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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연애

 

 

 

 

 

-

 

김 대리 최연소 특급 승진이네. 축하해!

태연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부장의 손을 잡았다. 사내 기자들이 와서는 사진을 몇 장 찍더니만 이내 직원들이 우루루 달려와서는 태연의 목에 꽃으로 된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그리고 나서 정신을 차리니 회사 강단 단상 위에 올라가서는 소감을 얘기하고 있었고, 곧이어 본사 사장님이 직접 나오셔서는 표창장과 포상금을 건네 주었다. 그리고는 고급 세단이 딱 서서는 운전석에 타고 있던 기사가 레드 카펫을 후루룩 후루룩 재빠르게 펼치고 있었다. 옆에서 꽃가루를 뿌려주는 동료 직원들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짓는 것도 있지 않았다. 박 과장님, 커피 쓰다고 하셨죠. 사실 매일 제가 침을. 오 실장님, 얼마전에 여자친구한테 차인거 제가 와이셔츠에 입술 자국 묻혀나서 그런건데. 직원들 남모르게 비밀을 꿍얼대던 태연은 뒷자석 문이 자동으로 열리자 푹신한 차시트에 몸을 뉘었다. 그러자 기사가 목을 빼꼼 내밀고는,

사모님 어디 가실까요? 하고 물어왔다. 하핫, 사모님이래. 사모님. 엥? 사모님? 헉! 태연이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온 몸은 땀에 흥건히 젖어 있었고, 베개 맡이 촉촉하게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헉헉, 정말 끔찍한 악몽이었어.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하나 꺼내서는 아침부터 빈 속에 깡생수를 한 통 들이켰다. 사실 태연이 이렇게 흉칙한 꿈을 꾼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꿈이 꿈이 아니라는 거, 그러니까 어느 정도의 현실 반영이 꿈에서 태연을 지독히도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꼭 꿈에서 까지 이럴 필요가 있겠어. 태연은 툴툴대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정수연으로 부터 온 문자는 한 개도 없었다. 이 기집애, 어제 그러고 뛰쳐 나가더니만 연락 한 줌 없네. 누가 먼저 잘못한건데. 흥. 태연은 콧방귀를 뀜과 동시에 수연아, 잘못했어. 문자 한 통만 주라. 비굴한 문자를 보내본다. 분명 읽은 표시는 사라진지 오래인데, 수연에게는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

너 어제 클럽갔지. 내 친구 만석이가 거기서 너 봤대. 웬 남자랑 부비부비 하는 거. 천하의 정수연도 요런 도발성 문자에는 별 수 없겠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3초도 지나지 않아서 전화벨이 띠링 띠링 하고는 울렸다. 태연은 기다리는 자의 여유라며 5초 정도 더 버티고 나서야 느긋한 목소리로 여보세용ㅡ 하고는 전화를 받았다.

「야. 너. 뭐? 죽어볼래?」
“그러게 왜 보내는 문자마다 족족 씹어드세요. 정수연씨.”
「부산가는 새끼랑은 엊그제부터 연락 끊기로 마음 먹었거든요.」
“어. 어. 그러셔? 네가 좋아하는 헤니 오빠 어제 부산 영화제 갔다든디.”

정수연의 콧바람이 어찌 센지 어째 귓속으로 속속들이 치미는 기분에 태연은 통화를 하다 수화기를 뗐다 하기를 반복했다. 얘, 이러다 잡아묵겄네. 잡아묵겄어. 사실 그렇다고 해서 오로지 수연의 잘못만도 아니었다. 태연이 회사에서 맡은 프로젝트가 제대로 쪽박을 차는 바람에 프로젝트 팀원들이 일일히 흩어지게 되었고, 지방으로 발령 받게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바로 그 경우가 태연이었다.

자네는 부산으로 가줬으면 좋겠어. 태연은 상사의 말에 몇 번이고 네에? 네에? 하고는 되물었다. 그러다가 왜이렇게 못 알아먹냐면서 또 깨졌고 태연은 훌쩍이면서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엉엉 울어버릴까 하다가 그건 존심 상 기분이 나빠서 그냥 꾸역꾸역 참았다. 그리고 문제의 발단은 정수연과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생기고야 말았다.

‘수연아. 나 부산으로 발령 받았어.’
‘뭐어? 부우우우우산? 부산? 그 갈매기 끼룩끼룩 그 부산?’
‘으응. 다음달부터 거기 지사로 출근하라는데 나 어떡해야 돼?’
‘뭘 어떡하긴! 당장 때려쳐 버려.’
‘야. 너는 네 일 아니라고 되게 쉽게 말한다? 나 거기 내 첫 직장이야아.’
‘헐 그럼 뭐야. 나랑 헤어지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아니. 그건 쫌 아니고. 그냥 장거리 연애 같은거 있잖어.’

태연이 장거리 연애 얘기를 꺼내자 마자 수연은 들고 있던 포크를 뚝 떨어트렸다. 종업원이 다가와서는 다시 드릴까요? 하고는 묻자 수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대뜸 됐어요! 소리를 치고는 가방을 챙긴채 레스토랑을 빠져 나갔다. 혼자서 파스타를 후루룩 먹고 있던 태연은 어디 화장실 갔나 싶었는데 창문가로 보이는 수연의 자동차에 번쩍 불이 들어왔다. 헐 뭐야. 태연은 헐레벌떡 뛰쳐 나가서 차문을 열려던 수연을 붙잡았다.

‘야. 너 뭐야. 네가 이렇게 가면 얘기가 어떻게 돼.’
‘얘기는 무슨 얘기야. 너는 이미 결정 다 해놓고, 내가 OK 해주기만 바란거 아니야?’
‘장거리 연애가 뭐 어때서. 좋잖아.’
‘열에 일곱은 헤어진다는 게 장거리 연애야.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얘기도 몰라. 차라리 속시원하게 말해. 너랑 멀리 떨어져야 되니까 우리 관계 여기서 그만 청산하자고.’
‘나는 나 나름대로 심각하게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너랑 헤어지기도 싫고, 그럴 생각 해본 적도 없어.’
‘애초에 네가 고민 같은 걸 했었더라면 나한테 적어도 통보하지는 말았어야지.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테니까 제발 꺼져. 꼴도 보기 싫어.’

아오, 답답해. 태연이 주먹을 쥐고는 가슴팍을 팍팍 내려치기가 무섭게 수연은 차에 시동을 걸고는 빡빡 좁은 골목에서 클락션을 울리더니 멀러 사라져 버렸다. 헐, 진짜 간거야? 아니지? 다시 오는거지? 태연은 그 자리에 그대로 망부석 처럼 서있기를 한참 수연이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정수연, 에라이! 타이어 펑크나 나라! 길바닥에 굴러다니던 돌맹이를 발로 뻥 차버렸다. 그러자 난간에 올라가 있던 고양이가 소스라치게 놀라서는 야옹 하고 울더니 도망가 버렸다.

손님, 여기 계산서. 156,780원 입니다. 일시불로 끊어주세요.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쿨하게 정수연꺼 까지 계산하기로 했다. 문자로 야. 더치페이는 하고 갔어야지. 태연은 자기 계좌번호를 술술 문자로 찍어 누르다가 진짜 이건 아닌거 같다 싶어서 다시 지워 버렸다. 여기까지가 엊그제의 있었던 태연과 수연의 해프닝 이었다.

“KTX 티켓 끊었어. 부산꺼야. 다음주에 나 가.”
「너는 진짜. 끝까지 네 생각만 하는구나.」
“그럼 어떡해. 집도 알아 봐야 되고, 새 회사 구경도 해야되고 그러는데.”
「그럼 나랑 헤어질거야?」
“수연아. 내 마음은 언제나 같아. 내가 어떻게 너랑 헤어질 생각을 하겠어. 응? 그러니까 우리.”
「끊을게. 그럼」
“야. 나도 이만큼 양보하는데 너도 쫌 해주면 덧나냐?”
「네가 무슨 양보를 했는데.」
“너한테 미안해서 문자도 내가 먼저 했잖아. 그리고 너랑 헤어질 생각도 없다고 말하잖아.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건데.”
「그래. 미안하니까 부산 내려 가겠다는 거고, 헤어질 생각도 없으니까 부산 내려 가겠다는 거네. 너는, 내가 지금 왜 화가 났는지 알기는 해?」
“미안하다고 까지 했는데 내가 꼭 그걸 알아야 해?”
「아니. 알 필요 없어. 여기서 끝낼 거니까.」

수연은 또 그렇게 전화를 끊고야 말았다. 뒤늦게야 뚜뚜뚜 소리에 반응한 태연은 들리지 않은 수화기 너머로 야 이 망할! 도대체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는거야아! 바락 바락 소리를 질렀다. 그래봤자 뚜뚜뚜 소리만 맥없이 반복되었다. 아씨, 괜히 또 열받네. 태연은 다시 생수통을 하나 꺼내서는 배때기가 부르도록 마셨다. 아침부터 밥은 안 먹고 벌써 2병째 깡생수를 들이키고 있었다. 으윽, 속이 거북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노트북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전세며, 월세며 서울 집값 만만치 않게 부산도 금싸라기 땅이였나 보다. 뭔 놈의 집이 이렇게 비싸. 태연이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을 때 문자가 한 통 도착했다. 나랑 같이 부산으로 발령 받은 미영 언니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확인하려고 하는데 또 전화가 울려왔다. 정수연 이었다. 이걸 받어, 말어. 고민하다가 왠지 정수연 성격에 안 받으면 왠지 다시는 안할 거 같아서 얼른 낚아채서는 전화를 받았다.

“왜. 그렇게 쏘아 붙이니까 좀 미안한 감이 드나보지?”
「됐고. 할 얘기 있으니까 만나.」
“무, 뭐 할 얘기? 우리가 무슨 얘기가 있어? 너어, 너 설마.”
「네가 예상하고 있는 얘기야. 만나서 하는게 더 나을거 같아서.」
“와. 정수연. 너 그렇게 안 봤는데 디게 무섭다. 어떻게 전화 끊은지 10분도 안되서 헤어지자고. 여보세요? 여보? 야! 야아!”

하여간 전화 예절이 똥이라니까. 태연은 이 집안 자매들은 다 전화 매너가 꽝이라며. 어렸을 때부터 수연이네 집에 전화 할 때마다 쪼그만게 더럽게 눈치 줬던 정수연 여동생이 생각났다. 어찌나 틱틱 대던지, 진짜 키만 나보다 쪼끔 작았으면 쥐어 박아주는 건데. 요즘 애들은 무슨 발육이 그렇게 좋은지 얼마전에 봤었는데 야자수 마냥 정수연 보다 두 뼘은 더 쑥쑥 자라있더라. 

태연은 옷을 갈아 입으면서도 끝까지 투덜댔다. 왜 오라 마라냐고, 지가 직접 오라고 하면 되는걸. 멋있게 차려 입고 가서 차이는건 쫌 그런가. 옷을 여러가지를 꺼내 놓고 괜히 고민하다가 결국은 제일 좋아하는 셔츠와, 정수연이 선물한 신발을 신었다. 좀전에 미영 언니가 보낸 문자 확인도 있지 않고. 엉? 태연은 미영 언니가 보낸 문자를 한 줄 한 줄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다.

“왜 이렇게 늦었어?“
“아니 저기 좀 볼 일이 있어서 그거 해결 하느라고.”

평소에 약속이라면 무조건 늦고 보는 정수연이 먼저 카페에 도착해 있었다. 역시 헤어질 때는 행동이 빠르구만. 수연은 태연을 보고 몰래 중얼거리다가 맞은 편에 의자를 빼고서는 다리를 꼬아 앉았다. 오자마자 쿨하게 말할 거 같았던 수연은 어째 태연의 예상과는 다르게 조용하게 물 한 모금을 깨작 깨작 들이키고 있었다. 역시 힘든 결정이긴 마찬가지 인가 보구나. 태연은 애써 체념하며 어떻게 하면 정수연을 붙잡을 수 있을까 그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나 결정했어.”
“무, 뭐가? 뭘 결정 했다는 건데.”
“까짓 거 하자. 장거리 연애”
“헐. 진짜 수연아? 으 진짜 고마워. 내가 평생 너한테 충성할게. 진짜 떠받들면서 살게.”
“나도 힘들게 결정한 거야. 그러니까 너도 몇 가지 정도는 포기 해줬으면 좋겠어.”

엥? 포기? 무슨 포기를 말하는 거야. 수연이 앞에서 뭐라 쏼라쏼라 대더니 가방에서 법원에서 볼법한 누런 서류 봉투를 꺼냈다. 이건 거의 무슨 합의 이혼 클라스인데? 태연이 봉투를 조심스레 빼들어서는 새치 눈을 뜨고서는 봉투 안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별 거 없었다. 그냥 종이 쪼가리 하나에다가 구부렁 거리는 글씨가 좀 많이 적혀 있었을 뿐. 내용을 천천히 확인하니. 을. 김태연의 직장 내 휴일은 갑. 정수연에게 모조리 반납한다. 을은 갑이 원할 때마다 무조건 갑을 보러 와야 할 의무 및 책임이 있다. 을은 갑이 아닌 다른 이성에게 추태나, 문란한 행동을 빚었을 경우 그에 따른 갑에 대한 정신적 피해 보상…….


“야. 이게 뭐냐.”
“보면 몰라. 각서 같은거야. 우리 사이를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겠다 싶어서.”
“그럼 이 영어로 구불구불 써져 있는 건 또 뭐고.”
“그건 국제 변호사용. 알다시피 내가 미국에서 태어났잖아. 깔끔하게 일 처리 하려면 이런 것도 괜찮을거 같아서.”
“와 진짜 소름 돋는다. 소름 돋아.“
“싫어? 싫음 말고.”
“야. 야. 하여간 애가 급해서는. 누, 누가 싫다고 그랬냐. 하면 되잖아. 계약! 여따 지장 찍으면 되는거지.”

와 진짜 이 나이 먹도록 사채는 커녕 보증도 안 서봤고, 대출도 안해봤는데 애인으로 부터 받는 각서에 도장부터 찍다니. 태연은 눈물을 머금고는 수연이 준비해둔 인주에 엄지 손가락을 담구고는 각서 위에 꾹꾹 눌러 찍었다. 그리고는 정수연은 옷깃에서 볼펜을 꺼내더니만 거창하게 휘갈기며 싸인을 했다. 지장 말고 싸인도 되거든. 수연의 말에 태연은 다시 속이 부글부글 끓다가도 어쨌거나 자기 애인을 위해서 요만큼 양보해줬는데 참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렇지 않게 수연은 작성된 각서를 종업원에게 내밀어서는 복사를 부탁했다. 내꺼 하나, 네꺼 하나 나눠 갖자면서.


“그럼 집은 언제부터 알아보는 거야? 나랑 같이 다니자. 월차 쓰면 되니까.”
“어 집은 아까 해결됐어.”
“어떻게?”
“너 알지? 나랑 입사동기인 미영 언니. 그 언니랑 같이 발령 받아서 가는 거거덩. 그런데 그 언니도 집 구해야 되는데 돈은 없고 그렇다길래 같이 구하기로 했어.”
“미영 언니라 함은 저번 회식때 술 취해가지고 너한테 사랑한다고 그러고 볼에 뽀뽀한 그 사람?”
“응응.”

수연은 또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주먹으로 테이블을 세게 내리쳤다. 덕분에 카페 안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한곳으로 집중됐다. 태연은 창피함에 어쩔줄 모르다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왜 그래 수연아, 개미 기어 가는 목소리로 말을 붙였다.

“너 제정신이야? 그 사람이랑 살림을 차리겠다고.”
“아니 살림이 아니고, 동거. 아니 그러니까 그냥 비지니스 상.”
“얼어죽을 비지니스 좋아하네. 내가 그 사람 첫인상부터 마음에 안 든다고 그랬을 때 너 뭐라고 했어. 사람 겉모습만 보고 따지지 말라고 그랬지. 그리고 나서 그 여자가 너한테 뽀뽀 했을 때도 그냥 술 취해서 그런 거라고 그랬어. 너.”
“근데 뭐! 그게 뭐가 어때서.”
“거기까지도 내가 참아준거야. 쪼잔하게 보이기 싫어서. 근데 뭐, 같이 살아?”
“에이 수연아. 미영 언니 그런 사람 아니야.”
“네가 자꾸 그런 사람으로 만들잖아.”

“야. 술김에 뽀뽀도 할 수 있고 그렇지. 너는 뭐 안 그랬냐? 나 아프다고 문자 찍었을 때, 너 그 때 전에 만난 애인 민철인가? 걔랑 만났던 거 나도 그냥 넘어갔잖아.”
“왜 또 갑자기 옛날 얘기를 꺼내.”
“아니. 말이 그렇다 이거지. 너는 되고 왜 나는 안되냐 이거야. 너나 나나 똑같잖아.”
“너랑 나랑 어떻게 같아?”
“같지. 그게 뭐가 다른데 그럼!”

화가 끝까지 치밀어 오른 수연은 때마침 종업원이 복사해온 종이를 눈 앞에서 갈갈이 찢어서는 공중에 흩뿌렸다. 가지고 온 종업원이나 마주 앉아있던 태연이나 당황하기 일 수였다. 이젠 너랑 정말 끝이다. 수연은 그 말을 끝으로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나갔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태연은 소리를 지르다가 길가에 주저 앉아 청승맞게 눈물, 콧물 찔찔 다 흘리고 있는 수연을 붙잡아 세웠다.

“과거 얘기 한 거 때문에 그래? 그건 진짜 미안해. 내가 실수했어.”
“너어, 너,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래. 김민철 그 새끼가 나한테 어떻게 했는줄 알면서.”
“알았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나 때려. 그냥 막 죽일듯이 그냥 줘 패버려. 그래야 속이 풀릴 거 같으면 그렇게 해.”

“넌 어떻게 나 때문에 못 가겠다는 말을 한 번도 안해?“
“뭐?”
“내가 원하는건 별 거 아니였어. 그냥. 수연아 너 때문에 걱정되서 못 가겠다. 네가 나 좀 먹여 살려주라. 이런 거였다고. 이런 것도 못해줘?”
“내 성격 알잖아. 남한테 빚지고, 신세 지는 거 못 견디는 거.”
“애인이랑 같이 있는게 신세 진다고 해야 할 정도야?”
“그럼 도대체 네가 원하는건 뭔데.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도대체 뭐냐고.”
“너도 잘 알잖아.”

“헤어질래? 헤어질까? 그러면 너 마음이 좀 편하겠어?”
“나한테 물어보지 말고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해.”
“…….”
“…….”
“그래. 그럼 헤어지자.”

그렇게 정수연과 길다면 길고, 지겹다면 지겨울 법한 8년의 연애가 끝을 맺고야 말았다. 순간적인 결정이라면 맞는 거고, 충동적인 선택이라고 해도 맞을거다. 순간적이고 충동적인 것은 늘 뒤늦게 후회와 함께 후유증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태연이 KTX를 타려고정거장에서 기다리는 내내 혹시나 했던 수연은 보이지 않았고 태연은 그대로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부산행 고속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태연이 타고 있던 열차가 떠나자 정거장 한 쪽 기둥 뒤에 숨어 수연은 남모르게 손 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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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리 최연소 특급 승진이네. 축하해!”
“감사합니다. 과장님.”

태연이 부산 지점으로 발령 받은 지 3년만에 생긴 일이었다. 회사 내에서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다들 놀랍게 받아들였고 태연은 그저 머쓱하게 머리만 긁적 거릴 뿐이었다. 처음 맡은 프로젝트의 팀장이었던 상사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회사에서 쫓겨나고 태연은 혼자 전전긍긍 하면서 이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고 마쳤다. 그런데 생각보다 해외 바이어들 로부터 좋은 호평을 받아 계약들이 줄줄이 성사 되었고, 덕분에 그 얘기가 본사에 까지 전해져 태연은 드디어 부산 지점이 아닌 원래 일하던 서울 지점으로, 그것도 대리가 아닌 팀장으로 승진해서 올라가게 되었다.

주변 직장 동료들마다 태연을 보고는 다들 부러움에 한 소리씩을 보태왔다. 물론 그중에는 태연의 승진으로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사람 조금, 그리고 극도로 질투하는 사람이 대부분 이었다. 비꼬는 소리 인듯 칭찬 인듯 비꼬는 소리 같았던 칭찬들. 태연은 이제 그런 사회 생활에 익숙한 지 아무렇지 않게 웃어 넘겼다.

“태연씨는 일벌레라니까. 그렇게 일만 하면 연애는 언제 해요?”
“연애도 간간히 하고 있는걸요.”
“와. 태연씨 알고 보니까 진짜 능력자네.”

그리고, 같이 한 집에서 살게 된 미영 언니와는 극도로 가깝게 발전해서는 발령 받은 지 3개월 만의 연인 관계로 진화해 나갔다. 매일 같이 일어나고, 같이 밥먹고, 시시껄렁한 얘기들에 배꼽 잡으며 웃고, 그러다 또 같이 눈을 감고, 태연은 낯선 부산에서의 생활이 그렇게 싫지만도 않았다. 단 하나만 빼면. 가끔 정수연이 했던 말이 생각나서 그 때마다 태연은 저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깜짝 깜짝 놀라는 버릇이 생겨 버렸다.

정수연은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걸까. 태연과 미영과의 발전 가능성을 마치 짐작이라도 하고 있었던 마냥. 만약에 정수연과 헤어지지 않고 부산으로 내려 갔다면 미영 언니와 바람이라도 폈을 가능성이 있었을까. 그렇게 보였던 걸까. 태연은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다 아니지, 아니야. 하며 고개를 절레 절레 저었다. 요즘 들어 태연의 머릿 속에는 정수연 생각이 부쩍 부쩍 떠오를 때가 있었다. 왠지 그 때의 상황과 묘하게 오버랩 되는 듯 하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태연아. 그럼 너 이제 서울 가는 거겠네.”
“그러게요.”
“그럼 우리 이제 헤어지는 건가?”
“왜 그렇게 생각을 해요.”
“근데 나 장거리 연애는 좀 자신 없다. 그래도 우리 태연이 생각하면서 버텨볼게.”

미영 언니는 수연과는 달랐다. 태연을 보채지도 않았고, 귀찮게 하지도 않고, 골머리 썩히지도 않았다. 오히려 태연이 할 말이 없어질 정도였다. 그래. 이게 맞는거지. 진짜 사랑하는 사이라면 이게 맞는 거 일지도 몰라. 사실 어느 쪽에도 정답이 없다는 것을 태연은 알고 있다. 그냥 둘이 편한게 정답이고, 서로 이해 하는 게 정답이겠지. 그 땐 솔직히 이기적인 것도 있었고, 생각이 어렸으니까. 태연은 애써 웃어 보이며 포크에 파스타를 둘둘 말아서는 후루룩 빨아드렸다.

“아씨 먼 놈의 아우디를 저렇게 바짝 대놨어.”

태연은 툴툴 거리며 차창 밖으로 모가지를 내밀었다. 성과금으로 받은 돈과, 여태까지 열심히 일한 돈, 적금 부었던 것을 깼더니 그래도 서울 반포동에 아파트 한 채 정도는 구할 수 있었다. 이사오기 전 마지막으로 확인할게 있어서 들르려던 찰나에 떡하니 비어져 있는 주차 공간, 2칸을 1칸 마냥 양심 없게 쓰는 허여멀건한 자동차 한 대를 발견했다. 조금만 비집고 들어가면 되겠는데. 

꼭 이렇게 비싼 차 타고 다닌다고 허세를 부리는 인간들이 종종 있다니까. 그런 인간들은 제대로! 순간 지익 하고 난 소리에 태연은 잡고 있던 핸들을 딱 놔버렸다. 헐 지금 긁은거야? 조심스레 운전석에서 내려 확인해보니 차와 차끼리 마치 딥포옹이라도 하는 마냥 딱 달라 붙어 있었다. 이걸 오똑하지? 빼도 긁힐 것이고, 안 빼도 긁혀 있을텐데. 에라 모르겠다 태연은 그냥 콱 밀어부치고는 쿨하게 메모지에 전화번호를 적고서 아우디 앞 유리에 붙인 뒤 후다닥 아파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샷시도 완벽하고, 바닥도 이만하면 괜찮고, 벽지는 좀 다른 걸로 고를걸 그랬나?”

태연은 가끔 내려 오겠다는 미영의 취향을 100% 반영해서는 벽지를 핑크빛으로 얼룩덜룩하게 물들였다. 사실 벽지를 고를 때 옆에서 미영의 암묵적인 압박이 있기도 했었고.에라, 모르겠다. 미영 언니가 좋다는 데 뭐 어째. 태연은 아무 것도 없는 바닥에 누워서는 천장을 멀뚱 멀뚱 바라보았다. 그래. 김태연 너 이만하면 성공했다! 부산에서 다시 서울로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니. 태연은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기에 옷 소매로 훔쳐냈다. 

그리고는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에 태연은 누워서 휴대폰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끊어져라. 끊어져라. 태연은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끊어질듯 하면서도 끊어지지 않는게 묘한 소름이 돋아서는 몸을 으슬으슬 떨면서 태연은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이봐요. 남의 차를 긁었으면 번호 보다 사과가 먼저 아닌가요. 어떻게 미안하다는 말이 없죠?」
“아 저기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바로 내려갈게요.”

태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앙칼진 여자의 목소리에 연거푸 죄송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베란다 난간에서 매달려 바라보니 정말로 태연의 차 옆에 왠 정체 모를 여자 한 명이 떡 하고 서있었다. 태연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내려가는 내내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여자의 잔소리는 끊길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게 얼마짜리 차 인줄 알고나 그런 거에요? 내가 인성이 좋기에 망정이지.」
“아 정말 죄송합니다.”
「이거 잘하면 뺑소니에 해당 할 수 있는 것도 알죠?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하라구요.」
“저기 근데.”
「네. 뭐요.」
“제가 그쪽한테 그런 소리 들을 정도로 잘못한 행동인가요? 그냥 궁금해서.“
「어머 이렇게 뻔뻔 할 수가. 그쪽 낯판데기가 진짜 궁금하네요. 도대체 어떻게 생겼길래!」

정수연ㅡ

아파트 현관 문을 열고 나가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정수연 이었다. 물론 얼굴을 본 건 아니었지만 뒷모습만 봐도 괜히 짠하고, 뭉클하고, 속이 허해지는 게 몸이 이렇게 반응하는 건 정수연 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아니 확실했다. 3년이나 떨어져 있었더니 목소리도 잊은걸까. 수연이 풀숲에다 대고 뭐라 뭐라 소리를 지르는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 반 다를 것 없이 앙칼지고 시끄러운 목소리였다. 그런데도 왠지 몹시도 애가 탔던. 태연은 저도 모르게 푸훗 하고는 웃음소리가 슬며시 흘러 나왔다.

「이봐요. 지금 비웃는 거에요. 나참 어이가 없어서.」
“아니요. 그게 아니구요.”
「빨리 내려오기나…….」

“정수연. 수연아.”

수연은 태연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서는 뒤를 돌아보았다. 수연의 뒤에서는 한 쪽 입꼬리를 비죽 올리고 있는 태연이 보였다. 와, 진짜 오랜만이네 그치? 태연이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수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3년만 이었다. 3년만에 처음으로 보는 얼굴이며, 목소리 였는데, 3년간 전혀 그립지도 않고, 보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얼굴을 맞닿고 보니 가슴 속 어딘가에 막혀있던 무언가가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






-

 

301호와 302호라 이거지. 태연은 현관문 앞에 서서 문에 붙어 있는 호수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옆에 집 호수를 보고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니 한숨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집은 301호, 정수연네 집은 302호.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싶었지만 태연은 이게 차라리 장난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태연이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는 머리카락을 한 움큼씩 집어서는 꽉 잡아 댕겼다. 아프기만 하지 다른 방도 같은 건 생각나지 않았다. 앞으로 남은 주택장기대출 20년을 생각하면 수연과 계속 부딪쳐야 하는 날들이 암흑같이 느껴졌다.

차라리 정수연이나 내가 시집을 가는게 빠르지 않을까, 생각했던 태연은 3초도 지나지 않아 둘 다 본투비게이 였던 것을 생각났다. 남자와 결혼 할 일도, 안정적인 가정을 꾸릴 일도, 아기와 함께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나갈 일도 전혀 없는! 으 망했어. 나는 안될거야. 태연은 자기 스스로 머리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그러자 삐비빅 소리가 나면서 옆집 문이 덜컥 열렸다.

“너 뭐해?”
“아니 그게 산책 좀 나왔어.”
“인터폰으로 너 뭐하는지 다 보이거덩.”
“아 저기 그게!”
“내가 싫은건 이해하겠는데 티는 안 내줬으면 좋겠어.”

우리 앞으로 안 볼 사이도 아니잖아. 수연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아니, 수연아, 그게 아니야! 태연이 벌떡 일어서서는 소리쳐 보지만 때는 늦은지 오래였다. 솔직히 불편한 건 맞지만 싫은 건 아니었다. 남들은 헤어진 연인을 죽어라 욕하고, 친구들 앞에서 서스럼 없이 뒷담화도 한다지만 일단 태연은 동성애자 이기 때문에 남들 앞에서 욕할 수도 없었고, 그리고 적어도 수연에 대해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걔는 밥을 깨작거리면서 먹어, 잠이 오질나게 많아서 맨날 풀풀 잔다니까, 스킨쉽이 너무 심해 나는 손만 잡길 원하는데 입술까지 쭉 내밀고 있는거 있지. 태연이 노트북을 켜서는 예전에 수연과 사귀던 시절에 익명 성소수자 카페에 싸질러 놓은 고민글들을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뭐 이런 자질구레 한 거까지 적어놨지. 태연은 제 스스로 얼굴이 빨개지기를 수차례 겪다 다음 페이지로 글을 넘겼다.

이거 내 애인님이 선물해준거야! 이쁘지? 4.0
태연은 제목을 보고는 씁쓸하게 웃다 차마 제목을 클릭하지 못하고는 노트북을 그대로 덮어 버렸다. 태연은 눈을 감은 채 바닥에 누워서는 다시 팔목으로 눈을 가리었다. 슬퍼서 우는거 아니거든. 그냥 슬픈 생각이 나서 그런거야. 아무 것도 없는 거실에 혼잣말을 흘려보내다가 맥없이 피식 웃고 말았다. 헛바람이 빠지는 소리 같았다. 다시 만난 것을 기뻐한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슬퍼하게 되는 것, 이게 정석인걸까. 헤어진 연인 사이에 쿨한 재회 같은 것이란 아마 없을지도 모른다. 비록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안녕! 이라고 외쳐도 속을 이미 썩어 문드러져 줘터지기 시작했다는 거. 태연은 그것을 배우고 있는 중이었다.

“참 귀신같네.”

휴대폰 액정에 미영 언니의 얼굴이 뜨고 있었다.

미영 언니는 이삿집은 언제 나르냐, 내가 도와줄 거 없냐 일일히 체크하고 나에게 물어봐주었다. 통화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태연이 언니 일 안하러 가요? 하고 묻자 언니는 이게 내 일이라며 호호 특유의 웃음 소리를 들려주었다. 직접 미영이 앞에서 눈웃음을 짓고 있을 모습이 상상되니 태연도 덩달아 비죽 비죽 따라 웃게 되었다. 그럼 나 그 날 간다? 하는 말에 태연은 화들짝 놀라서 안돼요! 절대 안돼! 하고는 소리쳤다.

언니가 힘들까봐 그래요. 언니도 좀 쉬어야죠. 사실 이것도 이유중에 하나이기는 했지만 솔직히 수연과 미영 언니가 맞닥드리게 될까 태연은 이게 제일 걱정이었다. 옛애인과 현애인의 재회, 누가 봐도 끔찍한 스토리 중에 하나였다. 미영은 미영 나름대로 화가 날 것이고, 수연에게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껴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태연이 몇 번이고 다시 되묻고 확인하고 나서야 전화를 끊었다. 아니야. 이 언니는 그래도 나 몰래 기차 끊어서 올 사람이야. 그것도 모자라 태연은 마지막으로 꼼꼼히 문자까지 보내고 나서야 한숨 돌렸다. 

“이거 떡인데, 나 오늘 이사 했거든. 근데 네가 또 옆집이기도 하니까.”
“잘 먹을게.”
“그래. 우리 그래도 이웃이니까. 앞으로 계속.”
“그럼 가봐.”
“어? 어 그래.”

수연은 태연이 건네준 떡 접시를 받고는 문을 쾅 닫아 버렸다. 그리고는 태연이 문 앞에 얼떨떨하게 남은 떡 접시를 품에 끼고는 서있었다. 쟤가 아직도 화났나? 아니면 그냥 내가 불편한건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다가 머리를 휘휘 저었다. 쟤가 불편하건 화가 났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람! 다시 태연은 떡 접시를 위층에 돌리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올라오는 엘리베이터가 3층에 딱 멈춰섰다. 3층? 태연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자 문이 열렸고 그 안에서는 건장한 남자 하나가 타고 있었다. 태연은 그 남자의 얼굴을 보고는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침을 꿀떡 삼키고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닫히는 문 틈 사이로 현관문을 열며 환하게 웃고 나오는 수연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 정수연도 연애 할 수 있지. 뭐. 나도 하는데 정수연이라고 별 수 있나. 벌써 3년도 더 지난 일이야. 태연은 떡 접시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는 놀이터 그네에 혼자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수연의 집을 힐끔 힐끔 쳐다 보았다. 아직 불은 켜져 있네. 다행이다. 잠깐만! 뭐가 다행이야. 태연은 다시 씩씩대며 고개를 숙였다. 정수연은 사실 All 게이는 아니었다. 태연을 만나기 직전에 남자친구를 여럿 사겼던 걸로 알고 있었고, 사실 이런 성향을 알게 되고 처음으로 고백 한 것도 태연이었다. 능력도 있고, 얼굴도 반반하고, 몸매까지 좋으니 수연이 누굴 만나도 만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남자라고는 전혀 생각치도 못했다.

“됐어! 알게 뭐야! 내가 알게 뭐냐고!”
“뭐가 알게 뭐라는 거야.”

등 뒤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는 벌떡 일어서서 고개를 획 돌렸다. 수연이 얇은 가디건을 걸치고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너 왜 여깄어? 너네 집에……가 아니라 왜 이시간에 나와 있는 거야?”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거든. 너야 말로 떡 돌린다더니만 왜 이러고 있어.”
“음, 그게, 그러니까…….”
“아! 알겠다. 너 이웃 주민들하고 아직 어색하구나.”
“어! 그래! 그거야. 너도 알잖아. 내가 좀 낯도 많이 가리고 그러는거.”
“난 또 뭐라고. 가자.”
“잠깐만. 어딜 같이 가자는 거야.”
“여기 오래 살아서 웬만큼은 알아.”

태연은 수연에게 손을 잡힌 채로 질질 끌려가다 싶이 걸어갔다. 근데 막 강압적으로 그런게 아니라 태연이 맘만 먹으면 뿌리 칠 수도 있고, 왜 이러냐고 정색도 할 뻔 했는데 그러기는 커녕 그냥 얼떨떨하게 수연의 옆모습을 멀끔히 보다가 같이 엘리베이터에 오르게 됐다. 수연이 4층 버튼을 누르기 위해서 그제서야 태연과 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었다. 태연은 아직도 멍해서 수연이 잡은 손을 쥐었다 폈다 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또 멍하니 있었을까. 수연이 팔꿈치로 태연을 쿡쿡 찔렀다. 너 전화온다. 수연의 말에 그제서야 진동을 느끼고는 태연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언니구나. 응. 밥 먹었어요? 아 술 먹고 있어요? 조금만 마셔요. 언니 피곤할텐데 먼저. 아 저도요. 네? 저도 마찬가지에요. 으, 알겠어요. 나도 사랑해요.”

태연은 머쓱하게 종료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이렇게 숨 막히는 공간이구나. 엘리베이터 문은 왜이렇게 깨끗한 걸까. 태연과 수연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비쳐지고 있었다. 하필 그 타이밍에 전화가 올게 뭐고, 또 미영 언니 특유의 술버릇이 발동해서 사랑한다고 보챌 줄 누가 알았을까. 태연이 목구멍에 찬 침을 꿀꺽 삼켰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소리도 어찌나 큰지 그냥 지금은 숨소리만 들어도 움찔 움찔 했다. 그러나 그 숨통 막히는 정적을 먼저 깬 건 다름 아닌 수연이었다.

“김태연이 사랑한다는 말도 다하네.”

수연의 말에 태연은 가뜩이나 막힌 숨이 더 차서는 헥헥 거리기 일보 직전이였다. 제발 살려줘!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얼어 붙어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띵 소리가 나고 수연이 먼저 내리고 나서 태연을 향해 안 내려? 라고 되물은 뒤에야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마냥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같이 복도를 걷는 내내에도 수연은 말없이 또각 또각 발소리만 낼 뿐 이었고 덩달아 답답해 태연은 답답해 죽을 것만 같았다.

 

-

 

 

 

 

 

Epilogue. 1

“수연씨, 여기 서류요.”
“으아 감사해요. 내일 아침에 회의인데 하필 두고 올 게 뭐람. 한 대리님 진짜 감사해요. 나중에 밥 쏠게요.”
“아니 그건 괜찮고, 여기 오다가 옆집 사는 여자분 본 거 같은데.”

수연에게 이미 이런 상황은 낯설지가 않았다. 태연을 알고 나서 부터 이런 일은 많이 있었었다. 수연에게 스리슬쩍 접근해오는 남자들 처음에는 막연히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은가 보다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건 수연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수연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잿밥들에 대한 관심임을 알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태연에 대한 관심은 늘 끊이지가 않았다. 사실 그런 일을 겪으면 태연이 밉고, 원망스러울 법도 했는데 수연의 타켓은 정 반대, 오히려 남자들을 향해 쏟아졌다. 지들이 뭐라고 태연이한테 저러는 거야. 그리고 나서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정도가 심한 우정이구나 생각했던게 사랑일수도 있겠구나 싶다고.

태연아 내가 사실 여자를 좋아하는데 말이야. 사실 수연은 고백 아닌 고백을 하고야 말았다. 얘가 날 싫어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절교라도 한다고 하면, 수연은 겁이 나서 눈을 꾹 감아버렸다. 그런데 수연에게 돌아온 말은 뜻밖이었다. 태연도 사실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0%의 가능성이 50%로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애인 있는거 같더라구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낌새가 그래요.”

수연은 저도 모르게 연막작전을 펼쳤다. 딱히 태연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었고, 비젼도 많은 남자라 사내에서도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태연에게 소개 시켜줘도 아깝지  않을. 수연도 자기가 내뱉고는 어이가 없어서는 실소를 했다. 한 대리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를 빠져 나갔고, 수연은 한 쪽 입꼬리를 삐죽거리며 소파 위로 돌아가서는 놓고 온 서류들을 다시 살펴봤다.

Epilogue. 2

“태연아. 나 너 좋아하는 거 같아. 아니 사랑하나?”
“으 하여간 정수연 넌 너무 쉽다니까. 어떻게 사랑한다는 말이 불쑥 불쑥 나오냐.”
“사랑하는데 사랑한다고 하는게 뭐 어때서! 너는 나 안 사랑해.”
“미투.”
“엉?”
“아이러브유, 워아이니, 쥬뗌므. 됐지?”
“됐다 됐어. 너한테 기대를 말아야지.”

 

-

 

 

 

 

 

p.s
뭐든 깔끔하게 시작하는게 좋을거 같아서 마무리 하고 살 좀 덧붙여서 다시 올립니다.
대신 이번 편은 구독료를 받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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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 깜짝이야 저는 무슨 제가 예지몽이라도 꾼줄알앗어요 뭔가 익숙한데에...하면서 읽는데 뒤에는 또 새로운거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태여니는 이제 어트케 행동할까요 아 다음편 빨리 보고싶아여ㅠㅠ
9년 전
독자2
작가님! 질문할게 있어요! 태연이가 둘다 본투비 게이라고 했는데 나중에는 또 수연이가 all게이는 아니라는거요... 계속 읽어봤는데 잘 모르겠어요ㅠㅠ
9년 전
독자3
진짜사랑해요작가님 ㅠㅠㅠㅠㅠㅠㅠㅠㅠ진짜재밋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계속계속 써주세요ㅠㅠㅠㅠ
9년 전
독자4
아 이걸 왜 이제야 봤을까요? 진짜 소름 돋도록 재밌어요 전개가 빠르고 휙휙 넘어가면서도 중요한 부분은 딱딱 집는 게 완전 꿀잼 of 꿀잼ㅠㅠㅠ 저 같은 탱싴 아만자에게는 굉장히 은혜로운 작품입니다 김태연이랑 정수연 사이의 묘한 감정선이 좋고 둘 다 은근히 찌질한 게 좋고ㅠㅠ 자까님 이거 중편은 언제쯤 나올까요? 구독료 1000을 내더라도 꼭 보고 싶습니다! 사랑해요♡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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