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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조 안 인어 


 

w. 문달 


 


 


 


 


 


 


 


 


 


 


 


 


 


 


 

chapter 6. 새벽은 친절한 편 


 


 

문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처음엔 꿈인가 싶었다. 신경질적으로 걷어찬 이불과 함께 잠도 달아났다. 잔뜩 눌린 뒷머리를 긁으며 바닥에 두 발을 디뎠다. 


 


 

"엥, 엄마…!" 


 


 

방과 방 사이도 멀어서 이 정도로는 들리지도 않을 텐데 엄마는 조용히 하라며 검지를 내 입술에 갖다 붙였다. 

엄마의 방은 1층에 있는 작은 갤러리 옆이다. 액자들이 걸려있는 복도를 지나 코너를 한번 꺾어줘야 나오는 곳에서 엄마는 이 새벽에 꼭대기 층까지 걸음 했다. 


 


 

"아직 자고 있으면 어떡해? 물은 갈아주고 퍼질러 자는 거야?" 


 


 

"그거 때문에 온 거야? 뭐, 지금 가면 되지~ 가, 가. 내려가서 주무세요~" 


 


 

"잘하자~? 응? 잘해? 신입 주제에 너무 풀렸다?" 


 


 

"엄마 꼰대구나? 알아서 합니다요. 얼른 가라구." 


 


 


 

엄마의 등을 떠밀며 정우 방으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중간에 멈춰서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어둠 속에서도 엄마의 부릅뜬 눈이 보였다. 

대충 손을 흔들어주고는 숨 한번 돌리고 문고리를 쥐었다. 


 

매일 청소하는 넓은 이 방은 주인의 손 하나 타지 않은 채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영화관 부럽지 않은 텔레비전을 정우는 한 번도 켜보지 못했을 것이다. 디비디들은 물론이거니와, 몸을 폭 감싸주는 침대에 정우는 한 번도 등을 대보지 못했을 것이며,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치고 창문을 열지도, 드레스룸에서 입고 나갈 옷들을 휙 휙 넘겨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단 한 번도. 

백화점 남성복 코너 하나를 싹쓸이해온 듯한 옷들은 전부 택하나 떼지 않은 새것들이었다. 나는 아들의 몸이 성장하는 것을 보며 입지도 못할 옷들을 갈아치우고 거는 걸 반복하는 사장님을 상상했다. 

아까 전 들어오면서부터 손에 걸리는 의자라든지, 장식장이라든 지를 다 훑으며 왔는데 먼지 하나 쓸리지 않았음이 떠올랐다. 팔에 닭살이 돋았다. 끔찍한 정성이었다. 언젠가 튼튼한 제 두 다리로 욕조에서 걸어 나올 아들을 사장님은 매일, 몇 년을 준비하며 기다리고 계시는 거였다. 

이 집에 발 디딘 지 얼마 안 된 신참도 느끼는데 당사자는 더하겠지. 

갑자기 뭉클해져서 딴짓하기를 멈추고 곧장 욕실로 달려갔다. 정우가 가여웠다. 


 


 

"정우야아…." 


 


 

애매하게 팔 벌리고 다가가는데 정우가 한껏 눈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늦게 온 것에 대해 채근하는 눈치였다. 모르는 척 가까이 다가가 욕조 밖에 늘어져 있는 정우의 손을 잡고 뺨에 비벼댔다. 정우가 손을 빼면서 얼굴을 밀어냈다. 


 


 


 

"제정신이야?" 


 


 

"사실 졸려서 반 정신인 것 같아." 


 


 

"빨리 네 할 일 하고 나가." 


 


 

"제정신 아니라서 그런데 또 오일 발라줘야 하나?" 


 


 

"잘리면 정신 차리겠지." 


 


 

빈정대는 말투에 무시로 일관하고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나저나 안 잤어? 눈깔을 엄청 초롱초롱하게 뜨고 있어서 들어오자마자 놀랐잖아." 


 


 

눈깔이라는 단어가 걸리는 모양인지 미간까지 찌푸려가며 째려보다가 간결한 대답을 내놨다. 


 


 

"나는 잠 안 자." 


 


 

"뭐? 거짓말하네. 사람이 어떻게 잠을 안 자." 


 


 

뾱. 제법 발랄한 소리와 함께 배수구를 막고 있던 마개를 뽑았다. 

뒤이어 몰려나가는 물의 행진 소리는 듣기 좋진 않았다. 


 


 

"못 자. 자면 아파." 


 


 

"어디가 아픈데?" 


 


 

"내가 의사도 아닌 너한테 그걸 왜 말해야 하는데?" 


 


 

"참, 나. 됐어. 그럼.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 딱히 안 궁금해." 


 


 

말하기 싫은 이유가 있겠지. 굳이 캐내고 싶진 않았다. 정우 말마따나 내가 진찰하러 온 것도 아니고. 후루룩. 굵고 무서운 소릴 내며 물이 다 빠졌다. 

슬쩍 쳐다본 정우의 다소곳이 모아진 발은 뽀얗고 반질거렸다. 은은하게 출렁거리는 환한 불빛에 도드라진 부분들이 만지고 싶게 미끈했다. 

눈빛이 느껴졌는지 발가락을 오므리며 짜증이 툭 터졌다. 


 


 

"뭐 해? 얼른 하고 나가라니까." 


 


 

"재워줄까?" 


 


 

"내 말은 어디로 들었어? 아파서 잠 못 잔다고." 


 


 

"그래도 잠이 들면 그 순간은 아픈 것도 잊히지 않아? 나도 그런 적 있거든. 자기 전까지는 엄청 고통스러운데 잠든 잠깐은 감각이 없어." 


 


 

"그래 봤자 끙끙거리면서 깨. 그럼 더 아파. 진정되기까지가 얼마나 힘든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러면 같이 밤을 새워볼까 친구야?" 


 


 

"야." 


 


 

"응?" 


 


 

"너 매우 최악이야." 


 


 

"하하, 나도 그렇다니까." 


 


 

괴고 있던 팔을 푸르고 녹아 흐물거리는 초들을 거둬냈다. 새로운 초를 꺼내 촛대 위에 올리고 불을 붙였다. 


 


 


 

"나 네 꿈 꿨다?" 


 


 

"안 궁금해." 


 


 

"꿈에서," 


 


 

"저기 끄트머리가 네 지정석이야 저리 가." 


 


 

정우 손이 다시 한 번 내 머리통을 밀쳐냈다. 나는 순순히 정우 발치 쪽으로 가 욕조에 기대앉았다. 


 

"칫. 하여튼 들어봐. 내가 꿈을 꿨는데 네가 내 방으로 찾아왔어." 


 


 

"지어낸 거지? 일부러 나 골리려고?" 


 


 

"아니거든. 끝까지 들어라. 어쩐 일이냐고 물으니까 네가 무표정으로 나 내려다보면서 너 한 대 때려주려고 하고 진짜 주먹으로 내 머리 내리쳤다니까?" 


 


 

"푸핫!" 


 


 

"너 지금 웃어?" 


 


 

"기침한 거야." 


 


 

"얼씨구, 뻔뻔하게 기침이래." 


 


 

"창문 깼잖아. 얼마나 추웠는지 알아? 넌 이제 해 뜨면 아웃이야. 나가서 짐이나 챙겨." 


 


 


 

정우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안으로 들어오는 새벽바람에 촛불이 일제히 흔들렸다. 그 말에 입을 다물고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다가 불같은 눈총을 받았다. 


 


 

"사람 잠 다 깨우고 뭐 해? 네 할 일 끝났으면 나가라고 몇 번을 말하는데." 


 


 

"잠 안 잔다며. 자지도 않은 잠을 언제 깨웠다고, 참." 


 


 

"눈은 뜨고 있는데 정신은 가끔 졸아." 


 


 

그렇게 변명하는 정우는 물고기 같았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는 않게, 그러나 출렁이는 물결선과 아주 떨어지지는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헤엄치는 물고기. 둥둥 떠다니다 너무 가만있었다 싶으면 황급히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나는 잡으라면 잡을 수 있는 물고기를 두 손으로 꽉 잡아 올렸다. 


 


 

"그리고 내가 같이 밤새준다 했잖아, 친.구.야." 


 


 

"너. 경고하는데 내 몸에 손대지 마." 


 


 

얼얼하게 손등을 내리친다. 나는 먹기만 하고 온종일 앉아만 있으면 배만 볼록 튀어나오던데. 정우는 삼시 세끼 다 챙겨 먹고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앙상했다. 마른 손에 야단맞는 게 아파서라도 건들지 말아야겠다. 


 


 

"사장님도 너 잠 안 자는 거 아셔?" 


 


 

"몰라. 모르니까 얘기하지 마. 돈 벌고 싶으면." 


 


 

"잠든 너 보고 가시지 않아?" 


 


 

"자는 척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그래도 착한 아들은 되고 싶었나 보지. 산만하게 움직이던 발이 드디어 원하던 걸 찾았다. 수납장에서 돌돌 만 수건 두어 개를 꺼내 바람이 들어오는 구멍에 쑤셔 넣었다. 바깥의 소음이 꽉 막혔다. 이제 됐지, 안 춥지? 

의기양양한 표정을 하고 내려다보니 어쩌라고 식의 눈빛이 따라온다. 


 


 

"동이 트면 제일 먼저 해줘야 하는 일이 있어." 


 


 

"아침에 네 물 갈아주는 것보다 먼저?" 


 


 

"...두 번째로 해줘야 하는 일." 


 


 

"오, 방금 정적에 너 좀 귀여웠다." 


 


 

정우의 하얗고 고와 보이는 뺨을 꾹 눌러보려다 제지당했다. 이놈의 마른 손은 힘까지 셌다. 약간 비틀린 채 잡힌 집게손가락에 엄살을 부리며 정우를 노려봤다. 


 


 

"창문 새것처럼 만들어 놔." 


 


 

"뭐? 내가 해...??" 


 


 

"점심때 전까지." 


 


 

"야, 너무한다. 샷시 가게 가서 사람 불러와도 점심때 어쩌면 넘길 수도 있고, 어?" 


 


 

"나 감기 걸린 거 같은데. 어떡할 거야?" 


 


 

"협박 좀 할 줄 아네. 아야, 장난 아니고 진심으로 아프니까 이거 좀 놔." 


 


 

순순히 놔주면 안 되나. 꼭 던지듯이 놔야겠나. 정우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노려다 봤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으며 정우는 일부러 내 얼굴에 대고 마른기침을 했다. 


 


 

"근데 그거 알아? 너 처음 만났을 때보다 말 많아진 거." 


 


 

"내가 배운 말이 있는데 근묵자묵이라고," 


 


 

"근묵자흑이겠지." 


 


 

정우는 무안해질 때면 괜히 남을 원망하는 편인 것 같다. 내가 잘못 안 건 맞지만 인정하지는 않겠다. 그러니 네가 날 대신해라. 이렇달까. 

나는 크게 숨을 내쉬며 열심히 공부하는 모양이구나, 하고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했다. 


 


 

"언제 그만둘 거야? 나 너 싫어." 


 


 

"하하하, 나도 너 안 좋아해." 


 


 

"재수 없어." 


 


 

"너만 그런 게 아니란다." 


 


 

"너 말하는 거 짜증 나." 


 


 

좋게 말하면 자기감정에 솔직해서 좋고 나쁘게 말하면 이기적이고 못돼먹었다. 면전에 대고 멸시하는 게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모양인지 가슴께까지 다 차오른 물속으로 잠겨버린다. 보글보글 거품이 터졌다. 

투명한 물이 정우가 가진 살구빛깔로 넘실거렸다. 나도 모르게 욕조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휘휘 저었다. 사방으로 거칠게 물을 튀기며 정우가 상체를 일으켰다. 곧이곧대로 맞아 젖어버린 머리를 침착하게 넘기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넌 내가 다리 병신인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해. 아니었으면 진작에 일어나 너 끌고 나갔어." 


 


 

"다리 병신이라니. 위험한 워딩이네. 그런 말 쓰지 마." 


 


 

"야." 


 


 

정우에게 들은 `야` 중에 제일 낮고, 둔탁하고, 응축되어 있었다. 뭐가? 분노가. 이번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봤다. 속으로 이마에 달라붙은 정우의 앞머리를 시원하게 넘겨주고 싶다 생각하며. 


 


 

"꺼져. 사라져." 


 


 

"너 잠드는 것만 보고 갈게." 


 


 

"아까 뭐 들었어? 나 잠," 


 


 

"잠드는 척은 잘할 거 아니야. 나도 척 할 테니까. 우리 구질구질한 식순은 차려보자." 


 


 

그 말에 정우는 암묵적으로 동의해줬다. 대답 대신 내쉰 긴 한숨이 내 코앞까지 닿았다. 수건으로 막기 전까지 들락거렸던 바람 같았다. 


 


 

"가장 왼쪽 서랍 열어보면 책 있어. 아무거나 갖고 와서 읽으면 돼." 


 


 

정우는 고개를 창 쪽으로 꺾은 채 말했다. 끝이 빨간 귀와 위아래로 움직이는 까만 속눈썹만 보였다. 나는 정우가 일러준 대로 끌리는 아무 책이나 가져왔다. 


 


 


 


 

- 널,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된단다. 


 

한때는 네 존재를 지우고 싶었다. 벅벅 긁어내고 싶었다. 

미안하다. 네가 평탄한 내 인생길에 가장 번거롭고 무거운 바위 같았다.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던 밤에 목이 찢어져라. 우는 너를 안고 너도 쓸려가라, 너도 씻겨내려 가라 저주를 퍼부었던 적이 있다.- 


 


 


 

"미안해. 내가 아무래도 책이 아니라," 


 


 

"계속 읽어." 


 


 


 

책이 아니라 누군가의 일기를 꺼내 든 것 같다고. 이번엔 정말 미안할 짓을 했다. 정우는 내 말을 단칼에 자르고 여전히 나에게서 얼굴을 돌린 채 읽으라 시켰다. 정우의 귀 끝은 여전히 빨갛다. 나는 그의 눈치를 보다 눈을 돌렸다. 


 


 


 

-숨이 넘어갈 것 같으면서도 목이 늘어나게 내 옷을 꽉 쥔 작은 손이 가여워서. 네가 뭔 죄가 있겠니- 불쌍해서. 너 울기도 바쁘면서 손등으로 내 눈물까지 받아낸 작은 네가, 그리고 내가 불쌍해서라도 살아야겠다. 너랑 살아야겠다. 사랑해야겠다. 너를.- 


 


 


 

"이제부터 자는 척할게. 그럼 돼?" 


 


 

"어? 어! 그래. 응..."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려왔다. 정우는 열심히 자는 척을 했고, 나는 서둘러 그리고 조심히 소리 나지 않게 일어나 나갔다. 

창문마다 달린 커튼들을 쳐냈다. 바깥은 벌써 하얗게 번져 있었다. 


 


 


 


 


 


 


 


 


 


 


 


 


 


 


 


 

Chapter 7. 착각 


 


 


 

아침부터 밤까지 내가 아닌 남의 생체리듬에 맞춰 생활한다. 하루에 걸쳐 그 애를 생각하는 일. 수고스럽지만 그에 맞는 보상을 받기에 내 시간을 바치는 것이 억울하지는 않다. 


 

기억은 있는데 감각은 없어서 해가 뜨고 난 뒤 다시 찾은 정우는 낯설었다. 

새벽에 꽤 긴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은데 초면인 것처럼 굴었다. 

나는 겸연쩍었고, 정우는... 


 

싸가지가 없었다. 


 


 


 


 


 

"좋은 앛!" 


 


 

"말 걸지 마." 


 


 

"침이네 정우야!" 


 


 


 

정우가 얕게 콧방귀 뀌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대꾸하지 않겠다. 이거지. 정우는 나를 계속해서 무시했고, 나는 굴하지 않고 추근댔다. 

창밖으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하얀 물체가 보였다. 정우 방으로 오기 전에 유리가게에 전화했던 것과 외국으로 일하러 가신 사장님이 생각나 허겁지겁 말을 뱉었다. 


 


 

"이따 열 한시 즘에 수리 기사님이 창문 견적 보러 오신댔어!" 


 


 

"..." 


 


 

"그리고 사장님은 내일모레 저녁 비행기 타고 오실 거래!" 


 


 

"..." 


 


 

"아침 햇살 받는 네가 매우 예뻐서 그런데 사진 찍어도 돼?" 


 


 

"미쳤어?" 


 


 

"미칠 거까지야. 도도림의 도도오발에 넘어오신 것을 축하합니다." 


 


 

박수를 쳐주자 한심하다는 눈길로 흘기다 다시 창밖을 바라본다. 

정우의 반응을 끌어내려고 막 끄집어낸 말이기도 했지만, 진심도 조금 섞여 있었다. 정우는 맑은 하늘색이 잘 어울렸다. 하늘이 비치는 투명한 갈색 눈동자가 아련해 보였다. 인간이 어쩜 저렇게 생겼냐. 손에 수건을 들고만 있는 채로 턱을 괴고 구경했다. 


 


 

"심심하다. 심심하지 않아, 정우야?" 


 


 

"안 심심해." 


 


 

"어. 이제 대답해준다." 


 


 

"너 근무 태만이야." 


 


 

"정우 너 진짜 아는 똑똑한 단어 많다. 근무 태만이라니." 


 


 

"날 얼마나 가만히 앉아만 있는 멍청이로 보는지 모르겠네." 


 


 

"미안, 무시한 건 내 잘못. 근데 내가 진짜 편한가 보네. 그래도 두 살 위 누난데." 


 


 

"편하게 하라며." 


 


 

"나 편해? 정우 너 나 편해?" 


 


 

"불편해." 


 


 

"난 아닌데! 난 정우 아주 편한데!" 


 


 


 

순 거짓말이다. 나라고 편하겠는가. 애도 아니고 다 큰 성인 남성의 벌거벗은 몸을 정성스레 닦고, 기름칠해주고, 청결 유지를 위해 물도 밤낮없이 서너 번 이상 갈아줘야 하는데. 게다가 욕실도 웬만큼 커야지. 곰팡이 생기지 않게 청소도 구석구석 광나게 해줘야 하고. 내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사장님이 일 중간에나, 마치고 돌아오셔서 하셨다는데 거의 정신력으로 관리하신 게 아닐까 싶다. 


 


 

바지 주머니에 진동이 느껴졌다. 유리 아저씨인 것 같아서 화면도 대충 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아, 앞에 오셨어요? 제가 바로 내려가서 문 열어드릴게요!" 


 


 

후다닥 달려나가려는데 축축한 느낌이 손목에 닿았다. 미끄러질 뻔한 걸 엉덩이를 뒤로 찧음으로 겨우 면하고 정우를 째려봤다. 


 


 

"지금 나가봐야 해." 


 


 

"여기는 못 들어와." 


 


 

"왜? 아." 


 


 

자기가 잡아놓고서는 바로 손을 쳐낸다. 잔뜩 굳은 얼굴을 하고서 정우가 다시 한 번 안된다고 했다. 

원래 사장님 외에는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정우였다. 그나마 내 오기로 이겨 먹어 들락거리는 중이었다. 정우 자리에 있어야만 유리 교체를 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렇게 된다면 정우가 자리를 비켜야 한다는 소린데 그건 둘째치고서라도 우선 발을 들이는 것부터가 허용이 안 됐다. 


 


 

"너도 겨우 참고 있어." 


 


 

"그래도 봐야 견적 뽑고 갈아 끼우든 하지..." 


 


 

"싫어." 


 


 

"새삥으로 돌려놓으라며. 새 걸로 만들어놔야 하는데 또 함부로 사람은 못 들인다? 그럼 뭐, 나보고 직접 하란 거야? 그래도 어쨌거나 네 머리 닿는 바로 옆자리라 협조해줘야 하는 건 매한가지야." 


 

정우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취할 수 있는 경계였다. 불친절하게 말했던 게 문제였지. 사장님이 꼭꼭 숨겨놓고 키운 이유도 있을 것이고, 같은 성별을 가졌어도 초면에 맨몸을 보이기 껄끄러울 것이다. 그리고 움직이지 못하는 다리와 물에서 나오자마자 흉하게 변한다던 피부도 골칫거리였다.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골똘히 생각한다고 받지 못했다. 돌돌 말린 수건을 임시방편으로 쑤셔 넣은 창문을 보며 과거의 유리 깬 범인 도씨에게 욕을 씨부렁거렸다. 


 


 


 

"내 방에 잠깐 있는 건 어때? 그나마 여기서 제일 가까우니까! 너 그, 너, 피부 막 일어나는 거! 그 전에 가면 괜, 찮지 않을까?" 


 


 

"난 여기 처음 몸을 담그게 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나가본 적 없어." 


 


 

"...그럼 이번 기회에!" 


 


 

"헛소리 작작해. 다른 방법 알아봐. 그 수리기사는 보내고." 


 


 

"야." 


 


 

"네 잘못이잖아." 


 


 

정우의 말이 내 목을 옥죄였다. 두 손을 모아 물을 담은 뒤 손가락을 쫙 펴서 떨어트리는 걸 같이 보고 있었다. 뒷짐을 진 내 손에선 진동이 계속 울렸다. 


 


 


 

"뭐가 그렇게 당당한데? 네가 잘못한 건데 내가 왜 협조를 해. 내가 왜 굳이 자리를 옮겨야 하는 고생을 해야 해? 너랑 같이 있는 것도 고역인데 여기서 모르는 사람을 더 들이라고?" 


 


 


 

교무실에 끌려와 훈계 듣는 학생처럼. 분위기가 꼭 그랬다. 침착하게 쏘아대는 어조와는 다르게 다리가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정우의 치부를 보기가 미안해서 문 쪽으로 뒷걸음쳤다. 정우와 차마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고 바닥만 뚫어져라. 들여다봤다. 

틀린 거 하나 없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확실하게 못 박는 말이었다. 생각 없이 촛대를 던져 창을 깬 일과 깨진 유리처럼 날카롭게 구는 정우에게 무람없이 굴던 내 모습이 지나가는데 낯이 뜨거웠다. 촛대는 뭐 그리 단단하고 창은 뭐 그리 약한지 - 하며 내가 한 짓을 작게 만들려고 했다. 


 


 

"미안해." 


 


 

정우는 당연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나만 그랬다. 이기적인 내 생각으로만 여기까진 괜찮다, 판단했다. 

이대로 계속 서 있다가는 꼴사납게 울기까지 할 것 같아서, 어처구니없어하는 투로 울기는 왜 우냐는 말을 들을 것 같아서, 사과만 던지고 바로 나와버렸다. 


 


 


 


 


 


 


 


 


 


 


 


 


 


 


 


 


 


 


 


 


 


 


 


 


 


 


 


 


 


 


 


 


 


 


 


 


 


 


 


 


 


 

여러분이 이 글을 기다리고 계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8ㅁ8 그저 정우가 예뻐서 뻐렁치는 마음에 두고두고 쓰겠다고 메모처럼 남긴 글이었는데...!!!


이런 글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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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너무 좋아요ㅠㅠㅠㅠㅠ 정우도 너무 아름답구,,, 도림이가 정우를 잘 키우는거같은(? ㅜㅠㅠㅜㅜㅠㅜㅠㅠㅠ
5년 전
문달
도림쓰 정우 육아일기!!! 사실 둘 다 어리고 미숙해서 서로가 서로를 돌보며 자라나는 아름다운 성장 이야기..를 쓰거 싶었답니다 ^-^
5년 전
독자2
정우 너무 마음이 아파요 도림이두 애같지만 그래도 애같아서 정우룰 좀 더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요ㅜㅜㅜㅜ 일기도 들으면서 얼마나 속상했을까ㅜㅜㅜ 뭔가 정우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요 정우 보고싶다ㅜㅜㅜㅜㅜㅜ
5년 전
문달
우왓 정우 목소리가 들리셨다니 감격스랍슴미다 문달 성공했다! 예쁜 정우 레귤러 뮤비에서 가치 봐용~ㅠㅠㅠ
5년 전
독자3
토끼또잉이에요! 자까님ㅠㅠ 정우ㅠㅠ 진짜 이 글 읽을때마다 정우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ㅠㅠ 자기 상처 안 받으려고 엄청나게 가시 세우고 방어하는 거 같아서ㅠㅠㅠ 정우가 도림이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의지하게되면 좋을 거 같아요ㅠㅠ 으아앙ㅠㅠ 다음 편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당! 감사해요 자까님💚
5년 전
문달
다음편이 또 언제 돌아올 진 모르겠지만 늦지 않게 올게용💚
5년 전
비회원183.145
어떻게 보면 정우가 직설적이고 ,,,^^는 사람같지만, 또 한 편으로는 정말 순수하게 그러는 걸 알아서 귀엽고 또 안쓰러운 것 같아요ㅠㅠ 아참 전 물매용,,,,
5년 전
문달
앗 ^^는 사람 이 뭔지 궁금하군요! ㅋㅋㅋㅋ
5년 전
비회원81.93
와 지인짜루 대박 진짜 .. 너무 좋아요 작가님.. 필체 실화세요? 그냥 소설 한 집 내주세요 바로 결제할겡ㅅ,, 혹시 암호닉 받으시나요?
5년 전
문달
헉 안니에용 감사합니더ㅠㅠㅠ야호 칭찬 받앗서 랄룰랄 ㅎㅎㅎ 암호닉은 암호닉 공지방에서 따로 받고 있슴다 ㅎㅁㅎ
5년 전
독자4
라나입니다! 정우 입장에서는 당연히 날 세울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얼른 친해져서 마음 열었으면 좋겠고.. 그러네요 ㅋㅋㅋㅋㅋㅋㅋ 안쓰럽기도 하구요 ㅠㅠ
5년 전
독자5
작가님ㅜㅜㅜㅜㅜㅜㅜ최고 어떻게 이렇게 분위기를 잘 표현하세요 매우 부럽습니다...
5년 전
독자6
앜 작가님ㅠㅠㅠㅠㅠ 제가 씇햐먹어서ㅠㅠㅠㅠ 드디어 댓글달수있어ㅠㅜㅠㅜㅜ 1편도 너무너무 재밌게봤는데 2편도ㅠㅠㅠ 진짜 정우.. 인어랑 너무 찰떡인것같아요 그 이어북에 어께내놓은 그거 생각하면 뭔가 더 잘 맞아떨어진다고해야할까요....? 무튼 너무 좋아요ㅠㅠㅠㅠ /유루
5년 전
비회원242.121
와 이번것도 너무 대박적ㅜㅡㅜㅜ이런 소재 너무 좋아요ㅜㅜㅠㅡㅜㅜㅠㅡ인생 글 또 하나 생겼네요
5년 전
비회원242.121
이거 오래오래 연재 하시는건가요?ㅜㅜㅜㅜㅡ 저 진짜 너무 좋아서 여러번 보고있어요ㅎㅎ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오랫동안 해주시면 감사하겠 아니 그거 상관없고 그냥 이런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ㅜㅜㅜ 와 진짜 작가님 필력 대박이고 무슨 소설책 읽는것같아용ㅡㅜㅜ
5년 전
비회원120.153
ㅠㅠㅠㅠㅠ 정우입장도 이해가는데 ㅠㅠㅠ 작가님 오래오래 써주세요 ㅠㅠㅎㅎㅎㅎ
5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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