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사 랑 이 돌 아 왔 다 W. 문달 *5- 장난은 그만하고 상처 받은 어떤 이가 그랬다. 다정한 사람을 만나. 다른 어떤 사랑을 겪은 이들이 말했다. 잘 대해주는 사람을 만나, 널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 나는 조언들을 모두 아우르는 사람을 안다. "선배, 부탁 하나 해도 돼요?" "두 개, 세 개, 네 개도 돼요." "허!" "지금 같잖아 한 거지." "아닙니다." "뭔데?" "혹시 저희 작품에 남주로 출연해주실 수 있나요...?" 말 꺼내놓고 그거는 안되겠다, 싫다 라는 대답을 들을까봐 눈도 게슴츠레 뜨고 있었다. 선배가 움직일 때마다 따라 움츠렸다. "여주는 새현이고?" "에, 아니죠. 저는 감독인데. 여자 주인공도 곧 구할건데요, 남자 주인공으로...선배님이...딱, 인 것 같아서..." "고민되네. 새현이가 여주면 당연히 하려고 했는데." "전 할 수가 없어요. 아아 선배니임 제발!" 부탁을 들어줄락 말락 하며 단풍나무를 가운데 두고 뺑뺑 돌았다. 선배 뒤를 따라 돌며 실랑이를 벌였다. 선배 제발요. 글쎄. 선배 진짜. 페이는 주나? 당연하죠 열심히 알바 뛸게요. 알바라니 새현이가 고생해서 번 피같은 돈을 받을 수 없어. 선배 그러지말고 진짜 진지하게 생각 좀, 시나리오도 보여드릴게요. "기대된다. 새현이가 어떤 글을 썼을지." 눈빛이 초롱해진 선배에게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낸 탈고본을 건넸다. 완고는 곧 낼거라고 덧붙이면서 선 자리에서 바로 읽기 시작하는 선배 눈치를 봤다. "여, 여기서 말고 건물 안에 들어가서 앉아서." "남자 주인공 이름이 재민이네." "어...네...음...네." 순간 욕이 튀어나올 뻔 했다. 몰입한다고 임시로 선배 이름을 넣어놨는데 고친다는 걸 잊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하는 지금 이 캐스팅은 즉흥적으로 일어난 상황이라. 변명할 거리도 없어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히죽이는 입꼬리를 보아하니 놀릴거리를 잡은 모습이다. "착각해도 돼?" "..." "새현이 나 좋아하나 보다~ 이럴 줄 몰랐네. 오죽하면 남주 이름이 재민이고, 나재민을 캐스팅할 생각을 했지, 감독님?" "오해하지 마시라고 말씀 드리는데 그," "아아아. 됐고요. 감독님 마음 잘 알겠습니다." "선배. 뭔가 착오가 있습니다. 제가 재민 이라는 이름을 넣은 이유는," 카페 쪽으로 몸을 돌려 걸어가는 선배 등에 대고 주절거리는데 선배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나를 돌아봤다. "이유는, 그게..." 제가 선배를 좋아해서. 역시 입을 다무는 게 좋겠다. 이런 말 저런 말 붙여봤자 내 마음만 더 드러내는 꼴이었다. "선배 입맛대로 생각하세요..." 마지못해 상대에게 선심쓰는 것처럼 숨겼다. "이 장면 하나 쓰자고 달리를 빌린다고? 비효율적이지 않아?" "근데 달리 쓰면 끝내줄 것 같은데. 이 씬 말고도 쓸 데 많을 걸?" "오바야. 개비싸. 게다가 반납은 딜리버리도 안돼. 방문 반납이야." "얘들아!! 얘들아!!!" 스튜디오 옆에 붙어있는 영화과 전공 강의실인 138 강의실은 매년 2학기가 되면 4학년들이 먹고 자며 밤새워 졸작에 매달리는 곳이 된다. 나와 같이 한 팀이 되어 졸업 작품을 만들 동기들이 거기서 작업을 한대서 부리나케 달려갔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니 애들 뿐 아니라 선배들도 몇 분 계셔서 허리 숙여 인사하고 친구 옆에 앉았다. "얘들아, 남주, 구, 했어." "숨 고르고 다시 말해봐." "남주! 구했다고." "누군데?"/ "오디션 같이 보기로 했잖아!" "모여봐." 혹시나 누가 들을까 싶어서 머리를 모은 다음 작은 목소리로 선배 이름을 말했다. 소윤이와 아연이가 놀라서 큰 소리로 비명 질렀다. "근데 재, 응~ 선배 연기 잘 해?" "봐, 봐야지. 근데 응...응 선배 생각하고 쓴 글인데 이미지로는 완벽 일치지." "그래도 한번 봐야 하는 거 아닐까? 뭐 연출 감독님이 마음에 든다 하면 어짤 수 없긴 한데 만약에 너~무 못하면 어떡해." "맞아. 리딩이라도 시켜보자." "완고는 이번 주 안으로 낼게. 그러면 내가 선배랑 날짜 잡아서 리딩 한번 해보자고 할게." "오키. 그러면 여주랑 여주 친구들, 남주 친구들 구하는 건 언제 올릴거야?" "그거는 내가 오늘 인물 정리 하고 올릴게." "좋아." 잘 해보자고 서로 주먹을 쥐고 가볍게 딱 딱 부딪쳤다. 순조롭게 진행되기 만을 바랄 뿐이었다. 안타깝지만 내 감정은 밀어놓고. "선배, 해주시는 거죠?" "음~ 글쎄." "흐아앙 선배, 저 애들한테 선배 캐스팅 했다고 말 다 해놨단 말이에요." "혼자 진도 막 나갔네. 내가 안된다 하면 어쩌려고." "부탁...네 개도 들어준다고 했잖아요." "응. 그렇지." "해주시는 거죠? 남자 주인공 역 해주시는 거죠?" 확답을 들어야 안심하고 시나리오를 수정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끈질기게 선배 뒤꽁무니를 따라다녔다. 선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했다. "대신." "네." "페이 안 받아. 그 대신에." "헉. 네." "너도 내 여자 주인공 해줘." "...뭐얼 해요?" "너도 내 영화 여주 하라고. 서로 품앗이 하자고." "언제 시나리오 다 쓰셨어요?" "마냥 한량 같아 보였겠지만 할 건 다 했지. 품앗이 콜?" "연기 진짜 엄청 못 할지도 몰라요." "오디션 물론 볼건데 너라고 생각하고 있을거야." 선배가 손가락으로 나를 꼭 집어 가리켰다. 예상치 못한 제안이라 대답도 못하고 굳어 있었다. "오, 오디션 하니까 생각난 건데요. 선배님도 리딩 한번 해주세요! 선배님 연기력을 봐야 해서..." "언제?" "시간 언제 괜찮으세요?" "나 오늘이랑 내일." "오늘은 안되는데, 주말 아예 안 되시는 거죠? 다음 주는요?" "다음 주는 모르겠다. 미리 날 정해주면 비울게. 너는 지금 돼?" "네. 네? 저요? 지금요?" "응. 지금 오디션 봐. 어차피 내가 연출이야. 애들이 나한테 주연 캐스팅 다 맡겼어." "준비가 안됐, 갑, 갑작스러운데, 어어, 하하하!" 선배가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만난 김에 가벼운 마음으로 대사 하나 읽고가라, 어차피 여주는 거의 너다 라고 꼬드기는 바람에 선배 손에 끌려가 빈 강의실에서 오디션을 보게 됐다. 테이블은 하나 빼고 모조리 벽 쪽으로 밀어놨고, 빈 공간이 된 가운데에 의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선배가 마주 본 테이블 자리로 가서 어떤 내용인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권태기가 온 연인이 소원해진 사이를 극복해보려고 국내 여행을 떠나는데 거기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서로의 몸이 바뀌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야." "우와. 재밌겠다." "씬 십사, 울고 있는 준희. 분에 못이겨 주먹을 부들부들 떤다.~ 그 아래 대사 읽으면 돼." "네! 저, 선배. 준비되면 시작해도 되나요?" "응. 너 편할 때 해." "감사합니다." 선배가 말한 장면 번호를 찾아 꼭꼭 씹어 삼키듯 꼼꼼히 읽었다. 읽는데 기분이 묘해졌다. 준희가 내뱉는 대사가 뭉쳐둔 내 속마음 같았다. -•-•-•-•-•-•-•-•-•-•-•-•-•-•-•-•-•-•-•-•-•-•-•-•-•-•-•-•-•-•-•-•-•-•-•-•-•-•-•-•-•-•-•-•-•-•-•- #14. 준희의 집 앞 (늦은 밤) 연호 (지만 몸은 준희) 가 무미건조한 얼굴로 울고 있는 준희 ( 지만 몸은 연호) 를 보다 한숨을 깊게 내쉰다. 준희는 분에 못이겨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연호를 노려본다. 밖으로 나타나는 행동과는 다르게 준희의 어조는 꽤나 차분하다. 준희 : (낮은 목소리로 한 자 한 자 분명하게 발음한다.) 잘해줬잖아. 나한테 지나치게 친절했잖아. 나는 네가 나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나는 네가 그런 마음으로 나랑 사귀는 줄 알았어. -•-•-•-•-•-•-•-•-•-•-•-•-•-•-•-•-•-•-•-•-•-•-•-•-•-•-•-•-•-•-•-•-•-•-•-•-•-•-•-•-•-•-•-•-•-•-•- "새현이 네 방식대로 연기해봐. 대사 그대로 하지 않아도 돼." "...네." 종이를 손에 세게 쥐고 심호흡을 한번 했다. 선배 눈을 쳐다보자 말없이 끄덕였다. 대본을 내려놓고 선배를 똑바로 쳐다보며 입술을 오므렸다. "...네가 잘해줬잖아. 지나치게 친절했잖아, 나한테. 그래서, 그래서 나는 네가 당연히 나 좋아하는 줄 알았지. 그래서, 나는. 네가 그런 마음으로 나랑 사귀는 줄 알았지." "..." "...선, 배님 끝이요!" 어색했다. 눈에 주고 있던 힘을 풀었다. 급 피로해졌다. 선배는 다른 세계에 잠깐 있다가 돌아온 것처럼 벌떡 일어났다. "어. 잘했어. 역시 내 여주야." "선배 말이 좀 이상해요." "뭐가?" "그, 아니에요." "여주, 아니지. 새현아, 씬 이십사도 해볼래? 내가 연호꺼 읽어줄게." "네!" 선배가 아주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빠릿하게 움직여야 흐름을 깨지 않을 것 같아서 서둘러 장을 넘겼다. "너라서 다행이라 여겼던 것들이 많아. 처음으로 산 꽃다발의 주인공이 너라서, 밤새워 구운 쿠키를 먹는 사람이 너라서, 새벽에도 집에서 좀 떨어진 편의점까지 달려가게 한 사람도 너라서, 엠티 때 문고리가 고장난 방 안에 같이 갇힌 게 너라서, 소소하고 보잘 것 없지만 소중은 했던 모든 처음이 너였어서 다행이야. 정말, 정말 고마웠어." 선배는 은근하게 '너라서' 에 힘을 실었다.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처럼 굴었다. 아까 전 나처럼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읊었다. 나는 그 다음 준희의 대사 대신, 선배의 살짝 벌어진 선홍색 입술에 초점을 맞춘 채 말했다. "선배. 혹시 여기에 선배 실화가 담겨 있나요." "..." "아까 십사 번 읽을 때부터 느꼈던 건데." "응." "누구한테 하는 말인 것 같아서." "응." "약간, 말도 안되는 생각 하게 돼요." "무슨 생각?" "그냥. 그냥 선배가 지금 아니면 예전에, 좋아하는, 사람..." "예전. 도 맞고 지금도 맞을 걸. 실화 넣은 부분은 없지않아 있는데." "네. 그런 것 같았어요. 그런데 현재도 있다는 얘기죠." "..." 고개가 점점 숙여진다. 아무래도 선배와의 품앗이는 될 수 없을 것 같다. 차라리 선배 통장으로 페이를 지급 해주는 게 낫지. 촬영 시기도 비슷하게 겹칠거고, 내 영화 촬영 하느라 시나리오 숙지가 더딜 지도 모른다. 선배도 매한가지 일거다. 아쉽지만 서로를 위해서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죄송하다는 얘기 먼저 꺼냈다. "선배님. 솔직하게요. 저도 그렇고 선배도 그렇고 아무래도 둘 다 연출 맡았고, 촬영도 비슷한 시기에 할 것 같고, 제가 성급하게 결정했던 것 같아요." 선배는 한결같은 무표정이었지만 어쩐지 내가 입을 열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따라서 냉랭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선배는 평소대로 하시는 건데 저 혼자서 오해하게 되는-" "어." "네?" "오해." "네. 그 오해요. 그러니까- 제가 정리가 지금 안 돼서 뭐라고 말해야 할 지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저 혼자! 제가, 제가 이상한 거예요. 아니에요. 선배님 신경쓰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그니까! 오해...고 자시고는 잊어주세요. 죄송해요. 저도 제가 뭔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의자도 나를 따라 버벅대며 바닥을 긁었다. 짐을 챙기며 나가려고 허둥지둥 하고 있는데 계속 부동의 자세로 있던 선배가 들고 있던 대본을 내려놓고 말했다. "오해. 하라고 이러는 건데." "...네?" "못 알아들었으면 말고. 알겠어, 새현아. 고마웠어. 아쉽네. 너 전과해도 되겠더라." 울고 싶어진다. 언제나처럼 제게 쩔쩔매는 귀여운 후배 반응을 보고 싶어서인지 아님 진심인지 분간할 수 없다. 선배가 결말을 짓고 나를 문 쪽으로 인도했다. 나는 혼란스럽기만 한데 덮어두면 다야? 얼결에 잘 가란 인사를 받았다. 곧장 가지 않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원망스러워서 눈물을 조금씩 뚝 뚝 흘렸다. - 약 두 편? 남은 것 같슴다 ㅎㅎ ++ 아니...왜케...잘못된 부분이 많이 보일까요ㅠㅠ죄송함다ㅠㅠㅠ
이런 글은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