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저녁 8시면 걸려오는 그의 아내의 전화.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그는 그 전화를 무시한다. 울리는 진동소리가 멎자 전원을 꺼버린 후 가방에 집어 넣는다. 그는 오늘도 발걸음을 분주히 옮긴다. 그가 만날 사람은 매우 바빠 얼굴을 보기 힘드므로, 그는 신호 무시도 서슴없이 해가며 악셀을 밟아댄다. 어쩌면 밤이 푸르게 보인 건 착각이겠거니.
그가 가게에 발을 들인 건 반 년 전으로 그저 술을 한 잔 걸치고 집으로 가려던 찰나였다. 그 날 저녁에, 그는 친구들과 함께 모 바에 가서 블루 하와이언이란 이름으로 불리우는 아름다운 파란 바닷물 같은 칵테일을 들이켰었다. 무알콜 칵테일로 입가심을 한 뒤 스콜피온 따위의 도수가 높은 칵테일을 들이키느라고 그 맛을 잊긴 했지만 그는 자신이 처음으로 마셨던 칵테일이 블루 하와이언이라는 것을 기억하고는 있었다-술에 취했지만 그것만은 분명히 기억했다-. 그는 바를 나와 친구들과 헤어져 홍등가로 접어들었다. 홍등가의 아가씨들한테 관심도 없던 그였기에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지나쳐 그 길거리의 끝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 골목의 끝에 푸르스름한 네온 사인이 껌뻑이고 있었다. 마치 그의 시선을 잡아 두려는 듯이 여러 번에 걸쳐 일정한 박자로 깜빡, 또 깜빡였다. 그는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간판을 읽어냈다. 블루 하와이언. 주머니에서 그의 아내가 전화를 걸어와 휴대폰이 웅웅 울리고 있었지만 그는 멍하니 간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발을 옮겼다. 그것이 반 년 전 얘기였다.
그는 차를 몰아 블루 하와이언의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었다. 그가 찾는 사람은 이 가게의 '에이스'. 속칭 '간판'으로 얼굴마담 역할을 맡고 있는 가게 매출의 절반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었다. 이 쯤 된다면 지금 우리가 따라온 그가 만날 이 '에이스'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질 법도 하니, 잠시 부연설명을 하겠다. 에이스라는 사람은 이 바닥에서 K라는 예명으로 불리웠다. 예명 보다는 실명을 들키지 않기 위한 코드네임 따위 였지만. 어쨋거나 K는 매우 아름다웠다. 블루 하와이언의 식구들도 모두 K의 아름다움을 찬미했으며 옆가게며 앞가게며 이 홍등가 아가씨들이 K에레 적대감을 느끼고 있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K는 다른 가게 에이스와 다르게 명품이나 야시시한 옷을 걸치지 않고도, 성형 하지 않고도 나름대로 단골을 잘 잡아두는 편이였다. 그 단골 중에는 그가 있었다. 우지호. 수트로 감싼 피곤한 몸을 이끌고 K를 품에 안는 그는 이미 가정을 저버린지 오래였다. 지호는 아름다운 K를 본인 옆에 두고 싶어 했다. 그는 K만이 본인의 아이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바래서, 본인의 부인과는 이미 각방을 쓰기로 한지 오래였다. K가 없이 살아 가는 것은 지호는 상상할 수 조차 없었다. 무서운 일이였다. 그는 차를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K를 보기 위해 일단 카운터가 있는 2층으로 향했다.
어김없이 마담이 담배를 쥐고 그를 맞이했다. 커다란 가슴이 그녀가 쓰는 장부의 하단 부분을 눌러내리고 있었다. K가 어디있는지 묻자 마담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영업 중이라는 듣고싶지 않은 말을 뱉어냈다. 젠장, 8시 15분엔 나만 받으라고 했잖아, 지호의 투덜거림에 마담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쩔 수 없다며 마담은 책상 위의 하얀 전화기를 들고 내선번호를 찍어대었다.
"그 손님 빼라. 단골 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