옆이 따가워 슬쩍 뒤를 돌아봤다. 

정재현과 그대로 눈이 마주쳐버렸다. 


 


 

우연이겠지. 


 


 


 


 


 


 


 


 


 


 


 


 

 


 


 

 


 


 

 


 


 


 


 


 


 


 


 


 


 


 

♡ 


 


 


 

 


 


 

 


 


 

 


 


 

 


 


 


 


 


 


 


 


 

 나는 체육 시간이 싫다. 일단 첫째로 체력이 매우 저질이고, 몸도 각목마냥 뻣뻣하고, 그래서 연쇄적으로 모든 수행평가의 최저점을 맡고 있기 때문에 흥미도 없고 재미도 없다. 토끼와 거북이에선 아니던데 무슨 토끼가 체력이 약하냐고? 이봐요, 고전은 집어치웁시다. 전형적인 토끼상을 내게 고집하지 말라고요! 개, 개성 있다고 칩시다. 이런 토끼 저런 토끼 있는거지, 흥. 키만 나보다 컸지 체형은 비슷한 김동영에게서 체육복을 빌려와 입고 터덜터덜 운동장으로 걸어가며 다시 한번 중얼거린다. 

나는..체육이 싫다... 


 


 


 


 


 


 


 

"빨리 안 뛰어오냐!" 


 


 


 


 


 


 


 

내 뒤에서 걷던 애들이 일제히 뛰기 시작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터벅터벅 지면에서 발을 조금 더 올려 빠르게 걸었다. 

팔만 열심히 뛰는 척 앞 뒤로 흔들었다. 

키 순서대로 서서 체조를 시작하는데 도대체 마지막에 버피 끼워놓은 거 누구야! 

남들 일어날 때 일어나지 못하면서 남들보다 배로 헉헉 거리며 힘겹게 마무리 동작을 한 후 나는 기준을 젖먹던 힘까지 끌어내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나 진짜 어디가서 작다는 소리 못듣는 킨데 유독 우리반 애들이 크다. 

내가 정중앙 맨 앞줄에서 기준이나 외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나 진짜 안 작아, 정말. 


 


 

 


 


 

 


 


 


 

"아가,아침 밥 안먹었냐~목소리에 힘이 없네. 비실비실해가지고." 


 

 


 


 

 


 


 


 


 

체육 선생님의 안타까움 가득 섞인 목소리에 주변에서 킥킥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절로 창피해져서는 귀가 뜨거워졌다. 안돼,정신차리자. 

너무 부끄러우면 나는 꼬리부터 뿅 하고 튀어나오는게 큰 문제였다. 

도화야 말려 들지 마 말려 들지 마 


 


 


 

목소리에 힘 없고 비실비실한거 알면서 체육 선생님은 두 줄씩 키순서로 여자 한 줄, 남자 한 줄 선게 한 뒤에 운동장 두바퀴 돌기를 시켰다. 

나는 내가 태릉 선수촌 들어가는 줄 알았어. 

이민형의 말버릇인 오바를 외치며 나는 신발끈을 고쳐맸다. 

 


 


 

 


 


 

중요해서 강조하는 건데, 난  그래도 앞에서 네 번째 줄이다. 작년에 거의 뒤에 섰다는 기억만 빼면 덜 비참하다. 

모든게 전체적으로 유연하고 애매한 4월은 그나마 날씨마저도 애매하게 풀려있어 살살 불어오는 바람에 땀은 덜났다. 

지금 뻘뻘 땀을 흘리고 있는건 미친듯이 크게 뜀박질 하는 심장뿐이었다. 

운동장 돌린지 얼마 됐다고 주저 앉자마자 일으켜 세운 체육 선생님의 수업 큰 주제는 짝배구였다. 운동장 같이 돈 그 순서 그대로 서게 하더니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짝이란다. 친한 친구와 하려했던 애들은 에에 거리며 꺼려했지만 선생님은 완고했다. 임시 반장과 부반장이 체육 창고에서 피구공이 든 대형 단프라 박스를 낑낑대며 들고 오는 걸 앞에서 보고 몇몇이 다가가 도왔다. 나도 도우려고 주춤 거렸는데 내 옆을 지나가면서 누군가 그냥 있으라고 나를 밀어넣었다. 

 


 


 

큰 키를 가진 하얗고 호리호리한 애. 

정재현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정도로 관계성이 있던가에 대해 짧게 생각하다가 관두었다. 

김동영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까무러칠 것이다. 

근데.. 이동혁 무서운데 묘하게 편, 

 


 


 

 


 

.. 도대체 나, 오늘 나를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다! 

뺨을 찰싹 치며 정신을 가다듬은 뒤 멈춰 섰는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같이 걷던 애가 사라졌다. 어리둥절해져서 주변을 살피는데 저 멀리서 누가 걸어왔다. 


 


 

아니, 이동혁 지금 나를 보고 있나요. 


 


 

 


 


 

이동혁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이동혁이 내 앞에 서서 뭐하냐며 공을 뺏을 때까지도 어안이 벙벙해져서 공이 빠져나간 허전한 손을 내리지도 못했다. 


 


 


 


 


 


 


 


 


 


 


 


 


 


 


 


 


 


 


 


 


 


 


 


 


 


 


 


 


 

♡ 


 


 


 


 


 


 


 


 


 


 


 


 


 


 


 


 


 


 


 


 


 

 


 


 

 


 


 


 

"뭐..뭐야..?" 


 


 


 


 


 


 

"뭐긴 뭐야. 대충 연습하고 매점가게 협조해." 


 


 


 

 


 


 


 

손이 파르르 떨렸다. 뭐야, 뭔데 자기 맘대로 짝꿍 막 바꾸고 그래? 어? 이래도 돼? 역시나 내 속은 바르작거리며 이동혁 머리채를 뜯고 있지만 현실의 가엾은 나는 정말 약하고 작은 토끼니까요.고분고분 이동혁이 하란대로 따랐다. 


 


 


 

한 명이 좋게 던져주면 다른 한 명이 자세를 잡고 치는 건데 이동혁은 역시나 쉬운 던지기를 맡았다. 원래 이거 번갈아 하는건데 이동혁은 절대 바꿔주지 않겠지. 

구십프로 체념한 상태로 날아오는 공을 팔로 튀기는데 마치 쇠랑 뼈가 맞부딪친 것처럼 후들거리며 아팠다. 

눈물이 절로 나올 것 같았지만 빨리 매점 가고 싶어하는 이동혁은 발을 동동 구르며 얼른 공 달라고 성질을 부렸다. 


 

그렇게 일곱번 정도 반복하니까 이동혁이 이만하면 보여주기 식이 됐다며 멀찍이 떨어져 열심히 연습중인 지 친구들을 불렀다. 

공과 함께 남겨진 나는 어느새 모세혈관이 터져 빨간 점들이 다다닥 나타난 팔 안쪽을 한숨 지으며 보다가 체육관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동혁은 호랑이 씩이나 돼서 자기가 초식 동물들한테 위험하다는 생각도 안 하나? 배려가 없어, 배려가. 

이동혁 때문인지 아픈 팔 때문인지 몰라도 새빨개진 눈을 보며 나는 이동혁 탓으로 넘겨버렸다. 


 


 


 


 


 


 


 


 


 


 


 

 


 


 

 


 


 

 


 


 


 


 


 


 


 


 


 


 


 

 


 


 

 


 


 

 


 


 

 


 


 

♡ 


 


 


 


 


 


 


 


 


 


 


 


 


 


 


 


 


 


 


 


 

 


 


 

 


 


 


 

체육복을 다시 돌려주려고 김동영네 반에 갔다가 팔이 이게 뭐냐고 꾸지람을 들었다. 네가 뭔데 나 혼내! 

여태 참았던 울화통을 그래도 걱정반으로 잔소리하는 김동영에게 다 풀고 오는 길에 문자로 미안하다고 짧게 보냈다. 


 


 


 


 

그럴 수도 있지, 뭔지 모르겠지만 힘내 김도화 


 


 


 

김동영 웬일이야..감동적이네. 

역시 내 절대적인 편은 김동영 하나다. 

위안을 조금 얻고 기운을 좀 차렸다. 

소매를 살짝 걷어붙이면 여전히 팔은 내 눈만큼이나 울긋불긋하고 파르족족했지만. 


 


 


 


 


 


 

  "배구 한다고 그런거야? 일부러 덜 딱딱한 피구공으로 한건데." 


 


 


 


 


 


 


 


 

언제 나타난건지 내 옆에 정재현이 나란히 서서 걷고 있었다. 

놀라서 짧고 굵게 괴성이 튀어나오니까 보조개가 패이게 웃는다. 

몰랐는데 이렇게 잘생겼구나. 미모에 감탄하고 있는데 정재현의 관심은 나보다도 내 팔이었다. 


 


 


 


 


 


 


 

"내 손 차가운데.. 얼음 찜질이라 생각하고 잡아주면 잡혀줄래?" 


 


 


 


 


 


 


 

나에게 젠틀하게 허락을 구하면서도 이미 잡고 있는 중이었다. 

정재현의 말마따나 그의 손은 차가웠다. 아니, 열이 홧홧하게 오르는 내 팔에 닿는 지금은 정말 얼음찜질 하는 것처럼 시원했다. 


 


 


 


 


 


 


 

"와..대박. 진짜 시원하다." 


 


 


 


 


 


 


 


 

"나 그래서 여름에 인기 짱 많다? 너도 나도 만져달라 그래." 


 


 


 


 


 


 


 


 

베시시 풀어버리며 얼굴 가득 감도는 웃음기에 나도 따라 수줍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끼리끼리 논다는데 정재현은 예외인가보다. 

그렇게 복도에 멈춰서서 때아닌 핸드메이드 찜질을 받게 되었다. 내 몸의 열이 전달되어 정재현 손도 어느정도 미적지근해졌을 때 이동혁이 나타났다. 


 


 


 


 


 


 


 


 

"둘이 뭐하냐." 


 


 


 


 


 


 


 

몸이 으슬으슬 떨려오는게 확실히 이동혁은 경고를 주고 있었다. 언뜻 드러나는 범의 기운에 천천히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이동혁/정재현] Paper Tiger, Scissors Rabbit (Re:2 | 인스티즈 


 


 


 

♡ 


 


 


 


 


 


 


 


 


 


 


 


 


 


 


 


 


 


 


 


 

 뭐랄까, 약골이지만 기절같은걸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가끔 기립성 저혈압 때문에  찌릿하게 발끝에서부터 타고 올라오는 번쩍거림은 경험 했어도, 정신이 아득해지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쓰러지는 일은 정말 단언컨대 한번도 없었다 이 말이다. 내가 다짜고짜 은근히 튼튼한 몸이라는 걸 설명하고 있는 이유는 

그래,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겨있던 눈을 떴을 때 본 천장이 보건실 천장이라서이다.. 

생리통이 심했던 친구 따라 간간히 오긴 했지만 침대에 누워본 적은 없었는데 아늑하면서 학교 특유의 불편함이 밀려오는걸 보니 내가 아파서 쓰러져 누워있는 건 아닌 것 같고. 뻣뻣한 몸을 반쯤 일으키려다 힘이 없어서 베개에 다시 머리를 박았다. 

나 여기 왜 있는거지. 


 


 


 


 


 

김도화! 


 


 


 


 


 

언젠가 과거에서 스쳐지나갔던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피로에 지배당하는 눈꺼풀을 감았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니까, 조금만 시간을 돌려서 분침과 시침 사이로 기어들어가보자. 


 


 

 


 


 

 


 


 

 


 


 

 


 


 

 


 


 

 


 


 

 


 


 


 


 

"둘이 뭐하냐." 


 


 

 


 


 

 


 


 

 


 


 


 

낮게 목소리를 깔며 다가온 이동혁은 나에게서 금방 시선을 거두고 정재현을 살기 어린 눈으로 노려봤다. 

뻑뻑한 눈이 찌걱거리며 슴벅였다. 굳이 거울을 안봐도 내 눈이 충혈되었겠거니 예상했다. 


 


 

 


 


 

 


 


 


 

"김도화 팔이 말이 아니길래. 나 수족냉증 있어서 손 찬 거 알잖아.찜질 해주고 있었지." 


 


 


 

 


 


 

 


 


 


 

"왜 쓸데없이 친절하게 굴어?" 


 


 

 


 


 

 


 


 


 

정재현이 한쪽 입귀를 더 치켜 웃는다. 묘한 표정에 이동혁이 아랫입술을 잘근 잘근 씹는다. 

이글거리는 두 쌍은 화살촉처럼 나를 향한다. 

이동혁이 내게서 뭘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이것 하나만은 확신한다. 

넌 나를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 


 

난 더이상 꼿꼿이 서 있을 힘이 없었다. 

내 앞의 얼굴은 점점 흐려지고,아직까지도 내 팔을 붙잡고 있는 정재현의 손엔 힘이 더 들어간다. 


 

 


 


 

 


 

"나 원래 남들한테 친절하잖아." 


 


 


 


 


 

"아아, 그래?" 


 


 


 


 


 

"어." 


 


 


 


 


 


 

"김도화!" 


 

 


 


 

 


 


 


 


 

 간당하게 붙어있는 정신으로 나는 둘 중 하나가 날 업고 뛰고 있다는 걸 인지했다. 밭은 숨을 그의 등에 대고 뱉으며 부들부들 거리는 팔로 목을 감싸안았다. 

우리 학교 보건실은 전체적으로 우드톤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일까, 알코올 냄새보다는 약하게 약초 냄새 같은게 더 났다. 

잔뜩 예민해진 콧속으로 그 냄새가 찌르르 돌았다. 


 

서툰 손이 나를 침대에 눕히고 더듬더듬 이불을 끌어 올려 덮어줬다. 

이불 끝을 몇번 손바닥으로 도닥이다가 떨어지는게 저도 많이 놀랜듯 싶었다. 누군지 보고 싶었지만 물 먹은 눈은 상대의 형체만 겨우 볼 수 있었다. 


 


 


 


 

 


 


 

 


 


 

"김도화.." 


 


 

 


 


 

 


 


 


 


 

마음은 이미 그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미안해." 


 


 


 


 


 


 


 


 

"그치만 나 무서워하진 마." 


 


 


 


 


 


 

내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다. 

스스로가 믿고싶어 만들어낸 조작인지 실제인지 헷갈렸다. 


 


 


 


 


 


 

" 나 무서워하지 마. 

나 그렇게 무서운 애는 아니야." 


 


 


 


 


 


 


 


 


 


 


 


 


 


 


 


 


 


 


 


 


 


 


 


 


 


 


 


 


 


 


 


 

 


 

 ♡ 


 


 


 


 


 


 


 


 


 


 


 


 


 


 


 


 


 


 


 


 

 정신이 퍼뜩 들어 벌떡 허리를 일으켜세웠다. 

고갤 들어 본 시계는 초침이 재깍재깍 빠르게 원반을 달리고 있었다. 

정각을 향해 다다라갈즈음 뻐-꾹,뻐 꾹- 거리며 목각 뻐꾸기가 울음과 동시에 문을 열고 정재현이 들어왔다. 

나를 보더니 눈을 한번 크게 뜨고는 숭굴숭굴한 미소를 지어준다. 


 


 


 


 


 


 


 


 

"다행이다. 일어났네." 


 


 


 


 


 


 


 


 


 


 

"아,응. 고마워." 


 


 


 


 


 


 


 


 


 

"응? 아니야. 좀 더 여기서 쉬다 올래,아님 지금 나랑 같이 교실 갈래? 선생님들한테는 일단 너 많~이 아프다고 하긴 했는데." 


 


 


 


 


 


 


 


 

정재현은, 

대충 봐도 잘생기고 착하구나. 

이기적인 누구랑은 다르게. 

나는 교실에 옆을 비워두고 혼자 잘 앉아 있을 누구를 떠올리며 입을 삐쭉거렸다. 

침대 아래 어딘가에 제멋대로 흩어져 있을 슬리퍼를 찾으며 '갈래' 라고 말했다. 정재현이 내 발치로 와 쭈구려 앉아서는 침대 아래로 들어간 내 슬리퍼를 신기 좋게 모아서 놔주었다. 


 


 


 


 


 


 


 


 

"고마워.." 


 


 


 


 


 


 


 


 

"그런 말 자꾸 들으면 민망해. 그만해도 돼." 


 


 


 


 


 


 


 


 


 

성격도 참 너글너글하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입꼬리를 굳혔다. 

절로 입 가까이에 손이 갔다. 

나도 모르게 정재현을 이상적인 기준에 맞춰서 이건 좋고 나쁘고를 따지고 있었다. 


 


 


 


 


 


 


 


 

"왜 그래? 속 안좋아?" 


 


 


 


 


 


 


 


 

내가 헉, 하며 입을 막는걸 속이 메쓰거운걸로 봤는지 정재현이 다감하게도 물어왔다. 나는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궁금해진다. 

사근사근 대하는 이 아이는 모두에게 그런 사람일까,나에게만 이런 사람일까. 

나는 전자에 한 표 던졌다. 

도끼병 걸릴 뻔 했어. 


 


 


 


 


 


 


 


 


 


 


 


 


 


 


 


 


 


 


 


 


 


 


 


 


 


 


 

♡ 

 


 


 


 


 


 


 


 


 


 


 


 

 


 


 

 수업보단 애들 웃기는거에 쾌감을 더 느끼는 중국어 선생님의 희떠운 농담에도 이동혁은 냉정했다. 나 역시 평소같았으면 재밌다고 가볍게 입 벌려 웃었을 저급한 유머에 집중하지 않고 얼마나 뜯었는지 피가 나는 이동혁의 손에만 자꾸 관심을 두었다. 

분명 전에는 말끔했던 것 같은데. 


 


 


 

꼬르륵 


 


 

배 안에서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빨개진 얼굴을 감출 틈도 없이 그걸 가까이서 들은 이동혁과 눈이 마주쳐 버렸다. 쪽팔렸다. 

여전히 이동혁은 웃지 않았다. 

이동혁이 아무 말 없이 그저 오래도록 나를 보고 있을 때면 난 실오라기 한 장 걸치지 않고 벗겨지는 기분이었다. 

무얼 생각하는지, 그 눈동자에 담겨있는 날 보며 뭐라고 여기고 있을지. 

바다의 밑바닥. 나는 그 눈동자를 그렇게 명명하기로 했다. 


 

이동혁이 자기 교복 바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온기 때문에 한번 녹았다가 다시 굳은 흔적이 보이는 ABC 초콜릿을 내게 내밀었다. 

내가 머뭇거리며 제 눈칠 보니까 아예 내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이동혁이  그어놓은 검은 선과 이동혁이 정해놓은 나의 영역. 

조금 아슬하게 내 영역 안에 들어온 그 초콜릿을 나는 집어들어 선생님의 눈을 피해 껍질을 까서 입 안으로 넣었다. 


 


 


 

수업이 딱 끝나자마자 반장이 인사를 하든말든 제 할 일 다 끝났다는 듯이 이동혁은 엎드렸다. 나는 할 얘기가 있으니 나오라는 김동영의 문자를 받고 앞문으로 나가는 선생님과 동시에 뒷문으로 뛰쳐나갔다. 

김동영은 나를 만나자마자 내 손목을 콱 붙잡고 2층 도서관 문 앞까지 내려갔다. 


 


 

 


 


 


 


 

"뭔 일인데 이래?" 


 


 


 

 


 


 


 


 

"이동혁이 너한테 뭔 짓 했어?" 


 


 


 

 


 


 


 


 

"뭔 소리야 이건." 


 


 

 


 


 

 


 


 


 


 

초콜릿은 혀에서 침과 함께 버무려 녹아 없어진지 오래지만 아직까지도 그 씁쓸하면서도 달달함은 남아있었다. 나는 입으로 쩝쩝 소릴 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까 이동혁이 너 업고 겁나 뛰어내려가는거 내가 다 봤거든? 시치미 떼지 마. 뭔 일이었어? 둘이 무슨 일 있었지?" 


 


 


 

 


 


 

 


 


 


 

설마 설마 했는데 내 기억이 조작된게 아니었다니. 

좀체 다물 생각 없이 벌어진 내 입을 김동영이 손수 닫아주며 얼른 말하라고 채근했다. 


 


 


 


 


 


 

"진짜 이건 내 궁예인데.. 이동혁이 첫날부터 티를 내긴 했거든? 나는 얘가 깊게 자고 있어서 저도 모르게 그러나 싶었는데... 

아는 것 같애.. 나 지보다 약한거.." 


 


 


 


 


 


 

김동영이 눈을 잠깐 위로 깠다가 또랑한 눈으로 나를 안타깝게 여겼다. 

김동영이 작년에 얼마나 이동혁의 충실한 개처럼 굴었는지는 집만 오면 이동혁 욕을 해대서 얼추 알긴 했지만. 김동영은 그때만 생각하면 진저리가 난다며 두 손으로 양 어깨를 엇갈려 움켜잡고 옹송그렸다. 


 


 


 


 


 


 


 

"넌..넌 그래도 괜,괜찮을거야. 나 이동혁이 누구 업고 그렇게 뛰는거 처음봤어. 고작 1년 알았긴 하지만." 


 


 


 


 


 


 


 


 

" 어,참 도움이 되는 소리다 도영아~ 그래서 이런 심심한 위로를 해주려고 

안그래도 기운 없고 배고파 죽겠는데 2층까지 끌고 내려왔구나." 


 


 


 


 


 


 


 

사실 영양가 없는 소릴 들은건 아니었다. 아주 큰 단서를 김동영은 자기도 모르게 준거니까. 물론 나는 더욱이 이동혁을 알 수 없게 됐지만 적어도 누가 날 보건실까지 데리고 갔는지는 밝힐 수 있으니 수확은 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고 득 되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그냥.. 지금은 딱 이거다. 그냥. 

 


 


 

 


 


 

김동영과 헤어지고 뒷문을 딱 열고 들어갔을 때 역시나 이동혁은 엎드려 자고 있거나였고, 나는 정재현과 눈이 마주쳤다. 

 


 


 

 


 


 

깜짝이야,우연이겠지. 

그 많은 동적인 움직임 가운데 정재현만 홀로 정적인 것만 같았다. 

나는 내 사물함 쪽으로 가는 길에도 드문드문 정재현 쪽을 한번 돌아봤다. 

그럴 때마다 정재현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봐서 저가 보는지 아님 계속 나를 보고 있어서 내가 저를 보게 되는건지 분간하기 애매했다. 

사물함에서 교과서를 꺼내고 뒤를 돌았을 때 보인 정재현의 뒷통수에 나는 안심하듯 입엣말로 말했다. 역시 우연인거지. 


 


 


 


 


 


 


 


 


 


 


 


 


 


 


 


 


 


 


 


 


 


 


 


 


 


 


 


 


 


 


 


 


 


 


 


 

 


이런 글은 어떠세요?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비회원5.137
ㅠㅠㅠㅠㅠ사랑ㅎ햐ㅛ ㅠㅠㅠ 저는 이저리에 눕겠습니다,,,여기에 묻히겠어요ㅠㅠㅠ
6년 전
문달
그러면 제가 흙을 덮어드리죠! ㅋㅋㅋㅋㅋㅋ
6년 전
비회원197.149
ㅠㅠㅜㅜㅠ 밖에 비오는거 제 눈물인거 아시죠? 흑흑 분량 문제 없어요 걱정 마셔요 문달님!!!!! 오늘 글도 너무 감사해요.

혹시 [새벽두시]로 암호닉 신청해도 될까요?

6년 전
문달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더 감사합니다 ㅎㅎㅎ 암호닉은 언제든지 받아옹
6년 전
비회원 댓글
감사합니다!
6년 전
삭제한 댓글
(본인이 직접 삭제한 댓글입니다)
6년 전
문달
ㅠㅜ감사해용!!!
6년 전
독자2
분량 짱이예요 ㅜㅜㅜㅜㅜ 행복..... 그나저나 동혁이 재현이 둘다 너무좋네요 ㅜㅜ 동혁이는 보건실도 데려다주고 은근 다정한면이 보여서 더 매력있는 캐릭터인덧같아요ㅎㅎ
6년 전
문달
그것이..삼각관계의 맛입니다..둘 다 좋아부러
6년 전
독자3
작가 선상님 제가 사랑한다고 말씀 드렸던가요,,, 손 차갑다고 찜질 해주는 것도 보건실 업고 가주는 것도 안 설레는 곳이 없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둘 다 너무 좋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6년 전
문달
네네 제가 더 사랑합니다 ㅎㅎㅎ
6년 전
독자4
분량 진짜 너무 혜자 아니에요 자까님!!!!!??? 동혁이 진짜 너무너무 사랑스럽습니다,,, 호랑이 도련님,,, 토끼에게 미안해서 초콜릿 준거 맞지...??? 아직 초반이지만 어서 빨리 꽁냥꽁냥 보고싶어요ㅜㅠㅠㅜㅠㅜ
6년 전
문달
헿헿ㅎㅎ 꽁냥꽁냥 ㅎ...보다는 간질간질이 더 설레지 않나옹 ? ^-^
6년 전
비회원66.58
짱 재미있어요!+
6년 전
독자5
진짜 넘 잼써영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거 볼 수 있어서 넘 행복 그자체,, 진짜 사랑해여,,,
6년 전
독자6
왁 뭔데 이것도 재밌죠...???? 아 진ㅋ너 넘 재밌는데 아 진짜 이걸 왜 ㅇ제 알았지...ㅠㅠㅜ 작가님 넘 재밌어요
4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분류
  1 / 3   키보드
필명날짜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713 1억05.01 21:30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713 1억 05.01 21:30
나…16 1억 05.01 02:08
강동원 보보경심 려 02 1 02.27 01:26
강동원 보보경심 려 01 1 02.24 00:43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634 1억 02.12 03:01
[이진욱] 호랑이 부장남은 나의 타격_0917 1억 02.08 23:19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817 1억 01.28 23:06
[배우/이진욱] 연애 바이블 [02 예고]8 워커홀릭 01.23 23:54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713 1억 01.23 00:43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615 1억 01.20 23:23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513 1억 01.19 23:26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517 1억 01.14 23:37
이재욱 [이재욱] 1년 전 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_0010 1억 01.14 02:52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415 1억 01.12 02:00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420 1억 01.10 22:24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314 1억 01.07 23:00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218 1억 01.04 01:01
윤도운 [데이식스/윤도운] Happy New Year3 01.01 23:59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120 1억 01.01 22:17
준혁 씨 번외 있자나31 1억 12.31 22:07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나의 타격_0319 1억 12.29 23:13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213 1억 12.27 22:46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118 1억 12.27 00:53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_end22 1억 12.25 01:21
이진욱 마지막 투표쓰11 1억 12.24 23:02
[배우/이진욱] 연애 바이블 [01]11 워커홀릭 12.24 01:07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_1617 1억 12.23 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