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사 랑 이 돌 아 왔 다 W. 문달 *7- 그거 좋다 등록금 4년 때려박는데 할 수 있으면 학교 활용 최대한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학교가 장소인 장면들은 교내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촬영 협조를 구하고 다녔다. 서울에서 크다 하는 도서관들을 다 쏘다니며 머리를 조아리고 다녔다. 그밖에 아연이가 한때 서빙 알바했던 학교 근처 술집도, 공원도 전화 요금 탈탈 털어서 연락 돌리고 스케줄 조정하고를 반복했다. 후배들 자원 받아서 인력도 받고, 필요한 장비도 학과 거랑 외부 거랑 합해서 대여하고, 의상 소품 발품 팔러 다니고, 각종 문서 작업에, 매일 날씨 확인하고, 그린카 빌리고, 배우들 연습 잡고, 2D물 작업 할 거 하고 "악! 머리 아파!" "굳세어라 권새현." 머리를 마구 헤집다가 책상에 쿵 박으며 엎드렸다. 아연이가 뒷목을 주물러주며 세상에서 제일 기운 없는 목소리로 힘 내라고 말했다. 나만 힘든 거 아닌데 징징거리게 됐다. 그래서 애들에게 미안했다. 이렇게 멘탈이 약해서야 나중에 현장 나가서 어쩌려는지. 요즘은 툭 치면 눈물부터 나온다. 물론 혼자 있을 때 눈물즙 짜내고 돌아온다. "재민, 여름 둘이서만 대본 리딩 오늘이지?" "응. 오늘이 마지막이고 촬영 전까지 없음." 알고보니 여름 역 하시는 배우분이 선배랑 아는 사이더라. 친구의 친구라고. 그래서인가 어색함 없이 죽이 척척 맞았다. 쉬는 시간에도 장난치며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니까 속이 다 쓰렸다. 선배님. 뒤에서 조용히 노려보고 있으면 여름이 몰래 재민은 윙크를 했다. 누가 저기에 넘어간대? 넘어가더라, 나재민을 좋아하는 권새현은. 저기! 네. 좋아하는 사람 있으세요? 네? 여자친구는 있으시구요? 여름이 재민에게 치대는 장면들에서 둘의 대화는 탁구채 사이에서 공이 통통 튀듯 빠르게 주고 받아야 한다. 내가 그리는 장면에선 그러했다. 카메라도 재민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재민으로 휙휙 바뀌어야지. 여름과 재민은 쉬다가도 누가 먼저 아무 씬의 대사 한 대목을 딱 던지면 진지하게 연습하곤 했다. 여름이 #4 의 대사를 갑자기 쳤다. 배우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머릿속으로 스케치를 하는데 선배가 잠시 머뭇거렸다. "여자친구. 음~" "아, 오빠. 흐름 끊겼잖아." "갑자기 해놓고서 참나." 여자친구는 있으시구요? 아니요. 그러면 제 번호 좀 가져가실래요? 내키시면 연락 주세요. 저, 저, 제가 나재민씨한테 관심이 있어요. 아니요. 원래는 아니요가 따라와야 하는 게 맞는데 선배는 또 장난을 친다. 진하게도 따라다니는 선배의 시선을 무시한 채 핸드폰으로 아무 앱이나 들어갔다 나왔다 하다가 책상에 내려놨다. 다시 연습 들어갈게요. 될 수 있으면 표정도 실제처럼 해주세요. 재민이의 자리는 연기 호흡을 맞추기 위해 여름이의 자리와 마주보고 앉도록 배치해놨는데 재민이는 가끔 나 있는 쪽을 보며 대사를 칠 때가 있다. 시나리오 상 계절은 봄에서 여름인데 실제 촬영일은 겨울이 다 되어가는 쌀쌀한 가을이었다. 로케 촬영은 되도록 그나마 기온이 가장 높은 한낮에 모조리 찍어야 대본 상으로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고맙게도 주연을 포함한 조연 배우 분들까지 대본 숙지를 잘 해주셔서 예정 촬영일보다 앞당겨 찍어도 될 것 같았다. 촬영 준비하는 나와 애들만 좀 힘들지 뭐. 우스갯소리로 소윤이가 이러다 여름이 이름 겨울이로 바꿔야 되는 거 아니냐고까지도 했다.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있다니까 모두 웃음을 뚝 그쳤다. 아니야 새현아, 우리 더이상의 수정은 하지 않기로 해. 나중 가서는 결국 공사를 조금 해야했다. 초반 씬들에 벚꽃잎이 휘날리는 게 나오는데 도무지 가을에 피는 벚꽃은 보지 못해서. 여름이는 겨울이가 되었다. 풋풋한 캠퍼스물 하면 간질거리는 봄이 제격이라는 고집이 있었는데 내가 생태계를 조작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비싼 특수효과 넣을 돈도 없으니 예산을 위해서 고집을 버렸다. 겨울도 나쁘진 않다. "다들 모두 수고하셨고, 다음주 금, 토, 일요일 촬영 합니다! 상세한 일정은 단톡방에 이번주 주말까지 올려드릴게요.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화이팅!" "연출님~ 저희 구호 한번 외치고 끝내요. 메이킹 이거 찍어주세요." 메이킹을 맡아주기로 한 후배가 앞에서 찍을 준비를 했다. 부끄러워 주저하다가 내 이름을 다들 외치는 바람에 결국 손을 높이 들고 선창했다. "대신 전해주지 말고!" "직접 말해주세요! 대전해!" 구호는 소윤이가 미술 소품 관련 레퍼런스를 찾다가 시상처럼 불현듯 떠올랐다며 꺼낸 아이디어였다. 결국 구호까지 됐다. 저걸 나는 쫑파티 때 건배사로도 외쳐야 한다는 거지. 할 때마다 얼굴이 뜨거워진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주에 봐요 수고하셨어요 다들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마지막까지 남아 꾸벅 꾸벅 인사하던 선배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문을 가리키며 입모양으로 기다릴게, 하고 먼저 나갔다. 아연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음흉하게 웃으며 물었다. "사귀기로 했냐?" "뭐?" "아니야?" 진지하게 선배님은 저 어떠세요? 두려웠다. 사근사근 잘만 웃던 입꼬리가 점점 아래로 내려갈 때. 와, 난 끝났구나 싶었다. 내 짐작이 맞았구나. 재민 선배는 원래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고, 귀여운 거면 뭐든 좋아하는 사람이고, 원래 그런 사람이고. 선배에게 나는 귀엽고 장난 칠 때 리액션이 재밌는 후배일 뿐이고. 그래서 도망쳤다. 죄송하다고 하고 죽어라 뛰어갔다. 선배 입을 통해 나올 말들이 걱정됐다. 나를 찌를까봐. 아프게 될까봐. 난 이미 혼자서 상심해하고 있지만 이보다 더 낙담하기는 싫어서 달아났다. 닥쳐올 내일이 겁나는 날들이 있었다. 지금은 지나갔지만 그때는 다음 날 내게 불가피하게 벌어질 일들에 눈물부터 뚝뚝 흘렸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많이 시도 해봐서 안다. 불가능하다. 아는데도 입버릇처럼 누군가에게 빈다. 제발 시간 좀 되돌려주세요. 딱 거기까진 좋았거든. 너 가질래? 하고 선배가 놀릴 때. 선배 장난 치지마세요. 언제나처럼 난 거기서 그쳐야했다. 이렇게 후회하고 있으니까. 배려라고 해야 할 진 모르겠는데, 선배는 없던 일처럼 나를 평소와 같이 대했다. 마치 감정이 폭발해서 선배네 대본을 읽다가 나간 그 날처럼. 고마운데 미웠다. 날 증오하지 않아서 다행인데 내 마음을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게 원망스러웠다. 복잡한 심경으로 선배를 봤다. 그래도 남들 앞에선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응. 아니야." 모른다. 선배랑 나랑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일단은 아니라고 하고 있다. 가라앉은 분위기가 나 때문인 게 싫어서 일부러 밝은 척 하며 먼저 가겠다고 했다. "선배!" "어. 나왔어? 배고프다, 저녁 뭐 먹지." "파스타 어때요? 저 숨은 맛집 알아요." "오, 진짜? 파스타 좋아. 어딘데? 학교에서 가까워?" "지하철로 두 정거장?" "가자." "좋아요." 선배도 무서운 거겠지. 그래서 이런 식으로 회피하는 거겠지. 혼란스러운 관계 속에서 우리는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 ::짝사랑이 돌아왔다:: "이 카메라 뭐죠?" "메이킹 입니다!" "아하, 메이킹~ 안녕." "대신 전해드립니다 코너 입니다! 스텝, 배우 가리지 않고 한 명 지목해서 영상 메시지 남겨주세요." "오오~ 준비 좀 많이 했는데? 그럼요, 저는요, 음." 메이킹 담당 후배가 자기 일을 즐거워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뻤다. 카메라 앞에서 재롱을 떠는 선배 모습을 구경하다가 날 부르는 아연이 목소리에 달려갔다. 촬영 당일 날은 이름도 많이 불리고, 욕도 많이 먹고, 여러모로 골치를 썩히는 자잘한 사건들이 많아서 정신 없는 출발을 했다. 로케이션이 많다보니 현장에서 벌어지는 예상치 못한 일들도 많고. 그때마다 울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는 어찌됐건 총연출 이었다. 식사 때도 대충 넘겨 버리고 촬영을 진행했다. 딜레이만 여섯 시간이 넘어가서 첫날 촬영은 새벽에 끝났다. 아연이가 현장 편집 도와주는 후배랑 같이 편집실에서 정리만 하고 간다고 나와 소윤이를 먼저 보냈다. 둘째 날은 첫 날보다는 순조로웠다. 중간에 일반 시민분이랑 마찰이 있긴 했지만 해결은 됐다. 마지막 날 촬영 역시 딜레이가 되긴 했지만 끝을 봤다. "촬영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와!!" 끝났다는 말에 모두 기뻐 소리치고는 정리를 시작했다. 다들 한번씩 부둥켜 안고 수고했다고 인사했다. 어설프게 팔 벌리고 안고 안기다가 중간에 선배를 만났다. 선배가 나를 보고 멈칫하더니 이내 다가와 등을 토닥여줬다. "제일 고생 많았어." "수고하셨습니다, 선배님. 정말 감사해요." "말로만?" "그때 페이 안 받으신다고!" "버럭 할 것 까지야?" "죄송합니다. 화 낸 거 아니에요." 연출님 구호 외쳐주세요--! 소윤이가 도서관 앞 동상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어느새 나와 선배 빼고 모두 동상 앞에 모여 있었다. 마지막 장소는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이 다른 장소보다 상대적으로 호의적이고, 운영 시간도 길고, 학생들 편의도 잘 봐줄 뿐더러 날씨나 시간의 영향을 덜 받는 실내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해 다 져서 찍었어도, 조명 때려서 낮인 것처럼 커버칠 수 있으니까. 마지막 촬영씬은 나랑 선배 이야기를 각색해서 넣은 장면이었다. 선배의 목소리가 도서관에서 제일 크게 들렸던 곳. 오직 나에게만 제일 크게 울렸던 곳. 책도 선배가 골랐던 시집을 썼다. 찔리는 게 있겠지 하고 넣은 나의 작고 날카로운 진심이다. 눈치 있는 선배가 알아차렸으면 좋겠는. 선배가 가자고 눈짓했다. 마지막까지 수고하는 메이킹 담당 후배의 카운트에 맞춰 있는 힘껏 외쳤다. 대신 전해주지 말고, 직접 말해주세요. 대전해. 셔터음이 연속으로 들렸다. "영화과 권새현씨 제 이상형이시라고 전해주세요. 익명이에요?" "어...원래는 익명으로 하고, 영상으로 확인 하시라고 전해드리려고 했어요." "그렇구나. 그럼 상영회 전까지는 안 전해지겠네요?" "네. 그...렇죠?" "상영회 최소 12월이잖아요. 그렇죠?" "넵. 맞습니다." "그럼 내가 직접 전해줘야겠다. 여기까지 메이킹 나가요? 꼭 나가야 돼요." "네! 내친 김에 대전해로 삼행시 어떠세요?" "엄청 시키시네요. 운 띄워주세요." "대!" "대신 전해달라고 하려 했는데." "전." "전달이 느리네. 직접 말해줘야겠다. 새현아 좋아" "허어얼, 해애!" "해~ 좋아해 새현아. 오빠가 곧 간다, 뿅." "헐 선배니임...!!" ::짝사랑이 돌아왔다:: Q.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달문대학교 영화영상학과 **학번 나재민입니다. 이번에 복학했어요. 학번은 삐처리 해주세요, 저 이제 화석이거든요. Q. 같은 과 후배인 권새현과는 어떤 관계 어떤...? 당연히 선후배 사이죠 Q. 단순히 선후배는 아닌 것 같아서 물어보는 것 아끼는 후배죠. 아, 후배였죠. Q. 답변을 약간 밀당하듯 하는 것 같다. 눈치 되게 주시네요. Q. 죄송합니다. 자세하게 썰풀이 부탁드립니다. 새현이는 한 학번 위에 선배님 단편 찍으실 때 팀원으로 처음 만났었어요. 같이 연출팀이었는데 뭘 시켰더라, 아무튼 연출 소품이 있는데 그거를 직접 만들어야 했어요. 당시 연출 감독이시던 선배가 좀 무리했죠. 저랑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 새현이랑 둘이서 스튜디오 한구석에서 새벽에 만들고 있었어요. 아, 액자였다. 벽에 붙일 작은 액자들 만들고 있었어요. 연영과 애들 세트실이 있었는데 거기 과에서 각재랑 공구들 좀 빌려다가 만들었어요.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때는 초면이니까 어색해서 제가 분위기 푼다고 장난 막 치고 그랬거든요. 근데 애가 눈도 제대로 못 쳐다보고 , 이거 아닌데요, 이렇게 하면 안되는데요, 나중에 액자 클로즈업 들어가면 관객들이 저게 뭐냐고 그러겠다, 다 후배님 잘못이에요 하고 놀려도 얼굴 빨개지면서 막 죄송하다 그러고 울상짓는데 그게 너무 귀여운 거예요. 아, 제가 귀여운 거에 좀 미쳐가지고. 그때 처음 새현이 귀여운 애라고 인식했던 거 같아요. 제가 남들한테 장난은 잘 쳐도 마음 열고 그러지는 않아요. 그런데 새현이는 아니였어요. 뭔가, 뭔-가 계속 놀리고 싶은 맛이 있어요. 제가 휴학하고서도 군대 바로는 안 갔고, 좀 공백 있다가 다녀왔어요. 와, 복학 하니까 후배들이 엄청 많아지고 저는 백만년만에 일어난 사람 되어있더라고요. 뭐가 많이 바뀌어있지, 동기들 휴학했던 애들 빼고 다 졸업했지. 선배가 뭐라 한마디만 해도 오들오들 떨던 새내기가 어느새 졸업 한다고 글 쓰고 있지. 새현이 얘기하는 거예요. 저랑 같은 학번 애가 희진이가 유일한데 원래 희진이도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어요. 복학하고보니 남은 동기가 걔 하나 뿐이라 공유할 추억이 많아서였지 새현이보다 어색합니다. 교집합 주제 떨어지면 그때부터 침묵이 흘러요. 하여튼 복학하니까 적응 안되더라고요. 그나마 인간 관게 잘 쌓아서 외롭지는 않았습니다. 아니다. 외로웠어요 사실. 그래서 새현이한테 잘 까불었어요. 다른 후배들이랑 안 친하거든요. 특히나 1,2학년은. 얼굴도 모르고 뭔가 무서워요. 걔들한텐 저 냉동인간 일 거 아녜요. 새현이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새현이도 약간 저 어려워하는 게 있어요. 제 생각이에요. 1학년 때보다는 편하게 대화하긴 하는데 여전히 제 눈 잘 못 쳐다보고, 몰이 하면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쩔쩔 매고. 그게 귀여워요. 그게 진짜 귀여워요. 막 손부채질 하고 우왕좌왕 하는 거요. 그거 눈 앞에서 봐요, 진짜 귀여워요. 콩깍지 씌인 게 아니고 진짜. 애가 귀엽게 생기기도 했고. 하얗고 말랑말랑. 언제는 심각하게 귀여운 적이 있어서 이러다가 호랑이가 떡 대신에 새현이 잡아 먹으면 어떡하나 이 걱정도 했어요. 그런 경멸의 눈빛 하지 말기로 해요. 요새 많이 받고 있으니까. 권새현 객관적으로 귀엽습니다. 이건 사실이에요. 제 주관 아니고요. 가만 지켜보면 희진이나 다른 애들도 새현이한테 귀엽다는 말 많이 하던데요 뭐. 그리고 자기도 알 걸요? 자기 귀여운 거. 근데 자기 귀여운 거 알고 있는 것마저 귀여워. 생각하니까 보고싶네. Q. 그러면 다른 후배들보다 좀 더 친하고, 귀여워하는 후배라는 말이겠다. 네. 귀여운 후배였어요. 그런데 언제부터 후배 이상으로 좋아하게 됐냐 이게 궁극적으로 묻고 싶은 거잖아요, 그렇죠? Q. 헤헤 저 사실 나쁜 짓이긴 한데 새현이가 노트북 켜 놓고 잠깐 어디 나간 사이에 새현이 글 읽은 적 있어요. 대전해 글 맞아요. 네. 거의 완성 되어있을 때였어요. 새현이가 남주 해달라고 할 때 그 전에 이미 봤는데 처음 본 척 했었어요. 하여튼 자리에서 빠르게 읽는데 남주 이름이 제 이름인 거예요. 심지어 성도 똑같았어요. 저 보여줄 때는 김재민 으로 되어 있었는데 제가 나쁜 방법으로 보고 있을 때는 나재민 이었어요. 글은 당연히 재밌었는데 맨 끝 부분에 애가 '으악 너무 좋다ㅠㅠ' 이렇게 써놨더라고요. 그래서 엔터 치고 '으악 나도 좋다ㅠㅠ' 라고 남기려다가 지웠어요. 처음엔 새현이가 쓴 시나리오 쏙 여름이한테 제가 반한 줄 알았어요. 이름이 똑같아서 읽을 때 남주에 저 대입해서 읽었거든요. 여름이는 자동으로 새현이로 대입해서 읽게 되더라고요. 대전해 글 읽고나서부터 새현이를 보는데 가슴께가 뜨거워지는 거 있죠. 이게 무슨 일인가, 말로는 설명 할 수 없는 답답함이 새현이 볼 때마다. 몰래 본 죄로 벌을 받는 건가 싶기도 하고. 몸에서 나타나는 이 반응 뭐지, 하고 일주일 넘게 끙끙 거렸던 거 같아요. 이거 뭐지, 뭐라고 하지 이거를. 그러다가 언제였지. 아, 새벽에 새현이 집 근처까지 데려다준 준 적이 있었는데 사실 좀 피곤했거든요? 얘랑 나랑 집이 거리 차가 나서 따로 불러야 하나 어쩌나 싶다가 이미 한 대 불러서 그냥 같이 탔다가 매너는 지키자 싶어서 목적지를 새현이 집 쪽으로 찍고 갔어요. 저는 거기서 계속 택시 타고 있어도 됐어요. 그런데 같이 내리고 싶은 거예요. 의무감? 후배를 안전하게 집까지 귀가 시켜주면 좋은 선배 대접 받겠지 하는. 그리고 애가 발목 접질러서 다쳤기도 하니까.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추워서 후회 엄청 조금 했는데 새현이랑 어색하게 작별 하려니까 또 가슴이 찌릿찌릿 하는 거예요. 몸 중심은 엄청 뜨겁고, 팔 다리는 춥고. 야 진짜 이거 뭐냐.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안녕, 하고 인사했죠. 안녕, 안녕 하면서 뒷걸음 치는데 서로 먼저 보내려고 해서 둘 다 안가는 거예요. 웃기더라고요. 새현이도 웃긴지 막 헤실거리고. 손 번쩍 들고 안녕히 가세요 하는데 진짜. 뜬금없이. 그 순간. 갑자기. 와, 미치겠다. 이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 지금 나한테 잘 가라고 머리 위로 손 흔들면서 인사해주는 쟤가 너무 좋아. 아끼는 후배라서 그런게 아니고, 당장 달려가서 이마에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거예요. 막 벅차오르는 거예요. 그때인 것 같아요. 제가 결국 먼저 애 가는 거 지켜 보다가 발 뗐는데 저희 집까지 한참 걸리거든요? 사람들 출근할 때 저 집 들어갔어요. 밤 샌거죠. 그런데 안 피곤하더라고요. 공강이라서 씻고 누웠는데 천장에 새현이가 둥둥 떠다니는 거예요. 저 심장 어디 못 도망가게 꽉 붙들고 겨우 잤잖아요. 아, 내가 새현이 좋아하는구나. 단순히 귀여워만 하는 게 아니고 좋아도 하는구나. Q. 근데 왜 빨리 고백 안했어요? 마음이 빈곤할 때를 노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 시기에 사람들은 대부분 뭐든 쉽게 결정하고 넘기고 싶어하니까요. 그리고 나중 가서 후회하죠. 무엇보다 제가 확신이 없었어요. 네, 저 많이 쫄렸어요. 나 이러다가 새현이한테 얄미운 선배로 굳어지면 어떡하지. 계속 물었어요. 나 좋아하지? 나 좋아하지? 새현아 너도 나 좋아하지? Q. 나 좋아하냐고 물었다고요? 입 밖으로 말고요, 속으로요. 그리고 눈으로. 네. 겁쟁이 나재민 이라고 합니다. 차마 직접 말할 용기는 없었어요. 맨날 타이밍만 재다가 놓치고 그랬어요. Q. 샛길로 가는 질문일 수도 있는데, 주변에 여자가 왜 그렇게 많아요? 안 그래도 해명하고 싶었는데 감사합니다. 남자도 많아요. 그런데 여자만 많아 보이게 부각 된 거예요. 아는 남자도 많습니다. 그리고 친해 보이는 거지 그냥 필요할 때만 찾고, 놀 사람 없을 때만 찾고 그러는 사이들이에요. 저 워낙에 닫힌 사람이라 진짜 친구 별로 없어요. 그리고 새현이가 구름 다리 위에서 선배 앞에서 울던 여자 분이랑 어떤 사이냐 그러는데 제가 헬퍼로 들어가서 찍었던 애들 졸작 주연 배우셨어요. 연습하다가 감정 격해지셔서 달랜다고 제가 구름 다리로 데리고 나온 거예요. 이제 오해 그만. Q. 시간이 많이 지났네요. 사귀는 건 어떻게? 제가 먼저 하려고 했는데 새현이가 쫑파티 할 때 따로 불렀어요. 술기운 빌려서 용기 얻었길래 얘가 속마음 꺼내려고 이러는구나 싶어서 깨우려고 편의점 데리고 가서 물 사다 먹이고, 바람 쐬게 하고, 같이 가게 근처 걸어다녔죠. 새현이가 선배님 저 귀여워요? 묻길래 그렇다고 답하고, 얼만큼 귀여워요? 하길래 뽀뽀해주고 싶은 만큼 이라고 하니까 장난 좀 작작 치라고 하면서 때렸어요. 야 내가 뽀뽀하면 어쩔건데 하니까 어디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한다, 나 한다, 니가 하라고 했다, 진짜 한다, 동의 얻었다 해놓고서 가까이만 갔죠. 술 덜 깬 애 상대로 그런 짓 하면 안되는 거잖아요. 빤히 쳐다보니까 왜 쳐다보냐고 하길래 좋아서, 라고 하니까 좋다면서 왜 자기 안 받아주냐고 나쁘다고 그래요. 좋아하는 거 알면서 일부러 갖고 노냐고. 이래 보여도 소심해서 새현이가 저 좋아하는 거 티낼 때면 어떡하지, 고백각인가 이러고 땀만 흘렸었거든요. 제가 아니라고, 나도 너 좋아한다고 하니까 됐다고 장난 치지 말라고 손 내저어서 잠 깨라고 얼굴 잡고 마구 흔들어줬죠. 새현아. 네. 새현아. 네. 새현아 술 깼어? 네. 안깼네. 네. 우리 사귈래? 아니요. 왜? 장난치지 마세요. 아닌데. 장난 아니야. 나 너 좋아해 새현아. 녹음 할 거예요. 그래, 해. 하고서 진짜 음성 녹음 틀길래 친절하게 핸드폰 가까이 대고 녹음해줬죠. 새현아, 나중에 술 깨면 꼭 다시 들어봐- 하고. 쫑파티 파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잠 못 자고 깨있었어요. 새현이가 자고 일어나서 녹음001 듣고 놀라 저한테 다시 전화할 때까지. 잤다가 새현이 연락 못 받으면 어떡해요, 역사적인 순간인데. 그래서 못 잤죠. 선배님 이거 뭐예요? 하고 물어보는데 웃음 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겨우 참으면서 뭐긴 뭐야, 우리 둘이 사귄다는 증거지. 했더니 건너편에서 뭐 던지는 소리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새현아? 새현아? 하고 부르니까 네 선배 하고 대답은 했어요. 새현아 다시 듣고 싶으면 말 해. 하니까 잠잠하더니 다시 말 해주세요. 하더라고요. 아, 진짜 자꾸 실실 웃음이 나와서 진지해야 하는데. 새현이도 기가 막힌지 허허 거리고 있고. 같이 끅끅 거리다가 진정되고 나서 목 가다듬고 새현이를 불렀어요. 새현아. 네. 우리 사귈래? Q. 네. ** 여러분 오늘 제가 에버랜드 나랑 사귈래 영상 보고 기절했다가 일어났어요. *** 짝사랑이 돌아왔다가 이렇게 완결이 났습니다ㅠㅠㅠㅠ대박...ㅠㅠㅠㅠㅠ저의 영감이 되어주신 복학하신 선배님께 남모르는 영광 돌립니다... **** 여러분 대학에 재민 선배 없습니다.^^ ***** 오늘 문달이 생일이에요!!! 생일 넘기지 않고 글 올릴 수 있어 기뻐요 ㅠㅠㅠ히히 감사해요 달달♡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 ****** *1- 나재민 *2- 선배 *3- 자꾸 *4- 마음이 시끄러워 *5- 장난은 그만하고 *6- 진지한 교제 어때요 *7- 그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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