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rless 1. 창밖에 오후햇살 커튼 사이로 스미고, 김정우 그 다정한 눈 하고 김여주 손목 쓸어본다. 천천히, 느릿하게. 김여주 손목 쓰다듬는 느낌은 울퉁불퉁하다. 뻘겋게 부어오른 살들. 난잡하게 그어진 그 검고 붉은 테. 김정우 눈빛 젖는다. 이건 또 언제 했대. 그럼 저가 사랑하는 눈 앞의 김여주, 별 일 아닌듯이 씩 웃어보이면 김정우 심장 누가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그렇다. 괜히 김정우 콧잔등 시큰해지고 김정우 김여주 대신 울어주고싶다고 생각한다. 김정우 예쁘게도 잔다. 그런 모습 지켜보던 김여주 김정우 머리카락 매만진다. 꼭 지처럼 상냥하고, 밝고, 부드러운 갈색 머리칼. 김여주 김정우 머리칼에 괜히 입 맞춰도 보고 한참을 쓰다듬어도 본다. 그러다 일어선 김여주 말없이 약통 집어들고 허연 알약 아무렇게나 욱여넣는다. 2. 김정우 김여주 본다. 작고 하얗고 깡마르고 그런. 김여주 뭘 봐, 하며 턱 치켜들면 김정우 아무것도 아니야. 고개 도리질한다. 김여주 약통 들어 물이랑 삼킨다. 그럼 언듯 보이는 소매 사이에 또 붉고 검은 테들... 김정우 묻고싶다. 너무 묻고싶다. 차마 하지 못한 말 꾸역꾸역 삼킨다. 또 괜히 콧잔등 시큰해지는 거 느끼면서. 3. 공기에 질식해서 죽어버리고 싶다. 김여주 그런 말 내뱉으면 김정우 울컥한다. 저의 사랑하는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다 아는데도 울컥한다. 김정우 눈에 금세 눈물 고이고 눈물 한 방울 툭 떨어진다. 그런 말 하지마. 김정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면 김정우가 사랑하는 저의 연인. 빙긋이 웃는다. 김여주 다가와서 천천히 입맞추면 김정우 어린애처럼 김여주 다급하게 끌어안는다. 가지마.. 나 두고 가지마.. 김여주 김정우 달랜다. 머리 천천히 쓰다듬는다. 그럼에도 김정우 그 큰 덩치로 김여주에게 안겨 펑펑 울고만다. 끝까지 대답않는 김여주는 김정우 그렇게 울리곤 한다. 4. 김여주가 병원 가는 날. 텅 빈 김여주 집에 김정우 혼자 있다. 김정우 그럼 괜히 또 사진 찍듯이 느리게 눈을 끔뻑이며 김여주 집 안 모습을 담는다. 금붕어 두 마리가 사는 작은 어항. 책장에 빼곡히 꽂힌 김여주가 좋아하는 책들. 김여주가 사놓고 한 번도 듣지 않은 클래식 CD, 자주 쓰는 갈색 머그잔, 김여주의 하얀색 반스 신발. 작은 액자들 속에 웃고 있는 저와 김여주 본다. 김정우 자기도 모르게 자꾸 눈시울 붉어지고.. 김정우 옷 소매로 눈 벅벅 닦는다. 김정우는 미리 준비 중이다. 김여주가 떠난 자신을. 5. 늦은 밤. 김여주는 밤이 되면 방 구석에 혼자 무릎을 끌어안고 운다. 저번에 몰래 집을 찾아갔다 그 모습을 봤었다. 김정우는 깊어진 창 밖의 어둠을 보다 김여주 생각한다. 또.. 자기 자신을 아프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해본다. 결국 전화해보고. 받지 않는 김여주 마음 졸이면서 걱정해본다. 정우야 왜? 하는 답장 오면 김정우 툭툭 자판 치더니 메시지 전송한다. 보고싶어서. 6. 김정우 온통 흰 벽에 둘러쌓인, 빨간 글씨로 수술 중 이라고 적힌 수술실 앞에서 펑펑 운다. 또. 또. 김여주 또 자살기도를 했고. 김정우 진짜 엉엉 소리내면서 운다. 숨도 못 쉬고 꺽꺽거리면서 아무것도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운다. 괜히 김여주 원망도 해본다. 김정우 아직도 잔상 떠올라서 너무 무섭고.. 김여주 진짜로 자기 떠나버릴까봐 두렵다. 김정우 한참을 울다 지쳐 스스로를 달랜다. 괜찮아. 속으로 수천 번을 되뇌이고. 김정우는 그 날 처음 실신하기 전에 울음을 그치는데 성공한다. 7. 생일 선물 뭐 갖고싶어, 김정우 늘상 다정하던 그 얼굴로 묻는다.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무슨 생일 선물이야. 김여주 됐다며 손사레친다. 그럼 놀러갈까? 김여주 곤란한 얼굴한다. 일그러지고 어딘지 모르게 서글픈 표정. 그 날은 안 될 것 같아... 8. 김정우 김여주랑 깍지 낀 손 본다. 김여주 제 옆에 곤히 잠들어있고 김정우 예쁘게도 자네, 하고 생각한다. 조심스럽게 머리칼 귀 뒤로 넘겨주고 찬찬히 얼굴 뜯어본다. 김정우 눈 느리게 꿈뻑이면, 그렇게, 사진을 찍듯이. 널 영원히 기억하려고. 처음엔 분명 원망을 했던 때가 있었다. 너도 날 사랑하는 데 왜 자꾸 죽으려고 들어.. 내가 옆에 있잖아. 김정우 나중에 그게 김여주한테 쥐뿔도 안 먹히는 위로라는 걸 깨닫고. 김여주 김정우 만나고 처음 자살기도 한 날 김정우 화냈었던 거 회상한다. 괜찮은 거 같았는데. 왜. 내가 잘해주고 있었는데. 앞으로도 잘해줄건데 왜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곁을 떠나려 발악하는가. 김정우 그런 서러움 마음에 토해내듯 화를 냈었다. 김여주 눈동자에 아무것도 담지 않은 그 초점 흐린 눈을 하고 그렇게 뱉었다. 정우야 너는 내가 아니잖아... ... ... 김정우 곤히 자는 김여주 괜히 꽉 끌어안아본다. 이렇게 하면 제 곁에 조금 더 있을까싶어. 9. 자기 생일 날 김여주는 갔다. 김정우 시뻘개진 눈으로 제 앞에 김여주 영정 뚫어져라 쳐다보고.. 김정우 닿지도 않을 상대에게 소리친다. 씨발. 그 날 안된다고 했던 게 이러려고 그런 거였어? 나 버리고 죽어버리려고? 발악은 어느새 흐느낌이 되고... 김정우 몸 웅크린 채 가슴 쥐어뜯으면서 운다. 못됐어 진짜 ... 10. 김여주 못된년. 김정우 모든 게 비워진 김여주 집에 들어선다. 김여주 잔상이 텅 빈 집과 겹치고.. 김여주는 진짜 끝까지 못된 여자가 맞았다. 제 물건 제 사진 하나 안 남기고 몽땅 태우고 죽었다. 쪽지 하나 남긴 채. 김정우 김여주가 유일하게 남긴 그 쪽지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러진 못했고. 그럼 김여주 흔적이 어디에도 없는 거니까... 김정우 하루에도 수십번 저를 후벼파는 말이 담긴 그 쪽지를 닳고 닳을 때까지 읽는다. 〈더 좋은 여자 만나.> 11. 김정우 텅 빈 집에서 우뚝 서서 그렇게 운다. 쪽찌 꽉 쥔 손이 덜덜 떨리고. 이 꽉 깨물고 입술 짓이기면서 눈 부릅 떠봐도 눈물은 넘쳐 흐른다. 12. 김정우 참지말고 물어볼 걸. 후회해본다. .. 너 죽으면 따라가도 돼? 넌 뭐라고 했을까. 13. 수천 번을 혼자 연습했어도 결국은 무너지는구나. 연습 같은 거 하지 말고 울 수 있을 때 울걸. 김여주 붙잡고 껴안고 그렇게 울 걸.. 창 사이 불어오는 바람 사이로 김정우 울음소리 흩어진다. 14. 봄바람이었다. 외전1 김정우는 웃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김여주가 떠난 김정우는 우울할 일이 없었다. 울 일도 없었으며 마음 졸이며 살아가지 않아도 되었다. 김정우는 사람을 만났다. 일부러 약속을 잡아 쇼핑을 하고 영화도 보고 운동도 하고 때로는 술을 마시고 가끔은 클럽도 가며 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그래도 공허한 마음이, 혼자가 된 김정우를 불시에 덮쳤다. 끌어오르는 감정을 김정우는 혼자 쏟아냈다. 꺽꺽대며 울었다. 쪽지를 부여잡고 실신하기 전까지 울었다. 정우야. 정우야. 목소리가 귓가에 윙윙거렸다. 정우야. 정우야. 제발 다시 한 번만 불러줘. 정우는 눈을 감았다. 꿈에서라도 제발 날 찾아와줘. 그런 마음으로 매일을 잠들었지만 김여주가 꿈에 나타난 일은 없었다. 진짜 끝까지 못된 여자가 맞았다. 외전2 김정우는 자살 시도를 했다. 김여주가 떠난 지 두 달만의 일이었다. 김정우의 하얀 손목에 울긋불긋한 테가 올라왔다. 김정우는 그 상처를 쓰다듬었다. 김여주랑 똑같은 흉터. 김정우는 왠지 곁에 김여주가 있는 것만 같았다.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다 김여주에게 가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이 어렵지, 뭐든 그 다음은 쉽다. 김정우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깊게 손목을 그었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정우야. 거짓말처럼 김여주가 있었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김여주가 꽃밭에 서있었다. 김정우는 이게 꿈인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정우야. 정우야. 김정우가 눈물을 쏟았다. 나 버리고 가지말라고 했잖아. 어떻게 사람이 그래. 김여주는 울었다. 예쁜 두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김정우는 자기 눈물 닦을 생각은 안하고 김여주 눈물을 닦았다. 울지마. 울지마. 너 울면 나 죽어. 김정우가 두서없이 말을 쏟았다. 김여주가 김정우 손을 맞잡았다. 정우야. 네가 여기가 어디라고 와. 김정우가 김여주를 꽉 안았다. 나 너 없으면 못 살아. 네가 나 버리고 갔잖아. 내가 너 따라가는 게 뭐가 어떻다고 그래? 나 내치지마. 나 너한테 가면 안돼? 나 버리지마.. 버리지마... 김여주는 항상 그랬듯 김정우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쓰다듬었다. 그리고 천천히 머리칼에 입맞추고, 김정우의 눈에, 콧등에, 입술에 입을 맞추고 김정우의 벌건 손목에다 한참동안 입을 맞췄다. 김정우 흔들리는 눈동자가 김여주의 올곧은 눈동자와 마주했다. 내 몫까지 살아. 정우야. 김여주가 김정우의 어깨를 밀었다. 김정우는 뒤로 사정없이 밀리고, 허연 응급실 천장을 보며 깨어났다. 손목에 피가 떡칠이 된 거즈가 사정없이 감겨져 있었다. 김정우는 울었다. 계속 울었다. 김여주는 진짜 끝까지 못된 여자가 맞았다. 그리고 김정우는 남은 생을 김여주 없이 살아가기로 결정했다. 외전3 김여주 예쁘게 웃고 있는 사진 앞에 김정우는 섰다. 수소문해 찾아낸 김여주의 납골당이었다. 김정우는 보란듯이 공부를 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바득바득 취업에 성공했다. 이 정도면 다시 만났을 때 쪽팔리진 않겠지. 김정우가 낡은 쪽지와 함께 국화를 내려놓았다. 생전 김여주가 좋아했던 꽃이였던게 기억이 나 근처 꽃집을 들려 사온 것이었다. 〈더 좋은 여자 만나.> 내 쪽지는 니가 남긴 쪽지에 대한 답이야. 김정우는 한참을 서있다 등을 돌렸다. 〈너만한 여자가 없어.> 다시, 사계절을 돌아 봄. 봄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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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less도 외전이 추가되었습니다! 예전 글 빠르게 재업할테니 재밌게 읽어주세요! 항상 제 글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애정하고 많이 사랑합니다. 저에겐 너무 큰 힘이 돼요! 암호닉은 예전 글 재업 끝나면 정리하고 찾아뵐게요. 그래도 저 암호닉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메일링도 곧 올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사랑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