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을 사랑하라
다음날 신발 앞코를 닦으며 후회 할 거라고 했던 내 예상은 시원하게 빗나갔다.
“아 미친... 그걸 왜 빌려줘서...”
후회는 이동혁 얼굴 볼 일이 생겼을 때부터 시작이었으니까.
앞집 산다고 그릇같은 거 빌려주는 게 아니었는데 대체 왜 그 때는 좋다고 빌려준 거야?
엄마, 엄마가 어려서부터 남한테 베풀고 살아야 된다고 그렇게 가르쳐서 내가 주말 낮부터 전남친 집에 그릇 찾으러 가게 생겼어...
“웬일이냐, 잘 시간에.”
“나 그렇게 게으르진 않거든? 그릇 찾으러 왔다. 내가 와야겠냐?”
“깜빡했어.”
찔리기는 하는지 뒷목을 긁적인 이동혁이 옆으로 비켜 섰다. 지금 나보고 들어오라고 하는 거지? 아니 얘는 무슨 애가... 할많하않.
“뭐해, 안 들어오고.”
“그, 오래 걸리는 거면 굳이 지금 안 줘도 되는데.”
“오래 안 걸려.”
결국 못 이겨서 이동혁네 집에 두 번째로 입성하게 된 건 낫 시크릿... 역시 술먹고 떠든 사람만 신경 쓰이고 후회하는 건가, 하긴 나도 이동혁이 술 마시고 그런 소리 했으면... 엄청 신경 쓰였을 것 같은데? 쟨 뭐야.
“이동혁 존나 여전하다. 뭐 빌려가서 잘 안 주는 거.”
“깜빡했다고.”
“웃기네, 옛날부터 지금까지 매번 깜빡하는 건 지능문제 아니냐?”
“그 땐 너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그런 거고.”
표정 하나 안 변하고 그런 말을 꺼내는 이동혁에 괜히 울컥 치미는 감정을 애써 눌렀다. 애매하게 굴지 말라고 선 그은 건 본인이었으면서 왜 말을 저렇게 해 시발. 애매라는 직업 있었으면 이동혁이 장관이었을 듯.
“그냥 이렇게 줘도 돼?”
“뭐 어때, 바로 앞인데.”
생각해보니까 이 그릇도 헤어지고 물건 정리 하다가 이동혁이 사준 그릇 버려서 새로 산 거였는데. 새삼 저 손에 들려있는 거 보니까 뭔가 묘한 게 웃기기도 했다.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거야 너랑 나는.
“가게?”
“그럼 뭐 철판 깔고 커피라도 달라고 해?”
“그래도 되는데.”
“어?”
“그래도 된다고.”
나 너한테 할 말 있어.
콩팥 떨린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이 나이 먹고 처음 알았다. 내가 지금 이동혁 할 말이라는 것 때문에 손에 땀까지 다 차고 진짜 별 짓을 다 해보네. 할 말이 뭔지 알지도 못 하면서.
그냥 이동혁이랑 나란히 앉아있는 지금이 너무 별로였다. 야, 어떻게 헤어졌는데 이러고 있어 우리가. 다시 안 보기로 한 사이끼리 다시 보게 됐다고 갑자기 이러는 건 심신에 해롭다 못해 현타를 불러 일으킨다니까?
“별 건 아니고, 어제 네가 한 얘기 듣고 생각한 건데.”
"쿨럭,"
피융... 피융... 피융신... 내가 또 술 처 마시면 성을 간다. 엄청 파격적인 걸로 막 브리트니 여주 그런 거 한다 내가.
“...신경쓰지 말고 할 말해. ”
“우리 헤어진 거 네 탓 아니라고.”
“그 얘기를 굳이 지금 해버린다고?”
“물론 네 잘못이 더 크긴 한데.”
“근데 이새끼가...”
이동혁 입에서 헤어진 날 얘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식일 줄은 몰랐는데요? 내 잘못이 더 큰 것도 맞는데 얼굴에 대고 그렇게 말하는 새끼가 어디있어. 분명 이런 말 꺼내는 것부터가 어색해서 그런 거겠지만 그런 사소한 것까지 정말 이동혁다워서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저런 모습을 좋아했었던가.
“내가 도망친 것도 있어. 이해 하려고 했으면 너 얼마든지 이해 했을 거야, 근데 그 땐 그러고 싶지가 않더라고. 너랑 내가 거기까지 간 게 싫어서.”
몇 년이 지나고, 몇 십년이 지나도 그 때 헤어진 이동혁의 진심 같은 건 구경도 못 해볼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엔 헤어졌고, 내 잘못이었고 그렇다면 이동혁과 이런 얘기를 하는 날이 올 리가 없으니까.
그런데 예상할 새도 없이 맨정신에, 대낮에 이런 기회가 와 버리면 뭐 어떻게 해야 돼?
“일년 동안 진짜 별 짓 다했어. 정신병 오는 줄.”
“...와.”
“너 방금 나도 그랬는데, 이런 생각 했지.”
“아니, 아닌데?”
“퍽이나.”
우리 1년동안 흑역사 창출해내면서 개고생 한 건 어떻게 해야 되는데?
지금도 헤어졌다는 사실을 문득 느끼면 가슴이 먹먹한 게, 아무래도 이동혁한테 남은 감정이 아예 없다고는 말 못 하지만 그래도
“결론은 뭔데?”
“나 너 못 잊었다고. 얼굴 보고 지내니까 확실하게 알겠어.”
그래도 이렇게 쉽게 다시 시작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끝이 얼마나 어려웠는데.
“방금 그 말에 대답 필요하지?”
“당연한 거 아니냐.”
떨고 있다. 그 이동혁이, 나 때문에. 얘가 원래 이런 캐릭터가 아닌데 사랑이 뭐라고 애를 이렇게까지 바꿔 나쁜 놈아... 엉엉. 아무튼 사랑은 미친짓이 분명.
“내가 영화를 봤는데.”
“어.”
“헤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만날 확률이 82프로래. 근데 그렇게 다시 만나도 잘 되는 사람은 3프로밖에 안 된다고 그러더라. 나머지 97은...”
“다시 헤어지겠지, 처음이랑 같은 이유로.”
“어떻게 알아?”
“너 그거 나랑 같이 봤는데.”
“미친... 내 과거에서 나가주라...”
이동혁이랑 헤어지고 그 영화를 몇 번이고 다시 돌려보면서 다짐했었다. 그래, 헤어진 사람한테 미련 같은 거 같지 말자. 잘 되는 경우는 3프로밖에 안 되니까.
백 명 중에 세 명만 잘 되는 꼴이라고. 그런 일이 나한테 생기기란 쉽지 않다고.
“그래서 그게 네 대답이라고?”
“어, 웃기긴 한데 난 그 말 믿어.”
온갖 용기 다 냈을 이동혁에게 결국 꺼낸 말이 그거였다. 배려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년... 사실 그 때나 지금이나 도망만 치는 건 나일지도 몰랐다. 이동혁은 그래도 마지막에 항상 저렇게 할 말은 해줬는데.
“너 영화 제대로 안 봤지. 하여튼 맨날 로맨스 보면 잠만 자요.”
“아니거든? 나 그 영화 8번 봤어.”
“근데 왜 그것만 기억 하는데.”
“그럼 뭐.”
“그 다음 있잖아. 로또.”
로또? 이동혁 말에 주마등처럼 영화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나 진짜 보다가 잔 거 아닌데 로또라니 왓 로또... 내 인생에 로또가 자신이었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지금.
“모르네.”
“아 뭔데 그게.”
“로또가 당첨 될 확률이 8백만분의 1인데 일등이 매주 몇 명씩 나온다고. 8백만분의 1인데.”
“아.”
“그럼 3프로는 되게 큰 숫자라고. 기억 났냐?”
“어, 남자주인공 얼굴도 생각난다.”
“그건 빼.”
이동혁이랑 나랑 둘이 머쓱 핑퐁 하는 것도 아니고 이동혁이 괜찮아지면 내가 머쓱해지는 마법. 우리가 이상하긴 해도 잘 맞긴 했구나... 하는 기분을 이런 일에서 느끼면 안 되지 참.
“그리고 아예 모르던 사이에서 연애하고 헤어지기까지 했는데 3프로가 대수냐?”
“너 캐릭터 잘 잡아라, 이랬다 저랬다 하지 말고.”
“뭐가 더 좋은데, 그쪽으로 잡지 뭐.”
“미친...”
‘지난 일‘이라는 말로 포장 된 게 이동혁한테는 고삐였나 봐... 그게 풀렸으니까 저게 길길이 날뛰는 거 아닐까... 방금까지는 되게 진지했던 것 같은데 뭐든 진지한 건 10분도 못 가는 성격들이 재회하면 이 꼴이 난다.
계속 이런 식으로 사람 끌면 거절 못할 줄 아나 본데, 난 1년 동안 진짜 힘들었다고.
“그럼 다시 대답.”
“또 해?”
“안 해?”
“...생각해볼게.”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꿀도 빨아본 놈이 빤다고 이동혁이랑 했던 연애가 얼마나 유잼이었는지는 내가 제일 잘 알거든요.
“너 빼고 내가 너 못 잊은 거 다 알아 등신아.”
“그거 하지 마라 진짜.”
너 빼고 내가 너 좋아하는 거 다 알아 등신아.
이동혁이, 이동혁답게 했던 고백 멘트였다. 그냥 친구로 대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저 말 한 마디에 심장이 요동치는 걸 보고 깨달았지. 그게 아니었구나.
그리고 지금까지 이동혁은 날 너무 잘 알아 짜증나게 벌써부터 간파 당하고 있었다. 왜 맨날 나빼고 다 안대. 존나 너무. 나 왕따냐?
“아니 야 솔직히 생각을 해 봐. 다시 만났다가 같은 이유로 또 헤어지면 진짜 너 죽이고 나도 죽고 싶을 것 같아서 그래.”
“안 헤어지면 되는 거잖아, 그 때랑 지금이랑 달라졌으니까”
“야 너는...”
“뭐가 겁 나는데, 너.”
더 이상 말해봤자 큰 해답이 나올 것 같진 않았다. 마음의 안정... 일단 이동혁이 없어야 될 것 같아. 다시 시작을 하든 말든 일단 내 생각 정리는 해야 될 거 아니야.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가고 싶진 않다.
“일주일.”
“뭐가.”
“다음주 토요일에 다시 얘기 해. 내가 일주일 동안 생각 해볼테니까.”
“오, 완전 갑처럼 구는데.”
“지금은 내가 갑 맞잖아, 네가 더 좋아하니까.”
할 말이 없는지 이동혁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저게 끄덕이는 거야 젓는 거야. 원흉이 된 그릇을 챙겨들고 슬리퍼 끌며 나오다가 급히 문을 붙잡았다. 꼭 해야 되는 말 있는데 안 했어.
“왜, 생각 끝났어?”
“아니. 하고 싶은 말 있어서.”
“해, 길게 하면 좋고.”
“또라이...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이거 시간 벌어서 도망치는 거 아니고 우리 사이를 진지하게 고민해보겠다는 자세야.”
“별 걱정을 다 하네, 가라.”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그 그릇에 씨리얼을 말아 먹으며 생각했지. 일주일이면 답 나오겠지? 우리 사이가 그렇게까지 노답은 아니잖아.
네 이웃을 사랑하라(下)
“하...”
일주일은 생각보다 빠르구나. 내가 시간을 허망하게 보내서 그런가.
아니, 남들 다 그런 것처럼 일요일은 쉬고 월요일은 바쁘고 화요일은 살기 싫었는데 벌써 수요일 지나서 목요일일 건 또 뭐야. 생각은커녕 그냥 쓰러져 자고 싶었다. 피곤해. 토요일까지 이렇게 보내면 그냥 도망밖에 더 되나 이게.
가뜩이나 심란한데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분위기는 왜 또.
“윤대리님 오늘 왜 저렇게 저기압이셔?”
“윤대리님 애인이랑 완전 쫑났잖아. 대판 싸우고 헤어졌대.”
“아...”
대판 싸우고 헤어졌다니, 그 기분 잘 알지 내가. 세상에 그런 놈을 만나서 연애를 다 했나 싶고 회의감이 아주 끝내준다니까 내 인생을.
주말마다 만나서 여행 가고 잠시라도 연락이 안 되면 죽는 줄 알던 그 커플도 하루아침에 남이 된다. 나랑 이동혁 헤어졌을 때 황인준이 후회 안 하냐고 물어봤던 것도 다 이런 기분이었나.
아, 어디 아무나 붙잡고 물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는 사람 이야긴데 하고. 지금 내가 물어 볼 수 있는 사람은 고작.
고작 황인준 뿐이라서 말하나 마나였다. 아니 근데 이동혁 이새끼는 그새 그걸 다 얘기하고 다녔단 말이야? 하여튼 얘는 애가...
‘뭐가 겁 나는데, 너.’
악 진짜. 사람 잡는다 이동혁. 나는 네가 겁 나.
“죽겠다 진짜...”
예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를 빗나간 적이 없는 네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나 하겠어.
* * *
결국 금요일 밤까지 아무 것도 못 정했다. 회사에서도 하루 종일 얼마나 정신이 없던지. 모처럼 할 일도 적당한 날이었는데 남는 시간을 전부 이동혁 생각에 쓰느라 그 기분을 즐기지도 못했다.
-너 도대체 애가 왜 그래? 왜 그렇게 다 니 마음대로야?
“같은 영화만 몇 번째야, 내가 대신 출연해도 되겠네.”
헤어지기 전에 보고, 헤어지고 나서 보고, 다시 만날 기회 생기니까 보고. 영화 감독님이 나한테 연락 한 번 해줘야 되는 거 아니냐 진짜.
처음에 이동혁이랑 봤을 때는... 아무리 그래도 연애 초인데 이별 영화 골랐냐고 투정 부리느라 바빴던 것 같은데 2년 전의 나... 혈기왕성 했네. 영화 내용이고 나발이고 이동혁이랑 애인 역할로 나란히 앉아서 영화 본 다는 게 떨려서 죽는 줄 알았었다.
‘와, 영화 내용 하나도 기억 안 난다-‘
‘나도.’
쪽팔리게 혼자만 그랬던 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 했었다. 이러나 저러나 자존심은 진짜 셌네 나.
-야, 넌 뭐 변한 줄 알아? 너야말로 그대로야. 너 지금 옛날에 하던 그 짓 똑같이 하고 있잖아.
오... 아무래도 영화 선택 미스 같은데... 혹시 이동혁이 느끼기에 나도 옛날이랑 똑같이 자존심 세우고 있는 거 아니야? 생각해보면 일주일 기한도 존나 웃겨. 이게 무슨 서바이벌이냐고.
‘안 헤어지면 되잖아, 그 때랑 지금이랑 달라졌으니까.’
아닌데. 달라진 거 하나도 없는데. 지금 놓치기 싫은 기분이 계속 드는 건 순전히 내 욕심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동혁 입에서 못 잊었다는 말이 나왔을 때 묘하게 기뻤던 건 이동혁이랑 연애하던 그 때가 다시 생각해봐도 너무 좋았어서.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걸까 봐.
그래서 쉽게 대답도 못 하고 있는 거였는데.
지금까지도 내가 헷갈리고 있는 거면 그것만큼 이동혁한테 못할 짓은 없는 것 같아서.
“대단하다 선여주. 번호는 용케 안 까먹고 있네. 지긋지긋해라.”
하긴, 연애할 때 핸드폰 배터리 모자를 때까지 통화했던 거 생각하면 벌써 잊어버리긴 힘들지.
자려나, 일찍 안 자는 거 다 아는데.
-여보세요.
“안 잘 줄 알았다.”
-바로 앞에 살면서 웬 전화.
“그냥 오랜만에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서.”
전화를 받으면서 이동혁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작은 기대라도 했으려나 어쩌면 우리 사이가 조금은 나아졌을 수도, 나아질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
-안 할 말까지 하는 거 보니까 할 말 있나보네.
“넌 이상하게 나를 너무 잘 알아, 별로야.”
-뭐래, 내가 딱인 거지. 너한테.
“은근히 어필하지 마시고.”
-넌 답지 않게 질질 끄는 것 좀 그만 하고.
입 안이 바싹 마르는 기분이었다. 술이라도 마시고 전화할 ㄱ, 아 아니지. 돈 폴 겟... 브리트니...
“열두 시 지났어?”
-잠깐, 어. 왜.
“토요일이니까. 대답 해줘야지.”
-밑밥 까네, 무슨 얘기를 하려고.
내가 만약에 그 때가 좋았어서 지금 이동혁이랑 이러고 있는 거면 내놓을 대답은 딱 하나였다. 이동혁이 나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 했는지 다 아니까.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야 동혁아.”
-왜
“네 말하고는 좀 다른게, 난 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어. 너랑 죽네 사네 했을 때랑 지금 나랑 똑같아. 원래 사람 쉽게 안 바뀐다잖아.”
-응.
“그래서 다시 못 만날 것 같다고 생각을 했거든.”
-...어.
“근데 우리는 그 때 서로가 좋았던 거니까 굳이 달라지지 않았어도 괜찮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 때 이동혁이 있어서 좋았던 거지, 누구랑 연애해서 좋았던 건 두 번 째 문제라서.
“일주일이고, 일년이고 개고생 한 거 생각하면 나도 너 못 잊은 것밖에 안 되더라고.”
-매일 나한테 너답다, 너답다 하더니. 네가 더 심한데.
그 말만 남기고 뚝 끊어진 전화에 바로 문 두드리는 소리 안 들었으면 아마 그대로 차인 줄 알고 이동혁 집 문고리 부쉈을지도 모른다. 내 인생에 흑역사는 이동혁으로 시작해서 이동혁으로 끝나게 생겼는데 서로 사소한 책임은 져야지.
“미안한데 지금 새벽이거든.”
“나 원래 네 얼굴 못 보면 잠 못 자잖아.”
“갑자기 이렇게 바뀌기 있냐? 죽을 때가 다 됐나.”
“너랑 연애해야 돼서 못 죽겠는데 나는.”
“진짜 약 먹었어?”
그렇게 어렵지도 않은 걸 가지고 시간을 그렇게 끌었는지. 어쩌면 이동혁이 앞 집으로 이사온 것부터가 시작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또 영화 보면서 똥폼 잡고 있었냐?”
“죽여버린다. 영화 안 봤으면 전화도 안 했어.”
* * *
이동혁이랑 다시 붙어먹은지 한 달 이상이 넘어가고 있는 지금...
“...비켜, 나 출근 해야 돼.”
"가...”
“넌 왜 맨날 너희 집 두고 여기서 자는데.”
“너 있잖아.”
쌉소리가 날로 증가하는 이동혁 덕분에 하루 시작이 새롭다 못 해 낯설기까지 했다. 집이 없는 것도 아니고, 먼 것도 아니고 바로 앞인데 와서 빈대를 붙어. 것도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한테.
“미친... 이러다 같이 살자고 하겠네.”
“그래도 ㄷ,”
“아, 씻어야지. 늦겠다.”
저 새끼를 내가 어떻게 말려... 도망 가야지.
“야, 나 간다? 인간이면 청소 좀 해 놓고 가.”
“청소 해놓고 안 가는 방법도 가능?”
“너 요즘 작업 존나 안 하는 거 알지. 놀기만 하다가 개털 되면 아웃이야.”
“응, 나도 사랑해.”
“야 진짜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어, 지금 여덟시 반.”
“미친, 나 간다.”
월요일이니까 또 주말 일거리 경매로 인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려나... 지하철에 올라 탔을 뿐인데 벌써부터 피곤이 나를 갉아먹고 있어...
[늦으면 저녁 없음]
-코코-
아, 오늘 제발 야근만 안 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