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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틴/이지훈] O.M.R (Oh My Rainbow) Returns _ 08 | 인스티즈

만약 평생 동안 듣고 싶은 노래가 있다면
 넌 그런 노래일 거야.

 Murakami Haruki - 〈Norwegian wood> 중에서












[세븐틴/이지훈] O.M.R (Oh My Rainbow) Returns _ 08 | 인스티즈

     체력 증진이라 쓰고 친목 도모라 읽는 체육대회가 열렸다. 학교가 깔아준 공식적 만남의 장소에서 아이들은 동그랗게 모여 지나가는 또래들을 스캔하거나, 일찍이 점 찍은 상대방에게 추파를 던지는 중이었다. 아침부터 복잡한 큐피트 화살이 운동장에 진을 친다. 막말로 B와 C가 썸을 타든 C와 D가 새벽까지 술을 먹든 내 알 바 아니지만, 갓 스무 살의 핫 트렌드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이니 그들과 섞여 사는 한 관심이 없어도 들어주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헐? 진짜? 대박! 딱 이 세 가지면 아무리 피곤한 대화라도 걱정 없다. 인간관계에 진절머리 난 어렸을 때부터 깨달은 인생 팁이었다. 물론 출처는 부승관, 인생 2회차인 친구 덕분이었다.


하하 호호 우스갯소리를 하며 자연스레 옆으로 빠져 운동장 계단에 궁둥이를 붙였다. 끈이 풀어진 운동화도 내팽개치고 질끈 머리를 묶는다. 높은 습도에 벌써부터 이마에 땀이 찼다. 대학에 와도 운동장에 나와 헛짓거리를 해야 하는 건 똑같다는 사실에 끝이 보이지 않는 등록금을 생각한다. 곧 폭죽으로 없어질 한순간의 꿈들을 애도했다.


아이스박스에서 꺼낸 물병으로 더위를 쫓는다. 이어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려오는 형체에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동기들의 부러운 눈빛을 한 몸에 받는다. 눈치 빠른 소개팅 사건의 주동자는 벌써 달아나고 없다. 달리기 못한다고 계주에 치를 떨었다더니 언제 또 숨었을까.





- “모자 안 가져온 거 어떻게 알았어?”


- “원래 뭐 쓰는 거 싫어하잖아.”




자신이 쓴 것과 같은 볼캡을 내 머리에 얹는다. 커플 템을 굳이 할 필요가 있느냐 의문을 던지던 그가 자처해서 가져온 첫 선물이었다. 부끄러워 하지도 않고 오히려 모자 밖으로 빠져나온 잔머리를 정리해주는 손가락마저 다정하다. 그 손마디에 자리한 내 것과 같은 반지. 아아, 좋아하는 티도 너무 많이 나면 안 되는데 콧구멍이 너무 벌렁거려.




- “재채기 하고 싶어?”

- “오늘따라 햇빛 알러지 너무 심하다.”

- “알레르기가 있다고?”

- “햇빛만 보면 웃고 싶은 병.”




그게 너라는 건 굳이 얘기하지 않을게. 언 물병으로 뜨거운 귀를 식히며 딴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의미를 곱씹던 그가 웃으며 자신의 볼캡을 들어 올린다. 이윽고 주변을 살핀 그가 홍조 어린 뺨에 입을 맞춘다. 쪽-, 입술과 뺨이 맞닿는 자극적인 소리에 육체에 없던 녹는점도 생겼다. 꾸러기 과학에 기재되어야 할 21세기 최고의 발견, 타이틀은 ‘섭씨 ‘이지훈도’에서만 녹는 김여주’라고 하자.

경기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운동장을 울린다. 동기들은 시선을 거두고 하나둘 운동장으로 달려나갔다. 모자를 깊게 눌러 쓴 그가 얼굴을 틀어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인다. 새벽에 꼭 듣고 싶은 그 목소리로.











[세븐틴/이지훈] O.M.R (Oh My Rainbow) Returns _ 08 | 인스티즈

- “아까 달려오는데 너만 보이더라.”













……체육 대회 1등, 무조건 내 꺼다.















OH MY RAINBOW
;Caramel Drizzle

































Chapter. 20 <심술>
























[세븐틴/이지훈] O.M.R (Oh My Rainbow) Returns _ 08 | 인스티즈

28.
예선전을 거쳐 준결승에 오른 건축과 호경이 나란히 상대가 되어 휘슬을 기다렸다. 종목은 피구, 장난을 좋아하는 운명의 신은 후보 선수로 이름을 올린 나를 코트 안으로 밀어 넣었다. 경계선 바로 앞에 의미 심장하게 웃고 있는 이지훈과 내 등에 달라붙어 울먹이는 석민이 콜라보를 이룬다. 운동장을 활개 하던 승관이 목 좋은 곳에 앉아 두 손을 흔들었다. 사탕을 쪽쪽 빠는 저 여유가 부럽다. 석민은 내 어깨를 꽉 붙들며 다리를 떨었다.




- “여주, 나 아직 준비 안 됐어.”

- “모든 게임은 준비가 덜 됐을 때 시작하는 법이야.”

- “배구공으로 맞으면 아픈 거 알잖어.”

- “괜찮아, 죽진 않아.”




경계선 앞에서 가볍게 배구공을 튀기는 이지훈이 눈웃음을 친다. 건축과 선배들로 보이는 사람들은 ‘우리 지훈이’ 또는 ‘우쮸쮸 지훈이’를 연발하며 소리를 질렀다. 고까운 눈으로 스탠드에 앉아 있는 그들을 훑는다. 속된 말로 빡이 친 것이다.

지훈이가 왜 너희 지훈이세요? 우쮸쮸라뇨? 명백히 민짜 아닌 성인입니다만? 마음에 확성기가 달렸으면 좋겠다. 달걀 장수처럼 동네방네 돌며 ‘이지훈은 내 꺼다’ 점 찍고 싶으니까. 그러나 정작 아무것도 모르고 그들을 향해 웃는 그다. 예쁘게 웃지 말라 그렇게 얘기했거늘 지지리 말도 듣지 않는다.

어쨌든 이렇게 경기가 시작됐다면 좋으련만, 건축과 진영에서 배가 아프다 타임을 외치던 어떤 사람은 스탠드로 달려가 명단을 확인했다. 후보자를 대신 투입하려는 모양이었다.




- “어? 쟤 승관이가 물 먹였던 애 맞지 않어?”

- “…….”

- “설마 아직도?”




자그마한 여자애가 코트 안으로 발을 디딘다. 지훈은 표정을 굳히고 신발 끈을 조였다. 어쩐지 조용하다 싶었다. 무리에 섞여 얼굴조차 보이지 않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이지훈을 업고 진즉 튀었어야 하는 날이었음을.

승관이 남은 사탕을 아드득 씹는다. 운동장에 세스코 부르고 싶네. 대놓고 욕하기는 뭐하고, 그렇다고 넘기기엔 열이 받는 묘한 상황에 녀석은 자신의 스타일대로 여자애를 저격했다. 하지만 지훈의 자석이 된 여자애는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세스코가 처리하기엔 지독한 생명체였다.

경기를 시작하는 휘슬이 울리자마자 선공을 쟁취한 건축과는 구석에 숨은 짱돌부터 처리하기 시작했다. 석민은 구석 자리는 곧 죽음으로 가는 급행열차라며 화려한 발재간으로 건축과를 농락했다. 생각하건대, 그 노력이 가상해 부러 살려주는 듯싶었다. 마지막 죽음을 장식하려는 이과생들의 철저한 계획이랄까.

멀리서 들리는 승관의 응원에 더욱 스팀이 돈다. 이지훈 뭐하냐! 여친이라고 봐 주냐! 우렁찬 목소리에 나와 이지훈의 관계를 아는 아이들은 크게 폭소했다. 석민이 승관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자 승관은 경기에 집중하라 손가락으로 두 눈을 가리켰다.

난 이것을 ‘대 위기의 짝 피구’라 부르고 싶었다. 보통 위기도 아니고 ‘대’위기라 일컫는 이유는 이지훈의 승부욕 때문이었다. 거침없는 어택에 호경과 아이들은 일찍이 나가떨어지고 하얀 코트 안에 오로지 나와 석민만 강제 생존을 당했다. 지훈은 공을 튀기며 고개를 비스듬히 뉘었다. 널 어떻게 할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소리…….




- “야! 김여주!”

- “여주!”




순식간이었다. 지훈의 공을 뺏은 여자애가 던진 헤드 샷에 널브러져 별을 셀 거라는 걸 누가 알았겠는가. 중국으로부터 불어오는 황사와 도심의 급격한 발전으로 찾아볼 수 없었던 별이 눈앞에 쏟아진다. 이렇게 밝은 별이 다 있었니. 별의 제왕 시리우스가 보냈니. 다들 어디 있다 온 거야. 경기는 중단되고 눈앞에 보이는 건 잔뜩 인상을 구긴 이지훈. 정신 나가기 직전 볼 수 있는 얼굴이라 다행이라 여기는 바보 같은 나.




- “야야! 이지훈 말리라고!”

- “지훈! 잠깐만!”




시야 밖으로 사라진 그를 따라 승관과 석민이 급히 그의 이름을 부른다. 여러 발자국들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벗겨진 볼캡이 흙먼지를 먹고 온몸은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아프다. 그냥 아팠다. 내일이 되면 시퍼런 멍이 들 것 같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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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애들 본다고 새끼야!”










언뜻 지훈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기도 하고.














[세븐틴/이지훈] O.M.R (Oh My Rainbow) Returns _ 08 | 인스티즈

29.
익숙한 점심 방송 시그널이 청각을 두드린다. 뿌연 시야가 천장을 살피고 이윽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간이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얼굴에 안도하다, 내 손을 잡고 있는 상대방의 고운 손마디에 시선을 박는다. 생채기에 아파하는 손등을 쓰다듬자, 자극에 반응한 그가 살며시 눈을 떴다. 피곤한 듯 눈가를 비비며 목울대를 움직였다.




- “괜찮아?”

- “조금 머리 아파.”




혹이 난 머리통을 문지르며 인상을 찡그리자, 그는 베드 가까이 의자를 끌어당겨 붓기 있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좀 더 있어. 아직은 아니다. 손을 거두고 한숨을 폭-, 내쉬던 그가 가만히 날 내려다 본다. 골이 난 얼굴, 너는 또 왜 이리 짜증이 나서.




- “아까 기억나?”

- “어떤 거? 열 받아서 욕하는 이지훈?”

- “……그거 말고.”




그는 바람에 밀린 앞머리를 대충 정리하며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창밖을 본다거나 멀끔한 바닥을 훑는다거나 하는 것들로 주위를 산만하게 했다. 이런 이상 행동은 더 이상 묻지 말라는 얘기다. 깍지 낀 손을 꼼지락대던 그가 내 눈치를 본다. 난 그저 어깨를 으쓱였고, 그는 담담히 양호실 문밖 노크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승관은 지훈과 같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라를 잃었나, 팔아 먹다 걸렸나. 상심한 얼굴에 그늘이 가득하다.




- “솔직히 침대에 누워야 하는 건 나야.”

- “물 줘봐.”

- “이지훈 말리느라 팔에 근육통 생김.”

- “김여주 물 달라고.”




승관은 지훈을 노려보며 내게 물을 건넸다. 텁텁한 목구멍에 물을 집어 넣는 것 마저 그들의 시선이 닿는다. 투 머치한 관심에 힘입어 막춤이라도 추고 싶었으나 꼴이 정상치 못했으니 다음 기회로 넘겨야 했다. 승관은 침대 맡에 걸터앉아 티셔츠로 땀을 닦았다. 지훈은 물병 뚜껑을 닫고 다시금 이마 열을 쟀다. A대 야매 의사 선생님 두 분이었다.




- “야, 더운데 아이스크림 먹고 싶지 않냐.”

- “어, 바닐라.”

- “무슨 바닐라를 먹냐. 취향 참 힘들다.”

- “바닐라 맛있는데. 건전한 맛.”

- “그럼 불건전한 맛은 뭐냐?”

- “치약 초코 그거.”

- “민초빠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망발을.”

- “네가 좋아하잖아. 그래서.”




민초빠와 비민초빠의 대화를 엿들으며 이지훈의 아이스크림 취향을 외운다. 승관은 혀가 건전하지 못하다 욕을 했고, 지훈은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라며 녀석을 자극했다. 승관은 ‘바닐라’를 입력하는 내게 뚱하게 묻는다.




- “머리는 괜찮냐?”

- “헤드 샷.”

- “배그도 아니고 이게 뭔 일이여.”
* 배그: 배틀 그라운드.
- “진짜 총이 아닌 게 어디야.”




죽마고우와의 대화는 항상 이렇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헛소리 대작전. 지훈은 모자를 벗어 머리를 헤집었다. 헛소리를 유난히 싫어하는 그는 승관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작작 좀 하라고. 녀석에게 하루가 멀다 늘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게 포인트였지만.

꽤 오랜만에 세 명이서 얼굴을 맞대고 함께하는 자리에 점차 웃음을 찾을 무렵이었다. 불쑥 양호실 문을 열어 몸을 들이는 낯선 이에게 모두가 숨을 죽였다.




- “지훈아.”

- “개뻔뻔하다.”

- “여주야, 안녕.”

- “미쳤냐?”




자그만 한 여자애는 눈을 도록 굴리며 지훈과 내 이름을 불렀다. 헤드 샷의 장본인이 이번엔 양호실 안으로 발을 디딘다. 승관이 그 앞을 가로막았고, 지훈은 앞머리를 뒤로 쓸어 입을 다물었다. 모든 눈이 여자애에게 향한다. 승관은 달갑지 않은 시선에도 꿋꿋이 제 할 말을 전하는 당돌함에 참지 못해 한 소리를 지껄였다.




- “애들이 왜 안 오냐고 묻던데 연락 못 받았어?”

-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

- “같이 밥 안 먹어?”

- “뻔뻔한 것 봐라? 사과 안 하냐?”




혹이 불어날 것 같았고 두통도 심해질 것 같았다. 울리는 머리를 짚어 지그시 눈을 감았다. 여자애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 옆으로 다가와 뒤늦은 안부를 물었다. 재수가 없었나 보다. 아프겠다. 몸 관리 잘해. 생글거리며 욕하는 꼴이 가관인지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쓰레기 같은 말을 들으면 뇌가 작동을 잠시 멈춘다는 어느 팩폭러의 말마따나 현재의 내가 꼭 그랬다. 마땅치 않은 얼굴로 여자애를 훑던 지훈의 목소리가 낮게 깔린다. 승관은 슬쩍 그의 눈치를 봤다.











[세븐틴/이지훈] O.M.R (Oh My Rainbow) Returns _ 08 | 인스티즈

- “넌 이게 장난 같냐.”

- “나는 너도 쟤도 걱정돼서 온 건데 안 보여?”

- “걱정된다는 애가 왜 비웃어 짜증 나게.”




그가 잔뜩 찌푸린 미간을 꾹꾹 눌러 내린다. 여자애는 입안 내벽을 깨물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날 흘겼다. 꽉 쥔 두 주먹에 바짝 긴장한 나도 승관처럼 지훈을 살핀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여자애, 아니꼬운 얼굴로 서 있는 상대에게 차갑게 말을 건넸다.

뭘 봐. 사과하라니까. 여자애는 어금니를 세게 문 탓인지 볼에 동그란 방울을 매달았다. 하지만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오기였다. 보이지 않는 기싸움에 피를 말리던 그때, 옆에서 팔짱을 끼고 이리저리 눈을 굴리던 승관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주제는 그녀의 사생활, 미처 알지 못한 비밀 폭로 전이었다.




- “야, 근데 너 변태냐?”

- “뭐?”

- “권순영은 왜 건드려? 걔 애인 있는데?”

- “…….”

- “특이점이 온다 와.”




잘만 사귀는 커플들 엿먹이는 걸로 행복 찾는 애들 있다던데. 그 물건이 여기 있는 줄은 몰랐네. 승관은 천천히 주위를 돌며 말꼬리를 늘였다. 자신을 물건 취급하며 엿을 먹이는 승관을 쏘아보던 여자애는 자존심을 내세워 반박 했다. 사실은 발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승관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걸 알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 “건드리긴 누가 건드려? 술집에서 술 먹다가 말하는 게 뭐가 이상한데?”

- “넌 꼭 애인 있는 애들만 건드리니까 그렇지. 최승철 선배도 그렇게 꼬시다가 선배 여친한테 걸렸잖아.”

-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누가 그래?”

- “대학은 지나가는 나뭇잎에도 벽이 있거든.”

- “……진짜 웃긴다 니네.”

- “내가 볼 땐 네가 더 웃겨.”




사과해. 당장 대숲에 다 꼰질러버리기전에. 승관이 양호실 문을 막는다. 탈출구를 봉쇄 당한 상대는 울긋불긋한 얼굴로 씩씩거렸다. 승관이와 지훈이가 없었다면 한 대 치고도 남았을 얼굴, 입꼬리를 바르르 떨며 사과 같지 않은 사과를 하는 상대를 난 어쩌면 좋을까.




- “미안해. 네가 거기 없었으면 맞지도 않았겠지만.”

- “다시.”

- “널 위해서 하는 말인데, 운동 못 하면 빠져주는 것도 예의…….”

- “야…….”

- “…….”

- “너 밖에서 맞아본 적 있냐.”




승관이 말한 인간 툰드라의 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낮게 깔리는 음성에 긴장하는 건 오히려 나였다. 여자애는 짐짓 괜찮은 척 웃는 낯으로 그를 바라봤고, 승관은 지훈의 어깨를 잡으며 살살 달랬다. 그는 성별을 떠나 인간 자체에게 화가 난 형색이었다.




- “잘못은 네가 했는데 피해자를 탓하는 게 정상적인 사고는 아니지. 설사 고의가 아니더라도 사과부터 하는 거 못 배웠어?

- “내가 왜? 네가 뭔데?”

- “넌 뭔데 얘한테 이딴 식으로 구는데.”

- “너 진짜 재수 없는 거 알아?

- “피차일반. 못돼 처먹은 건 너야.”




곧 죽어도 미안하다는 말 하기 싫어 자존심을 내세우던 그녀가 울먹인다. 승관이 짜증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지훈은 동정도 연민도 없는 그런 눈빛으로 상대를 대했다. 승관은 도망치듯 문밖으로 향하는 상대에게 다정히 손을 흔들었다. 다신 보지 말자. 꿈에도 나오지마. 악몽 같으니까. 받은 만큼 돌려주자는 좌우명을 안고 사는 승관은 끝까지 홈런이었다. 점심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녀석은 손뼉까지치며 가사를 따라 불렀다.




- “더는 재미 어-없어! 음음음-! 네 모든 게 노오-펀!”

- “제대로 안 할 거면 부르지 마.”

- “상처받았다 지금.”

- “진지하게 불러. 그럼 아무 말도 안 하지.”




방금까지 여자애가 화가 나든 말든 그들의 주제는 노래의 진중 함이었다. 관심이 없으면 안중에도 없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는 그들이다. 지훈은 가끔 나와 승관이의 말본새가 닮아 맘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모르는 것 같다. 자신도 승관이와 닮아가고 있다는 특이점을.

승관은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양호실을 빠져나갔다. 발 야구 대타를 해 줄 수 없겠냐는 부탁에 온갖 욕을 하며 신나게 뜀뛰기를 하는 게 말과 영 딴판이다. 예상할 수 있듯이 녀석은 발 야구를 제일 좋아했다. 운동장에 남아 혼자 발 야구를 하다 학주에게 걸린 적도 있었으니.




- “지훈아, 전화 온다.”

- “…….”

- “너도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 “그럼 너 혼자 있어야 하잖아.”

- “난 혼자서도 잘해요.”




빨리 가. 빨리. 침대에서 일어나 그의 등을 떠민다. 지끈거리는 머리는 잠시 숨기고 크게 웃어 젖혔다. 오후에 있을 축구 경기는 꼭 볼 테니 어서 준비하라는 말도 덧붙이면서. 문 앞까지 쫓기던 그가 뒤를 돌아 내 어깨를 잡는다. 그리고 내 머리에 얼굴을 맞대고 지그시 눈을 감는다.











[세븐틴/이지훈] O.M.R (Oh My Rainbow) Returns _ 08 | 인스티즈

- “뭐해?”

- “충전 중.”




계속해서 울리는 휴대폰은 주머니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 그는 충전을 핑계로 한동안 날 껴안고 고른 숨을 쉬었다.

뜨겁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은 적정한 온기.

내가 좋아하는 이지훈의 온도.














- “안 되겠다.”

……

- “십 분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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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승관이는 지훈의 손등에 생긴 상처가 기절한 나를 업다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여자애에게 화를 내는, 삔또 나간 이지훈은 생전 처음봤다 큰 눈으로 그때의 상황을 전했다. 사실 지훈은 제 것을 끔찍이 아낀다고 했다. 지극히 이성적으로 보이는 지훈도 제 것에 앞뒤 가리지 않는다는 정한의 말을 상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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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들어야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때로는 타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닿을 때 더 명확해지는 순간이 있다. 제3자로부터 듣는 나에 대한 이지훈의 마음은 생각보다 깊은 것이라. 그의 피라미드 안에서 나는 몇 번째일까 고민하던 새벽을 떠올린다.












이젠 그런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















30.
지훈이를 죽어라 쫓아다니던 여자애는 파국을 맞았다. 진탕 술을 마시고 승철에게 문자를 보낸 여자애는 같은 건축 3학년 선배에게 덜미가 잡혔다. 그 선배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많은 사람 앞에서, 그것도 건축학과 사무실 앞에서 쪽이란 쪽을 다 줬더랬다. 꼬리를 나풀대던 여우의 만행을 쉬쉬하던 건축학과 동기들마저 그녀를 외면하기 시작했고, 결국 어느 선쯤에는 학교에 일절 나오지 않았다. 승관은 그것에 대해 짧은 소감을 남겼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야. 조상님은 예전부터 현눈으로 보신 게지. 캠퍼스의 낭만을 즐긴다 어쩐다 돗자리를 깔고 등을 붙인 녀석이 아끼는 선글라스를 장착했다. 시원한 아메리카노까지 있다면 바캉스 느낌이라도 났을 텐데, 아이스 음료 대신 녀석의 손에는 두꺼운 책이 자리했다. 기말 준비를 하는 것이다. 높게 든 팔이 아팠는지 이번엔 엎드려 책장을 넘겼다. 선글라스 너머 무엇을 보겠느냐마는, '그림 1-1', '표 9-3' 따위와 같은 참조 사진으로 미미한 학구열을 높이는 녀석이라는 건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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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건물로 뛰어가는 지훈을 보며 승관이 손을 흔든다. 지훈은 햇볕에 쓸려 인상을 찌푸리던 내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까만 선글라스를 멋들어지게 벗은 승관이 무거운 백팩과 함께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이윽고 부스스한 머리에 선글라스를 꽂은 녀석이 날 향해 돌아 앉는다. 쭉 뻗은 다리와 곰돌이 양말이 시선을 강탈했다.




- “내가 어제 불닭 먹다가 곰곰이 생각해봤거든? 이쥰이 널 왜 좋아하는지?”

- “그딴 쓸데 없는 고찰 하지 말고 양말 구멍난 것 좀 어떻게 해봐.”

- “어느 순간 딱 촉이 오더라. 이지훈은 반대 성향을 좋아해”

- “반대 성향이 뭔데?”

- “멍 잘 때리는 개또라이.”




네가 그렇게 호감형은 아니잖냐. 근데 운 좋게 이지훈 개취 저격한 거지. 맞을 짓만 골라서 하는 승관의 등을 퍽퍽 갈기며 동의를 표한다. 승관은 돗자리 구석으로 피신해 새로 자리를 틀었다. 거의 몸 반절은 잔디밭에 누운 거나 다름 없었다. 녀석이 떨어트리고 간 선글라스를 주워 대신 햇볕을 막는다. 한동안 고요한 캠퍼스를 만끽하며 밀려 오는 잠을 청할 때였다.




-“네가 이지훈 고찰 어쩌고 할 때 하나 빼먹은 게 있어.”

- “뭔데 또. 헛소리면 알아서 해.”

- “이건 진짜야.

- “…….”

- “곧 죽어도 김여주.”





등을 보이며 옆으로 돌아 누운 녀석이 잠잠히 숨을 내쉰다. 반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코와 인중에 선글라스를 걸치고 멍 때리는 내가 있었다. 곧 죽어도 김여주라, 일상적인 문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원체 헛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녀석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이내 들려오는 목소리에 신경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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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 취해서 몸도 못 가누는 놈이 저번에 그러더라. 여주 네가 자기 전원 버튼이라고……. 24시간 내내 붙어 있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짜증 난다고 웃더라. 오글거리는 거 싫어한다면서.”

- “…….”

- “너 과팅 나간 거 걸렸을 때, 걔가 그냥 넘어간 게 아니라 주말 내내 나랑 술 먹었어. 한마디도 없이 계속 소주 까다가 갑자기 네가 뭘 하든 그냥 네 옆에만 있게 해 달라고 취한 상태로 기도하더라니까. 아니 근데 뭘 그렇게 애처롭게 기도하냐고. 보는 사람 슬프게.”

- “…….”

- “걔가 표현을 잘 안 해서 그렇지 너 진짜 많이 좋아해.”




괜한 어색함에 애벌레처럼 등을 구부린 승관의 허리를 발로 쿡쿡 찌른다. 아! 왜! 어쩌라고! 밑도 끝도 없이 역정 내는 녀석이 다가와 선글라스를 뺏는다. 그리고는 신발 끈을 죄다 풀고 다시 한 올씩 엮었다. 녀석은 지금쯤 무슨 생각을 할까.




- “굳이 나서서 이런 말 하는 이유는?”

- “네가 여자애 어쩌고 걔 때문에 심란할까 봐. 걱정하지 말란 뜻이다.”

- “……별 걸 다 생각하네.”

- “남 연애에 일해라 절해라 하는 친구가 불쌍하지도 않냐?”

- “내 동기 만나보라니까? 그리고 이래라 저래라.”

- “에잇, 똥 방귀나 맡아라!”




숨을 가로지르는 알싸한 향기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미친놈아 오늘 결판을 내자. 잔디밭을 뛰어다니는 야생 캥거루 두 마리. 본격적인 격투기 자세로 다이다이 맞짱을 뜰라 치면, 바로 앞 본관에서 아이스 커피를 빨며 내려온 석민이 조심스레 내 귓등에 질문을 읊었다.




- “지훈 누나들 많아?”

- “누나? 왜?”

- “방금 본관에서 누나들한테 둘러싸인 지훈을 봤어.”




콩고물에 파묻힌 인절미 같았어. 승관은 다급히 내 눈치를 보며 석민의 볼을 꼬집었다. 이 녀석이 옳지 못한 타이밍에 와서는 재를 뿌리는구나. 승관은 신발을 구겨 신고 석민의 팔을 끌었다. 하지만 눈치 제로인 석민은 훤히 웃으며 분노 게이지를 열었다.




- “잠깐! 생각해보니 우리도 이제부터 지훈 볼 만질 수 있는 거구나?”

- “……뭐지 이 불길한 느낌은.”

- “누나들이 지훈 볼 만지면서 깍깍대길래.”




새로 산 운동화를 꺾어 신는다. 승관은 짐을 챙기는 날 보며 라마즈 호흡을 권유했고, 석민은 그건 순산을 기원하는 호흡법이라며 혀를 찼다. 라마즈 호흡법이든 라마단 호흡법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석민의 말처럼 당장 콩고물에 묻힌 인절미를 꺼내 와야 했다.




- “여주, 근데 네가 갑자기 등장하면 내가 이른 것 밖에 되지 않잖어.”

- “그럼 이 상황에서 너까지 챙겨주리?”

- “핑곗거리 하나 정도는 만들고 가면 좋지 않을까? 우연히 본 것처럼?”




석민이 다 먹은 음료 컵을 흔든다. 그 안에서 맞부딪히는 얼음들이 서로를 녹인다. 바로 이거다. 생각났어. 지갑을 꺼내 나머지 짐은 승관에게 맡긴다.




- “어디 가냐!”

- “핑계 찾으러!”










땡볕에 달리는 건 곧 죽어도 싫은 내가 펄펄 끓는 아스팔트 바닥을 내달린다.
이건 다 인절미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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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본관 로비 기둥 벽에 붙어 콩고물을 어림잡는다. 대충 다섯 명 정도. 낯가림의 정석을 걷고 있는 그에게 저 인원수는 아주 불편한 적이었다. 특히 수업에 힘든 점은 없냐 간드러진 목소리로 꺄르륵대는 여자가 거슬렸다. 붉은 매니큐어를 칠한 손이 그의 팔을 잡는다. 제발 손 좀 떼줬으면 좋겠다. 이지훈 옷장 탈탈 털어서 드라이클리닝 맡기고 싶어.




- “지훈아, 오늘 시간 있으면 같이 밥 먹을래?”

- “약속 있어요.”

- “뭔데? 미루면 안 돼?”

- “네, 중요한 거라서.”

- “나보다 더?”




대놓고 꼬리를 치는 격이었다. 질투심에 가빠오는 숨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산발 된 머리를 대충 매만지며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내용은 지극히 안정감 있고 누가 봐도 정상적인 것으로. 지훈은 곧 울리는 제 휴대폰을 보며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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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지극히 정상적인 문장으로 운을 틔웠다. 절대 티 나지 않는 능청거림에 스스로 만족했다. 그래, 이 정도면 됐다. 구겨진 신발 앞코를 톡톡 두드리며 준비 자세를 취한다. 다음 미션은 도도하고 기품 있게, 또한 우연히 지나가는 척 능글 맞음이 필요했다.




- “이지훈!”




본관 건물을 떠나 문 앞에 서 있는 그들에게 도도하고 기품 있는 발걸음으로 헐레벌떡 뛰어가 콩고물 사이를 파고들었다. 저번에 입력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내밀며 능청을 떨었다. 뜨거운 햇살을 이기지 못한 그것이 손등을 타고 흘러내린다. 빤히 바라보는 콩고물의 시선들, 쪽팔리든 뭐든 이 완벽한 연기를 승관이가 꼭 봤으면 좋겠다. 그럼 백상 대상은 아니더라도 청룡 인기상은 주지 않을까.




- “아이스크림. 바닐라. 네 꺼.”

-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 “콩고물…… 아니, 우연히 지나가는데 너 밖에 안 보이더라고.”




진짜 우연히 본 거야. 기다린 거 아니고. 밝게 웃으며 꿋꿋이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따가운 콩고물의 시선에도 굳건한 능청거림은 청룡 인기상 확정이었다. 거진 다 녹아버린 것을 받고도 미소 짓던 그가 콩고물을 향해 웃는다. 팔짱을 끼고 아니꼽게 쳐다보던 그들은 지훈에게 떨떠름한 미소를 지었다. 주제는 나, 김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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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여자 친구.”

- “…….”

- “예쁘죠.”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는 껄끄러운 눈초리에 화답하고 싶어 보란 듯이 손을 잡았다 본관 건물에서 멀어지는 와중에도 뒤통수에 박히는 따가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주인공 없는 콩고물들은 그저 콩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음을.

슬쩍 뒤를 돌아 고까운 그들에게 말한다. 고로 인절미는 내가 가져갈 터이니 너희들은 다른 본체를 찾아 가거라. 질투로 무장한 인절미 도둑은 무서운 게 없다. 진득한 아이스크림이 묻어 있는 불편함도 아랑곳하지 않고 캠퍼스를 걷는다. 이것이 바로 낭만이다. 드디어 버킷 리스트 하나를 이뤘다.




- “손 찐득찐득해.”

- “알아.”

- “안 찝찝해?”

- “내 껀데 뭐 어때.”




그가 내 입가에 묻은 아이스크림 자국을 손가락으로 닦아내며 웃는다. 나무 그늘에서 석민과 함께 배를 긁으며 휴식하던 승관이 선글라스를 반쯤 내리고 멍한 표정으로 박수를 보냈다. ‘김여주 너 고새 또 한 건 했구나?’라는 감탄을 자아내면서.

바닐라 향이 진동하는 서로의 손마디가 녹는다. 오늘을 계기로 난 바닐라만 먹기로 다짐했다. 동네 슈퍼에서 파는 1200원짜리 아이스크림도, 매장에서 파는 쿼터도 모두 다 바닐라로. 자주 뿌리는 향수마저 바닐라 향으로 갈아탈까 고민했다. 그러자 그가 발그레한 얼굴로 새초롬히 웃는다. 전국 매장에 바닐라 경계령을 내려야겠다고. 

























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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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지훈은 미쳐가는 중이었다. 소주 넉 잔에 새빨간 얼굴로 부채질 하다, 술집에 걸려 있는 데코레이션 인형 모자를 저리 쓰고 앉아 있는 것이다. 지훈은 곧 차디찬 벽에 얼굴을 맞댔다. 김여주…… 김여주……. 오늘의 돌림 노래 주제는 김여주가 과팅을 나갔어요. 승관은 옆에서 화음을 넣다 두 시간 째 계속되는 노래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여친과 소개팅하고 싶은 아주 특별한 미친놈, 승관은 혀를 끌끌 차며 소주잔을 비웠다.




- “이쥰, 김여주 전화 온다. 안 받냐.”

- “……싫어.”

- “쟤 연락 안 받으면 일기 쓴다고. 언제 언제 누구 누구 전화 안 받음. 완전 데스노트여.”

- “쓰던지 말던지.”




홍조 띤 두 볼을 감싸며 폭-, 한숨을 내쉬는 지훈은 자신이 일기를 써야 할 판이라 반박했다. 술도 못 마시면서 연거푸 넉 잔이나 받아 마신 지훈은 승관의 물잔까지 비우고 소파에 등을 기댔다. 앙증맞은 인형 모자가 귀여움을 극대화 시킨다.




- “야……. 이제 내가 싫어졌나.”

- “미친놈아, 몇 번을 말하냐. 그냥 대타 나가서 머릿수만 맞췄다고.”

- “반지 예약했는데…….”

- “제발 가서 좀 줘라!”

- “진짜 예쁜데…….”




승관은 넋이 나간 지훈 앞에 손을 흔들었다. 여보세요. 님아, 정신 좀 차려주세요. 지훈은 느릿느릿 눈꺼풀을 깜빡이다 픽-, 입꼬리를 올렸다. 결국 자작까지 하는 상황에 승관은 머리를 짚었다. 이 정신 나간 놈을 어쩌면 좋을까.




- “김여주랑 소개팅한다고 사촌 형 누나까지 섭외해 놓고는 이제 와서 추태냐?”

- “생각해보니까 너무 짜증 나.”

- “언제는 또 괜찮다며?”

- “나 진짜 왜 그러지. 자꾸 오락가락해.”

- “가족 오락관이나 나가라.”

- “뷰웅시나-.”

- “아이고 취했네.”




승관은 계산서를 집어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가만히 술주정하다 잠이나 곱게 들면 좋았을 것을, 지훈은 그새를 못 참고 가게 밖으로 나가 달님을 찾았다. 하늘에 뜬 둥그런 달을 보며 지훈은 두 손을 모았다. 승관은 가로등을 보며 기도를 하는 지훈을 안쓰럽게 여기는 중이었다. 가로등이 달인 줄 아는 가여운 아이여. 제발 인형 모자는 벗어주소서.




- “너 뭐하냐…….”

- “달에 소원 빌어.”

- “저거 가로등이야.”

- “아…… 김여주 다 좋으니까…… 어디 가지 말고 있게 해줘…… 세요.”




꼬깃한 두 손을 입술에 맞댄다. 천주교도 아니면서 성호까지 긋는 지훈이 퍽 웃긴 승관이었다. 기도도 안 하는 놈이 김여주 때문에 가로등을 보며 성호를 긋는다. 이건 길이길이 남을 핫플 동영상 감이었다. 술기운에 아슬아슬 벽을 짚던 지훈이 결국 바닥에 주저앉는다. 승관은 옆에서 등을 두드리며 최후를 기다렸다. 하지만 지훈은 깜깜한 하늘을 보며 말을 이었다.




- “있잖아……. 김여주 내 버튼이다.”

- “알아. 웃음 버튼.”

- “아니. 전원 버튼.”

- “로봇이라고 커밍아웃하는 거냐.”




승관은 저린 다리에 콕콕 침을 찍어 코에 발랐다. 지훈은 실실 웃다 진지한 눈으로 승관을 바라봤다. 술 때문에 감정도 변화무쌍했다. 자신도 다리가 저렸는지 아예 턱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눈을 비볐다.




- “내가 생각을 해봤다. 김여주 없으면 당장 어떻게 될까.”

- “…….”

- “아무것도 생각도 안 나. 오늘 없다고 하면 내일이 생각이 안 나.”

- “…….”

- “내일이 그려지지 않아. 내일엔 그냥 아예 내가 없는 거.”




무너진 발음으로 꼭꼭 문장을 뱉는 지훈이다. 장난기 많은 승관 조차 지훈을 바라보며 경청했다.




- “하루 종일 붙어 있고 싶다. 이거 진짜 미쳤지.”

- “미친 건 아니다. 네가 좋다는데.”

- “근데 이런 말을 걔 앞에서 못해.”




……표현하고 싶어도 그게 맘대로 안 돼. 그래서 짜증 나 내가. 지훈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승관이 지훈의 어깨를 감싼다. 흐린 날씨에 갇힌 달이 서서히 모습을 비췄다.




- “좋아한다고 말해볼까.”

- “사랑이 더 낫지 않냐 친구야.”

- “그건 아껴야지.”

- “해주면 좋잖냐.”

- “아니야……. 그건 나중에…….”




삐죽, 모습을 드러낸 달을 보며 지훈은 말한다. 좋아해. 김여주. 바보야. 무릎에 얼굴을 묻고 정신을 아득히 덮는다. 승관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다 정신을 잃어가는 지훈을 보며 한숨을 뱉었다.




- “인마, 여기서 자면 퍽치기 당해.”

- “……보고 싶어.”

- “고백을 왜 나한테 하냐고.”




두 술주정뱅이가 골목길을 점령한다. 고꾸라지는 지훈을 둘러업은 승관이 지훈의 휴대폰을 확인한다. 부재중 전화 다섯 통, 이름은 모두 [내 꺼]. 솔직함에 서투른 지훈이 못내 안쓰러운 승관이다.




- “내가 너희만 보면 아슬아슬해요.”

- “…….”

- “괜히 불안해.”










승관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술주정의 최악을 달리는 '애국가 4절까지 부르기'가 지훈의 입에서 이제 막 터져나오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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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속 '부러'는 '일부러' 단어를 대신해 사용하고 있어요.

국어 사전을 살펴보면,


- 일부러 : 어떤 목적이나 생각을 가지고, 또는 마음을 내어 굳이.

 

- 부러: 실없이 거짓으로.


이렇게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저는 '일부러'의 뜻으로 사용합니다.

실생활에서 혼용이 가능하다고 해서 선택한 단어인데, 혹 불편하시면 정정하겠습니다.

(전 철저히 독자님들 위주니까요 희희)





++

여우비님, 암호닉 편하게 쓰셔도 됩니당. 오랜만 입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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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만나요 

(더보기에 지훈이 짤 넣을 때마다 썰려요. 또 만나요 위에 안뇽 짤 있어야 하는데 흑흑...... 독자님들은 보이시나요? 이고 왜 구래요...? ㅠ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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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물민이에요!! 지훈이의 솔직한 속마음을 이렇게나 직접적으로 보게되니까 더 애틋해지고 ㅠㅠ 승관이는 또 너무 좋은 친구라는게 느껴지구 ㅠㅠㅠ 승관이가 불안하다고 느끼는게 왜 제가 다 불안할까요.. 더이상 불안하거나 아슬아슬하지 말고 편안하고 솔직한 사랑만 나누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네요..ㅎㅎㅎ ㅜㅜ 우리 승관이는 짝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정말 오엠알에 나오는 인물 한명한명 모두 아프지 말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ㅎㅎ,,, (여우는빼고 ㅠㅠ) 글 속 인물들과 이렇게까지 감정이 공유된다는건 역시 작가님이 글을 잘 쓰셔서 이겠죠? ㅎㅎㅎ핳 오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ㅎㅎ 다음 신알신도 또 또 언제나 기다릴게요!!❤️
6년 전
독자2
은블리입니다! 뒤늦게 수정하네요ㅠㅠ
세스코 얘기부터 로봇까지 중간중간 드립인듯 드립아닌 드립에 너무 재미있게 봤네요 :)
이번화에서 그 얄미운여자가 떨어져나가서 너무 사이다였어요 ㅎㅎ
세게나가는 듬직한 친구 승관이도, 여주만 보고 생각하는 지훈이도 여주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만 있구나 했던 편인 것 같아요ㅎㅎ
그리고 마지막 에필부분에서 지훈이에게 여주가 어떤 존재인디 더 잘 깨닫고, 진심이 많이 느껴진것같네욥 ㅠㅠㅠ 갠적으로 지훈이도 여주도 승과니도 불안한 마음 없이 행복만 가득했으면 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 오늘도 너무 잘 읽었습니당 -♡ 감사합니당

6년 전
독자3
트윅슈 입니다! 어흑흑흑 이번 화에서 드디어 결판이 나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여한이 없습니다.... ㅜㅜ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헤드샷에서 화남 (= 비속어로) 이 1차로 올라오고... 비웃으면서 사과할 때 2차로 올라왔지만 사이다가 세 병씩이나 있어서 정말 속이 뚫리다 못해 고속도로가 개장된 느낌이였답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그리고 콩고물들,, 정말 지훈이를 노리는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은지 ^ㅁㅠ 나중에 콩고물 색으로 염색한 (?) 지훈이 머리 만지는 여주 모습 보고 싶은 건 작은 소망이랍니다 ^ㅂ^ 오늘 하루도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 늘 작가님 덕에 힘내서 공부하는 것 같아요 요즘 제 삶의 낙이신 작가님 사랑합니다 💖💙💖💙
6년 전
독자4
샤샤에요!! 작가님 글은 진짜 볼 때 마다 편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아요ㅜㅠ♡ 설레는 건 덤이고요 어떻게 이런 이야기들을 생각해내시는건가요ㅜㅜㅜㅜㅜ 작가님 최고에요 짱짱
6년 전
독자5
너라는 꽃입니다ㅜㅜ 시험이 다 끝나고 읽는 작가님의 글이란...💚 글 알림 뜨고 바로 보고 싶었는데 이제서야 볼 수 있게 되었네요! 매번 글 속에 있는 지훈이 짤들이 글의 몰입도를 높여주며 더 설레게 하는 것 같아요 ㅠㅠ 글을 읽으며 이런 남자친구가 있다면 정말 매일매일이 설레고 두근거리는 일상의 반복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ㅜㅜ지훈이의 여주에 대한 확고한 마음도 너무 좋았고 여주가 지훈이를 선배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데려오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어요 흑흑 여주도 지훈이도 꽃길만 걷길 바라며. 작가님 일교차가 있으니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만 걸리세요 :) ♡
6년 전
독자6
우리우지입니다 일주일만이네요! 거의 일주일에 한 번 연재하시는 건데 너무너무 좋네요! 이제 또 일주일 기다리면 올라오겠죠?
작가님 글을 보며 항상 늘 생각하는 거지만 얼른 제본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얼른 입금하고 편하게 글 보고 싶어요ㅠㅠ
그리고 오엠알 전에 단편 글 올리셨잖아요! 제목이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글 안에 피아노가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 글도 다시 올려주시면 안 되나요8ㅅ8
그걸로 작가님을 처음 접했고 다시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어요!!

6년 전
비회원225.214
흔적입니다 작가님! 내일부터 시험이라 스트레스가 만땅인데 오늘도 오엠알 보면서 평화를 찾네요 :)! 딱 오늘같은 날씨에 읽으니 더 마음이 편안해져요 헤헤 오엠알 진짜 정말 사랑해용...! 작가님두요!
6년 전
독자7
류다입니다 작가님! 하 이게 무슨 일입니까ㅠㅠㅠㅠ 학교 학원 끝나고 집에 와서 샤워 후에 보는 오엠알이 짱짱이에요ㅠㅠㅠㅠ 오늘 우리 쥬니 술 취해서 하는 이야기도 귀엽고 그 건축과 여자애 부들부들... 이제 꿈에서도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가만 두지 않겠어...
6년 전
독자8
소나무입니다. 항상 글에 단짠단짠이 섞여 있어서 질리지 않고 볼때마다 지겹지가 않아서 좋아요ㅠ 지훈이 여주바라기인 거 너무 설레고 짜릿해요 이지훈이 최고야... 뭘 하든 그냥 옆에만 있어달라는 부분은 왠지 모르게 짠한 느낌ㅠㅠㅠ 그나저나 건축과 여자애 더는 안 나오겠죠? 제발 눈 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네요
6년 전
독자9
아움이에요ㅠㅠㅠㅠ 캬 일주일의 행복입니다.. 오엠알은... 진짜ㅠㅠㅠㅠㅠㅠ 달달구리한 달고나 먹는 기분이에요ㅠㅠㅠㅠㅠ 이제 그 건축과 여자애는 영빠이겠죠..? 승관이는 항상 애들 챙겨주고 너무 다정해..ㅠㅠㅠㅠㅠ
6년 전
독자10
여우비입니다ㅠㅠㅠㅠ 작가님 저를 저격해주시다니 무슨 일인가 해서 화들짝 놀랬지만 드디어 편하게 쓰라고 해주시니 감사함다ㅠㅠㅠㅜㅠ 아휴 지훈이 증맬로 사랑이 넘치네요 진짜 예뻐가지구
..8ㅅ8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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