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수포자 인생에 과외쌤 '김도영'을 심어드립니다.
1.
난 내가 살면서 과외를 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봤어 진짜로. 엄마가 뜬금없이 과외쌤 찾았으니까 야자하지 말고 오라고 했을 때고 므ㅏ...? 했던 거 ㄴㅇㄴ...
원래 인생이라는 게 열심히 살거나 막 살거나 둘 중에 하나여야 뭐라도 되는 건데 난 애매하게 막 살아서 인생을 조져가는 중이긴 했음... 그렇다고 갑작스럽게 과외를 잡으면 쓰나.
사람이 어? 타이밍이라는 게 있고! (이미 놓침) 뭐든 시작하기 전에는 워밍업이라는 게 필요하고! (효과 x) 흠... 아무튼 고3이지만 공부는 죽어도 하기 싫고... 엄마한테 말했다가는 그럼 차라리 죽으라며 내쫓을 사람... 유치원 다닐 때 내복만 입혀서 밖에 내쫓은 거 아직도 기억한다 내가...
"선생님 여자야?"
"남자야. 대학생이래."
"대박, 엄마는 내가 위험하다는 생각 안 해?"
"하지. 선생님한테 이상한 소리 하면 안 된다. 네가 제일 위험해 네가."
...? 친엄마 맞아? 엄마 포커스가 그쪽이 아닌데. 쓰읍... 일단 갑자기 공부 시킨다는 이 사람이 우리 친엄마가 맞긴 한 것 같음. 날 너무 잘 알잖아...?
그래도 너무하다 진짜... 내 의견은 필요 없이 과외를 시작하는 것 하며, 자기 딸이 여중-여고라 남자 불편해하는 것도 모르고, 어? 내가 길 가다가 중딩 무리만 만나도 눈을 깔고 *위험합니다. 모두 눈을 깔고 다니세요* 다니는데. 그 정도로 낯 가리는 사람한테 이렇게
"안녕."
저렇게 건조한 목소리로 인사하는 사람을 마주보고 앉으면, 잘생겼네.
"..."
"뭐 할말 있어?"
이상형이라고, 나와 남은 생을 함께 하여주면 고맙겠다고 말하고 싶은데 초면에 그건 좀 오바인 것 같아서 참을게요. 내일 할게요 내일...큽.
아, 제가 낯을 가리는게 잘생긴 낯을 가리는 거였나봐요... 가려내기 장인.
2.
그리고 행복은
"선생님 성격 더럽다는 말 많이 듣죠."
"어, 알면 잘 해."
오래 가지 못 하는 법. 저 사포같은 인간에게 첫눈에 반한 내가 원망스러울 정도였음. 너는 왜 이런 사람을 취향으로 삼으며 살았니... 아직도 이사람이 이상형인게 말이 되니 엉엉...
지금도 펜을 끄적이며 수학 문제를 풀고있긴 하다만, 이건 내가 풀고 싶어서 푸는 게 아니고. 일단 난 살면서 수학을 내 머리로 풀 거라고 생각도 못 했어. 아니 미래에 가면 이런 거 다 로봇이 풀어줄텐데 왜 내가 지금... 왜...
"너 그거 또 틀리면 진짜 문제 있는 거야. 알지?"
지금 젊으니까 주변에서 냉정한 성격이라고 하지, 나이 들어서 저래봐 아주 젊은 애들이 기겁을 해요, 기겁을. 히스테리 부린다고 그냥...
"야, 이거 아니잖아. 무슨 생각 하길래 그걸 틀려."
"...선생님 생각이요."
음... 저 얼굴이면 늙어도 시크하다고 할머니들한테 인기 많겠는데... 음... 뭐, 왜. 내가 원래 냉철해서 내 영혼까지 얼려버릴 그런 사람 좋아하는데 왜. 내가 원래 이상형이 얼음왕자야 나 잭프로스트 좋아해.
"아, 손이 저려서 또 푸는 건 못 하겠어요. 일단 그만합시다."
"손 줘봐."
"왜요, 이거 제 손인데... 진짜 저려요. 거짓말 아니고 진짜."
"알겠으니까 달라고, 주물러줄게."
그리고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야... 이 여름을 뜨겁게 얼리는 사람이야 이사람... 내가 한 2주정도 현실부정 하면서 지켜보니까 그래.
"펜 좀 살살 잡아, 나중에 여기 굳은살 생기면 아프다."
"쌤 솔직히 애인 있죠."
"그냥 무시할게."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리가 없, 아 아파요."
저, 저 웃는 것 봐. 내가 정말이지... 살 수가 없다 진짜. 원래 맞는 거 싫어했는데 김도영 비주얼이랑 웃음으로 쳐맞는 걸 너무 좋아하다 보니까 마조히스트 될 지경임. 미친 나 책임져줘야 되는 거 아니야?ㅠ
3.
지내다보니 든 생각이지만 쌤은 생각보다 내 말을 잘 들어줬음. '생각보다'
"쌤, 저 이번에 모의고사 점수 오르면 저랑 데이트 해요."
"그래."
"헐, 진짜요?"
"어. 어차피 못할 것 같아 너."
저 새ㄲ, 아니 사람이... 맨날 사람을 온탕에 박았다 냉탕에 박았다 한다니까. 어디서 저렇게 나쁜 것만 배웠는지 하루하루가 행복합니다. (손하트) 아, 그 저 원래 휘둘리는 거 좋아해요. 자의식 그런 게 별로 없어가지고.
흑심이 존나 담기긴 했지만 사실 그냥 한 번 해본 말이었는데 김도영이 말을 그런 식으로 하니까 갑자기 승부욕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기적을 현실로 불러왔습니다 제가. 우리 엄마가 나 어릴 때 단골로 하던 말이 있거든요. '우리 애가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서...' 일단 그건 아니야 엄마.
"선생님 솔직히 6점도 오른 거잖아요."
"올랐다고 할 수 있어? 겨우 두 문제 더 맞은 거잖아."
"겨우 두 문제라뇨, 1점 차이로 대학에 붙고 떨어지는 마당에."
내가 생각해도 이건 말 잘했다 인정. 근데 김도영이 누구였나... 내가 달리면 내 위에서 유유히 구름타고 앞서 나갈 사람. 내가 그걸 모르는 건 아닌데.
"그럼 밥은 사줄게, 데이트 말고."
"그냥 데이트라고 이름만 붙여주면 되는 걸 가지고 치사하게 그래야겠어요?"
"네, 그래야겠어요."
그렇게 군다고 내가 더한 승부욕을 가지고 도전할 거라고 생각하면 경기도 오산임. 나는 한 번 실패한 것에 도전할 의욕을 잃어버리는 사람이라고... 그런 제가 백 번 실패하고도 못 잃는게 김도영이야... 김도영 못 잃어...
"와, 밥은 뭐하러 사줘요. 그냥 다 때려치웁시다."
"후회 안 하겠어?"
"안 해요."
내가 그렇게 말했더니 갑자기 존나 웃는 거임. 내 얼굴이 그렇게 웃겼나 싶다가도 아니 남은 심각한데 그렇게 웃어도 돼? 진짜 김도영 너무 치사하고 냉철하고...
"데이트 아니라고 해서 삐쳤어?"
"아니거든요."
"그럼 사준다고 할 때 그냥 먹어."
"싫어요."
"너 후회한다."
"아, 괜찮다니까요."
"이름아."
"왜요."
"데이트 하자고."
너무 사랑스럽네...
"진짜 왜 그래요 나한테?"
"너 이러는 거 귀여워서."
? 난 원래 이렇게 단순한 사람이야. 미래 조카도 옆구리 찔러서 절 받고 세뱃돈 주려고...
4.
한 달도 못 갈 줄 알았던 과외를 여름 시작부터 가을의 끝까지 해내는 나를 보면서 이게 우리 엄마가 대단한 건지, 내가 대단한 건지,
"그러다 아예 머리 박고 자겠다 너."
김선생이 대단한 건지 참 내. 나는 3번. 알면 알수록 대단한 사람 그거 김도영. 내가 입증해보일 수 있어 왜냐면 나 그런 수학 점수 처음 받아봤거든요 하하하하.
"선생님 저 진짜 졸려요..."
"어제 뭐 했는데."
"어제 선생님 ㅅ,"
"내 생각 말고."
"...선생님이 내준 숙제 하다가요 못 잔 건데."
그렇게 말하면 옛날 김도영은 내가 뭘 얼마나 내줬다고 엄살이냐며 날 사포같은 말로 갈았겠지만 요즘의 김도영은 그렇지 않단 말이지... 약간... 약간 뭐랄까 이게 말로 설명하기엔 너무 오만가지 감정이라 어려운데...
"그렇게 많았나."
정리하자면 귀여워. 귀엽고 사랑스럽고 정말 세상 잔망은 저 사람이 다 가져갔나봐 그래서 내가 이꼴인가. 하지만 내 잔망을 당신이 가져갔다면 그건 다행이네... 정말
"선생님 그거 생각해봤어요?"
"말 돌리지 말고 문제나 풀어."
"아니, 그거 있잖아요. 엄청 중요한 거."
"뭐, 그게 뭔데. 내가 어떻게 알아."
"수능 끝나면 나랑 연애하기로 한 거요."
"야, 내가 언제."
김도영 ㄱㅇㅇ...ㅠ 고장난 줄 알았던 내 이상형 탐지기는 아주 멀쩡하게 작동했었다. 저런 귀여운 사람을 다 찾아내고 우리 엄마 최고야 나 요즘 존경하는 사람 엄마잖아;
"생각 안 해봤어요?"
"앞으로도 안 할 거야."
"와, 진짜 너무해."
"...나중에 생각해 나중에."
칼같던 사람이 자꾸 봐주는 거 그거 사랑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